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 개념의 근본적 성격[언약 개념이 유대교 신학의 근본이라는 점]이 랍비 문헌에서 "언약"이라는 용어가 상당히 희소하게 등장하는 이유를 크게 설명해준다는 것을 대담하게 말해보았다. - P342

사해 사본은 언약을 상대적으로 빈번하게 직접 언급하는데, 이는 에세네파 자체가 그들이 참 언약을(혹은 언약에 관한 참된 해석을) 갖고 있다는 자신의 확신을 존립 근거로 삼았기 때문이요, 이 언약에 들어오고 머물려면 지켜야 하는 특별한 요구사항들을 규정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 P342

에스라4서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살펴본 모든 문헌에서는 이 자비가 엄격한 보응이라는 주제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으신다는 주제-와 나란히 자리해있는 주제다. - P343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합당한 몫을 갚아주신다고 말하는 진술들은 하나님의 정당하심을 강조하는 데 이바지하며, 죄인과 의신 모두에게 그들의 행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확실히 심어주는 데 이바지한다. - P343

하나님은 변덕스럽지 않으시다. 하나님은 순종을 벌하지 않고 범죄에 보상하시지 않는다. - P343

언약적 율법주의의 "패턴" 혹은 "구조"는 이렇다. (1)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으며, (2) 율법을 주셨다. - P345

율법은 (3) 이 선택을 유지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과 (4) 순종해야 한다는 요구를 암시한다. - P345

(5) 하나님은 순종에 보상하시고 범죄를 처벌하신다. - P345

(6) 율법은 속죄 수단을 제공하며, 속죄는 결국 (7) 언약 관계 유지 혹은 언약 관계 재수립이라는 결과로 이어진다. - P345

(8) 순종과 속죄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로 말미암아 언약 안에 남아있게 된 모든 이는 장차 구원받을 그룹에 속해 있다. - P345

첫 번째 요점과 마지막 요점에 관한 중요한 해석이 선택, 나아가 결국 구원은 인간이 이룩하는 일이라기보다 하나님의 자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 P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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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우리는 희년서가 아주 엄격한 율법주의를 표명하는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에 끊임없이 호소하는 모습을 보며, 저자가 하나님을 당신 백성에게 늘 자비로우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분으로 생각하는 모습을 본다. - P308

우리는 쿰란 문헌이 인간을, 심지어 선택받은 자도, 인간의 연약함에 참여한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죄 안에" 있다고 여기면서도 인간의 연약함 자체를 정죄하지는 않았음을 보았다. - P337

대다수 범죄를 속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했으며, 선택받은 자들을 "죄 안에" 있어도 "타락한[버림받은, lost]" 자로 여기지 않았다. - P337

하지만 에스라4서는 죄를 피하지 못하는 인간의 무능이 영벌로 이어진다고 본다. - P337

에스라4서 저자와 현존 문헌에서 나타나는 유대교의 나머지 견해를 구분해주는 것이 인간의 곤경을 바라보는 이런 비관론이다. -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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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비 문헌은 사람이 어떤 방법을 통해 자신이 선택받은 자임을 증명하는지, 무슨일을 하면 선택받은 자라는 지위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지, 어떤 이는 선택받는데 또 어떤 이는 받지 못하는 이유가 뭔지 묻는 문제들을 상세히 다루었지만, 에녹1서는 랍비 문헌만큼 상세히 다루지 않는다. - P298

하지만 "우리에 찬동하느냐 아니면 반대하느냐에 강조점을 둔 것은 둘이 비슷하다. - P298

의인은 하나님과 전통에 충성하지만(의인이 자신의 의지로 선택을 "택한다"는말은 바로 이런 뜻이다. 94.4). - P298

악한 배교자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파멸시킨다. - P298

결국 우리는 우리가 랍비 문헌에서 발견했던 것과 아주 똑같은 종교 패턴을 묵시 문헌의 틀 안에서도 발견하는 것 같다. - P298

일부 부분(개인의 범죄와 속죄)이 빠져있는 이유는 문헌의 본질 그리고 충성과 불충성이라는 문제를 다루는 규모 때문이다. - P298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구원이 선택에 달려있다는 것 그리고 선택받은 상태를 유지하는 데 의롭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 그분의 언약에 충성과 순종을 이어가는 것임을 발견한다. - P298

