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지도 못하면서 계속 시를 읽는 이유는 기분이 좋아서다. 뒤통수를 한 대 맞았는데 머리에서 분수가 솟는 기분이랄까.

이런 청량한 즐거움은 시가 아니면 느끼기 힘들다. 그래서 나는 시가 좋다.

잘 알지도 못하는데 좋고, 좋으니까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시를 읽다 보면 이런저런 사념이 든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한, 낯 뜨거운 고백, 아직 뜨거워 당황스러운 열망, 여전히 막막한 두려움, 그 모든 것은 여기 덧붙인 들쑥날쑥한 내 문장처럼 정처 없다.

다듬고 정리하지 않은 문장들을 그대로 내놓는 것은 시가 마음의 격동을 허락하는 유일한 문장인 까닭이다. 그러므로 그대는 그대의 시 옆에 그대의 문장을 적기를.

시를 읽다 보면 마음을 뺏긴 한 줄의 문장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문장 너머로 시는 계속 이어진다. 밑줄 친 금언, 근사한 아포리즘 너머에 진짜 삶이 있는 것처럼.

그래서 쓸쓸하고 그래서 오기가 생기는 것처럼. 짧은 시도 끝까지 다 읽어야 그 뜻을 알 듯, 삶도, 짧고 보잘것없는 삶도 끝까지 다 살아야 비로소 뜻을 알 것이다.

아니 어쩌면 다 읽어도 알 듯 모를 듯한 시처럼 다 살아도 모를지 모른다. 그 막막함이 다시 시를 부른다. 언젠가 그 막막함의 끝에서 우리가 만난다면, 한 잔의 술을 따르고 한 편의 시를 읊자.

요즘은 시보다 소설이 인기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생긴 지 200년 남짓한 소설에 비해 사람들이 시를 즐기기 시작한 지는 수천 년이나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로 알려진 「길가메시 서사시」가 쓰인 것이 지금으로부터 4천여 년 전이니, 기록되지 않은 것까지 치면 시의 역사는 그보다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그러므로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면 그 말씀은 필경 시였으리라.

아무튼 시가 오랜 세월 지역과 인종을 넘어 수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은 것은 분명하다.

인류의 유전자 속에 시를 즐기는 습관이 새겨져 있다고나 할까. 그러니 시를 쓰는 건 몰라도 시를 읽는 것만큼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시라는 형식에 문학적 조예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시를 즐기기 위한 남다른 여유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기 안에 있는 오래된 유전적 본능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

즐겁거나 슬플 때 노래를 부르듯이 자기 마음속에 차오르는 감정을 따라 마음을 움직이는 시를 읽으면 되는 것이다

처음엔 생략과 비유가 많은 시 고유의 독특한 형식이 낯설고 어렵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자꾸 읽다 보면 익숙해질 것이다.

시를 읽는 것은 사는 데 도움이 되고 쓸모도 있다. 시는 당신 인생에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왜냐하면 시는 ‘다르게 보는 법’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혁신이란 기존의 세계를 다르게 보는 데에서 출발하는데, 다르게 보는 능력을 키우는 데는 문학, 철학, 예술 같은 인문학이 기본이 되니 그런 것이다.

시란 무엇보다 언어의 반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세계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 더 많은 언어에 능통해지려 애쓰는 것도 그래서다. 한데 시는 이런 언어를 거꾸로 뒤집는다. 언어의 반전을 통해 기존의 세계를 뒤집는 것, 그리하여 세계의 틈을 보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 것, 그것이 시의 힘이다.

시의 유용성은 투자 대비 만족도가 크다는 점에도 있다.

바쁘고 지친 삶에 시가 쉼표가 되어 줄 테니까. 아니, 쉼표만이 아니라 때론 이정표도 되어 줄 테니까.

답답한 마음에 점을 치고 술을 먹고 쇼핑도 하지만 별 도움이 안 될 때, 그럴 땐 일단 멈춰야 한다. 멈춰서 온 길을 돌아보고 갈 길을 헤아려야 한다.

