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으로 성경 읽기 -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
토마스 R. 슈라이너 지음, 임요한 옮김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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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Crossway의 'Short Studies in Biblical Theology'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이다(Crossway의 시리즈는 네 권의 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Crossway의 이 시리즈는 성경 전체를 하나의 주제로 조망함으로 보다 더 성경을 통일된 전체로 읽을 수 있게 도와준다. 


신약학에 관심이 있다면 토마스 R. 슈라이너(Thomas R. Schreiner)는 익히 알 것이다. 이미 그는 『바울과 율법』, 『바울신학』, 『신약신학』, 『성경신학』등의 저서를 출간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성경 전체의 핵심적인 주제로 '언약' 개념을 주장하며, 이 주제를 통해 성경 전체를 조망한다. 그는 언약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임을 분명하게 밝힌다. 


언약들은 성경 메시지의 조화와 통일성을 보는 데 도움을 주며 구속사 과정을 추적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한다. 이 구속사는 하나님이 인류에게 구속을 베풀 것이라는 약속을 중심으로 한다(창 3:15). 언약들을 이해하는 것은, 또한 세례와 성찬식의 성례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 징표들은 특성상 언약적이며, 이 맥락에서 이해해야만 한다(17).


언약은 관계적인 용어며, 선택된 관계를 통해 결속력이 있는 약속을 맺는다. 이러한 성경에서의 언약 개념으로 저자는 6가지의 언약을 살펴본다. 이는 창조 언약, 노아 언약, 아브라함 언약, 이스라엘과의 언약, 다윗 언약, 새 언약이다. 앞의 다섯 가지 언약은 새 언약으로 귀결되며, 새 언약은 각 언약과 밀접하게 연결되며 성취된다.


저자는 각 언약의 세부적인 특징과 핵심적 논의를 성경 본문을 주 자료로 하여 각 장에서 밝힌다. 특히 각각의 언약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로 귀결되는지를 매 챕터의 마지막 부분에 언급한다. 이를 통해 성경 전체가 언약이라는 주제로 이어질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전개됨을 강조한다.


이 책은 분량이 적기에 간명하게 성경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럼에도 성경 본문을 중심으로 성서학의 핵심적 논의를 다루고 있어서 결코 가볍지 않다. 독자들은 짧은 호흡으로 전개되는 글을 통해 쉽고 흥미롭게 성경에서의 핵심적 주제인 언약을 빠르게 훑어볼 수 있다. 더불어 성경 전체에서 중심적인 뼈대를 세울 수 있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각주가 거의 없고,  참고문헌이나 더 깊은 연구를 위한 도서가 없다는 것이다(원서에 있는 For Further Reading과 Scripture Index가 왜 빠졌을까?). 이는 성경에서의 '언약'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고 더욱 발전된 형태로 연구하고자 하는 분들을 위한 안내가 미흡하다는 느낌을 준다. 또한 성경의 전체 그림을 쉽게 스케치해주는 원래의 의도에 맞게 좀 더 쉽고 깔끔한 문장이나 문체였으면 좋을 것 같다(원서를 곁에 두고 읽으면 많은 도움이 된다). 

언약들은 성경 메시지의 조화와 통일성을 보는 데 도움을 주며 구속사 과정을 추적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한다. 이 구속사는 하나님이 인류에게 구속을 베풀 것이라는 약속을 중심으로 한다(창 3:15).
언약들을 이해하는 것은, 또한 세례와 성찬식의 성례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 징표들은 특성상 언약적이며, 이 맥락에서 이해해야만 한다 - P17

"내가 "창조 언약"을 선호하는 이유는, 이 용어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 언약이 다른 언약들과 어떻게 통합되는지를 볼 수 있으며, 이 용어는 구속사의 전체를 아우르는 관점에 들어맞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창조로 역사를 개시했으며, 이와 같이 옛 창조는 새로운 창조를 기대하고 그 새로운 창조를 향해 가리킨다 - P29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대신해 세상을 통치하도록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 그들은 하나님의 창조에서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제사장-왕이어야 했다. 그들은 지상에서 하나님을 대변해야 했으며, 그들이 에덴동산에 살고 에덴동산에 대한 통치권을 행사하는 방식에서 하나님의 의로움과 거룩함과 선함을 보여야 했다.
그들이 죄로 타락함으로 인류를 죽음과 죄가 통치하는 나락으로 몰아넣었다. 전체 성경 내러티브를 볼 때, 예수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에게 의와 생명을 허락하는 마지막 아담임을 볼 수 있다(롬 5:12-19; 고전 15:21-22)
아담은 언약의 우두머리로서 불행과 죽음을 세상에 가져왔지만 신자들은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 가운데 통치할 것이다(롬 5:17). - P46

