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손을 맞잡았다가도 한쪽에서 손을 놓아버리면 쉽게 끝나는 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다. 어려운 만큼 가볍고, 소중한 만큼 아무것도 아닌 게 되기도 한다. - P13

그러니 누군가를 곁에 두려 붙잡지 말고 내게 좋은 사람에게만 좋은 사람이면 된다. - P13

무엇보다 먼저 나 스스로에게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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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많은 것들 중에서도 목회 사역은 고통을 가장 인격적이며 친밀한 방식으로 대하겠다는 결단이다.

목회 사역에서는 고통을 최소화하거나 피할 방법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고통을 설명할 방법을 찾는 데 별로 관심이 없다.

고통을 치유할 방법을 찾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목회 사역에서는 고통에 참여한다

그것은 고통의 경험 속으로 뛰어드는 의식적이며 의도적인 행위다

그런 결단은 목회 사역을 만들어낸 성경에서 기원하며 성경 안에서 그 온전한 모습을 유지한다.

성경 계시에서는 고통을 설명하지도 않으며 제거하지도 않는다.

대신 하나님이 고통당하는 인간의 삶 속으로 들어오셔서 고통을 받아들이고 나누시는 것을 보여준다.

고통은 거기에 있으며, 고통당하는 이가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시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방식에 대한 이해로부터 그 자체에 대한 정의를 발견하고 그 지침을 얻는 목회 사역은 성경의 기록을 통해 하나님이 고통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시는지를 대단히 분명히 인식한다.

더 나아가 그에 대한 인식을 고통에 대한 목회적 반응의 방향성과 그에 대한 관점으로 삼고, 목회 사역을 고통의 경험을 나누는 일로 이해한다.

인간으로서 고통에 참여하기가 어렵다는 점과 고통을 기피하라는 문화적 압력에 직면해 고통에 대해 성경적, 목회적 반응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원천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자양분을 공급받아야 한다. 뚜렷한 입장을 견지하고 활기찬 반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성경으로부터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

예레미야애가는 고통에 참여하는 사역에 특히나 적합한 문서다.

이스라엘은 해마다 예배 행위-아빕월 제9일에 행하는 금식-를 통해 예루살렘의 함락을 기억함으로써 공동체의 삶 속에서 이 사건을 계속해서 새롭게 경험했다.

고통을 경험하는 사람은 그 경험을 하나님의 거부로 잘못 해석하여, 하나님이 죄를 미워하기 때문에 죄인도 미워한다고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목회 사역의 책무는, 절대로 죄책감이라는 인간적 현실을 피하거나 심판이라는 신적 현실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이다

고통 가운데서 애가는 그분의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주의를 집중하며, 그렇게 할 때 심판이 비인격적이지도 않고, 신경증 환자의 죄책감도 아니며, 그저 일반적인 불운도 아님을 깨닫게 해준다

고통은 긍휼에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애가에서는 상처를 입히고 상처를 싸매시는 하나님, 십자가와 부활의 하나님과 구원의 관계를 맺도록 돕는 목회적 공감을 형성한다.

그런 결단은 목회 사역을 만들어낸 성경에서 기원하며 성경 안에서 그 온전한 모습을 유지한다.

성경 계시에서는 고통을 설명하지도 않으며 제거하지도 않는다.

대신 하나님이 고통당하는 인간의 삶 속으로 들어오셔서 고통을 받아들이고 나누시는 것을 보여준다.

고통은 거기에 있으며, 고통당하는 이가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시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방식에 대한 이해로부터 그 자체에 대한 정의를 발견하고 그 지침을 얻는 목회 사역은 성경의 기록을 통해 하나님이 고통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시는지를 대단히 분명히 인식한다.

더 나아가 그에 대한 인식을 고통에 대한 목회적 반응의 방향성과 그에 대한 관점으로 삼고, 목회 사역을 고통의 경험을 나누는 일로 이해한다.

인간으로서 고통에 참여하기가 어렵다는 점과 고통을 기피하라는 문화적 압력에 직면해 고통에 대해 성경적, 목회적 반응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원천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자양분을 공급받아야 한다. 뚜렷한 입장을 견지하고 활기찬 반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성경으로부터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

예레미야애가는 고통에 참여하는 사역에 특히나 적합한 문서다.

이스라엘은 해마다 예배 행위-아빕월 제9일에 행하는 금식-를 통해 예루살렘의 함락을 기억함으로써 공동체의 삶 속에서 이 사건을 계속해서 새롭게 경험했다.

고통을 경험하는 사람은 그 경험을 하나님의 거부로 잘못 해석하여, 하나님이 죄를 미워하기 때문에 죄인도 미워한다고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목회 사역의 책무는, 절대로 죄책감이라는 인간적 현실을 피하거나 심판이라는 신적 현실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이다

고통 가운데서 애가는 그분의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주의를 집중하며, 그렇게 할 때 심판이 비인격적이지도 않고, 신경증 환자의 죄책감도 아니며, 그저 일반적인 불운도 아님을 깨닫게 해준다

고통은 긍휼에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애가에서는 상처를 입히고 상처를 싸매시는 하나님, 십자가와 부활의 하나님과 구원의 관계를 맺도록 돕는 목회적 공감을 형성한다.

