나쁜 소식은 대체로 당신이 무의식적인 마음에게 로봇처럼 순종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당신은 원래 그렇게 프로그래밍돼 있다. 그리고 당신이 더 바빠질수록 무의식적인 마음이 모든 것을 조종하게 되고, 당신은 로봇처럼 더욱 맹목적으로 그 프로그램에 따르게 된다.

자신의 무의식적인 마음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우주를 이성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와도 같다.

거짓 자아는 충격과 공포로 다가오는 자신의 취약점과 그에 따른 두려움에 대처하도록 도와주는 자연스럽고 영리한 가면이다.

자아가 평생 동안 수행하는 유일한 일은 당신이 당신 자신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당신의 자아는 그보다 훨신 더 많은 것들로 구성돼 있다.

더 많은 목소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요컨대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새장의 쇠창살이 실제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자아가 그 쇠창살을 현실로 만들어서 마치자신의 생명이 거기에 의존하는 것처럼 그 쇠창살이 진짜라고 주장한다는 게 문제라는 얘기다.

두려움과 소통하면 모든 어둡고 나쁜 목소리와도 소통할 수 있다.

두려움을 실천하는 것이 해방의 열쇠다.

그러면 당신은 두려움에서 벗어난 느낌이 들 것이고, 두려움도 당신에게서 벗어난 느낌이 들 것이며, 당신이라는 전체의 존재는 모여서 파티를 열 것이다.

당신이 도둑과 악당과의 관계를 끊으면 건강하고 새로워지는 데 필요한 전체성이 부족해진다. 하지만 도둑과 악당을 포용하면 당신은 더욱 완벽해진다.

당신이 궁극적으로 최고 수준에 이르고자 한다면, 이번 생에서의 주된 과업은 다른 무엇보다 자신의 감정에 도달하는 것이다.

생각하는 마음을 주체에서 객체로 바꾸는 것이 자신의 삶을 영원히 받아들이기 위한 가장 중요한 단계다.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분리하면, 즉 생각하는 마음을 객체화시키면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또한 그 순간에 당신은 이 관계가 얼마나 미친 관계인지를 알 수 있다.

생각하는 마음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행동방식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거칠과 반복적인 로봇 같은 삶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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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공부 - 미국 국민화가의 하버드 미술교양 강의
벤 샨 지음, 정은주 옮김 / 유유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예술은 잘 모르기도하고, 실력도 부족하여,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는 영역이다. 


음악은 그래도 대충이라도 연주를 하는데, 

그림은 아무리해도 내 능력 밖인 듯하다. 


우리 5살 둘째가 요즘들어 그림에 관심이 지대하여,

타요나 폴리 등을 그려달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이 버스인지 경찰차인지 그리고나서도,

애매모호할 때가 많다. 

힘겹게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고나서야,

잠시의 자유를 얻게 된다.


미국의 국민화가라는 '벤 샨(Ben Shahn)'은

그의 하버드대 강의에서 

예술이 무엇인지, 

예술가는 어떤 존재인지를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진입장벽이 높은듯하여 

선뜻 들어서지 못했던 예술의 영역이

친밀하게 다가오게 되었다. 


특별히 이 책을 통해

예술가라는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 예술가라는 용어에

우리 존재를 대입시키니 놀랍게도 

우리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주제들이었다.


가령, 

"미국에서 예술 그 자체에 이른바 자연스러운 환경이 부족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 되었습니다. 대개의 경우 예술과 예술가가 존재하는 일반 사회의 분위기는 예술가라는 직업에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입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 예술가는 일종의 자기방어와 자기긍정이 가능한 작은 사회 속에 머물죠. 그런 예술인 사회에는 예술의 자양분이 될 수 있는 다양한 경험과 견해를 접할 기회가 극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보통의 사회에서 물러나 흡사 수도승처럼 지냅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이 만들어 내는 예술 작품은 갈수록 안으로 향하고, 보편적인 경험의 생생한 흐름을 점차 따라가지 못하며, 지난날 예술을 위한 추진력과 영감이 되었던 인간으로서의 책무에서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21-22)".


이것이 곧 예언자적 책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세상 한 가운데서 세상과 끊임없이 조우하고 관계하며,

그럼에도 대안적 목소리를 내야만하는...


