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 칼집에 거의 들어가지도 않는 어떤 것이 우리를 강타한다. 전능한 존재가 생각에 잠겨 쉬고 있다. 우리는 피리처럼 불리는 존재다. 우리의 숨결은 우리 소유가 아니다. - P28

애정이 있는 사람은 볼 수 있고 지식이 있는 사람도 볼 수 있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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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적으로 균형 잡혀 있고 양적으로 충분한 자료와 근거를 걸맞은 어휘로 압축해 뒷받침하는 주장은 설령 수신자의 성향이나 믿음과 달라 끝까지 수긍할 수는 없다 해도 증오심은 생기지 않는다. 적의 의견이지만 존중한다는 마음은 이럴 때 생길 것이다. - P221

관점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도망칠 구멍이 많은 비겁한 어휘를 고른다. - P254

관점이 올바르지 않은 상태에서는 극단적이고 편협한 어휘를 쥐려 한다. - P255

말을 하고 글을 쓸 때 늘 도사리는 유혹이자 위험이다. - P255

관점과 어휘력의 상관관계를 예민하게 감지해 피하지 않고 승부하면 차차 미립날 수 있다. 이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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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 언어의 발전이 권력 투쟁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 명백한 사실이긴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그러한 논쟁은 신학이 영원으로부터 그 내용을 도출한 어떤 진리를 추구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 P45

교리들은 우리가 향유하고 응시하지만 결코 고갈되지 않는 영원한 신비를 가리킨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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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가 어떤 새로운 것도 말할 수 없는 게 당연해질 때, 교회의 정체성을 권위 있게 강화하는 기여도에 따라 교리의 중요성이 측정될 때, 교리는 종말에 이른 것이다. - P38

영원한 것은 끝끝내 신학을 자아내는 것이다. - P39

신학은 그리스도인의 확신을 지탱할 수 있는 언어로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표현하라는 도전을 즐긴다. - P39

신학의 시선은 내면을, 사물의 영원한 본질을, 그리고 바깥을, 하나님께서 인간들 사이에 머무시는 곳을 응시한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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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이나 타성은 건성이나 비슷한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반대말은 ‘관심‘이다. - P58

나는 사람이 제일 가지기 힘든 것이 관심이라 여긴다. - P58

강퍅할 때는 온통 자기만으로 가득 차 깃털 한 개조차 꽂을 데 없는 것이 마음이다. 그 안에 다른 무엇을 들이는 게 쉽겠는가. - P58

대수롭지 않은 주변과 일상이라면 더욱 데면데면하다. 옆에 있어도 옆에 없고 봐도 본 게 아니며 들어도 들은 적 없다. - P58

우리가 힘든 건 내 속에 소용돌이치는 감정 때문이지, 벌어진 일 때문이 아니다. - P78

감정을 올바로 해석해야 통제하거나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 P78

세상의 모든 아는 체하고 하는 말은 거짓이다. - P96

거짓의 맹점은 끝내 일관성을 만들 수 없다는 데 있다. - P96

언젠가는 자가당착에 빠져 망신당한다. - P96

‘사람에 대한 존중‘은 내가 옳다고 느끼면 옳은 것이라는 식으로 서로 달리 해석할 수 있는 상대주의가 아니라 절대적 가치다. - P107

어떤 상황에서도 최우선에 두는 것이 인격이며 인격은 타고 나는 게 아니라 - 타고 나는 것은 인성이다. - 배움과 습관을 통해 갖출 수 있다. - P107

사람을 존중하는 자세는 생각보다 훨씬 우리에게 배어 있지 않아 자기도 모르게 적절치 못한 어휘를 쓸 수 있다. - P107

아직 배우지 못했거나 잘못 알아 그렇다. 문제는 다음이다. 모르거나 잘못 아는데 올바로 알려 하지 않는 것은 분명 잘못이다.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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