요즘 세상은 돌아보기 시작하면 한이 없다고, 우선 달리고 나서 나중에 생각하라고 하지만 그건 잘못이다. 제때 고민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가서, 기껏 달렸는데 잘못 왔구나, 뒤늦게 낭패를 보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시를 읽는 것은 멈춰서 돌아보는 것이다.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듯이 시 한 편을 읽으며 마음을 빗는 것이다

그렇게 숨을 고르고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나면 다시 먼 길을 갈 힘이 난다. 남들이 좋다는 이 길 저 길 기웃거리지 않고 시를 등불 삼아 오롯이 내 길을 갈 배짱이 생긴다.

시는 이처럼 힘이 세다. 특히 아프고 쓰린 마음을 위로하는 데는 시만 한 게 없다.

겨우 일 초! 라고 우습게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단 한 줄의 시를 읽었을 뿐인데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던 내 마음이 바뀌었다면 그게 우스운 일일까? 단 한 줄의 시를 읽기만 해도 밖으로 향하던 내 마음이 안으로 향하여 평화로워질 수 있다면 ‘겨우’ 일 초가 아니라 ‘무려’ 일 초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마음을 바꾸는 것이니까.

시는 말수가 적다. 너도 나도 목소리를 높이는 세상에서 압축과 생략으로 이루어진 시는 그 자체로 침묵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하지만 처음 만난 사람이 말이 없으면 불편하듯이 시도 그래서 서먹하고 친해지기 힘들다. 수수께끼와 비밀이 많은 시를 이해하려면 궁리를 해야 하는데 그게 성가실 때도 있다.

세상엔 아직 내가 모르는 일이 너무나 많고 내 좋은 스승은 이제 여기 없지만 그래도 괜찮다. 나보다 작아진 몸으로도 태산 같은 가르침을 주셨던 아버지를 생각하면, 나는 괜찮다. 괜찮아야 한다. 괜찮고말고…….

그 경계가 나와 너의 사이, 안과 밖의 사이, 우리와 그들의 사이이기도 한 것은 몰랐다.
그 사이에서 꽃이 핀다는 걸 몰랐다.

시인의 놀라운 상상력이 아니었으면 죽을 때까지 몰랐을 것이다. 만날 편 가르기나 하고 보초나 서면서, 온 세상 꽃들이 다 시들도록 전전긍긍 호시탐탐 늙어 갔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아. 진짜 재미없고 참기 힘들 때는 소리 내 말하는 거야. 구름이 놀라 달아날 만큼 큰 소리로.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나는 내 인생이 마음에 들어!
소리치다 보면 아마 넌 웃게 될 거야. 눈물이 글썽해지도록.

"아, 누나! 왜 이렇게 늙었어?"
왜 이렇게 늙었느냐고? 너만큼이나 정직한 시간 때문이지 뭣 때문이겠니!

그래도 견딜 수 없어서 견딜 수 없는 마음을 쓰기 시작했어. 나를 견딜 수 없게 한 무정한 사랑에 대해 썼지. 그 사랑의 역사를 시작부터 끝까지 복기하듯이 써 내려갔어. 한참 쓰다 보니 눈물이 마르고 팔이 아프더군. 허리도 쑤시고 다리도 저렸어. 그래서 밖으로 나갔지. 세상이 참 예쁘데.

큰돈을 벌지도 못하는데 왜 글을 쓰느냐고 누가 묻더군.
나는 대답했어.
사랑 없는 세상을 견디기 위해서.

오래전 일기를 보며 그때를 그리워한다. 질문을 두려워 않던 나를, 나아감을 믿었던 나를, 아직 젊던 나를.

봄날은 가물어서 비가 오면 반갑지만, 그 빗줄기에 우수수우수수 꽃잎이 쏟아지는 것을 보면 말문이 막힌다.
그런데 ‘채울수록 가득 비었다’고, 떨어지는 봄꽃에서 먼 우주의 시간과 공간을 읽다니!
한 편의 시가 흩날리는 저 꽃잎처럼 말문을 막는다.

