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곁을 지키는 이에게 곁이 있을 때, 그 곁을 지키는 이는 이 기약 없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 관건은 고통의 곁, 그 곁에 곁을 구축하는 것이다.
고통의 곁에는 말하고 듣는 힘이 남아 있다. 그렇기에 고통의 곁과 그 곁 사이에서는 이야기가 이어지고 만들어진다. 곁에 서 있는 사람의 말에 다른 사람의 말이 보태지고, 그 말에 또 곁에 선 이의 응답이 이어지면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피해자를 고통에 찬 사람으로만 재현하는 것은, 그가 피해자로서 말해야만 하는 것을 말하지 못하게 하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존재로만 보이게 한다. 이것은 그에게서 말도, 삶도 모두 박탈하는 폭력이다.
고통은 말할 수 없고 소리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피해는 다르다. 피해는 말할 수 있다. 피해로 인해 야기된 고통은 피해자를 말할 수 없는 실존의 차원으로 밀어 넣지만, 피해 자체는 실존적인 것이 아니라 권력 관계에 의해 만들어지는 사회적인 것이다.
자유를 박탈당한 인간이란 근대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죽은 사람이 된다. 신상털이는 자유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사형선고와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