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자리는 교탁이 아니라 아이들 곁이었다. 수업에서 속도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수업은 진도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맞춰져 있었다. 수업에는 딴짓하는 아이도, 소외되는 아이도 없다. 이 정도면 이상적인 수업이 아닌가.
"호스피스 생활은 환자와 가족이 마음의 상처가 남지 않도록 정리하고,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는 소중한 시간이에요. 이별 앞에 가족이 화해하고 사랑을 나누는 모습은 호스피스의 큰 보람이지요. 남은 삶이 얼마나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분노로 하루하루를 채워 가는 것이 부질없음을 주지시키고, ‘비관’을 ‘긍정’으로 바꿀 수 있도록 끊임없이 얘기합니다."
난민은 인종, 종교, 정치적 이유 등으로 인한 박해를 피해 온 사람들이다. 우리나라는 1992년 난민협약에 가입했다. 고시합격보다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난민 인정에는 야박하고 인색하다. 2001년 우리나라 첫 난민 인정자가 된 에티오피아 출신 데구는 차별과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다른 나라로 떠나갔다고 한다.
그 진동과 굉음은 처음 찾는 이에게는 공포였다. 막장의 노동, 막장에서의 삶을 경험하지 못한 이들이 ‘인생의 막장’이니, ‘막장 드라마’니 하며 부정적 의미를 붙여 지껄여 대는 것에 대한 경고일지도 모를 일이다. ‘막장은 새로 시작하는 곳’이라는 외침 같기도 했다.
카메라는 내 편견을 드러내고 동시에 그것을 깨기 위한 도구였다. 무엇이든 그 실체를 또렷이 바라봐야 걷어 내는 일도 가능한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