살면서 후회되는 일은 많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도 별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시간 여행을 하라고 등을 떠민다면, 그래, 삼십 대로 돌아가고 싶다. 껌처럼 씹고 버린 청춘에 절망하는 대신 짝짝짝 불량하게 껌을 씹으면서 남은 젊음을 만끽하고 싶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지만 아무래도 그 말은 거짓말 같구나. 오래 보지 못한 너에게 나는 오늘도 편지를 쓰는걸. 마음으로 마음을 다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타인의 연민을 얻고 싶다면 자기 연민부터 버리라던 몽테뉴의 충고를 떠올렸다. 오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이란 얼마나 변함없는 존재인가, 새삼 놀라면서.

내가 없으면 일이 안 될 줄 알았다. 집안일도 회사 일도 다 엉망이 될 줄 알았다. 심지어 술자리조차 내가 없으면 김빠진 맥주처럼 싱거울 줄 알았다.
아니더라!
그냥 살짝 가면 되는데 그걸 몰랐다.

살면 살수록 세상엔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구나 깨닫게 된다. 떠날 날을 통고받은 사람의 마음도 그중 하나. 떠나고 싶지 않은데, 아직 떠날 때가 아닌데 떠나야 한다고 떠밀리는 그 마음을 내가 짐작이나 할 수 있으랴.

자신이 떠난 뒤, 비가 오면 창에 물구슬발水簾을 드리우는 자신의 방을 찾아올 사람에게 그녀는 말한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쉬다 가라’고. 그것은 떠나는 이가 남은 이들에게 전하는 유언이자 짧은 생을 마감하는 자신에게 보내는 당부였으니, 툭하면 죽고 싶다고 서슴없이 말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 차마 고개를 들 수 없다.

사랑도 성공도 이름도 다 부질없는 걸 누가 모르랴. 사람이라 그 거품 같은 것들을 붙잡으려 애쓰는 것이고 그래서 슬픈 것이지.

그러니 차라리 "네 잘못이야" 하고 말해다오. 길들일 수 없는 비애를 길들이려 한 네 잘못이라고, 콕 집어 말해다오.
내 부질없는 슬픔을 기꺼이 감당할 수 있도록.

그러나 지금, 한 자 한 자 옮겨 적고 보니 웃을 수가 없네요. 사랑받고 있음을 몰랐던 것은 당신이 아니라 나인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어서 더 이상 웃을 수가 없습니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어 망연자실. 도대체 내 사랑은 어찌 된 걸까요.

물론 부모도 할 말은 없지. 부모도 부모의 살을 먹고 자랐고, 무엇보다 내 살이 토실토실해지는 걸 보며 살 힘을 얻었거든. 그러니까 우리 모두 서로서로 기생한 거고, 그러니까 우리 모두 서로에게 빚은 없다고 해도 돼. 그런데 왜 나는 자꾸 미안한 걸까.

솔직한 게 좋다면서 고작 남에게 가시 돋친 말이나 하고,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면서 정작 진실을 말하면 입을 막거나 귀를 닫는다. 이런 세상을 보며 어떤 이는 분개하고 어떤 이는 비웃지만, 표현은 달라도 결론은 똑같다. 진실을 감당하기에 인간은―나만 빼고―너무 한심하다는 것.

평생 고향집을 떠나지 않고 세상이 모르게 2천여 편의 시를 썼던 에밀리 디킨슨은 다르게 말한다. "너무 밝은 진실은 엄청난 놀라움"이니 단번에 드러내지 말고 넌지시 보여 줘야 한다고. 눈부신 태양을 똑바로 볼 수 없듯이 진실도 에둘러서 일깨워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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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소설의 첫 문장 : 다시 사는 삶을 위하여 - 다시 사는 삶을 위하여 문장 시리즈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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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부인은 자기가 직접 가서 꽃을 사 오겠다고 했다.
버지니아 울프, 이태동 옮김, 『댈러웨이 부인』, 시공사, 2012.

그토록 불길하게 여기셨던 일이 별다른 탈 없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들으신다면 무척 기뻐하시겠지요.
메리 셸리, 김선형 옮김, 『프랑켄슈타인』, 문학동네, 2012.

