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목사가 왜 신학자가 되어야 하는지 동시에 신학자가 왜 설교자가 되어야 하는지, 즉 목사-신학자로서의 설교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장 잘 보여줍니다.

특정한 신학자의신학은 그의설교를 통해 발견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것입니다. 스힐러베이크스에게는 좋은 설교란 교의, 윤리 신학, 설교자 자신의 신앙생활, 그리고 설교를 듣는 사람들의 삶을 가로지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요소들이 복음을 설교하는 행위에 수렴되며 설교자와 회중을 한데 묶어줍니다.

"순전한 설교는 기도와 인간의 경험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과 지속적으로 교제할 뿐만 아니라 신학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지속적인 훈련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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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리이든 중요하다는 말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이름을 발음하는 소리가 중요하다

친밀함은 세계와 결합되는 모호하고 신비로운 경험이 아니다. 그것은 구체적인 타자와, 즉 아담과 하와가,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이 인격적이며 특수한 방식으로 연합하는 경험이다.

친밀함은 추상이 아니라 인격화다.

이름은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 개별적이며 역사적이고 구체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목회 사역 역시 이름에 초점을 맞춘다. 목회자의 서재에서 교인 명부는 성경 다음으로 중요한 책이다.

다른 이의 이름에 익숙해지고 다른 이가 자기 이름에 익숙해졌음을 발견하는 것이 곧 친밀함이다.

이름이 없다면 목회 사역도 있을 수 없다.

아가서에 제시하는 언약의 두 번째 측면은 친밀함의 어려움이다. 친밀함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친밀함을 제공하는 구조(언약)는 확고하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고자 할 때 장애물과 방해물을 만난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구원 사건에 응답하는 사람은 모든 죄가 사함을 받았음을 알고는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의심이라는 장애물 없이 하나님과의 하나 됨을 느끼지는 못한다.

갈망은 정처 없이 헤매는 것이 아니며, 찾음은 어둠 속을 더듬는 것이 아니다. 방향이 있고, 목표가 있다.

목회 사역은 영적 추구의 어려움과 고통을 인정하고 그것을 함께 나눈다.

목회자의 책무는 영적 삶을 단순화하거나 공통분모의 공식을 만들어내거나 제자도를 실천하는 손쉬운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다.

영적 성장의 길에는 항상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으며, 그 어려움을 부인하거나 최소화하거나 그것을 피할 수 있는 지름길을 제공하려고 할 때 목회자는 그 사람이 참된 성장을 이루지 못하게 막는 것이나 다름없다

오히려 목회자의 책무는 어려움 속에 있는 사람들의 동반자가 되고, 그 어려움을 인정함으로써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그런 시간을 통과할 때 그들과 함께 대화하고 기도하여 그들이 조금이나마 고독감을 덜 느끼고 조금이나마 소망을 품고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 의도가 아무리 선하다고 할지라도 단순화시키려고 하는 사람은 좋은 목회 사역을 파괴하는 사람이다.

이 세상은 은총에 대해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어떤 차원에서든-하나님과의 친밀함이든 사람들과의 친밀함이든-친밀함을 추구할 때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친밀함은 수지가 맞지 않는다. 그것은 효율적이지 않으며, "매력적"이지도 않다.

친밀함은 결코 쉽게 이룰 수 없다. 고통이 따른다. 갈망과 실망, 상처가 있다.

친밀함을 얻기 위해 상당한 정도의 비용이 드는 만큼, 보상은 비길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의도하신 그 인간성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듬거리며 비틀거리고, 방황하며 곁길로 빠지고, 지체하며 꾸물거린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결같 이 영원한 사랑을 받듯이 우리도 그렇게 사랑하는 법을 배워간다.

사랑과 신앙 모두에서 친밀함은 긴장으로 가득하다. 성취는 지연되고, 욕망은 쓰디쓰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과 그 사랑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 사이에는, 약속과 성취 사이에는, 언약으로 규정되는 경계 사이에는 열렬한 사랑과 열정적인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 인내하며 끈질기게 기도해야 할 책임이 있다.

