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고통에 사로잡힌 사람은 결코 고통을 해결하는 일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말을 하는 순간순간마다 자신의 고통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서 또 다른 고통이 양산되는 것을 목도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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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실존적 측면을 이해하는 것과 그것을 개인화하는 것의 차이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나만 겪는 게 아니고 그것이 사회구조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고통을 개인화하는 것을 넘어서서 고통의 사회적 측면을 발견하고 해결을 도모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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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사람을 실존적 존재로 만든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고통은 사람이 실존적 존재가 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더욱더 실존적 위기의 상황으로 몰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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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기에 인간은 안팎으로 누군가와 공동으로 거주하는 공통의 공간을 필요로 한다. 바깥에서의 공통 공간이 세계라면, 안에서의 공통 공간은 타자로서의 자기 자신과 함께 머무는 내면이다. 그런데 이 ‘공동‘이 붕괴할 때, 복수성의 존재인 인간은 끔찍한 실존적 죽음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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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라는 철학자는 이를 인간 존재의 근원적 성격인 ‘복수성plurality‘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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