애가의 형식은 그 기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즉, 이 책의 문학적 형식은 그 내용만큼이나 중요하다. 애가는 각 행의 첫 글자가 히브리 알파벳 순서로 되어 있는 답관체踏冠體, acrostic로 구성된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대하는 가장 흔한 방식 중 하나는, 그것을 가벼이 여기며 그럴싸하게 그것을 설명해버리고 지름길을 통해 그것을 지나쳐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너무나도 고통스럽기 때문에 우리는 서둘러 반대쪽에 이르려고 한다. 애가는 그런 태도를 확실히 막아주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말씀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특히나 그 감정이 고통처럼 아픔과 당혹감으로 가득하다면, 남자와 여자들이 느끼는 모든 것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답관체는 고통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는 구조다.

끝없는 인내심을 가지고 고통에 귀를 기울이고 주의를 집중하는 태도는, 애가가 답관체 구조의 시라는 사실뿐만 아니라 답관체 형식을 반복한다는 사실을 통해 강조된다.

애가에서는 그 이야기를 다시, 다시, 다시, 다시, 다시-다섯 번-한다.

첫 시는 바깥에서 볼 때 시온의 고통이 어떤 모습인지를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시는 안으로부터 그 고통이 어떻게 느껴지는지를 울부짖어 이야기함으로써 마무리된다.

이런 울부짖음은 연민의 마음으로 위로하는 태도에서 고통을 공감하는 태도로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2장에서는 고통의 범위를 하나님의 진노의 영역으로 확장시킨다.

분노보다 더 불쾌하며 더 대면하기 어려운 감정은 없다

답관체 형식은 주의를 기울이는 자세를 유지하게 해준다. 생각할 수 없던 것도 하나씩 나열하게 해준다.

감추거나 피하거나 에둘러 말하고자 하는 욕망-이 모든 것이 거부당하며, 하나님의 진노와 그 결과로 파괴된 도시를 대면해야만 한다.

3장은 세 행으로 이뤄진 연의 각 행이 같은 글자로 시작하게 함으로써 답관체를 더욱 강화시킨다.

더 이상 바깥에서 방관자처럼 애도하지 않는다. 이제 안으로부터 애도가 시작된다.

답관체라는 장치는 고통을 계속해서 탐구하게 하지만, 이제는 고통을 멀리에서 바라보게 한다.

고통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것으로부터 회복되기 위한 첫 단계다. 비유는 고통을 손잡이를 달아 그것을 쥐고 하나님께 건네드릴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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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당신에게
변지영 지음, 윤한수 사진 / 카시오페아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무기력과 우울의 원인은 다양할 것이다.

저자는 그 원인을 목적론적 사고라고 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많은 사람들은 

수고에 따른 보상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더욱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보는 것.

그것이 철학이 가진 힘이다.



이 책은 스토아 철학을 통해 

본질적 물음에 답하려고 한다.



특히 스토아학파의 후기를 이끈

세네카, 에픽테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주목한다. 



짧은 문장들 가운데 지혜를 발견한다.

그러한 지혜는 우리를 넓고 깊게 한다.



지혜자들은 말한다.

많은 문장의 핵심은 이것이 아닐까?



타인의 언행에 자신을 맡기지 말고,

상황에 잠식되지 말자.


#어디로가야할지모르는당신에게

#변지영

#카시오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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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참으로 이상하다.
동시대에, 같이 살아가는 자에게는
결코 칭찬하지 않으려 들면서
오래전에 죽어, 결코 볼 수 없는 자에 대해서는
대단한 가치를 부여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P33

누군가가 당신에 대해 험담을 하고 다닌다고
알려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내용에 대해 변명하지 말고 다만 이렇게 답하라.
"제 다른 잘못들은 모르고 있군요.
그래서 그것만 얘기하고 다니는군요."
-에픽테토스 - P70

바라는 것을 멈출 때
화내는 것도 멈출 수 있다.
-세네카 - P116

화는 당하는 사람보다
낸 사람에게 더 큰 피해를 준다.
-세네카 - P117

내게 피해를 준 자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는
그를 닮지 않는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P128

행복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의 뜻대로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걱정을 그만두는 것이다.
-에픽테토스 - P133

상황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상황은 사람이 자신의 본성들 드러내게 할 뿐이다.
-에픽테토스 - P169

자신의 불행을 다른 사람의 탓이라고 여기는 것은,
공부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자신의 불행을 자기 탓으로 돌리는 사람이라면
공부가 시작된 것이다.
불행에 대해 자기 자신도, 그 누구도 탓하지 않는다면
이 사람의 공부는 완성된 것이다.
-에픽테토스 - P176

스스로 자신을 괴롭히지 마라.
모든 것을 단순화하라.
누군가가 잘못한다면
그 자신에게 해가 가는 것이므로
신경 쓰지 마라.
당신은 그저 평화롭게 가던 길을 가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P190

자만하지 말고 받아들여라.
싸우지 말고 놓아버려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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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어
김유은 지음 / 좋은북스 / 201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책장에 가득 꽂혀 있는 책들을 읽을 자신이 없다.

읽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해,

위로의 글을 들춘다.



이러한 문장들조차 없다면,

무너질 것 같아서...



'힘내라!'는 말보다,

'괜찮아'라는 말을 듣고 싶은 날이 있다..



'울어도 괜찮아'

'미워해도 괜찮아'

'화나는 게 당연해'



이해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언행들 앞에,

내 존재는 찢긴다.



우연히 짚어 든 책 한 권이

참 힘이 된다. 위로가 된다.



저자는 서투른 해결보다

진심으로 공감하며 위로한다.



새롭게 관점을 조정하여,

유쾌하게 현실을 바라보게 한다.



덕분에 다시 일어서 본다.

다시 한 발자국 걸어가 본다.



#모든사람에게좋은사람일필요는없어

#김유은

#좋은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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