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작 예수는 어떻게 하나님이 되었나』 (국내에는 『예수는 어떻게 신이 되었나갈라파고스〉로 출간되었음)에서 어만은 예수의 신성divinity에 대한 믿음은 승귀exaltation와 성육신 사이를 밀물과 썰물처럼 오가는 지저분한 프로세스를 거쳐 서서히 부상했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 P11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예수를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은 신적 계시divine revelation라기보다는 교회 내에서조차 정당성을 얻기 위해 분투한 인간적인 프로세스의 산물이 되는 셈이다. - P11

이 책의 기고자들은 기독론이 발전과정을 거쳤다는 것과 후대의 신학 논쟁이 실로 지저분했다는 점에 토를 달지 않는다. 우리가 이의를 제기하고자 하는 것은 이 발전과정에 대한 어만의 기술과 설명이 역사적으로 정확한가이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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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어떻게 신이 되었나
바트 어만 지음, 강창헌 옮김, 오강남 해제 / 갈라파고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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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적 성서학자 바트 어만의 책이다.

이 책은 초기 기독교에서 그리스도가 어떻게 하나님이 되었는지를 논쟁적으로 그려낸다.

즉 초기 기독론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기존의 조직신학자나 성서학자들의 견해를 반박한다.

신앙의 견해가 아닌 역사가의 관점으로 성서와 다른 자료를 활용한다.

그리하여 독창적이고도 신선한 통찰을 보여준다. 


그의 이러한 견해는 『하나님은 어떻게 예수가 되셨나』(좋은씨앗, 2016)에서 구체적으로 반박된다.

두 책을 함께 보면 다양한 견해와 층위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지점에서 자신이 서 있을지 알아보는 기회도 될 것 같다.

 


"오늘날 우리는 신성의 영역, 신의 영역을 완벽한 타자이자 인간의 영역과 분리되었다고 생각한다. 하느님은 위쪽 하늘에 있고 우리는 아래쪽 여기 땅에 있으며, 둘 사이에는 무한한 틈이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대다수 고대인은 신성의 영역과 지상의 영역을 이런 방식으로 이해하지 않았다. 신성의 영역에는 다양한 층이 있었다. 어떤 신들은 다른 신들보다 "더 신성하다" 고 할 수 있으며, 인간도 때로는 신들의 계급으로 고양될 수 있었다. 게다가 신들은 스스로 인간에게 내려올 수 있었으며 때로는 인간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정말 내려왔다. 신들이 이런 일을 할 때는 흥미로운 결과가 생기거나, 불행을 겪고서야 알게 된 프리기아의 불친절한 거주자들처럼 불길한 결과가 빚어졌다.
"

- P30

"사람들이 아폴로니우스를 선재하던 신이 육화한 존재로 여기기는했지만, 신성한 인간이 필멸의 존재로 태어나는 방식은 그리스나 로마의 일반적인 이해방식이 아니었다. 훨씬 일반적인 관점은, 탄생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신성한 존재가 세상에 들어오는 방식이었다. 왜냐하면 신이 인간과 성관계를 가지면 그 자손은 어떤 의미에서 신성했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행위를 제일 많이 저지른 신은 바로 제우스였는데, 그는 하늘에서 내려와 매력적인 여성과 색다른 성관계를 갖고 무척 유별난 임신을 하게 한다. 그러나 제우스와 필멸하는 그의 연인들 이야기는 단순한 오락거리용 신화가 아니다. 때로 알렉산더 대왕(서기전 356~323)처럼 실제 역사적 인물들에 대해서도 이러한 이야기를 했다. - P32

"고대적 사고방식에서 인성과 신성은 하나의 수직적 연속체이며, 이 두 연속체는 때로는 높은 차원에서(고급스럽게) 때로는 낮은 차원에서(저급하게) 통합된다."
- P51

"신약성서와 초기 그리스도교에 대해 지난 200년간 현대 학문이 중요하게 발견한 것 중 하나는 예수 생전에는 추종자들이 그를 하느님이 아니라 철저하게 인간으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를 교사나 랍비, 심지어 예언자로 보았다." - P57

