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속의 시간‘을 살고 있지만, 아름다움을 향한 역사의 걸음은 느리기 이를 데 없다.

많은 이들이 현실에 절망한다. 하지만 인간의 소명은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을 지금 여기서 시작하는 것이다.

가능성을 따지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시작이다. 심고 물 주는 것은 우리의 몫이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작은 시작을 부끄러워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건재하고,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신다면 대체 주저할 것이 무엇이랴.

세상에는 큰 교회와 작은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교회와 죽은 교회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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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전달, 즉 생각과 감정을 효과적이면서도 황홀하게 전달하는 일이야말로 문장이 도달해야 할 최종 목적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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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 힘은 갑자기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에 느끼는 안도감이 아니라 누군가 나를 아무 조건 없이 걱정해주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위로의 본질은 누군가 내 문제를 해결해주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내면의 에너지가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것임을.

책을 읽는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자유, 그것은 스스로 한 세계를 창조해낼 수 있는 최고의 창조성을 오직 문장의 힘만으로도 이루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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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트 부인은 한국 개신교의 놀라운 성장의 원인을 한국인의 내면에 자리 잡은 유일신론으로 보았다.

한국인이 그런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갖고 있다면 결코 일본의 물질주의나 다신교인 신도(神道)에 만족할 수 없었다.

한국인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한국의 역사와 언어와 영성에 밀착되기를 원했다.

기독교의 하나님 신앙은 일본의 군국주의와 물질주의에 맞선 한국의 민족주의와 영성주의에 연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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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약함을 걱정할 것 없다. 오히려 성령께서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은총의 세계 안에 머물고 있는한 우리가 겪는 모든 일들이 결국은 ‘선‘으로 귀결된다고 고백한다.

실패의 쓰라림도, 고난의 아픔도 구원이라는 보화를 빚는데 사용된다.

세상에 버릴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쭈뼛거리며 살 것 없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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