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 그는 유대인이었다.

그는 혈통으로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유대인이었으며 자기 민족의 성스러운 전통에 깊이 경도된 사람이었다.

예수가 동시대의 다른 유대인들과 빚었던 갈등은 "예수 대 유대교"의 구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갈등은 제2성전기 유대교 내에서 한 유대인이 동시대인들과 때로 의견이 일치하고 때로 불일치하는 상호작용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런 갈등이 예수를 동시대 유대인들과 구분하는 차이점이라기보다 오히려 그를 유대인답게 하는 양자 간의 유사성이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제2성전기 유대교는 그 신조와 행습에서 매우 다양한 형태를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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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들의 폭정에 맞서 유대인들은 총독에게, 때로 그보다 상위에 있던 시리아의 집정관대행에게, 심지어 황제에게도 항의를 표시했고, 칼리굴라의 법령으로 인한 위기가 닥쳤을 때는 사실상 농노 총파업을 시행했다.

기원후 1세기의 굵직한 사건들을 살펴보면 불의, 항의, 억압, 항쟁이라는 사중 패턴을 감지할 수 있다.

불의가 악화되면서 평화롭던 항의가 폭력을 수반하며 격해지고, 항의가 거세지면 억압도 격해졌다.

마침내 플로루스 치하에서 억압이 극에 달했을 때, 백성들은 로마 통치를 전적으로 부인하고 본격적 항쟁에 들어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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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숨을 통해 제자들은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희망의 사람이 되었다.

이제 그들이 할 일은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 사는 것이다.

복음을 전파하고, 연약한 사람들의 힘이 되어주고, 갈등하던 사람들을 화해시키는 사명이 그들에게 주어졌다.

때로는 우리의 호의가 싸늘한 거부에 부딪힐 때도 있고, 선한 노력에 결실이 없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우리는 돌이켜 희망의 샘이 되신 예수님의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에 새겨진 상처를 보아야 한다.

그 상처에 접속될 때 우리는 절망의 덫에 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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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것은 언제나 무기력해 보인다.

거짓과 악의와 추함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땅 속에 묻힌 진실은 언젠가는 드러나게 마련이고, 짓눌렸던 선함은 반드시 솟아오를 것이고, 외면당하고 있던 아름다움이 사람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물들이게 될 날은 반드시 온다.

힘을 내자. 낡아 없어지지 않는 유산을 상속받은 사람답게 절망의 땅에 희망을 파종하자.

의기의 힘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리는 부활의 증인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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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알아야 할 점은 이것이다. 사람들에 대한 영향력, 그에 따른 권력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방법을 취해야 얻을 수 있다.

우리는 보통 나를 최대한 멋있게 보여주어 내 아이디어를 가지고 상대를 흘리려고 한다.

우리는 지나간 업적을 한껏 부풀리고 내가 대단한 것을 갖고 있다고 약속한다.

정직이 최선이라고 믿으며 상대에게 호의를 부탁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모든 관심이 우리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어서 그런 믿음이 생긴다는 사실이다.

지금처럼 자기 몰두가 점점 더 심해지는 세상에서 이런 전략은 상대방의 관심이 더 내부로 향하게 만들고, 나의 관심사가 아니라 그들의 관심사에 더 집중하게 만들 뿐이다.

존슨의 스토리가 보여주듯이 영향력과 권력을 얻는 최선의 방법은 정반대로 가는 것이다. 관심의 초점을 상대에게 넘겨줘라. 상대가 이야기하게 만들어라. 이 쇼에서 상대방이 스타가 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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