"유대교 안에도 신성한 존재와 신성한 권력에 속하는 연속체가 존재한다고 이해했으며, 이들은 여러 면에서 이교의 신성한 존재들과 비섯하다. 이것은 엄격한 유일신론적 저자들에게도 진실이었다." - P69

"성서에서 주님의 천사는 때로는 하느님으로 그려지고, 때로는 인간 모습으로 지상에 나타난다. 신성한 모임을 구성하는 천사들은 신들이라 불리지만 필멸하는 존재다. 그럼에도 다른 천사들은 지상에서 인간 형상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더 중요하게도 일부 유대교 문헌은 죽어서 천사가 된 인간이나 천사들보다도 더 뛰어난 인간에 대해 말한다." - P77

"필론에게 로고스는 하느님 밖에 존재하는 무형의 존재이지만 하느님의 사유 능력이다. 때로 로고스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현존을 알 수 있고 하느님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람처럼" 나타나는 하느님의 실제적 모습이다. 어떤 의미에서 로고스는 하느님과 다른 신성한 존재이지만, 또 다른 하느님이기도 하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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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언어들 - 나를 숨 쉬게 하는
김이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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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사가 겸 방송인 김이나의 글 모음집이다.

그녀의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방송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왠지 매우 순수하고 맑은 느낌이었다. 

물론 그녀의 작품도.


이 책도 동일하다. 따뜻한 언어가 넘쳐난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랄까?


답답한 하루. 온갖 스트레스로 머리가 아픈 요즘.

참 따뜻한 책을 만났다.

"인간의 언어는 파동이 아닌 글자로 존재하기에, 같은 말을 하더라도 다른 감정이 전달되기도 하고 곡해되기도 한다.
"
- P6

"연인 사이에 사랑의 속성 중 하나는 ‘그리움‘이다. 그리움이라는 건 빈 곳이 느껴진다는 것, 다시 말해 이곳이 당신으로 채워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사람은 소유할 수 없다지만, 어쩔 수 없이 소유하고 싶어지는 얄궂은 마음이 사랑이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반대로 조건이 없다. 혼자서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면 마음 한편이 시큰해지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은 그런 게 없다. 해가 좋은 날 널려진 빨래가된 것처럼 뽀송뽀송 유쾌한 기분만 줄 수 있는 건 ‘좋아하는 사람‘이다.
"
- P17

"사랑하는 게 좋아하는 것의 상위감정이라고 믿어왔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이 두 감정이 각기 다르게 소중하게 느껴졌다. 더 솔직히 말하면 ‘좋아한다‘는 감정이 더 반갑다. 좋아하는 마음이 사랑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좋아하거나 사랑하거나 만나면 반가운 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헤어져 있는 어느 때 못 견디게 보고 싶다면, 사랑일 확률이높다.
"
- P17

"실망이라 함은 ‘바라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상한 마음‘을 뜻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건 상한 마음‘이 아니라 ‘바라던 일‘이다. 실망은 결국 상대로 인해 생겨나는 감정이 아니다. 무언가를 바란, 기대를 한, 또는 속단하고 추측한 나에게서 비롯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고유의 모양으로 존재하는데, 타인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그렇다. 나의 경험치와 취향, 태생적 기질 등이 빚어낸 지극히 사적인 시선으로 서로를 볼 수밖에 없다.
"
- P21

"공감은 오히려 디테일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공감은 기억이 아닌 감정에서 나온다. 즉 상황의 싱크로율이 같지 않더라도, 심지어 전혀 겪지 않은 일이라 해도 디테일한 설명이 사람들의 내밀한 기억을 자극해 같은 종류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것이 바로 공감을 사는 일인 것이다."

