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면 충분하다 - 컨셉부터 네이밍, 기발한 카피에서 꽂히는 멘트까지
장문정 지음 / 쌤앤파커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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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와 말하기에서 중요한 것은,

'핵심적 내용이 전달되었는가'하는 것이다.




글과 말의 목적과 의도에 부합하는

전달 방식과 내용에 대한 고민이다.




쇼호스트, 마케팅 컨설팅 등을 하면서,

몸으로 직접 경험한 저자의 마케팅과 세일즈 언어.




마음을 열게 하는 것보다, 지갑을 열게 하는 것이 더욱 힘들 텐데,

저자는 오랜 시간 마케팅 언어를 통해 소비자를 사로잡았다.




인간의 다양한 심리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행동할 수 있는 결정적 언어를 포착한다.




실제적인 기술과 구체적인 사례들,

챕터를 마무리하면서는 핵심요약도 친절히 해둔다.




글과 말의 핵심적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싶은 분들에게

여러 통찰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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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은 올바로 사용하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 지식이 있는 사람은 단지 정보나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이해력이 있는 사람은 그 지식을 꺼내어 마음껏 쓸 줄 안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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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릇 (벚꽃 에디션) - 비울수록 사람을 더 채우는
김윤나 지음 / 카시오페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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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인격이 드러나는 많은 도구들.

표정과 행동. 무엇보다 말.




말은 많은 것을 보여준다.

현재의 감정, 생각. 그 사람의 수준까지.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저자는 보다 깊고 단단한 말그릇을 만들라고 한다.




말그릇은 말을 담아낼 수 있는 품성이며 내면이다.

말그릇이 큰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듣고 받아들인다.




말하기의 실력이나 기술이 도움이 되겠지만,

존재의 변화가 동반되어야만 말이 풍기는 향기까지 달라질 수 있다.




많이 주의하고 집중하여 말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품성이 점점 넉넉해진다면 말도 더욱 따뜻해진다.




그렇기에 이 책은 의미 있다. 

말하기 기술 이전에 내면에 집중하고, 듣기를 우선한다. 




존재와 인격, 품성을 오롯이 담아내는 것이 말이기에,

말 이전에 우리가 다루어야 할 것을 고민하게 한다.




말 이전에 사람이다. 

말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공간을 비우는 것.




말이 빛나게 하는 것이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말하기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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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말 한마디를 바꾸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 P8

‘말‘이란 것은 기술이 아니라 매일매일 쌓아올려진 습관에 가깝기 때문이다. - P8

살면서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들이 뒤섞이고 숙성돼서 그 사람만의 독특하고 일관된 방식으로 나오는 게 바로 말이다. - P8

그렇게 만들어진 언어는 그 사람의 내면과 닮아 있다. - P8

그렇기 때문에 무작정 말 잘하는 ‘기술‘만 익혀서는 자신만의 새로운 말 습관을 기를 수 없다. - P8

말은 한 사람의 인격이자 됨됨이라고 한다. 말을 들으면 그 말이 탄생한 곳, 말이 살아온 역사, 말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다. - P31

말은 한 사람이 가꾸어 온 내면의 깊이를 드러내기 때문에 말 그릇을 키우기 위해서는 먼저 내면이 성장해야 한다. - P31

분명하게 말해야 할 상황에서는 물러서지 않는다. 정갈하고 정확하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 P33

딱 필요한 순간에, 꽉 찬 말이 나온다. 그것은 세련된 말과는 다르다. 기교가 아니라 기세에 가깝다. - P33

약간 촌스러울지 몰라도 결코 경박하지 않고, 화려하지 않아도 안정되어 있다. 그러니 자연스레 귀를 기울이게 된다. ‘끌리는 말‘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 P33

말 그릇을 다듬은 사람은 관계의 깊이가 달라진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이전보다 편안해지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하고 공감하는 역할도 기꺼이 해내게 된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꽤 괜찮은 사람으로 여기게 된다. - P53

말 그릇을 향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느 순간 단단한 자존감이 되어 자신에게 선물처럼 되돌아올 것이다. - P53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잘 모른다. 그것이 속상함인지,당황스러움인지, 슬픔인지, 놀람인지. 그 정체를 배운 적이 없다. 그저 낯선 상황,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판단이 들면 반사적으로 아무 감정이나 골라잡아 내지른다. - P63

속상함, 상실감, 수치심과 같은 부담스러운 감정들도 다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에 걸맞게 대우해주어야 한다. 그것으로부터 도망가거나 대항해서는 안 된다. ‘그래, 난 지금 슬픈 거야.‘라고 감정 자체를 인정하고 ‘내 얘기를 들어줘.‘하면서 공감의 방식으로 감정을 해소해 나가야 한다. - P65

‘감정‘은 당신을 해치려고 온 도둑이 아니라 도와주기 위해 찾아온 친구다. 당신의 말이 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길잡이다. 그러니 감정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가를 제대로 보아야 제대로 말할 수 있게 된다. - P70

어떤 사람은 지나가는 말에도 열을 내고, 또 누군가는 꽤 기분 나쁜 말에도 동요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에게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감당할 만한 일‘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개인의 자존감과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 P83