사람들과 더불어 그들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그 욕망의 초점을 하나님께 맞추고 그 어려움을 하나님 아래 맡겨드린다

기도는 가장 탁월한 언약의 언어다.

기도는 가장 중요한 관계, 사람과의 관계와 하나님과의 관계 모두를 진지하게 대하는 가장 중요한 목회적 대화다

기도할 때 우리는 욕망에 관해 이야기하고 그것을 하나님께 아뢴다.

기도할 때 어려움을 분석하거나 연구하지 않으며, 오히려 하나님과 더불어 어려움을 풀어나갈 뿐이다.

친밀함이 우리의 목표라면, 교육이나 상담, 심리 요법으로는 그 목표에 이를 수 없으며(이런 사역들이 도움을 줄 수는 있을 테지만), 중요한 이들과의 관계, 즉 창조주와 피조물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서만 그 목표에 이를 수 있다.

사랑과 신앙 모두에서 친밀함은 긴장으로 가득하다. 성취는 지연되고, 욕망은 쓰디쓰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과 그 사랑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 사이에는, 약속과 성취 사이에는, 언약으로 규정되는 경계 사이에는 열렬한 사랑과 열정적인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 인내하며 끈질기게 기도해야 할 책임이 있다.

사람들과 더불어 그들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그 욕망의 초점을 하나님께 맞추고 그 어려움을 하나님 아래 맡겨드린다

기도는 가장 탁월한 언약의 언어다.

기도는 가장 중요한 관계, 사람과의 관계와 하나님과의 관계 모두를 진지하게 대하는 가장 중요한 목회적 대화다

기도할 때 우리는 욕망에 관해 이야기하고 그것을 하나님께 아뢴다.

기도할 때 어려움을 분석하거나 연구하지 않으며, 오히려 하나님과 더불어 어려움을 풀어나갈 뿐이다.

친밀함이 우리의 목표라면, 교육이나 상담, 심리 요법으로는 그 목표에 이를 수 없으며(이런 사역들이 도움을 줄 수는 있을 테지만), 중요한 이들과의 관계, 즉 창조주와 피조물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서만 그 목표에 이를 수 있다.

적어도 기독교는 성례전적이라는 뜻이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이며, 세속적인 것은 성스러운 것의 통로이고, 물질적인 것은 영적인 것을 담은 그릇이다.

세례에서 물은 죄사함의 성례전이 되고, 성만찬에서 음식은 영생의 성례전이 된다.

몸이라는 "지표"는 성육신을 통해 가장 완전히 다뤄지는 실재의 목록이다.

몸은 결코 그저 몸이 아니라 존재의 영역, 창조와 구원을 결합하는 삶의 과정을 연결하는 망이기 때문이다

경배, 송축, 일편단심-우리가 "사랑에 빠질" 때 경험하는 모든 것-은 우리가 사랑/구원받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사랑은 우리를 위해, 우리 안에서 모든 것-자신에 관한 우리의 생각, 다른 이들을 향한 우리의 태도, 우리의 가치와 목적-을 바꾼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삶이 어떤 궁극적인 의미를 지니게 만들며, 우리 삶을 영원히 무언가에 적합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목회 사역이란 우리를 서로와 그리고 하나님과 구별시켜주는 작은 차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런 다음 그것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사역이다.

친밀함에 대한 욕구와 실제 인간관계의 시시콜콜한 문제들이 기도의 내용이 된다. 욕망은 경배로 바뀌고, 어려움은 간구로 변한다.

목회 사역에서 서둘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때, 개인적인 필요를 충족하는 관계를 계발하는 대화와 기도의 사역을 못하게 된다

목회자는 "바쁘지" 말아야 한다.