이런 찻주전자가 있다면 어떨까?
조너선 사프란 포어, 송은주 옮김,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민음사, 2006.

그것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이자벨 미니에르, 이상해 옮김, 『평범한 커플』, 작가정신, 2007.

당신은 끝을 알고 있다.
프레데리크 베그베네, 한용택 옮김, 『살아있어 미안하다』, 문학사상사, 2005.

소설의 첫 문장이 소설에서 벌어진 모든 일의 시작이 아님은 두말할 필요 없겠다. 어쩌면 소설의 첫 문장에게 부여된 가장 큰 임무는 소설의 시작이 어디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것인지도. 아니면 시작을 분명히 할 수 없는 이야기의 숙명을 드러내는 것인지도.

장례식이 끝났다.
쇼지 유키야, 김난주 옮김, 『모닝』, 개여울,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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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한 개관‘은 자료층의 상태를 기초로 삼고 있다. - P5

구약의 자료층을 근거로 볼 때 ‘이스라엘의 역사‘는 왕정시대로부터 시작된다. - P5

그것은 동시대의 문서 자료들이 그때에 비로소 등장하거나 재구성될 수있기 때문이다. - P5

이에 반하여 이보다 앞선 국가형성 이전 시대에 대해서는 단지 민담전승만 존재할 뿐이며, 그러므로 이 시기들은 ‘왕정 시대의 전통들‘ 하에서만 다뤄질 수 있다. - P5

구약문헌들의 기원사에 대한 연구는 그 문헌들의 신학적인 진술들을 적절하게 이해하는 것이 목적이다. - P6

따라서 성서 본문들에 관한 서술은 본문의 분류 작업이나 발생사 연구에 한정되지 않는다. - P6

오히려 기원사를 통해 파악된 각 문서층에 나타나는 중심적인 신학적 특징들을 계속적으로 재현하려고 한다. - P6

이것은 무엇보다도 오경의 문서층을 따라 시행되는 것으로서, 오경의 재구성은 오경 내의 다양한 신학적 특징들을 통하여 정당성을얻는다. - P6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그리스도인의 행위는 창조주이시며 구원자 되시는 하나님의 행동에 대한 성서의 증언을 언제나 새롭게 그 기준으로 삼을때만 생명력을 갖는다. - P8

또한 성서의 증언에 대한 이러한 기준설정이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발생할 수 있다면, 우리는 각각의 성서 본문들이 어떠한 역사적 맥락에서 기원했으며 그 저자들은 본래 어떠한 의도를 추구하고 있었는지 다시금 물어야만 할 것이다. - P8

다시 말해서 성서 본문들에 대하여 그러한 기원사와 연관되는 역사적인 이해는 오늘날의 새로운 역사적인 상황들 안에서 나타나는 성서의 메시지가 구약의 본문들을 정당하게 평가하도록 만드는 새로운 형태를 획득할 수 있는 토대를 형성한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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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당연했던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선택하는 일이다. - P58

당연히 기존 방식과 문화를 지지하는 이들의 저항이 나올 수밖에 없고, 이해관계에 따라서 기존 방식과 새로운 변화 중 어떤 것이 이득일지도 따질 수 밖에 없다. - P58

중요한 건 2천 년 이상 이어온 악수라는 세계 공통의 보편적 인사법마저도 언컨택트 시대를 맞아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이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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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나는 이 집에 왔다.
아오야마 나나에, 정유리 옮김, 『혼자 있기 좋은 날』, 이레, 2007.

처음 나흘 동안은 계속해서 비가 쏟아졌다.
V. S. 나이폴, 최인자 옮김, 『도착의 수수께끼』, 문학과지성사, 2015.

그래, 이곳으로 사람들은 살기 위해 온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김재혁 옮김, 『말테의 수기』, 펭귄클래식 코리아, 2010.

찌는 듯이 무더운 7월 초의 어느 날 해 질 무렵.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예프스끼, 홍대화 옮김, 『죄와 벌』, 열린책들, 2009.