우리는 희년서의 구원론도 우리가 팔레스타인 유대교 안에 아주 널리 퍼져있음을 발견했던 그 구원론이라고 결론짓는다: - P307

구원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조상들과 언약을 세우실 때, 곧 그가 결코 버리지 않으실 언약을 세우실 때 은혜로 베풀어주신 것이다(1.18). - P307

하지만 개인들도 언약 자체를 걷어 차버렸다 할 정도로 죄를 짓는다면, 이스라엘에서 배제당할 수 있다. - P307

희년서는 많은 점에서 구약의 신앙을 이어간다. 저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베푸시는 사랑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신실하심, 순종하라는 하나님의 요구, 당신이 하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 그리고 참회하는 자를 기꺼이 용서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강조한다. -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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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자들이 어둠의 천사의 지배 아래 있다는 진술이 있긴 해도(1QS 3.20), 이 악한 자들이 죄와 관련하여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참회하고 언약에 합류하는 일이다. - P253

이것은 쿰란이 가졌던 견해와 유대교의 나머지 그룹 및 바울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점이다. - P253

랍비 문헌을 보면, 사람은 범죄를 참회함으로 언약에 합류하는 게 아니다. 애초에 사람은 언약 안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 P253

하지만 죄를 범과로 보고 참회를 이런 범과에서 고침을 받는 것으로 보는 기본 범주(개념)는 쿰란이나 유대교의 나머지 그룹이나 바울이나 똑같다. - P253

앞으로 보겠지만, 바울과 에세네인은 똑같이 사람은 날 때부터 구원에 효험이 있는 언약 속에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따른 행동(곧 "믿음")으로 언약에 합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P253

처벌은 행위에 따라 이뤄지나 보상은 자비로 말미암아 주어진다는 테마가 말하려는 요지는 인간이 범죄를 저질러 구원을 잃어버리는 일은 있을 수 있어도, 인간이 순종함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자격은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 P259

여기서 잠시 멈춰 서서 에세네파의 견해와 랍비들의 견해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 살펴봐도 될 것 같다. - P261

랍비 문헌을 보면, 하나님이 행위에 따라 형벌과 보상을 공정하게 나눠주신다는 점을 사해 사본보다 더 강조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이 의롭다하심을 받는 데 필요하다는 점은 사해사본보다 덜 강조한다. - P261

하지만 둘의 근본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랍비 문헌을 보면, 보상과 형벌을 베품이 구원의 기초가 되지 않고 도리어 언약이 구원의 주요 요소인 반면, 언약 안에서는 인간이 그 행위에 따라 형벌을 받고 보상을 받는다. - P261

마찬가지로 쿰란도 사람이 언약에 따른 법규를 어기면 처벌받고 법규를 지키면 보상을 받는다고 말하면서도, 언약 자체 안에 있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고 말한다. - P261

사람을 언약 속에 놓아두는 하나님의 은혜는 랍비 문헌보다 쿰란이 더 강조한다. - P261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인식과 순종하라는 요구가 모두 높았다는 점은 유대교 전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 P262

이는 곧 유대교가 "은혜"와 "행위"를 결코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았음을 일러주기 때문이다. - P262

나는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노력이 어떤 방식으로라도 대립한다는 개념이 팔레스타인 유대교에겐 철저히 낯선 개념이라고 말하는 게 안전하다고 믿는다. - P262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팔레스타인 유대교가 은혜와 행위 중 어느 하나만을 구원에 이르는 길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 P262

(에스라4서를 제외하면) 구원은 언약에서 체현(體現)되어 늘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 P262