바쁘다는 것은 영혼의 질병이다. 그것은 소명을 성실히 수행하게 해주는 버팀목과 은총의 우선성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한 가지 일에서 다른 일로 서둘러 넘어가려는 태도다.

친밀함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하는 목회 사역을 가능하게 해주는 대화와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조용한 여가를 넉넉히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한다는 것은 곧 공동체 안의 다른 사람들에 의해 사람들에게 강요되는 여가에 대한 기능적, 기술적, 비인간적 의미 규정을 거부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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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바르트는 이러한 목회 사역에서 아가서를 활용하고자 할 때 필요한 주석적 기초를 제공한다. 그는 창세기 2장을 주석하면서 "남자와 여자로 창조된" 인간의 성적인 본성에 대해 검토하고, 인간이 언약적 관계에 참여하고 그 관계를 계발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다고 논증한다.

성경에서는 인간이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신실한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기를 거부하는 태도와 그렇게 할 능력이 없음을 묘사할 때, 성적 은유를 가장 자주 사용한다.

카를 바르트는 이러한 목회 사역에서 아가서를 활용하고자 할 때 필요한 주석적 기초를 제공한다. 그는 창세기 2장을 주석하면서 "남자와 여자로 창조된" 인간의 성적인 본성에 대해 검토하고, 인간이 언약적 관계에 참여하고 그 관계를 계발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다고 논증한다

깨어진 약속이라는 폐허와 잃어버린 신실함이라는 파편 속에서 구원의 사건이 일어난다.

아가서는 성적 이미지를 예언자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는 예외에 속한다. 이 책에서는 창세기 2장을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이 사랑 노래들은 온전한("구원받은") 관계로 귀결되는 인격적 만남을 이룰 능력이 사람들에게 있다고 설명한다.

아가서에서는 언약의 내적 기초를 묘사하기 위해 창세기 2장에서 사용된 성적 관계의 언어를 가져와 언약이 어떻게 성취되는지, 어떻게 분리된 것이 연합되는지, 어떻게 외로움을 벗어나 사귐에 이를 수 있는지, 어떻게 인격적 친밀함을 이룰 수 있는지, 어떻게 죄로 인해 파괴된 친밀함이 구원을 통해 회복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하나님이 본래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것은 이 언약을 위해서다. 그리고 아가서에서도 그렇다고 말한다. 이 언약의 관점에서 남자와 여자는 그 어떤 장애와 제약에도 불구하고 만남을 향해 서둘러 나아가야만 하며 그럴 수 있고 그럴 것이다.

아가서가 특히 유월절 전통 안에서 사용될 때 구원 사건으로부터 파생된 관계, 그 자체로 구원의 사건이 된 관계를 계발하는 목회 사역을 위한 자극과 지침이 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하나님이 그분의 일을 하실 때 활용하시는 구조인 언약 안에서 그들의 창조와 구원의 관점에서 살아가고자 사람들은 관계 속에서 살아야만 한다.

모든 창조와 구원은 관계적(언약적)이므로 그런 토대로부터, 그리고 그런 환경 속에서 자라나고 발전하는 삶 역시 관계적(언약적)이어야 한다.

목회 사역 전체를 인격적 관계를 다루는 걸작인 아가서를 통해 이해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구원을 거친 후 창조의 결과에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이 책을 경건한 삶-묵상과 기도의 삶-을 묘사하는 책으로 읽어왔음을 알 수 있다.

아가서가 자리 잡고 있는 유일한 맥락은 성경의 정경이다. 정경으로 받아들여지기 전에 신앙 공동체가 이 책을 사용했던 전前역사가 있었음은 분명하다.

교회에서는 아가서에 등장하는 낭만적 사랑의 언어를 사용해 날마다 삶 속에서 누리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귐을 이해하고 이를 계발하고자 했다.