- P48

"‘미안하다‘라는 말은 말꼬리가 길수록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 P67

"시간이 지나고 악플의 내용은 잊힐지언정, 아팠던 기억은 남는다. 내가 친 바닥의 차가운 느낌은 선명히 떠오른다. 그래서 악플은 ‘표현의 자유‘라는 알량한 말로 용납될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이 가장 약해진 순간, 아무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상태에 숨통을 조여오기에."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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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적 사고방식에서 인성과 신성은 하나의 수직적 연속체이며, 이 두 연속체는 때로는 높은 차원에서(고급스럽게) 때로는 낮은 차원에서(저급하게) 통합된다. - P51

신약성서와 초기 그리스도교에 대해 지난 200년간 현대 학문이 중요하게 발견한 것 중 하나는 예수 생전에는 추종자들이 그를 하느님이 아니라 철저하게 인간으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를 교사나 랍비, 심지어 예언자로 보았다. - P57

유대교 안에도 신성한 존재와 신성한 권력에 속하는 연속체가 존재한다고 이해했으며, 이들은 여러 면에서 이교의 신성한 존재들과 비섯하다. 이것은 엄격한 유일신론적 저자들에게도 진실이었다. - P69

성서에서 주님의 천사는 때로는 하느님으로 그려지고, 때로는 인간 모습으로 지상에 나타난다. - P77

신성한 모임을 구성하는 천사들은 신들이라 불리지만 필멸하는 존재다. - P77

그럼에도 다른 천사들은 지상에서 인간 형상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더 중요하게도 일부 유대교 문헌은 죽어서 천사가 된 인간이나 천사들보다도 더 뛰어난 인간에 대해 말한다. - P77

필론에게 로고스는 하느님 밖에 존재하는 무형의 존재이지만 하느님의 사유 능력이다. - P94

때로 로고스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현존을 알 수 있고 하느님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람처럼" 나타나는 하느님의 실제적 모습이다. - P94

어떤 의미에서 로고스는 하느님과 다른 신성한 존재이지만, 또 다른 하느님이기도 하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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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언어는 파동이 아닌 글자로 존재하기에, 같은 말을 하더라도 다른 감정이 전달되기도 하고 곡해되기도 한다. - P6

사랑하는 게 좋아하는 것의 상위감정이라고 믿어왔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이 두 감정이 각기 다르게 소중하게 느껴졌다. - P17

더 솔직히 말하면 ‘좋아한다‘는 감정이 더 반갑다. 좋아하는 마음이 사랑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많다. - P17

좋아하거나 사랑하거나 만나면 반가운 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헤어져 있는 어느 때 못 견디게 보고 싶다면, 사랑일 확률이높다. - P17

연인 사이에 사랑의 속성 중 하나는 ‘그리움‘이다. - P17

그리움이라는 건 빈 곳이 느껴진다는 것, 다시 말해 이곳이 당신으로 채워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 P17

사람은 소유할 수 없다지만, 어쩔 수 없이 소유하고 싶어지는 얄궂은 마음이 사랑이다. - P17

‘좋아한다‘는 감정은 반대로 조건이 없다. 혼자서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면 마음 한편이 시큰해지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은 그런 게 없다. - P17

해가 좋은 날 널려진 빨래가된 것처럼 뽀송뽀송 유쾌한 기분만 줄 수 있는 건 ‘좋아하는 사람‘이다. - P17

실망이라 함은 ‘바라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상한 마음‘을 뜻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건 상한 마음‘이 아니라 ‘바라던 일‘이다. - P21

실망은 결국 상대로 인해 생겨나는 감정이 아니다. 무언가를 바란, 기대를 한, 또는 속단하고 추측한 나에게서 비롯되는 것이다. - P21

앞서 말했듯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고유의 모양으로 존재하는데, 타인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그렇다. - P21

나의 경험치와 취향, 태생적 기질 등이 빚어낸 지극히 사적인 시선으로 서로를 볼 수밖에 없다. - P21

공감은 오히려 디테일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공감은 기억이 아닌 감정에서 나온다. 즉 상황의 싱크로율이 같지 않더라도, 심지어 전혀 겪지 않은 일이라 해도 디테일한 설명이 사람들의 내밀한 기억을 자극해 같은 종류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것이 바로 공감을 사는 일인 것이다. - P48

‘미안하다‘라는 말은 말꼬리가 길수록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 P67

시간이 지나고 악플의 내용은 잊힐지언정, 아팠던 기억은 남는다. - P70

내가 친 바닥의 차가운 느낌은 선명히 떠오른다. - P70

그래서 악플은 ‘표현의 자유‘라는 알량한 말로 용납될 수가 없는 것이다. - P70

사람이 가장 약해진 순간, 아무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상태에 숨통을 조여오기에.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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