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예수라는 역사적인 인물, 그리고 십자가라는 역사적 사건과 뗄 수 없는 연관성을 맺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적‘이라는 말이 담고 있는 내용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계시의 기준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믿음이 가르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드러난 과거의 한 지점을, 바로 역사의 한 장소와 그 시간에 발생한 하나의 사건을 하나님의 계시라고 받아들이지 않고는 기독교의 믿음을 결코 간직할 수 없습니다.

역사적 계시를 인정한다는 것은, 동시에 진리가 우리 자신 안에 있지 않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에게서 하나님과 맺는 올바른 관계를 이끌어 낼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역사적 계시를 인정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놓인 갈라진 틈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오직 하나님만이 이런 갈라진 틈을 메우실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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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닿을 수도 없고 인간의 고통에 동요되지도 않는 빛의 영역으로 날아오르지 않으시고, 버림받은 심정으로 땅에 무릎을 꿇고, 흐느끼고, 핏방울 같은 땀을 뚝뚝 흘리고, 아버지에게 애원하며, 무방비 상태로 죄와 사망을 만나기 위해 준비하셨던 주님, 여러분과 저의 원수를 맞아 가장 중요한 전투를 치르려고 마음을 다잡으셨던 주님을 생각하면 마음속에서 감사가 솟아납니다.

우리 자신의 영적 투쟁으로는 죄와 사망에서 해방될 수 없습니다. 승리는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고난과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거저 주신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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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또 다른 요인은 그가 서있는 자리이다.

서있는 자리가 다르면 똑같은 현실도 달리 보인다.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리를 바꿔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자기 자리를 고수하면서 남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은 오만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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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은 좀 손해가 나더라도, 사람들에게 어리석다 손가락질을 당하더라도 주님의 가르침대로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계산하지 않고, 대가를 바라지 않고, 바람이 분다고 휘뚝거리지 않고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이다.

우리 삶의 공력이 드러나는 날은 반드시 온다. 예기치 않은 시련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엄한 존재로 인정받는 세상, 어느 누구도 욕망 충족을 위한 수단으로 물화되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삶의 주체가 되어 사는 세상을 꿈꾸셨다.

평화를 외치면서도 정의는 한사코 외면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정의와 평화는 동전의 양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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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진노는 불경건함과 불의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고, 이 불경건함과 불의함은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이 문제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으로 해결되었다.

이 신실하심 자체가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종말론적 계시다.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회복될 유일한 가능성은 오직 하나님에게 달려 있다.

바울에게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을 향한 사람의 적의를 죽음으로 씻어 낸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을 통해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든 믿는 자에게 나타난다.

중요한 것은 바울이 쌍방의 화해를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나님을 떠난 편은 ‘세상‘이고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해야 하는 편도 ‘세상‘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떠나지 않으셨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을 달래는 법,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으로 되돌리는 법, 하나님이 사람의 비난을 극복하시는 법 등을 말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자기와 화해하게 하셨다." 이는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위에 있고, ‘세상‘은 그리스도의 공로로써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는 말이다(그 반대는 성립이 안 된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이 이를 뒷받침하는데, 그리스도의 죽음은 더 나아가 새로운 피조물을 창조하는 기적을 일으킨다.

하나님은 ‘새롭게 변하지‘ 않으셨다. 문제가 하나님께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이 ‘새롭게 변할‘ 필요가 있고, 십자가는 이 변화를 이루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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