교회가 아가서를 우의적으로 영해靈解한 것이 고상한 체하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하는 현대 학자들은, 성적인 것과 영적인 것이 내적으로 깊이 연결되었음을 알고 있던 고대인들의 지성, 그들의 시적 지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유대교와 기독교 문서의 주된 관심사는 현대인들이 그토록 몰두하는 역사가 아니었다. 이들 문서에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드러내는 가시적 상징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 맥락은 언약, 즉 사랑하는 이와 사랑받는 이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이며, 여기서 사랑하는 이는 하나님이고 사랑받는 이는 인간, 즉 "남자와 여자" 모두다

성애를 다루는 내용은 신학적 맥락 안에서 읽어내야 한다.

고대인들은 성에 관한 내용에 대해 당혹스러워해서가 아니라 성을 성례전적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아가서를 경건의 관점에서 읽었다.

인간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그 색깔을 취했다.

구원은 자아의 강화, 즉 고독한 영혼이 신비하고 심오한 깨달음 속으로 침잠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자아의 추상화, 인격적인 것을 감정이나 사상의 단편으로 이상화하는 것을 뜻하지도 않는다.

구원은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찬양하는 우리의 말에 의해 계발되는 인격적 관계다.

아가서는 모든 성경적 신앙이 작동하는 환경, 즉 대화적 언설의 세계, 질문과 대답, 초대와 헌신, 약속과 성취가 존재하는 세계, 말이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는 세계를 표상한다.

목회자는 대화 상대자로서 성도들과의 대화를 통해 분열과 냉담, 무관심이라는 장벽을 극복하고자-그들을 이해하고, 타자의 진리를 발견하고, 타자의 의미를 자세히 살피고자-노력한다.

목회적 대화는 친밀함을 추구하는 인격체 사이의 대화다.

성경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과 구원받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의 구조를 가리킬 때 가장 많이 쓰이는 말은 언약berit이다.

사실 언약은 인류가 명시되고 계시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떠나서는 삶을 이해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언약이라는 말 자체는 아가서에 등장하지만, 아가서를 노래한 사람들은 언약의 관점에서 삶 전체를 이해했던 사람들이었다.

아가서에서는 나라 간 조약을 맺을 때 사용하는 객관적인 언어가 아니라 인격체들이 사랑을 나눌 때 사용하는 주관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언약의 경험을 안으로부터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언약을 명시적으로 지칭하는 나라 간의 조약에서는 두 나라가 평화롭게 살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백성이 의롭게 살 수 있는 조건을 규정한다.

잘 알려진 성적인 사랑의 언어를 사용하여, 사람들이 다른 사람과 온전하고 건강하며 만족스러운 관계가 삶 속에서 실현되는 인격적 경험을 추구고자 할 때 그들 사이의 내적 역학을 묘사한다.

모세오경에서 언약을 세우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면, 아가서에서는 언약의 관계 안에서 실현되는 관계에 대해 노래한다.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기리는 모세의 노래로부터 그 구원의 주관적 경험을 속속들이 살피는 솔로몬의 노래로 넘어가는 과정(이는 목회적 설교로부터 목회적 기도 및 대화로 전환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은 매우 갑작스럽다.

고독한 인격체의 외로운 고립 상태 안으로 파고들어가야 한다. 삶이 의미 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함께 해야만 한다. 친밀함은 온전함의 필수요건이다.

구원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그에 반응한 이들은 날마다 자신의 삶에서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깨달아가는 중이다.

말을 한다는 것은 결국 공동체의 행위다. 내가 말을 할 때, 설령 그것이 나 자신에 관한 말이라 하더라도 나는 다른 사람의 존재(와 중요성)를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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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죽음은 심지어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가지고, (7장의 화자와 같이)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고 그 율법에 순종하기로 헌신한 사람에게까지 율법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합니다(롬 7:8, 11). 이러한 죄와 죽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행위로만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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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실 때 의도하셨지만 죄 때문에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인격적 관계가 구원에 의해 재창조(재구속)된다

구원이란 우리를 죄의 결과(속박, 분열)로부터 구원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또 이웃과 자유롭고 열린 사랑의 관계를 맺게 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중 명령은 구원을 전제로 삼는다.

