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public of Korea shall be a democreatic republic"입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가 아니라 "되어야 한다"입니다.

그럼 누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니 주인인 국민이 해야지요.

주권재민이라지만, 저절로 재민이 아닙니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어야 한다‘shall reside in the people"입니다.

주인 행세도 제대로 못 하고 비리비리해서는 안 됩니다. 주인 노릇 제대로 하기 위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는 겁니다.
주인인데 주인 노릇 못하는 자는 백성이고, 신민이고, 노예입니다.

주권은 그냥 국민 손 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is‘가 아닙니다.
국민 손 안에 있을 수 있도록 정신 차리고, 감시하고 독려하고, ‘shall‘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그렇게 국민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 민주공화국 만들기 위해 분투하고, 주권 행사 위해 분투하라는 겁니다.

평등권은 현실적 차별뿐만 아니라 각종 편견과 맞서는 싸움을 통해 더욱 풍부해집니다. 헌법상 평등권이 있다고 해도, 실제로 그 평등권의 실현은 여러 사람들의 차별과 편견의 철폐 노력을 통해 확실하게 구현될 수 있습니다.

헌법의 전문과 조문은, 우리의 현실보다 훨씬 평등, 균등을 지향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을 불균등한 위헌상태로 놓아두지 말고, 헌법규범대로 균등하게 바꿀 책임이, 주권자인 국민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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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이전에 한반도에 있던 나라는 임금이 주인인 왕국, 제국이었습니다. 1919년에 처음으로, 임금이 아닌 국민이 한반도 땅의 주인, 주권자로 선포되었습니다. 한 나라의 역사에서 국민이 주인 되는 나라의 탄생만큼 큰 사건은 달리 없습니다.

미 대륙이 대영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처음으로 선포한 것이 미국독립선언이듯이, 우리가 일제 지배를 벗어나기 위해 우선 필요했던 것도 "독립선언"입니다.

그래서 3월 1일은 독립선언일입니다. 독립은 일제의 양보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독립국‘임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독립국이라는 자기선언입니다.

1919년 3월부터 5월까지의 독립운동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남녀노소와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만세운동의 방법으로 전개되었습니다.

만세운동은 목숨을 거는 일이었습니다. 총칼을 들이대는 일제의 위협이 지속되었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우리 국민은 유혈 희생을 무릅쓰고 비폭력시위로 민족의 의사를 장쾌하게 표현함으로써 새 나라의 주인 자격을 당당히 얻게 됩니다.

상하이에 모인 애국지사들은 그 모든 사람들을 주인으로 세우는 바로 그런 나라를 만들겠다고 결의했습니다. 그래서 수립된 것이 대한민국이고, 그래서 민주공화국인 것입니다.

비폭력은 시위하는 사람들의 양심과 결연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이를 탄압하는 권력의 부도덕성과 잔인성을 대비시키는 효과를 갖습니다.

<대한민국 임시헌장>의 기본 틀을 잡고 조문의 체계와 내용을 창출한 분은 조소앙 선생입니다. 그의 다년간의 법률적 지식도 크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지만, 무엇보다 탁월한 점은 애국적 민족운동의 기류를 헌법적 표현으로 일관한 바탕 위에 주조해냈다는 겁니다.

제헌 국회의원들은 이 1919년의 3·1사건을 헌법 전문에 포함시키는 데는 이의가 없었습니다. 이 사건이 다른 독립운동 사건에 비견될 수 없는 무게를 갖고 있다는 점에 생각이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 이후 우리는 민주공화국의 국민임을 자각했고, 그러한 국민적 자각이 대한민국을 (전제왕조국가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으로 건립하는 토대가 되었음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임시정부의 법통"이라는 구절에는 그러한 법통이 끊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던 애국선열들의 피눈물, 그러한 지혜를 간직한 지식인과 후손들의 한평생 삶이 녹아 있습니다. 말 그대로 마지막 광복군과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이루어낸 쾌거이지요. 이 구절은 단순한 미사여구가 아닙니다. 헌법 전문에 명기하기까지의 피와 눈물과 지성의 역사, 시대의 맥박을 함께 읽어내야 합니다.

독립운동을 폄하하려는 자들은 ‘독립운동은 실패‘라고 결론 내리고 싶어 하지요. 그러나 성공은 인간적·민족적·세계적 차원에서 두루 살펴야 합니다. 독립운동은 인간적 주체성을 회복하고, 민족의 정기를 세우고, 세계 속에 독립한국의 필수성을 각인시킨 그 자체로 성공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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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핑 도스토옙스키 - 대문호의 공간을 다시 여행하다
석영중 지음 / 열린책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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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도스토옙스키를 만나면 여러 질문이 떠오른다.