노아 언약은 인간에게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고 끝의 시간이 오기까지 지상에 생명의 존속을 의미하는 보존의 언약이다. 우리는 많은 면에서 노아 언약이 창조 언약의 최초 상태로 되돌린다는 것을 봤다.
인간의 깊은 악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으며, 하나님은 인간이 지상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인간을 계속 축복하신다. 홍수는 일종의 다가올 최종 심판이다(마 24:36-41; 벧후 2:5) - P61

처음부터 온 세상이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관심이 있었다. 만약 아브라함이 일종의 새로운 에덴의 새로운 아담이었다면, 이 축복이 온 세상에 확대되는 것으로 보려는 소망이 있었다 - P71

명백히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은 다가올 세대들의 순종에 달려 있다. 아브라함과 그의 자녀들은 에덴동산에서의 아담의 역할을 성취해야만 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의롭고 정당하며 아름다운 삶을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만 했다 - P81

언약의 조건적 요소와 무조건적 요소 사이의 긴장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해결된다. 순종한 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언약 약속의 중개자이며,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은 아브라함의 참된 자녀들이다 - P91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을 어겼지만, 옛 언약, 곧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은 하나님의 마지막이자 최종적인 말씀이 아니었다.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적인 말씀은 심판이 아니라 자비이다. - P114

다윗 언약에 오면, 이스라엘은 시내산 언약 속에 있었고,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을 소망하고 있다. 다윗 왕과 그의 아들들은 이스라엘을 대변할 것이며, 나라는 그들이 여호와께 순종하고 그들이 백성을 통치함을 통해 복을 받을 것이다. 그들의 의로운 통치는 여호와의 지배 아래 그 땅에서 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세상에 드러낼 것이다 - P117

예수님을 신뢰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말미암아 죽은 자들 가운데 부활할 때, 새 창조는 온전히 임한다. 땅의 약속, 새 언약은 이제 전 우주로 확대되는데, 전 우주는 하나님의 도성이자 성전이 될 것이다(계 21:1-22:5).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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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들은 성경 메시지의 조화와 통일성을 보는 데 도움을 주며 구속사 과정을 추적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한다.

이 구속사는 하나님이 인류에게 구속을 베풀 것이라는 약속을 중심으로 한다(창 3:15).

언약들을 이해하는 것은, 또한 세례와 성찬식의 성례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 징표들은 특성상 언약적이며, 이 맥락에서 이해해야만 한다.

내가 "창조 언약"을 선호하는 이유는, 이 용어로 말미암아 우리는 이 언약이 다른 언약들과 어떻게 통합되는지를 볼 수 있으며, 이 용어는 구속사의 전체를 아우르는 관점에 들어맞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창조로 역사를 개시했으며, 이와 같이 옛 창조는 새로운 창조를 기대하고 그 새로운 창조를 향해 가리킨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대신해 세상을 통치하도록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

그들은 하나님의 창조에서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제사장-왕이어야 했다.

그들은 지상에서 하나님을 대변해야 했으며, 그들이 에덴동산에 살고 에덴동산에 대한 통치권을 행사하는 방식에서 하나님의 의로움과 거룩함과 선함을 보여야 했다.

그들이 죄로 타락함으로 인류를 죽음과 죄가 통치하는 나락으로 몰아넣었다.

전체 성경 내러티브를 볼 때, 예수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에게 의와 생명을 허락하는 마지막 아담임을 볼 수 있다(롬 5:12-19; 고전 15:21-22)

아담은 언약의 우두머리로서 불행과 죽음을 세상에 가져왔지만 신자들은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 가운데 통치할 것이다(롬 5:17).

노아 언약은 인간에게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고 끝의 시간이 오기까지 지상에 생명의 존속을 의미하는 보존의 언약이다. 우리는 많은 면에서 노아 언약이 창조 언약의 최초 상태로 되돌린다는 것을 봤다.

인간의 깊은 악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으며, 하나님은 인간이 지상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인간을 계속 축복하신다. 홍수는 일종의 다가올 최종 심판이다(마 24:36-41; 벧후 2:5).

