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에 가면
비벌리 로버츠 가벤타 지음, 이학영 옮김 / 도서출판 학영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많은 사람들의 구원 이해는 개인적이고 영적이다. 포스트모던 세계와 문화는 그런 현상을 더욱 부추긴다. 복음과 구원을 우리의 욕망과 연결시킨다. 하나님의 광활한 복음을 사사롭게 축소한다.


참된 복음은 이러한 구원 이해를 훨씬 넘어선다. 저자는 우주적 복음, 모두를 위한 복음, 피조물을 포괄하는 복음이 로마서의 메시지임을 거듭 밝힌다.


이 책의 대상은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는 것처럼) 로마서에 대한 책을 한 번도 읽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만큼 이 책은 매우 쉽고 명료하다.


저자는 로마서의 소소한 부분에 집중하기보다,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준다. 로마서가 다루고 있는 핵심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럼에도 주요한 질문을 지나치지 않는다. 로마서를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와 논쟁적 구절을 다룬다. 구원, 이스라엘(유대인), 윤리, 교회. 간명하고 날카롭게 핵심에 접근한다.   


로마서에 관한 많은 책들은  의도와는 무관하게 로마서를 직접 대면하지 못하게 했다. 이제 로마서로 직접 뛰어들어가 보자. 그전에  책의 도움을 받는다면 로마서를 기록하는 바울의 심장을 느낄  있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순히 벌어진 문제를 수습하려고 하거나, 실행할 수 있는 실제적인 해결책을 찾는 대신에, 바울은 먼저 하나님에 관해-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행하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생각했습니다. - P144

분명히 바울은 송영으로 결말을 맺고 있으며, 송영 안에서 문제를 하나님께 되돌려 드립니다. 이는 ‘현재의 위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를 오랫동안 치열하게 고민한 이후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 P144

실제적인 문제들에서 바울은 뒷걸음질 치지 않습니다. 그저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세계 자체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결심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모든 문제를 고민하는 것뿐입니다. - P145

구체적으로 말해서, 바울의 윤리에 관한 우리의 생각은 다소 제한되어 있습니다. - P153

우리는 그의 편지 안에서 전개되는 논리를 잃어버리고 그저 개별적인 질문들에 답을 찾는 일에만 골몰합니다. - P153

만일 우리가 바울의 편지 속에 있는 논리를 따라 간다면, 결국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두고 고민할 최적의 시작점이 바로 예배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 P153

바울에게 있어 예배와 (인간의) 행동의 관계는 명확합니다. - P163

예배를 그만두는 것-바울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도 않고 감사하지도 않았다"고 말한 것을 가리킵니다-은 왜곡된 수많은 행동들의 원인이 됩니다. - P163

그렇다면 비록 따로 서술되진 않지만 그럼에도 당연한 귀결은 곧, ‘하나님을 마땅히 찬송하는 것이, 올바른 행동을 위한 조건-사실상 유일하게 가능한 조건-이다‘라는 것입니다. - P16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핵심은 바울이 가진 구원에 대한 이해가 우주적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죄와 죽음의 권세들로부터 인간을 -그것이 개인이든 혹은 공동체이든- 되찾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강력한 행위와 관련이 있습니다. - P88

바울이 호소하는 그 "권세(힘)"는 흔히 의미하는 (무언가를) 압도하고 파괴하는 힘이 아니며, 또한 인간의 군사력이 선사하는 "충격과 공포"와 같은 것도 아닙니다. - P96

바울에게 있어서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 P128

이스라엘의 존재는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것이고, 하나님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 P128

이스라엘은 그들 자신의 신실함이나 선량함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행위로 인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 P12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경은 분명한 구원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설교는 모인 사람들이 쓰는 말로 그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었다

찬송은 예배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모아 모든 시간과 장소와 하나님 백성을 이어주는 기도와 찬양이 되게 했다.

성찬대와 세례반에서 취하는 행동은 하나님의 은총과 섭리를 실질적이며 모든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것임을 보여주었다.

기도는 인격적인 하나님과의 만남을 만들어냈다.

매주 주일 예배는 혼돈의 물을 나누고 그 물이 명령에 따라 좌우로 갈라져 사람들이 승리를 기뻐하며 그 사이를 지나갈 수 있게 한다.