어디까지가 그의 삶과 잇대어져 있을까?

소설의 등장인물들 중에서 실존했던 인물이 있었을까?

전체적 이야기는 어디에서 착안했을까? 등


『매핑 도스토옙스키』는 매우 독특한 책이다.

도스토옙스키의 평전이나 전기라고 분류해도 되지만,

일반적인 평전이나 전기와는 다르다. 


노어노문학과 교수이며,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다수를 번역했고,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강의를 해왔던 석영중 교수는,

그 삶의 궤적을 따라 여행을 떠난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러시아 곳곳뿐만 아니라,

시베리아와 유럽까지.

도스토옙스키의 삶의 흔적을 따라간다. 


이 책의 장점은

그 삶의 명과 암을 모두 다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더 크게 유익했던 것은

그 삶의 그림자들이 어떻게 소설로 다시 태어나고,

소설의 도구로 사용되었는지다.


도스토옙스키의 발자취를 추적하는 동안 나는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가 여기저기 떠돌아다닌 것은 대부분 그의 의사와 무관했다. 시베리아 유형과 도박 중독과 천식을 원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이 숙명적인 이동은 예외 없이 그의 작품 속 서사의 일부로 굳어졌다. 시베리아는 『죽음의 집의 기록』과 『죄와 벌』에, 모스크바는 『백치』에,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가난한 사람들』에서 『미성년』에 이르는 수많은 소설에, 유럽은 『지하로부터의 수기』와 『백치』와 『악령』에, 트베리는 『악령』에, 스타라야 루사는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겼다. 실제의 공간과 지명은 그의 문학 속으로 들어와 때로는 이야기의 배경이 되고 때로는 저자의 의도를 전달해 주는 비유이자 상징이 되었다. 지도 위의 랜드마크는 시간 속의 사건으로 전이되었다. 특정 공간을 따라가는 저자의 이동 궤적은 소설 속에서 사상의 움직임으로 복제되면서 놀라운 역동성의 문학을 창출했다(6).



이 책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옆에 두고 함께 읽을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그의 삶과 사상의 전환과 발전 등을 볼 수 있으며,

더불어 그의 작품에 대한 풍부한 해석은 선물과 같다.


도스토옙스키에게 기억은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선을 상기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것은 본질로의 회귀이며, 현재를 있게 해 준 근원에 대한 인정이며, 앞으로의 삶을 희구하게 해주는 동력이다. 단순히 과거의 사실을 되새기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사실을 다른 차원의 항구함으로 고착시켜 주는 힘이다. 그것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 인간의 현세에서의 삶, 유한하고 비극적인 삶을 <불멸>로 전환시켜 준다. 기억을 통해 살아 있는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이 연결되고, 각기 다른 시간들이 연결되고, 슬픔도 기쁨도 인생이란 이름의 거대한 물줄기로 합쳐진다(420-21).



연민은 그의 윤리적 어젠다 맨 앞줄을 차지한다. <연민은 가장 중요한, 어쩌면 유일한 인간 실존의 법칙이다> 혹은 <연민- 이것이 그리스도교의 전부다>라고 말할 때 그가 의미하는 것은 값싼 동정이나 단순한 측은지심이 아니다. 러시아어로 <연민sostradanie>은 <함께so>와 <고통stradanie>을 합성한 단어다. 영어의 <연민cpmpassion>도 같은 원리다. 요컨대 타인의 고통을 불쌍히 여길 뿐 아니라 더 나아가 함께 고통당하는 것이 곧 연민이다. 도스토옙스키는 물질의 분배가 아닌 고통의 분담에서 공존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 P39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을 멈춘 적이 없지만 또 그렇다고해서 부자라고 무조건 비난하지도 않았다. 탐욕과 인색을 혐오했지만 돈 자체를 악으로 치부하지도 않았다.
도스토옙스키가 돈과 관련해 일관되게 우려했던 것은 병적인 집착에서 촉발되는 맹목적인 <축적>이었다. - P43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 도스토옙스키는 인간 본성에 관한 철학을 정립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극한 상황에서 그는 집중해서 강도 높게 인간을 관찰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가차 없는 분석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관찰은 <3인칭의 인간>이 아닌 <나>를 포함하는 <1인칭 우리 인간>에 관한 철학으로 굳혀졌다. 그만큼 더 설득력이 있고 개연성이 있다.
그가 유형지에서 발견하고 탐구했고 이후 소설에서 끝없이 발전시키게 될 인간 본성의 출발점은 <자유>다. 자유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개념인 동시에 심리적이고 종교적인 개념이다. 그러나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로 들어오면서 그것은 한 개인으로 하여금 현실 속에서 도덕적인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는 일종의 <인격 수양> 비슷한 어떤 것이 된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그 소설을 <교육적>이라고 했다. - P113