이러한 부분들이 책 곳곳에 나와있다.

그리하여 예술과 예술가를 알아감과 동시에,

우리의 존재와 책무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다. 


'예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 분이라면

'예술'의 세계를 한번 들여다 볼 수 있는,

그리고 조금 발 디뎌볼 수 있는 책이 아닐까 한다.

 



예술이 현실에 뿌리를 둔다는 것입니다. 예술은 이 생명의 토양을 긍정할 수도, 전적으로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 P23

어느 경우든지 예술에 자극을 제공하는 것은 때마침 공교롭게도 존재하는 삶 그 자체입니다. - P24

예술이 발생하는 원천은 자극이나 심지어 영감보다 더 강렬한 어떤 것이라고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술은 차라리 도발에 가까운 어떤 것에서 불붙는지도 모른다고, 단지 삶에 의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삶에 의해 강제되는지도 모른다고 말이에요. 예술은 거의 언제나 건방진 구석이 있고 기성의 권위를 경멸합니다. 따라서 예술 그 자체의 권위와 번영마저 갈아 치울 수도 있습니다. - P27

예술가가 (혹은 누구든) 그처럼 선택을 내려야만 하는 것은 오직 현실의 삶이라는 맥락 안에서입니다. 그리고 선택이 중요한 이유는 오직 냉엄한 현실이라는 배경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선택은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렇기에 선택에는 어느 정도의 신념과 헌신이 따릅니다. 또한 정신력이라고 할 수 있을, 예술을 추동하는 힘이 수반됩니다. - P29

대학 환경에는 성숙한 예술의 발전을 가로막고 예술가가 진지한 작품을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일을 방해하는 세 가지 주요 장벽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 장벽은 어쩌면 예술을 넘어 다른 분야에도 영향을 끼칠는지 모릅니다. - P35

교육은 주안점을 두는 부분과 다루는 내용 면에서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언제나 세 가지 기본 능력을 요구합니다. 첫째는 지각력, 즉 가치를 인식하는 능력입니다. 일종의 교양이지요. 둘째는 방대한 지식을 축적하는 능력입니다. 셋째는 그 모든 재료를 창의적인 행위와 이미지로 통합하는 능력이에요. 예술의 미래는 틀림없이 교육에, 한 가지가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교육에 있습니다.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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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저 역시 대중의 인정을 예술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는 것이 몹시 못마땅합니다.

하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 것도 똑같이 납득할 수 없어요.

지독히도 비뚤어진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중에 영합하기 위해 계산된 노력들이 장기적으로 행해짐에 따라 대중의 지성은 타락했는지도 모르며, 대중의 눈에는 때가 묻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우리 문화의 실체는 대중 그 자체입니다.

바로 거기에 백합을 심을 비옥한 토양이 있습니다. 바로 거기에 예술을 위한 수 많은 재료가, 재탕된 것이 아니라 새로이 샘솟는 감정의 샘이, 뜻밖의 독특한 디테일의 원천이 있어요.

우리 예술가는 이 대중이라는 실체의 주변부에 존재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 핵심적인 부분을 이룰 수도 있습니다.

명백성이 낮아질수록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지시는 희미해지고 대상을 재현하는 방식이, 말하자면 속기 그 자체의 양상이 부각됩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재현적 예술에서 비구상적 예술로의 이행을 완수합니다. 맨 처음에는 속기가 일어나지 않고 대상만 존재하며, 맨 마지막에는 대상이 부재하고 속기만 남지요.

성취된 개별 진리는 물론 최종적인 것이 아닙니다. 다만 깨달음의 순간을 표상할 뿐이지요.

예술을 통해 형상화되고 또 아마 보존되는 것은 바로 그런 깨달음의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가는 언제자 자신이 생각하는 궁극적인 것(예컨대 완벽에 이른 종교적 감정, 형태의 근원, 인간의 숨겨진 본성)을 좇는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예술가가 갖춰야 할 기본 조건으로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겠습니다. 첫째 교양 있는 사람이 될 것, 둘째 교육받은 사람이 될 것, 셋째 통합적인 사람이 될 것.

통합적integrated이라는 것의 사전적 의미는 하나로 합쳐진다는 뜻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 말에는 좀 더 역동적인 의미, 교육의 측면에서 말하자면 유기적으로 상호 작용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통합은 한 사람의 선택된 일부분이 아닌 전체가 관계한다는 뜻을 함축하죠.