무더운 어느 봄날 해 질 무렵 파트리아르흐 연못가에 두 시민이 나타났다.
미하일 불가코프, 김혜란 옮김, 『거장과 마르가리타』, 문학과지성사, 2008.

점쟁이에게 내 앞날을 점쳐 보고 돌아오던 날 오후, 나는 광화문 한복판에서 기이한 풍경을 만났다.
윤순례, 『아주 특별한 저녁 밥상』, 민음사, 2005.

사람들은 믿지 않을 테지만, 왜냐하면 나도 믿지 않았으니까, 광화문 한복판에 땅굴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승우,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 창해, 2005.

1965년 8월 8일 아침,
워싱턴 주의 벨링햄.
로버트 제임스 월러, 공경희 옮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시공사, 1993.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1982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박민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한겨레신문사, 2003.

나는 보이지 않는 인간이다.
랠프 엘리슨, 조영환 옮김, 『보이지 않는 인간』, 민음사, 2008.

테레즈, 많은 사람들이 너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프랑수아 모리아크, 조은경 옮김, 『테레즈 데케루』, 펭귄클래식 코리아, 2011.

헝가리 식당에서 스테이크 네 조각을 깨끗이 먹어 치웠지만, 방으로 가기 위해 호텔 복도를 지날 때 프레디 만치니는 그래도 허기가 졌다.
레온 드 빈터, 유혜자 옮김, 『호프만의 허기』, 디자인하우스, 1996.

그 이야기는 난롯가에 앉아 있는 우리를 숨도 쉴 수 없으리만치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다.
헨리 제임스, 정상준 옮김, 『나사의 회전』, 시공사, 2010.

나는 그 이야기를 여러 사람한테서 조금씩 얻어들었고, 이런 경우에 으레 그러하듯이 그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이디스 워튼, 김욱동 옮김, 『그 겨울의 끝』, 열린책들, 2002.

그 일에 대해 나는 굳이 알고자 하진 않았지만 결국 알게 되었다.
하비에르 마리아스, 김상유 옮김, 『새하얀 마음』, 문학과지성사, 2015.

아, 이러면 안 되는데…….
다케우치 마코토, 오유리 옮김, 『도서관에서 만나요』, 웅진지식하우스, 2011.

사람 하나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쯤 간단하지 않을까.
가쿠다 미쓰요, 권남희 옮김, 『종이달』, 예담, 2014.

혹시, 이 사람을 찾고 있나요?
텐도 아라타, 권남희 옮김, 『애도하는 사람』, 문학동네, 2010.

그러고 보니 소설이란 게 누군가를 기억하려고 애쓰는 시간의 기록인 것만 같다. 누군가를 기억하기 위해 한 문장 한 문장 써 내려간 기록. 바로 그 문장을 쓴 자까지 포함한, 언젠가는 사라져 버릴, 그 모든 누군가를 기억하기 위한.

아름다워야 한다.
천운영, 『생강』, 창비, 2011.

우선, 내가 주인공임을 밝혀 둔다.
최민석, 『능력자』, 민음사, 2012.

1) 오후 시간을 욕실에서 보내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곳에서 살려는 생각은 아니었다.
장 필립 뚜생, 이재룡 옮김, 『욕조』, 세계사, 1991.

솔직히 말해서 찰스 스트릭랜드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에게서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서머싯 몸, 송무 옮김, 『달과 6펜스』, 민음사, 2000.

모든 아이들은 자란다,
단 한 명만 제외하고.
제임스 매튜 배리, 이은경 옮김, 『피터 팬』, 펭귄클래식 코리아, 2008.

항상 단 한 사람이 문제다. 보통 사람과는 다른 한 사람. 우리의 주인공. 어떤 식으로든 달라야 하는 한 사람. 장삼이사나 필부필부라면 굳이 발견하려고 애쓸 필요조차 없는 그 다른 점을 어떻게든 찾아내야만 하는 사람. 정 안 되면 처음 만났을 때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노라고 쓰기라도 해야 하는 사람. 심지어 더는 자라지 않는 것마저 특징이자 다른 점이 될 수 있는, 우리의 주인공.