도스토옙스키는 최고의 가치로서의 자유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지향을 둔 삶을 강조한다. 자유를 지향하는 삶은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삶, 치열하게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삶이다. 그의 소설들이 보여 주는 것은 자유를 획득한 인간(어차피 그것은 불가능하다)이 아니라 자유라는 궁극의 종착점을 향해 온갖 고난과 좌절을 무릅쓰고 나아가는 인간의 모습이다. 중요한 것은 중단 없는 자유에의 지향, 자유라는 목적에 대한 갈망이다. - P117

<사람은 누구나, 설령 치욕 속에 놓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본능적으로든 아니면 무의식적으로든 자신의 인간적 가치에 대한 존중을 요구한다. 인간적인 대접은 이미 오래전에 신의 형상을 상실한 사람들조차 인간으로 만들 수 있다.> - P133

도스토옙스키의 활력은 육체의 질병과는 별 상관이 없었다. 삶에 대한 사랑이 그를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서게 해주었다. 그는 살아 있음, 그 자체를 사랑했다. - P167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매 순간 <소식>을 만들어 내는 신문의 역동성은 도스토옙스키의 천재성과 화학적으로 결합했다. 덕분에 무상한 현실은 불변의 문학으로 응축되었다. 시사적인 모든 것은 초시간적인 것이 되었다. 저널리즘이 아니었더라면 그의 유명한 예술론도 없었을 것이다. <예술은 항상 동시대적이고 현실적이다. 그 외의 다른 방식으로는 존재해 본 적도 없고 존재할 수조차 없다.>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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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의 활력은 육체의 질병과는 별 상관이 없었다. 삶에 대한 사랑이 그를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서게 해주었다. 그는 살아 있음, 그 자체를 사랑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매 순간 <소식>을 만들어 내는 신문의 역동성은 도스토옙스키의 천재성과 화학적으로 결합했다.

덕분에 무상한 현실은 불변의 문학으로 응축되었다. 시사적인 모든 것은 초시간적인 것이 되었다.

저널리즘이 아니었더라면 그의 유명한 예술론도 없었을 것이다. <예술은 항상 동시대적이고 현실적이다. 그 외의 다른 방식으로는 존재해 본 적도 없고 존재할 수조차 없다.>

도스토옙스키에게 기억은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선을 상기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것은 본질로의 회귀이며, 현재를 있게 해준 근원에 대한 인정이며, 앞으로의 삶을 희구하게 해주는 동력이다.

단순히 과거의 사실을 되새기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사실을 다른 차원의 항구함으로 고착시켜 주는 힘이다. 그것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 인간의 현세에서의 삶, 유한하고 비극적인 삶을 <불멸>로 전환시켜 준다.

기억을 통해 살아 있는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이 연결되고, 각기 다른 시간들이 연결되고, 슬픔도 기쁨도 인생이란 이름의 거대한 물줄기로 합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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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십자가의 말씀"으로 묘사하고 있는 기독교의 핵심 메시지는 단지 로마의 정치사상뿐 아니라 주로 고대 세계의 종교적 풍조나 특히 당대 모든 지식인들의 신관에도 위배되는 것이었다.

창조의 중재자요 세상의 구원자이자, 참되고 유일하신 하나님의 선재하시는 한 아들이 멀지 않은 과거에 벽지의 갈릴리에서 이름 없는 유대인들의 구성원으로 태어났다는 사실과 심지어 십자가 위에서 보통 범죄자들과 같이 죽었다는 사실을 믿는 것은 그저 미친 것으로 간주될 뿐이었다.

"‘즐거운 것‘을 말할 때에는 너그럽게 들을 수 잇지만, ‘십자가‘를 말할 때에는 거슬린다. 후자의 거슬림은 십자가에서 오는 고통과 맞먹는다"

유대인이든 헬라인이든, 로마인이든, 다른 외국인이든, 어느 누구에게라도 십자가에 달린 메시아 내지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의 아들, 혹은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그 자체로 모순이자 불편하고 어리석은 주장으로 보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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