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장하는 바는 마음 속에 쉽게 떠오르는 자동적인 반응을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질문들에 포괄적인 수준 이상으로 대답할 수 있으려면, 먼저 성급히 ‘해결책’으로 비약하지 않고 애통하고 자제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욥기는 우리의 태평스러운 신앙생활이라는 새장을 흔든다. 하늘과 땅에는 우리가 철학, 심지어 ‘기독교‘ 철학에서 꿈꾸는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고통과 수수께끼가 있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

신약성경은 이 모든 내용을, 같은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하셨고 하실 일과 관련하여 언급한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예수님이 계신다. 그분은 죽음을 통해 새 생명으로 가는 길을 보여 주셨다. 만사를 바로잡으셨고, 결국에는 해결하실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욥기는 구약성경에 서로 전혀 다른 (최소한) 두 차원이 있음을 계속해서 일깨워 준다. 이스라엘 이야기, 혹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있다.

이 언약이야기는, 창조주 하나님이 한 민족을 부르셔서 인류 구원과 창조세계 회복의 동역자로 삼으신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어떻게 그 백성이, 즉 모든 인류를 죽이고 있는 ‘우상숭배와 불의‘라는 최초의 바이러스를 온 인류에게 감염시킨 질병 보균자‘인 그들이 포로기라는 암흑을 통과하여 새 생명으로 나올 수 있었는지 들려준다.

새로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 예수님은 "때가 찼다"라고 말씀하셨고, 이스라엘 성경의 복잡다단한 이야기를 의식하고 살던 청중들은 오랫동안 기다려 온 것이 이제 다가오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혹은 적어도 예수님은 그렇게 생각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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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고통이란 게 대체 뭐기에? 고통이 수없이 닥친다 해도 난 두렵지 않아. - P164

전에는 두려웠지만 이젠 두렵지 않아. 말이다, 난 어쩌면 법정에서 일절 답변을 하지 않을지도 몰라・・・・・・ - P164

지금 내 안에서 이 힘이 얼마나 강하게 용솟음치는지, 모든 것을, 모든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 그리하여 오로지 ‘나는 존재한다!‘라고 매 순간 나 자신에게 말하고 외칠 수 있으면 되는 거야. - P164

수천 가지의 고통 속에서도 -나는 존재한다, 고문을 당해 몸이 오그랄지라도 -나는 존재한다! - P164

요새 감옥에 앉아 있을지라도 나는 존재하고 태양을 보는 거야, 태양을 보지 못할지라도 태양이 있다는 걸 나는 알아. 태양이 있다는 걸 안다면 - 그것만으로도 이미 완전한 삶이야. - P164

하느님이 없다면, 그땐 인간이 지상의 우두머리, 우주의 우두머리가 되겠지. 대단하군! 다만, 하느님 없이 인간이 어떻게 선량하게 될 것인가? 그게 문제야! - P165

나는 줄곧 이 생각을 하고 있어. 그렇게 되면 그는 대체 누구를 사랑할 것인가, 그러니까 이 인간이 말이다? 누구에게 감사하고, 누구에게 송가를 불러야 하지?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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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은 소망과 믿음과 순종이 사람의 이해와 인격 안에서 ‘어떻게’ 결부되는지를 드러내는 개념적 장치다. - P26

사람이 언약에 신실하게 반응하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결부의 상태에 이르는데, 하나님은 그 상태를 그의 의로 여기신다. - P26

언약은 의가 사람의 이해와 인격에 입체적인 의미와 실체로 짜여져 들어가도록 고안된 개념적 장치다. - P26

언약은 하나님과사람의 그런 관계가 ‘왜‘ 진정한 것인가를 밝혀 주는 개념적 장치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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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습다는 게 대체 뭡니까? 사람이 우습거나 우습게 보이는 게 어디 그리 드문 일인가요? 더구나 요즘은 재능 있는 사람들이 거의 하나같이 자신이 우습게 보일까봐 끔찍이도 전전긍긍하는데, 바로 그 때문에 불행한 겁니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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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해석학은 해석 공동체의 주어진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 P19

세계 신약 학계에서 이슈가 되는 주제들도 실은 어떤 구체적인 역사적, 시대적 ‘상황들‘ 속에서 형성되는 것임을 기억한다면, 과연 지역 교회로서 한국 교회가 풀어야 하는 신학적, 신앙적, 교회적 차원의 문제는 무엇이며, 또한 그런 문제들에 대한 성서적 ‘응답‘을 어떻게 나름대로 찾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 역시, 한국 교회에 속한 성서학자의 마땅한 책임일 수밖에 없다. - P19

한국 교회는 한국 사회 속에서 눈에 두드러지지 않을 수 없는 ‘조직‘ 혹은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 P19

사실 바울서신들은 ‘선교적‘ 서신이라 할 수 있다. 논증이 많이 필요하지만, 바울서신들은 대체로 유대교와의 대립과 설득의 과정 속에서 종말의 새 백성인 교회의 정초(定礎)를 놓는 단계에서 기록된 문서들이다. - P21

공동서신이 바울의 복음을 잘못 이해한 자들을 전적으로 겨냥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바울의 이신칭의의 복음에 따라 기초를 세우고 그 위에 서기 시작한 교회들이 ‘세상 속에 자리 잡아 가는‘ 과정에서 매우 유익하게 사용되었던 서신들이었을 수 있다. - P21

당시 역사적 예수에 대한 목격저(eye-witness)이었던 사도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는 시점에서 ‘미루어진 종말론‘(delay of the Parousia)은 교회적으로 매우 큰 문제가 되었을 상황도 한몫했을 것이다. - P21

공동서신의 정경화 과정에서 새로 발견된 바에 따르면, 공동서신 7개의 책들은 오히려 바울서신과 다른 전통에 서 있는 가르침을 교회에 줌으로써, "바울서신들이 제공하는 것과 균형을 맞추며, 또한 사도적 증언들에 대한 더 폭넓은 기록들을 제공하기 위해 함께 묶여진 것"이라고 한다. - P28

공동서신은 애초부터 바울서신의 신학과 충돌되도록 의도된 것이 아니었으며, 공동서신의 신학은 하나의 통합된 신학으로, 초대 교회 안에서 바울 신학과는 또 다른 중대한 전통과 유산을 대표한다는 주장이다. - P28

공동서신의 맨 처음은 야고보서의 ‘인내‘에 대한 격려로 시작해서, 유다서의 끝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유21절)고 한 것과도 짝을 이룬다. - P31

공동서신의 책들이 그 안에서 배열된 순차를 눈여겨보면, 야고보를 필두로, 베드로, 그리고 요한이 순서대로 나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야고보, 베드로, 요한, 이 셋이 모두 예루살렘 교회를 대표하는 위대한 사도들이었다는 사실이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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