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기분을 살피느라 내 기분이 계속 나빠지는 것을 돌보지 않았다. 남의 기분을 살피는 것이 피곤해서 관계를 맺을 때 지나치게 선을 그었다. - P17

넘어지고 일어나고 다시 넘어지고 또 일어났다. 넘어질 수 있는 권리는 소중한 것이었다. 세상에 나아가는 과정은 험난했지만 크게 생채기가 날수록 배우는 것이 많았다. - P19

한번 관계가 시작되었다고 무조건 오래오래 함께 해야 좋은 인연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맞지 않는 사람과는 헤어져도 괜찮다는 것을, 끌려 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P26

당당하고 기쁘게 도움 받기. 이것도 상대방을 기쁘게 하는 방법 중 하나라는 사실을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 P77

어쩌면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부탁을 하거나 싫다고 말하지 못한 이유는, 내가 원하는 바를 나 자신이 몰랐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 P92

내가 스스로 움츠러들면 상대는 안다. 내가 아무렇지도 않으면 상대도 그냥 그렇게 받아들인다. - P157

다른 사람이 호의를 베풀 만한 공간을 내게 마련해 두자. - P164

다른 사람의 도움에 너무 미안해하거나 지나치게 고마워하지도 말자. - P164

어색하게 다른 사람의 호의를 거절하는 것보다 고맙게,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이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다는 것을 기억하자. - P164

상대방의 화가, 내 존재에 대한 부정은 아니다. "당신은 화가 났군요"하고 마음을 읽어 주고 빈 배가 되어 흘려 보내면, 화는 마음에 들어오지 않고 그대로 흘러가 버린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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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직업 - 독자, 저자, 그리고 편집자의 삶 마음산책 직업 시리즈
이은혜 지음 / 마음산책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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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둘러싸고 여러 관계가 형성된다.

책을 사랑하고 가까이 두는 사람들은 저마다 그 이유가 다양할 것이다.

무엇보다 저자와 독자, 편집자는 책과 떨어질 수 없는 부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이 세 영역을 절묘하게 버무려낸다.

우선은 편집자의 관점이다. 그녀의 일상을 통해 편집자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들의 삶과 치열함이 드러난다. 그들의 고충을 직접 듣게 된다.




더 나아가 독서가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인문출판사의 편집자로 그녀는 15년여간이나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섭렵하고 편집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깊이 있고, 무거운 문헌들에 감탄을 하게 된다.




또한 저자와 독자 사이에 다리를 놓는 편집자로서,

혹은 최초의 독자로서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도 적절히 배치되어 있다.

이는 글을 쓰는 분들에게 매우 유용한 지점이다.




더불어 '글항아리'에서 출간된 책들을 탐독하신 분이라면,

출간하기까지의 여러 과정이 담겨있기에 매우 흥미진진할 것 같다.

편집자의 입이 아니라면 어디서도 보지 못할 출간 뒷 이야기다.




책을 많이 사두고, 읽지 못한 많은 사람들에게,

저자의 맺음말은 큰 위로가 된다.

독서의 기묘한 힘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참 소중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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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3-30 1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맺음말이 ....
뭐예요
책 많이 사두고, 읽지 못한 많은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되는... 그 1인으로서 궁금
제가 맥락을 놓친건가요?
궁금해요. ^^

모찌모찌 2021-03-30 10:44   좋아요 1 | URL
아.. ㅎ 제 글을 오히려 꼼꼼히 읽으신거네요 ㅎ
제 글이 서평을 가장한 인상평이라,, 책 내용은 많이 없죠?

제일 마지막에 맺음말이 있는데,
그 챕터 제목이 ‘책, 얼마나 사고 얼마나 읽어야 할까‘예요.

저자는 빌려서 많이 읽는 것보다는 사두고 안 읽는 것이 더 낫다고해요 ㅋ
그러면서 왜 그런지 말씀을 해주시는...ㅋ

아무래도 편집자라서, 이후에 많은 도움을 얻을 때가 있다고하네요.
그러면서 책을 보는 눈썰미를 칭찬해준다고해요 ㅋ

많은 애서가들이 이렇지 않을까 생각해봤어요 ㅎ
읽지 못하고 쌓아둔 책이 한가득.. 저도 그렇구요^^

그레이스 2021-03-30 10:49   좋아요 1 | URL
저랑 생각이 비슷하네요^^
저는 출판계랑 1도 관계없는데...
한편, 위로가 되네요.^^

