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등장하는 첫 번째 언약의 의도는 믿음과 순종의 철저한 결부다. - P102

그 철저함 때문에 우리는 그 결부의 이면적 의도를 생각할 수 있다. 즉 언약은 믿음과 순종의 해리(풀려서 떨어짐)를 막고자 한다. - P102

언약은 우선 말한다. 인격 안에 둘 다 있어야 한다. 그리고 좀 더 적극적으로 말한다. 인격 안에 하나만 있으면 안 된다. 이 둘은 서로를 통해서 자기 본질에 이르기 때문에 하나를 잃으면 남은 것은 본질을 잃는다. 사실은 그 이상이다. - P102

본질을 잃은 채로, 홀로 있는 믿음이나 홀로 있는 순종은 거짓이다. 둘 다 없으면 그저 없는 것이지만 하나만 있으면 거짓이 있는 것이다. - P102

언약으로 결부된 믿음과 순종이 서로를 통해 자기 본질에 이름으로써 하나님을 향한 한 인격이 진정성에 도달한 상태, 그것은 의다. 그래서 언약백성은 자신의 믿음과 순종의 결부를 의식하며 산다.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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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언약에서 의는 ‘세상이 윤리적 죄로 심판을 받을 때 하나님의 사람이 언약으로 구원을 받는 준거‘가 된다. - P93

노아는 언약으로써 세상의 ‘윤리적 타락‘을 정죄하지 않고 ‘믿음과 순종이 없음‘을 정죄한다. - P93

세상은 아마도 노아의 윤리에 무관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노아의 방주에는 너무나 관심이 많아서 떠들썩하게 조롱했을 것이다. - P93

홍수의 날에 세상은 자신들에게 없는 근본적인 것이 ‘어떤 높은 윤리‘가 아니라 ‘믿음과 순종‘이었음을 알게 된다. - P93

하나님은 윤리적 불의를 심판하실 때 세상으로 하여금 노아의 언약적 의를 보게 하신다. - P93

언약적 의가 윤리적 의보다 상위에 있다. - P93

언약은 하나님의 인간 구원에 있어서, 윤리 문제보다 더 근본적인 차원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 P93

믿음은 순종과 만나서 자기 본질을 완성한다. - P99

믿음과 순종은 서로에게서 본질을 찾고 서로를 통해서 본질에 도달한다. - P99

노아 언약에서 그의 믿음과 순종을 분리시키거나 대립시키는 일은 부질없는 일이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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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사용하고 있던 조약의 구성을 당신의 언약에 반영하셨을까? 아마도 양쪽의 차이점이 유사점을 압도하기 때문일 것이다. 즉 하나님의 백성은 형식의 유사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내 언약"을 쉽게 이해하면서도 내용의 차이 앞에서 경외심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 P59

성경이 서술하는 언약백성의 역사는 교리집을 계승하는 역사가 아니라, 삶 속에서 의에 관한 성공과 실패와 회복을 반복하는 역사다. - P61

언약 관계는 관용구나 의식과 같은 특정 형식으로 시작되지 않고 관계의 본질로써 시작된다. - P67

하나님은 당신의 초월성과 절대성을 양보하여 언약에 담으시고, 반면에 내 실존을 언약으로 확장하신다. 언약은 하나님의 양보와 인간의 확장으로써 실존적 만남을 이루는 개념적 인격적 장치다. - P80

언약의 약속과 명령은 독자의 믿음과 순종을 관념 속이 아니라 그의 확장된 실존에 심는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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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세트 - 전3권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희숙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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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에서 마련한 도스토옙스키 한 달 읽기 챌린지를 통하여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세 권을 다 읽었다. 

'죄와 벌'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에서 선택하여 한 달 동안 완독 하는 프로젝트였는데,

예전에 '죄와 벌'은 읽었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꼭 읽어보려고 하던 차에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다.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이 그렇지만, 인간 내면의 세밀한 묘사는 그 어떤 심리학 저서보다 탁월한 듯하다. 

문학이 가진 힘이라고 할까? 

인간 내면과 인물과 인물들 간의 갈등이 섬세한 필치로 그려진다. 

마치 내가 저런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반문하게 된다.


카라마조프가의 세 형제는 매우 다른 각각의 캐릭터다.

어떻게 보면 여러 인간의 전형을 나타내는 듯하기도 하다.


이 셋 중에 닮고 싶은 인물을 고르라면 아마 대부분은 막내 알료사를 꼽을 것이다.

그는 이 소설에서 가장 조화로운 캐릭터다. 그의 신앙심과 인격은 자연스럽게 그의 행동과 대화를 통해 표현된다.  분명한 목표와 진리가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살필 줄 아는 따뜻한 인물로 그려진다.


둘째 이반은 자신의 이상향과 실제가 가장 많이 차이를 보이는 인물이다. 

냉정한 지식인으로 탁월하고 진취적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2』에서의 '대심문관' 부분은 이반이 자신의 동생 알료사에게 들려주는 서사시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인용하는 책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부분일 것 같다. 심지어 이 부분만 따로 책으로 출판되었을 정도다. 

하지만 이반은 현실에서는 자신을 철저히 걸어 잠근다. 적극적 행동은 하지 않은 채, 자신이 막아서야 할 시점에서도 책임지지 않는 모습도 보인다.


반면 맏형 드미트리는 어떠한가? 그는 행동파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과격하고 파괴적이다. 열정적이며 어떤 면에서 매우 순수한 인물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반과 적극적 대조를 볼 수 있다. 


도스토옙스키 소설이 대부분 그러하듯 이 책도 그저 불행으로 끝나지 않는다. 끔찍한 위기를 묘사하지만 그 가운데 구원을 내포한다. 그리하여 부정 가운데 긍정을 도출한다. 특별한 해답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의 글을 곱씹고 다시 들춰보면 그 안에 은은하게 남아 있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볼 수 있다. 인간 존재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질문 가운데 터져 나오는 살아 숨 쉬는 생동력이란! 알료사의 마지막 외침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아, 아이들이여, 아, 사랑스러운 벗들이여, 삶을 두려워하지 말아요! 무엇이든 옳은 일을 한다면, 삶은 너무나 좋은 것입니다!(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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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이들이여, 아, 사랑스러운 벗들이여, 삶을 두려워하지 말아요! 무엇이든 옳은 일을 한다면, 삶은 너무나 좋은 것입니다!" - P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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