불길함.
구효서, 『낯선 여름』, 중앙일보사, 1995.

사방을 에워싼 석벽에서 몸뚱이들이 솟구쳐 올랐다.
페터 바이스, 탁선미 옮김, 『저항의 미학 1』, 문학과지성사, 2016.

내 머리 위에는 흑단목으로 조각한 털보 난쟁이 형상이 두 손에 촛대를 쥐고 있는 모습의 샹들리에가 걸려 있었다.
페터 바이스, 남덕현 옮김, 『저항의 미학 2』, 문학과지성사, 2016.

그녀는 눈 속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페터 바이스, 홍승용 옮김, 『저항의 미학 3』, 문학과지성사, 2016.

태초에 강이 있었다.
벤 오크리, 장재영 옮김, 『굶주린 길』, 문학과지성사, 2014.

16세기 중엽 하펠 강가에 미하엘 콜하스라는 말장수가 살았다.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황종민 옮김, 『미하엘 콜하스』, 창비, 2013.

1801년.
에밀리 브론테, 김정아 옮김, 『폭풍의 언덕』, 문학동네, 2011.

1850년 무렵, 알자스 지방에 살고 있던 한 초등학교 선생이 아이들에게 들볶이다 못해 식료품상으로 직업을 바꾸고 말았다.
장폴 사르트르, 정명환 옮김, 『말』, 민음사, 2008.

1888년 폰 파제노 영주는 일흔 살이었다.
헤르만 브로흐, 김경연 옮김, 『몽유병자들』, 열린책들, 2007.

무술년 이월 초이틀이었다.
김동인, 『운현궁의 봄』, 애플북스, 2004.

1926년의 일이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허희정 옮김, 『인간의 대지』, 펭귄클래식 코리아, 2009.

그 사건들은 1938년에 내게 일어났다.
모리스 블랑쇼, 고재정 옮김, 『죽음의 선고』, 그린비, 2011.

가아프의 어머니인 제니 필즈는 1942년, 보스턴의 어느 영화관에서 어떤 남자를 해쳤다고 체포되었다.
존 어빙, 안정효 옮김, 『가아프가 본 세상』, 문학동네, 2002.

1945년 1월 25일, 나는 민도로 섬 남쪽의 산속에서 미군의 포로가 되었다.
오오카 쇼헤이, 허호 옮김, 『포로기』, 문학동네, 2010.

나는 1967년 봄에 그와 처음으로 악수를 했다.
폴 오스터, 이종인 옮김, 『보이지 않는』, 열린책들, 2011.

1969년 9월 4일 뉴욕.
시드니 셀던, 김시내 옮김, 『천사의 분노』, 북앳북스, 2004.

1975년의 춥고 흐렸던 어느 겨울날, 나는 열두 살 나이에 지금의 내가 되어 버렸다.
할레드 호세이니, 이미선 옮김, 『연을 쫓는 아이』, 열림원, 2007.

1984년 어느 여름날 아침 평소보다 늦게, 조이드 휠러는 지붕 위에서 쿵쿵거리고 돌아다니는 어치떼 소리를 들으며, 창가에서 스멀스멀 움직이는 무화과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에 자기도 모르게 잠에서 깼다.
토머스 핀천, 박인찬 옮김, 『바인랜드』, 창비, 2016.

1990년 10월 3일, 화요일 아침 10시 30분.
제임스 미치너, 윤희기 옮김, 『소설』, 열린책들, 2009.

2002년 7월 어느 겨울날, 조제 파울로라는 남자는 썩은 마룻바닥에 구멍을 냈다.
헤닝 망켈, 김재성 옮김, 『불안한 낙원』, 뮤진트리, 2015.

말에는 정처가 없다. 하지만 말하는 사람은 그 말로 정처를 찾고자 한다. 정처 없는 그 말들의 정처를 찾는 행위의 집합이 곧 정치政治이리라.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말로 정처를 찾고자 하는 말하는 사람의 욕망이, 어디든 정처를 갖지 않으려는 말의 욕망보다 더 크다는 사실이다. 언제나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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