교육은 주안점을 두는 부분과 다루는 내용 면에서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언제나 세 가지 기본 능력을 요구합니다. 첫째는 지각력, 즉 가치를 인식하는 능력입니다. 일종의 교양이지요.

둘째는 방대한 지식을 축적하는 능력입니다. 셋째는 그 모든 재료를 창의적인 행위와 이미지로 통합하는 능력이에요.

예술의 미래는 틀림없이 교육에, 한 가지가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교육에 있습니다.

오늘날 스타일이란 작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구체적인 의미의 형상이며, 미적 관점과 일련의 의도에서 발전되는 것입니다.

그림을 어떻게 그리느냐가 아니라 왜 그리느냐의 문제이지요. 스타일만을 모방하거나 가르치는 것은 이를테면 사람의 목소리 톤 혹은 성격을 가르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화가가 되고자 하는 청년에게 성공을 약속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회화의 문제는 성공의 문제가 전혀 아니에요. 성공보다는 자아실현에, 자신이 생각하는 것에 얼마나 중점을 두는가의 문제죠.

예술의 공적 기능은 언제나 공동체의 창출입니다. 꼭 의도한 것은 아닐지라도 결과적으로 그래 왔습니다. 어떤 시기의 예술은 종교 공동체를, 또 어떤 시기의 예술은 소작농 공동체를 만들어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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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치 자체를 거부할 수는 있겠지만 맞지 않는 원칙을 가져와 판단의 잣대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일까요? 아마 각자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대상일 것입니다.

우리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은 가장 열정적인 참여를 끌어내는 것(야구, 철학, 스키, 음악), 가장 연민을 느끼는 대상(어린이, 길고양이, 자영업자), 이렇게 행동할 것인지 저렇게 행동할 것인지를 결정하게 하는 신념(종교, 민주당 지지자라는 사실) 등입니다.

우리는 이런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어떤 상황은 받아들이고 어떤 상황은 강하게 거부합니다.

그러나 무엇이 중요하다는 인식, 중요한 것이 먼저라는 그러한 인식에도 감정이 개입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논리적이라고 해도 그렇습니다. 어떤 사안이 중요한 것일수록 감정적으로 더 절박하게 느껴진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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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에 관해 제대로 인식하면 두려움을 피하거나 두려움과 싸울 일이 사라지게 된다.

당신이 두려움과의 관계를 잘 설정하면 삶의 양상이 바뀐다.

두려움은 당신 존재의 가장 근본적이고 주된 부분이며, 당신의 자아는 실제로 두려움 없이는 형성되지 않는다.

나는 당신에게 두려움이 삶에 걸림돌이 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그 대신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 두려움이 당신의 동료일 뿐 아니라 평생의 위대한 동반자라는 사실을 인식하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한다면 어떻게 될까? 두려움은 더 현명해진다고 이성으로 떨쳐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두려움은 사랑과 증오, 기쁨과 슬픔처럼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다. 그것이 사실 두려움의 전부다.

아무도 두려움을 막을 수 없다. 두려움에 관한 유일한 진실은 우리가 두려움을 두려워해야 두려움이 존재한다는 것뿐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두려움이 나쁘다고 여긴다.

분리와 거부는 삶의 불편한 현실이지 두려움 자체가 아니다.

더욱이 분리와 거부는 인간의 운명이고 삶의 본성이다.

당신의 경험은 잘못됐다. 두려움, 당신이 느꼈고 느끼게 될 최종적인 불편한(불쾌한) 감정은 두려움이 아니다.

당신이 통제하려고 시도하는 나쁜 목소리가 무엇이든 간에 결국 그것이 당신을 통제하게 될 것이다.

스트레스와 불안, 즉 두려움은 자연스러운 것일 뿐 아니라 사실은 우리가 내 삶의 일부로 원하는 것들이다.

그것들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런 감흥도 없는 지루한 삶을 살 것이고, 인간성을 상실할 것이며, 결국에는 살기를 포기할 것이다.

피할 수 없는 두려움을 인정하고 그것으로부터 배울 점을 찾으려고 노력한다면 당신은 두려움의 학생이 될 수 있고 무한으로 충전되는 연료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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