처음부터 온 세상이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관심이 있었다. 만약 아브라함이 일종의 새로운 에덴의 새로운 아담이었다면, 이 축복이 온 세상에 확대되는 것으로 보려는 소망이 있었다.

명백히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은 다가올 세대들의 순종에 달려 있다.

아브라함과 그의 자녀들은 에덴동산에서의 아담의 역할을 성취해야만 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의롭고 정당하며 아름다운 삶을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만 했다.

언약의 조건적 요소와 무조건적 요소 사이의 긴장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해결된다.

순종한 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언약 약속의 중개자이며,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은 아브라함의 참된 자녀들이다.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을 어겼지만, 옛 언약, 곧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은 하나님의 마지막이자 최종적인 말씀이 아니었다.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적인 말씀은 심판이 아니라 자비이다.

다윗 언약에 오면, 이스라엘은 시내산 언약 속에 있었고,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을 소망하고 있다.

다윗 왕과 그의 아들들은 이스라엘을 대변할 것이며, 나라는 그들이 여호와께 순종하고 그들이 백성을 통치함을 통해 복을 받을 것이다.

그들의 의로운 통치는 여호와의 지배 아래 그 땅에서 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세상에 드러낼 것이다.

예수님을 신뢰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말미암아 죽은 자들 가운데 부활할 때, 새 창조는 온전히 임한다.

땅의 약속, 새 언약은 이제 전 우주로 확대되는데, 전 우주는 하나님의 도성이자 성전이 될 것이다(계 21: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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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품어야 할 신비입니다.

웃어야만 행복한 것 아니고, 춤춰야만 즐거운 것이 아닙니다.

때에 맞는 아픔, 때에 맞는 슬픔 그리고 때에 맞는 죽음도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제때에 아름답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맞추어 자신을 순응시키는 삶은 믿음의 절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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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하나님이 나의 마음을 보심으로써, 그리고 나를 당신과의 사귐으로 부르심으로써만, 나는 참다운 의미의 인격자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천재성, 재능 등은 하나님과의 사귐이 없어도 소유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의 중요한 인물, 특정한 영향을 끼치는 인물, 화폐에 새겨진 인물로서의 개인은 하나님과의 사귐이 없이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라는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만이 하나의 인격자Person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성서의 계시가 보여주는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성서의 하나님은 일치를 원하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귐을 원하는 분입니다.

그러나 신화와 철학적 사변의 신은 사귐을 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치를 원합니다.

일치는 비인격적이지만, 사귐은 인격적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사귐을 원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그리고 이런 의지를 통해서 바로 하나님의 가장 심오한 존재, 즉 삼위일체성Dreirinigkeit이 표현되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성서의 핵심 단어가 사랑Liebe임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지 사랑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랑 그 자체가 하나님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본질은 그 자체로 사귐인 것입니다. 이것이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간직한, 그러나 우리가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신비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당신 스스로 안에서 사랑하는 자인 동시에 또한 사랑받는 자이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최종적인 말씀이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행동과, 하나님의 자비로운 계시로부터 흘러나옵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역사의 한 순간인 것이지요. 하나님은 역사 안에 계십니다. 그리고 역사 안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계시를 통해서 인간에게 다가 오십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는 계시를 율법의 의와 대비시킵니다.

그리고 이런 계시는 하나님의 심판하는 거룩하심과 화해로 이끄는 사랑이 바로 통일된 하나라는 것을 드러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의는 믿음의 의와 일치하며, 믿음의 의는 기독교 공동체의 삶을 위한 원리로서 작용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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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상처의 치유는 하나님에게서 은혜를 입을 때 시작됩니다.

자존심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내려놓고 보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려놓고 나면 존재가 깃털처럼 자유로워집니다. 목숨을 걸 만한 대상이 아닙니다. 하지만 내려놓기 전에는 그것이 전부인 듯 보입니다. 그래서 불행한 선택을 합니다.

믿음은 절망적인 상황에 빠지지 않게 만드는 힘이 아니라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을 가지게 만드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생명은 다른 생명들과의 관계 안에서만 존재합니다.

다른 생명에게서 도움을 받고 다른 생명에게 도움을 주는 관계 안에서만 생명은 존재합니다.

서로가 타자를 위해 존재함으로 말미암아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 바로 이것이 생명의 원리입니다.

영생은 참된 생명을 의미합니다. 진실된 삶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 참되고 진실된 생명의 길을 알게 되고 또한 살게 됩니다.

그렇기에 참되게 믿는 순간 영생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 시작된 영생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때 완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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