하나님의 구원 행위가 없다면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 행위가 있기에 우리가 이 모든 명령을 받아들일 수 있고, 이를 통해 하나님과 또 다른 이들과 생기 있고 전인적이며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많이 묵상하는 구원 행위는 출애굽이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구원자로, 자신을 구원받은 사람들로 경험하는 위대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히브리인들의 모든 삶에 대한 케리그마적 중심이었다.

이 사건을 통해 그들은 거룩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 앞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신 그분의 강력한 행위를 기쁘게 선포했다.

이 선포는 유월절을 통해 유지되었다. 이 축제를 해마다 반복함으로써 이 사건을 새롭게 기억할 수 있었다.

의례적인 식사와 이야기하기, 시편 찬송하기를 통해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운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 삶을 시작했던 사건을 가정 안에서 다시 체험하고 이해하고 노래한다.

그들은 군사적, 정치적, 혹은 환경적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위에 의해 정의되고 형성되고 정향定向된다.

구원은 역사 안에 행하시는 하나님의 결정적인 행위이므로, 각 사람이 개인적으로 그리고 공동체적으로 믿음 안에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

구원-우리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시며 속박의 세력을 극복하시고, 악의 힘을 물리치시고, 그 백성을 실제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백성으로 삼으신 사건-은 유월절을 통해 현재적이며 개인적인 사건으로 공표된다.

출애굽 이야기의 형태를 띤 구원 이야기는 놀랍고도 장엄하다

하나님 백성의 역사에서 이보다 더 기억에 남을 만한 이야기는 없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보다 더 위대한 사건은 최종적이며 완결된 출애굽인 부활절밖에 없다.

경건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이 사건으로 계속해서 되돌아와 이를 기억하고 이해하고 찬양하고 그에 대해 응답했다.

아무리 놀랍다 하더라도 이 사건은 너무나도 분명하게 역사적이었다

연대를 추적할 수 있는 시간과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장소에서 일어났으며, 따라서 현재의 시공간에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무도 이 사건을 인간의 실존을 "이해"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혹은 활용할 수 없는) 무시간의 영역에서 일어난 신화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을 구원하셨음을 명백히 증명하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해마다 유월절에 이 구원의 행위를 선포함으로써 그분의 백성은 그들이 지금 이렇게 존재하는 것이 그들을 멸망에서 구해주시고, 그들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대적에 맞서 새로운 삶의 길을 걷게 하시고, 믿음의 삶을 살도록 그들을 온전히 회복시키신 하나님의 행위 덕분이라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거듭 되새긴다.

성경에서 "구원"이라는 말은 "파멸로부터의 구출"이라는 뜻과 "건강한 상태로의 회복"이라는 뜻을 모두 갖는다

구원은 다시 온전한 상태로 회복되고 위험으로부터 건짐 받음을 뜻한다.

히브리어 어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 말은 악이 아무리 당신을 가까이 에워싸더라도 당신이 마음껏 움직일 수 있도록 하나님이 필요한 공간을 마련해주시리라는 뜻까지 담고 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을 보여주는 그분의 결정적인 행위에 해마다 관심을 집중시키는 절기였다.

유월절 축제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는 의례적 식사를 나누는 것이다. 이 식사는 아가서를 읽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아가서가 쓰이기 오래전부터 유대인들은 이 절기를 지켰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유월절 식사seder를 마무리할 때 아가서를 읽기 시작했다. 아가서를 읽게 한 것은 분명히 목회적인 결정이었다.

유월절의 맥락에서 아가서를 읽는 것은, 사람들이 날마다 부대끼는 가정이라는 친밀한 공간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작동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백성을 일으켜 세우는, 단번에 이루어진 영광스러운 역사적 구원 사건을 재현하는 행위였다.

