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이란 그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 곧 신자가 하나남과 관계 맺는 내적인 삶, 우리로 하여금 변화되고 행동을 취하게 하는 원동력을 제공하는 경건 생활과 훈련, 그러므로 다른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축을 말한다.

복음주의 영성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무엇보다도 십자가로부터 비롯되고, 감사함으로 십자가에 반응하며 겸손하게 십자가를 본받는 가운데 살아가는 삶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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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자신이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강조하시고(삼하 7:9-11), 다윗보다 훨씬 위대한 미래의 왕을 말씀하신다(11-16절). 언약의 미래가 이 미래의 왕에게 달린 게 분명해진다. 하나님은 이 위대한 다윗의 아들(하나님의 아들이기도 하다)을 통해 자신의 약속을 성취하실 것이다.

새 출애굽, 새 언약, 새 민족, 새 예루살렘, 새 성전, 새 왕, 심지어 새 창조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모델을, 부분적인 하나님 나라를 다시 세우시는 게 아니라 그것이 가리켰던 것을, 실물을, 완전한 하나님 나라를 다시 세우실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처소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하나님의 복을 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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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누구도 세상의 모든 문제에 다 개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이 무시되는 상황이 눈앞에서 자행될 때는 떨쳐 일어날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

권력이 남용되고 가난한 이들이 모욕당하는 현실을 목도하면서도 침묵하는 것은 비겁이다.

오늘의 교회가 무력하게 변해버린 것은 정의에 대한 감수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제사장적 위로는 넘치지만 예언자적 외침이 잦아든 교회는 세상의 빛이 될 수 없다.

삶은 신비이다. 우리의 의도대로 되지 않는다.

실패처럼 보이던 일이 시간이 지난 후에 우리를 세워준 계기가 될 때도 있고, 성공처럼 보이던 일 때문에 우리 삶이 어그러지기도 한다.

그러나 씁쓸한 실패의 기억과 달콤한 성공의 기억이 날줄과 씨줄로 얽혀 우리 인생이라는 피륙을 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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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최우선 동기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게 아니었다. 비록 이것이 하나의 최종 결과인 것은 분명하더라도 말이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생각하신다. 우리가 듣기에는 지독하게 이기적이다. 그러나 전혀 이기적이지 않다.

자신의 세상이 자신을 찬양하길 원하실 때 하나님은 자아를 북돋우려 하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마땅히 존재해야 하는 방식으로 만물을 회복하려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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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번역하는 번역가가 되어야 비로소 만인에게 통하는 문장을 쓸 수 있다. 쓸 수 없는 사람은 번역에 대한 인식과 기술이 부족한 것이다.

잘 모르는 것이 있다면 쓰자. 자신의 말로 번역하자. 그러면 분명 자기 나름대로의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글이 이상한 게 아니라 각 문장의 연결 방식이나 전개 방식이 이상할 때 그 주장은 지리멸렬한 글이 되고 리듬감 있게 읽히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사실의 묘사라고 하면 숫자나 과학적 데이터를 넣는 것만으로 끝내 버리기 쉽다. 그러나 진정한 리얼리티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 속에서 굴러다니는 ‘귀찮은 세부 사항’을 묘사하면서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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