한 시간 동안 모든 진리는 균형 잡혀 있고 동시대적이며 완전하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확증되고 받아들여진다

많은-아마도 대부분은 아닐 테지만-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구원의 징조와 축복의 연속성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본당 입구에서는 교인들의 죄는 한 주간 목회자의 심방과 상담, 위로와 가르침을 위한 제목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이러한 전환은 갑작스러우며 폭력적이고 어렵다.

본당 입구는 언약 안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 자신의 개인적 삶의 이야기가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와 하나가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목회적 관심을 집중하는 공간이다.

교회에서 선포하는 메시지는 대개 분명하다. 모든 사람을 구원하고,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남자와 여자를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며, 모든 개인의 역사를 구원의 역사라는 줄기에 접붙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자격이 없다고 여기며,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독특한 상황 때문에 자신에게는 일반적인 진리가 적용되지 않다고 생각한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계시 이야기가 모든 사람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이야기임을 알고 있다. 목회자는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구원 역사라는 장엄한 이야기의 한 장, 혹은 적어도 몇 단락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통찰을 제공하고 동기를 부여할 수 있을까?

가난한 이방인 과부 룻의 이야기는 그에 대한 반증이다. 그는 중요하지 않은 이방인이었지만, 완전한 구원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그의 삶이 필수적이다.

룻은 다윗 왕의 증조할머니였다! 룻기는 뿌리를 잃고 비천하고 소외된 한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가 보잘것없지만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따라 그 줄거리가 만들어진 거대한 서사시에 꼭 필요한 한 부분임을 깨닫는 과정을 보여준다.

오순절에 읽도록 정해진 룻기는 분명히 목회적인 문서가 되었다. 오순절의 케리그마적 주제는 시내산에서 받은 언약의 계시다

백성의 삶은 임의적이며 우발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경험의 연속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야기였다. 줄거리와 구조, 목적, 의도가 존재했다. 각 사람의 삶의 모든 세부사항은 더 큰 이야기의 일부이며, 더 큰 이야기는 곧 구원이다.

시내산 사건은 두 기본적인 현실을 결합하는 일종의 회전축이다. 하나는,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에는 내가 포함된다는 것(선택)이며, 따라서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중요하다는 것(언약)이 두 번째이다. 택함을 받았기 때문에 나는 중요하다.

선택은 독특한 정체성을 만들어내며, 언약은 책임 있는 관계를 묘사한다.

선택은 하나님이 나를 위한 계획을 갖고 계신다는 선언이며, 언약은 내가 하는 일들이 어떻게 이 계획에 맞아 들어가는지에 관한 설명이다.

하나님의 행위가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므로 우리 삶은 중요하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결과(consequence, ‘결과’라는 뜻과 ‘중요성’이라는 뜻을 모두 가짐-옮긴이)이며, 그러므로 우리는 중요하다consequential.

우리는 "중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다른 신을 섬기는지 그렇지 않는지가, 우상을 만드는지 그렇지 않는지가, 살인하거나 도둑질하는지 그렇지 않는지 등등이 중요하다.

시내산 계시는 우리가 중요하며 우리가 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이다.

역사가 의미 있는 까닭은, 그 안에 하나님의 의지와 인간의 의지가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시내산은 백성이 순례를 찾아간 특별하고 거룩한 장소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뜻이 명확히 드러나고 그에 대해 사람들이 응답했을 때 그들이 우연히 그곳에 있을 뿐이다. 거기서 결단이 이뤄졌으며, 그러므로 그것은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히브리인들은 세계 최초의 역사가들이었다. 날마다 그들이 있는 곳에서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서 역사하신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그들은 신앙이든 불신앙이든, 죄든 의로움이든, 순종이든 반역이든 자신들이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확실한 것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의지와 인간의 의지 모두가 의미를 지니며, 그 의미가 상호작용을 하고 이야기의 내용이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가서를 유월절 예배의 맥락 안에 자리 잡게 함으로써 만들어진 상관관계는, 유월절에 크게 영향을 받은 기독교 예배 행위인 성만찬과의 관련성으로 발전되었다.