모찌모찌 2021-03-30 11:00   좋아요 0 | URL
네^^ ㅋ 저도 출판계랑 전혀 상관없는데, 주로 사서 쟁여둬요 ㅎ 이렇게 좋은 책을 몇년 전에 사뒀다니하면서 위로할 때가 많아요^^ ㅋ
 

소설만 읽어온 독서 이력은 하나만 깊이 있게 파고들었다기보다 독서 패턴이 단조롭다는 인상을 줄 우려도 있다(사실 책 중의 꽃은 소설이기도 해서 그들이 즐거운 유혹에 빠져드는 것이 이해는 된다). - P108

정반대의 부류도 있다. 문학을 아예 읽지 않는 사람들이다. 간혹 문학을 하나도 안 읽었다고 당당히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 또한 곤란하다. - P108

문학은 학문의 보편화되고 체계화된 틀에서 빠져나간 삶의 결들을 보아내는,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 P108

특히 개인적인 경험을 언어로 표현하려면 보편성을 띠어야 한다. - P164

즉 작가는 자기만의 개별성을 지우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면서 자신의 고뇌를 여과해 명확한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데, 가령 감정적인 울분과 통곡이 담긴 내용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그대로 드러나서는 곤란하다.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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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헤르만 바빙크의 설교론 - 설교는 어떻게 사람을 변화시키는가 헤르만 바빙크의 교회를 위한 신학 3
헤르만 바빙크 지음, 제임스 에글린턴 엮음, 신호섭 옮김 / 다함(도서출판)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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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하는 실체와 절대적 진리를 

우리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실상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영적인 실재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가?



C. S 루이스(Clive Staples Lewis, 1898~1963)는 양심과 도덕률을 통한 절대선을 말하고,

톰 라이트(Nicholas Thomas Wright, 1948~)는 진리, 영성, 관계, 아름다움을 말하지만.



(부록의 언급처럼) 결국 우리의 언어가 우리를 형성에 한다면,

말씀되신 그리스도는 말씀을 통해 더욱 분명히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설교는 하늘과 세상을 이어주는

또 하나의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바빙크(Herman Bavinck, 1854~1921)의 강의와 설교가 수록되어 있다.

그가 1889년 11월 깜쁜 산학교에서 행한 '웅변술'에 대한 강의가 주된 내용이다.  



또한 설교노트 없이 했던 그의 습관으로 인해, 

수록되어 있는 설교는 직접 볼 수 있는 유일한 설교문이다. 



개혁주의 신학의 거대한 산이라 불리는 바빙크의 신학을

실천적이며 목회적으로 볼 수 있는 귀한 기회다.



특유의 방대하고도 예리한 그의 지성을 유감없이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슴 뜨겁게 우리를 도전하는 그의 열정도 느끼게 된다.



설교자라는 중차대한 임무를 책임감 있게,

또한 열정적이면서도 즐겁게 감당하기 원하는 모든 목회자들의 필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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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의 비밀을 펼치는 사역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설교는 연설이 되었고 성경 본문은 그저 낚싯바늘과 같을 뿐입니다

종교가 사람들을 지배하지 못합니다. 도리어 사람들이 종교를 지배합니다.

교회 건물들이 우리들의 건물보다 훨씬 더 좋은 어떤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교회 건물은 안락하고(gezellig), 친구를 사귀기에 좋으며, 언제든 환영하고, 겨울에도 따뜻한 곳이 되었지만, 강단은 없습니다.

상실되었습니다. 교회는 그저 종교적인 사회에 지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전적으로 신앙과 불신앙 밖의 문제들만 다루고 있습니다. 이 전투에서 근본적이며 악의적인 [요소]는 결여되어 있습니다.

것입니다. 기독교적 [접근법]은 어느 정도 이원론적인 방식으로(신학은 대학에서 가르치지 않고 과학은 믿음과 분리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의 다른 모든 영역들과 나란히 존재하는 어떤 것입니다.

의식적인 영적 삶의 특권이라는 것은 오직 자아 자체만 접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겠습니까?(고전 2:11)

자아라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는 닫혀 있는 세계입니다.

오직 하나님 외에 그 누구도 사람의 의지의 허락 없이 또는 그에 반하여 [자아] 의식으로 진입할 수 없습니다(시 139:2)

자기 자신을 다른 이에게 알리며 그의 내밀하고 감추어진 삶을 그들에게 나타내기 위해서 인간이란 존재는 내밀한 중심이 필요합니다

영혼의 내밀한 삶의 계시는 다른 상징을 통해 다른 방식으로 발생할 수 있습니다.