상대를 ‘적‘으로 만들고 싶다면 나의 공식만 고집하면 된다. - P124

반대로 성숙한 대화를 하고 싶다면 사람마다 가진 공식의 차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 P124

차이를 ‘문제‘로 바라보지 않고 같이 풀어야 할 ‘과제‘로 바라볼 때, 당신의 말 그릇은 흔들리지 않는다. - P124

자신의 감정과 공식과 습관에 대해 질문하고 생각하는 연습을 거쳐야만 진정한 소통의 길이 열리는 법이다. - P150

말을 떠받치고 있는 내면의 골격이 튼튼해야 다양한 감정을 받아들이고 비로소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 아닌, 내가 주도하는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 P150

자신의 말 그릇이 단단해지고 난 후에야 비로소 ‘제대로 듣고 말하는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 P150

듣는 힘이 있는 사람들은 상대가 표현하는 말과 차마 드러내지 못한 말을 모두 듣기 위해 노력하지만, 말하는 힘만 센 사람들은 친구의 이야기를 소재 삼아 스스로 주인공이 되려 한다. 조언, 위로, 함게 욕하기 등이 친구를 위한 편들기 같지만 끝까지 들어보면 자신을 드러내는 말에 가까울 때가 많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친구를 밀치고 대화를 점령하고 만다. - P174

말에 책임을 진다는 것도 관계에서 내가 무엇을 더 할 수 있고, 덜 해야 하는지를 판단하고 실행할 수 있다는 의미다. - P283

사람들은 대화를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의 문제로 간주한다. 상대가 유난히 까다로운 사람이고, 사이코적 기질이 다분해서 말이 안 통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 P285

그러나 대화는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능력의 문제다. - P285

내가 넉넉한 말 그릇을 지녔다면 대화하기에 어려운 상대방을 만나도 대화를 지속할 수 있다. - P285

대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실제로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 -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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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
아타나시우스 지음, 피넬로피 로슨.오현미 옮김 / 죠이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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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에는 고통이 뒤따른다. 서로의 상황이나 가치관이 비슷하다면, 어느 정도의 소통은 일어난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 하더라도, 서로의 감정과 생각을 이해하는 일에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동반된다. 혹여나 서로의 성향이 잘 맞지 않으면,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소통이 잘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 관계가 조물주와 피조물이라면 어떻겠는가? 직접적인 소통은 불가능하다. 초월하는 실체와 직접적인 관계를 갖는 것은 어렵다. 영적 실재와 어떻게 대화할 수 있겠는가? 



본래 인간은 영적 존재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했다. 그렇기에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장 잘 반영한 존재였다.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인간은 비참한 상태가 되었다. 창조 세계인 만물을 통해 하나님이 드러나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선지자들을 통해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음에도 우리는 듣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은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썩어져 가는 것들로 달려갔다.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인간은 비참한 상태가 되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셨다. 그분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다. 오직 그분만이 썩는 것을 썩지 않는 것으로 만드실 수 있다.      



말씀이신 그분은 인간의 비참함을 보셨다. 그분은 범죄로 인해 형벌받는 인간의 고통을 모른 체하실 수 없으셨다. 말씀이신 하나님께서는 인간과의 소통을 위해 고통을 친히 담당하셨다. 그분은 저주의 상징인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모든 저주를 끊어내어 주셨다.     



인간의 죄로 인해 가로막혔던 하나님과의 소통이 그리스도를 통해 회복되었다. 죽음의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인간은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하여 담대함을 얻게 되었다. 이제 더는 죽음은 우리를 옭아맬 수 없다.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는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를 통해 이를 설명한다. 그는 당시의 잘못된 견해들을 과감하게 배척하고,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왜 인간이 되셔야만 했는지를 훌륭하게 논증한다.



그는 만물의 창조와 인간의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가 성육신을 논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비참함과 인간이 처한 곤경이야말로 성육신의 결정적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시종일관 진지하면서도 날카롭다. 그러면서도 최대한 쉽게 설명하기 위한 노력이 곳곳에 보인다. 또한 핵심적 사항을 요약하고 반복하며 이해를 돕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 부활은 복음의 핵심이다. 핵심적인 복음의 내용이 짧은 이 책에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다. 베드로 사도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살아 있는 소망을 변호할 말을 준비하라 했다(벧전 3:15).



오랫동안 여러 상황에서도 굳건하게 살아 남아 우리에게 살아 있는 복음을 전해 주는 책을 고전이라 한다면. 이 책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구비하여 읽고 또 읽어야 할 책이다.



더하여 C. S 루이스의 서문은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아름다운 외침이다. 아타나시우스의 글과 C.S 루이스의 서문을 동시에 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최고의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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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3-31 17: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S. Lewis 는 서문을 어렵게 쓰기로 유명한데, 자신의 저서가 아닌 책은 그렇지 않나봐요.
C.S Lewis 의 이름이 반가워서...^^

모찌모찌 2021-03-31 17:23   좋아요 1 | URL
아 그런가요?^^ 루이스 책 읽은지 넘 오래되서 서문이 어땠는지 기억이 안 나네요 ㅎㅎㅎ 암튼 이 책 서문은 참 좋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