아가서는 성경의 모든 책 중에서(아마도 시편을 제외하고는) 가장 내향적이며, 가장 친밀하고, 가장 개인적인 책이다. 이 책은 개인적 재참여를 통해 역사적 재연을 보충한다.

이 책은 역사적 배경에 쏠려 있던 관심을 내적 관계로 향하게 한다. 고대의 것이든 현대의 것이든 온전해지고 다른 사람과 바른 관계를 맺을 때-즉, 구원을 받을 때-느끼는 친밀감과 기쁨을 아가서만큼 설득력 있게 그려낸 시는 없다.

아가서와 유월절의 조합은 매우 잘 들어맞는다. 이 점은 친밀한 신앙과 통전적 관계성-구원의 맥락에서 복음의 인격적, 즉각적, 경험적 측면-을 길러주어야 할 책임을 맡은 목회자들에게는 특히나 주목할 만하다.

많은 부분에서 목회 사역이란, 누구나 겪고 있는 문제, 즉 구원의 장엄함에 대해 예민한 태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는 문제를 다룬다.

친밀함을 잃어버린 후에도 정통 교리는 보존된다.

초월을 나타내는 상징과 유물 가운데서 일하는 목회자는 스스로, 또한 동시에 신자들 사이에서 냉담함이라는 모래톱으로 떠내려갈 위험에 직면해 있다.

공적이며 외적인 활동(교회 일, 신앙을 변론하는 일, 증언과 설교, 도덕적 형식주의)을 강화함으로써 잃어버린 부분을 은폐하려 할 때 경건의 삶은 약해지고 만다.

목회자는 역사와 제도라는 맥락 안에서 사람들을 대하지만, 그 목적은 그들을 언제나 예배의 형식과 제도의 규율 속에서 의례화된 구원의 사랑에 인격적이며 친밀한 방식으로 참여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예배에서 이뤄지는 기도와 찬양, 설교로부터 시작된 일은 목회 사역 안에서 계속된다

구원의 복음 안에 선포된 구출 작전은 목회자가 성도를 제자로 이끄는 과정을 통해 건강 회복 작전으로 이어진다.

아가서는 구원의 사랑, 비존재로부터 우리를 구원하고 관계 안의 존재를 만들어내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루기 때문에, 그 일상적 친밀함을 풍성하고도 자세한 방식으로 탐구하기 때문에 목회적인 문서 역할을 한다. 출애굽의 역사 안에 강력하고도 압도적으로 나타나 있는 삶을 변화시키는 사랑을,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침실만큼이나 친밀한 경험을 통해서 내밀한 인격적 관계 안에서 노래한다.

아가서의 사랑 노래들은 살아 있는 신앙을 생기 없는 ‘종교’로 변질시키려고 하는 모든 경향을 막아주는 보호 장치다.

이 노래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할 때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배제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아가서에서는 신앙을 전통으로 환원하거나 그것을 가지고 학문적인 교의를 만들어내려고 하는 우리의 경향성에 대한 교정책을 제공한다.

아가서에서는 하나님의 행위가 아무리 위대하며 하나님의 진리가 아무리 고귀하더라도,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의 소소함 속에서 경험하지 못할 정도로 위대하거나 고귀하지는 않다고 주장한다.

목회 사역은 일상에 대한 헌신이다.

그것은 구원의 위대한 진리가 ‘일상의 세계’ 안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믿는 신앙의 행위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실 때 의도하셨지만 죄 때문에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인격적 관계가 구원에 의해 재창조(재구속)된다

구원이란 우리를 죄의 결과(속박, 분열)로부터 구원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또 이웃과 자유롭고 열린 사랑의 관계를 맺게 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중 명령은 구원을 전제로 삼는다.

하나님의 구원 행위가 없다면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 행위가 있기에 우리가 이 모든 명령을 받아들일 수 있고, 이를 통해 하나님과 또 다른 이들과 생기 있고 전인적이며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많이 묵상하는 구원 행위는 출애굽이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구원자로, 자신을 구원받은 사람들로 경험하는 위대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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