언어는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가득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많은 종류의 언어가 있다는 것은 많은 종류의 상징과 기호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김새와 몸짓의 언어, 근육과 힘줄의 움직임, 종종 전적으로 무작위로 움직이는 신체의 부분들, 영혼의 내면적 삶을 이끌고 그것을 보여주는 정서와 욕구의 언어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직접 우리의 귀에 들려서 명료하게 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는 소리의 언어가 있습니다.

협의적 의미에서 언어는 분명히 발음된 소리를 통한 생각의 자유로운 표현입니다.

협의적 의미에서 언어는 분명히 발음된 소리를 통한 생각의 자유로운 표현입니다.

언어는 더 높은 지식의 능력과 이성적이고 이지적인 인간의 본성을 전제합니다.

언어는 인간 정신의 모든 종류의 다양한 활동들입니다.

언어는 감각과 감명을 받고 이것들을 통해 영향을 받는 능력을 전제합니다.

언어는 우리의 표현을 보존하는 기억과 우리의 생각을 현실화시키는 상상력, 그리고 우리가 추상적인 개념을 형성하는 이해와 그 밖에 많은 것을 전제합니다.

사유(이성)와 언어에는 밀접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고상한 진리는 외부적으로 공유될 수 있으며 반드시 말을 통해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람은 먼저 말을 듣고 그 후에 생각을 받게 됩니다.

언어는 진리의 전달자이며, 인류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전통입니다

단어가 없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듯이 개념이 없는 단어 역시 존재하지 않습니다.

언어가 없이 생각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논리적으로 단어는 생각에 관한 것이고 언어는 생각하기 이전에 옵니다. 언어는 인간을 사유하는 존재로 만드는 주요한 중심 요소였습니다.

말하는 능력은 실제로 선천적이지만 언어는 그렇지 않습니다

심지어 단어는 완전히 잊어버릴 수도 있지만 생각은 보존되고 또 다른 상징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단어가 생각을 지지하고 명확하게 한다는 것과 사람은 그가 더 잘 아는 만큼 더 잘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이 그가 모르는 것을 말할 수는 없지만, 말로 표현할 수는 없어도 무언가를 알 수는 있다고 정확하게 말합니다.

우리의 생각하기는 종종 문제의 뒤에 남아 있고, 우리의 말하기는 우리의 생각보다 여전히 더 뒤에 남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하기와 말하기 사이의 자연스러운 연결은 의심의 여지 없이 언어가 인위적으로 고안되어 약속과 계약에 의해 존재한다는 주장을 배격합니다.

언어 그 자체는 임의성이나 협약 또는 계약의 산물이 아닙니다.

언어는 마음에서 우러난 자유로운 사고의 표현입니다.

언어는 인류의 고귀성의 표식이며 [인간] 이성의 증거이자 인장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과 단어의 관계는 거리가 너무 가깝지 않아서 특정한 소리가 물리적으로 요구되며 특정한 생각의 표현만 가능하게 됩니다.

언어는 계약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고 인간 의지의 산물도 아닙니다.

언어는 예술가의 영혼에서 태어나는 예술 작품처럼 탄생하는 것입니다

언어가 의존하는 다양한 종류의 생리학적 조건이 있지만 그럼에도 언어 그 자체는 자연의 법과는 다른 법의 적용을 받습니다.

언어는 그 자체의 본성과 특징을 지닙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언어를 통해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형성하기 위해 이미 인간이 된 존재이어야만 합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언어에 관심이 있습니다. 어쨌든 생각하는 일은 논리적 순서로 볼 때 말하기 이전에 옵니다.

종교와 경건이 절대적 시작을 지시하는 것처럼 이런 방식으로 자연 역시 언어를 가리킵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심지어 단 1초의 시간이라도 언어 없이 생각할 수 없습니다. 언어는 이미 인간에게 전제되어 있습니다

언어의 기원적 뿌리는 모두 다 관념이며 생각과 대화와 대답하는 일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언어는 자연[fusij]이 아닌 말[logw|]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궁극적으로 언어는 정신과 물질과 영혼과 몸을, 주체와 객체를 모두 창조하신 그리고 생각과 언어, 개념과 단어와 그 연관성 모두를 만드신 그 로고스(말씀) 안에서만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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