유월절처럼 성만찬은 결정적인 구원의 행위를 기억하고, 의례적 식사를 통해 그 사건을 재현함으로써 사람들의 참여를 통해 하나님의 행위에 믿음이 중요한 일부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드러내며, 완전하고 최종적인 성취를 기대하는 예배 행위다.

역사적 자료라는 환원 불가능한 핵심과 살아 계신 주님의 임재에 대한 믿음, 개인적인 기도를 통한 내적 응답 사이의 상관관계가 유지되는 곳은 바로 성찬대 위이기 때문이다.

유월절의 맥락 속에서 그랬듯이 아가서는 성찬대의 영향력 아래서 새로운 통찰을 계속해서 제공한다.

기도의 형식을 띠는 목회 사역은 구원을 기념하는 예배 행위로부터 친밀함의 욕구에 부응하는 태도를 발전시킨다.

아가서에서 배운 어휘 덕분에, 우리는 엉망이 된 우리 자신의 감정이라는 더러운 렌즈를 통해서가 아니라, 흠을 들춰내는 다른 사람의 비판이라는 얼룩진 창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백성(과 우리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

하나님이, 그리고 그분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누군가가 사랑으로 우리를 부르시는 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우리가 얼마나 아름답게 보일 수 있는지, 우리가 얼마나 기뻐할 수 있는지, 우리가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 우리는 결코 깨닫지 못한다.

기도가 빠른 치료제나 즉각적인 요법이라서가 아니다. 기도는 평생 동안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도는 변죽을 울리는 대신 실제로 한복판에서 시작한다는 이점이 있다

목회자가 한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그 사람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다.

도덕적 자질이나 영적 성숙도와 상관없이 그저 하나님의 특별한 창조물이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다.

기도가 없다면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과 가치가 항상 명백해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목회자 역시 죄로 인해 분명히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차이도, 의심도, 죄책감도 우리 안에 있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불을 끌 수 없다. 그분의 사랑은 우리의 삶 속 깊은 곳에서 불타오를 것이며, 기쁜 경배라는 불꽃으로 타오를 때까지 우리의 습관과 꿈속에 파고들 것이다.

성만찬에서 기원하며 아가서에서 권면하는 목회적 기도의 두 번째 요소는 구속과 화해의 행위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다.

목회자들은 죄의 무더기를 파내어 겹겹이 쌓인 갈등을 조사하고 책임과 죄책감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고고학자가 아니다. 우리는 함께 싸우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무관심에 대한 공격이며 우리의 반역에 대한 승리다.

목회적 기도를 통해 우리는 지치지 않는 그분의 은총과 그분의 백성들 안에서 사랑의 일을 완성하겠다는 확고부동한 결의를 함께 나누고 거기에 동참한다.

기도할 때 목회자는 수동적이거나 초연하지 않고 능동적이며 헌신적이다. 기도할 때 사용하는 성적 열정의 언어는 전인적이며, 친밀한 관계에 대해 거의 폭력에 가까운 강렬함을 보여준다.

성만찬에 근거한 목회적 기도의 세 번째 요소는 강한 기대의 마음("그가 오실 때까지"[고전 11:26])이다.

아가서는, 믿음으로 이미 우리 주님을 영접했으며 따라서 그분의 성령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들을 위해 소망 가운데 기도할 수 있는 원동력과 이미지를 제공한다.

하나님의 성령(성경의 언어에서 "바람"과 "성령"은 같은 말이다)에 의해 움직여지기 전까지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나님이 휘저어 움직이게 하시기 전까지 사랑은 숨어 있을 뿐이다. 하나님이 일깨워주시고 그에 대해 순종으로 반응하기 전까지 덕은 잠자고 있을 뿐이다.

우리 안에서 기도하시는 성령은,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올 때와 거의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교회를 나서는 것을 보면서 회의적인 태도를 갖는 사람들에 대한 선제공격이다.

사랑과 믿음의 그 놀라운 친밀함은 그것에 참여하는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다

기도의 언어는 언제나 어느 정도는 급박하다. 지금이 바로 그날이다.

목회자들은 목소리를 높여 수사적으로 선언함으로써가 아니라 흥분과 급박함이 가득한 성경적 계시에 따라 기도하는 일에 몰두함으로써 이 메시지를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다.

기도는, 거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초대와 약속의 힘을 깨닫고 그것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기에 가장 적합한 목회 사역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