그러나 언약 조문은 순종을 요구한다. 우리는 쿰란(사해 사본)에서 순종하라는 요구와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을 믿는 믿음이 함께 나타남을 특히 분명하게 목격한다. - P262

이는 쿰란이 이 두 가지 점을 두드러지게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팔레스타인 유대교 전체에서 대체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 P262

하나님과 맺은 경건한 관계의 중요성이 이 집회서 저자의 주 관심사라는 주장은 아무도 시비할 수 없다. - P276

그러나 이 책의 논지,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말하는 주제는 지혜와 율법의 변증법(dialectic) 속에 자리한 것으로 보인다. - P276

벤 시락은 (모든 사람이 원하는) 지혜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세상의 선생에게서 지혜를 구하지 말고 오히려 모세 언약을 지켜야[observe] 한다고 주장한다. - P276

이런 주장은 요한복음의 논지, 곧 주변 문화들이 하나같이 동의하는 욕구와 가치(진리, 빛 따위)가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되었다는 논지와 비교해 볼 수 있다. - P276

이처럼 "보편주의"와 "특수주의"가 실상 균형을 이루고 있지도 않고 긴장 관계에 있지도 않다. - P276

지혜와 토라의 관계는 변증법적이며,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에 복종하지 않는다. - P276

지혜는 선하며 추구해야 할 것이다. 토라 안에서 지혜가 구현된다(embodied in the Torah). - P276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모세의 계명에 순종하는자는 지혜로울 것이다. - P276

올바른 행위의 내용은 평범한 이도 아는 지혜 전통과 긴밀하게 결합해 있으나, 벤 시락은 이런 내용이 토라와 일치하며 토라 안에 구현되어 있다고 밝힌다. - P276

벤 시락은 지혜 전통의 가치를 보존하면서도 지혜를 이스라엘이 선택받음과 이스라엘이 모세를 통해 받은 하나님의 율법이라는 틀 안에 놓고 다루는 생산적인 신학적 조화를 추구한다. -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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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완전하고 참된 언약을 에세네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계시하실 때 도구로 사용하셨던 이들이 누구이든, 에세네파의 언약과 이스라엘이 받아들인 다른 언약을 구분해주는 "감춰진 것들"과 율법들이 무엇이든, 오로지 에세네파의 언약만이 참된 언약이요 "감춰진 것들"을 알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이들은 모두 언약 밖에 이들이라는 (따라서 결국은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 밖에 있는 이들이라는) 것이 에세네파의 으뜸가는 교의[tenet]임은 분명하다. - P233

사해 사본이 말하는 "예정 교리"는 자유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보다 오히려 이 언약도들이 선택받은 이유가 뭔가라는 질문에 제시한 대답으로 보는 게 가장 좋다. - P244

선택에 관한 에세네파의 진술을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이런 진술과 유대교 전체가 선택에 관하여 갖고 있던 견해들의 관계를 아는 것이다. - P244

에세네파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닌 언약에 특별한 계시가 들어있다고 보았다. - P245

이 때문에 이들은 하나님이 당신 주도 아래 은혜를 베푸사 당신의 통찰을 받을 자와 받지 못할 자를 결정하신다는 점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으며, 사해사본[곧 에세네파]이 팔레스타인 유대교의 다른 분파와 달리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하나님이 각 개인의 운명을 결정하신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도 결국 그 때문이다. - P245

에세네파 사람들이 생각했던 선택 개념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선택받았다는 개념이라기보다 개개인이 선택받았다는 개념이다. - P245

에세네파는 에세네파 밖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파멸을 맞이할 운명에 처한 죄인으로 여긴다. 나아가, 사람이 날 때부터 이 에세네파에 속할 수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 P245

에세네파가 요구했던 자유의지에 따른 행동은 두 가지, 곧 참회와 언약에 헌신함이라는 요소가 모두 들어있는 행위다. - P246

이 때문에 에세네파는 다른 무엇보다도 "죄악에서 돌아선 자들"이라 불렸으며, 에세네파 언약은 "참회의 언약"이라 불렸다.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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