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단어의 범위는 이해를 위해 감정이입이 필요하고, 감정이입에 이르기 위해 이해가 필요하며, 감정이입은 또한 용서임을, 이 모든 것은 서로서로를 도우며, 함께 이루어지는 것임을 암시한다.
이 단어는 이해가 용서 혹은 대상 자체의 출발점이라고 제안한다.
고대 그리스어 ‘시그노미(sungnome)’라는 단어가 있다. ‘이해하다, 공감하다, 용서하다, 봐주다’라는 뜻을 모두 담고 있는 이 단어는 생각과 느낌을 구분하지 않는다.
우리 삶을 하나님이라는 실재 위에 세우고 싶은 갈망이 끊어오를 때, 의심에서 확신으로, 두려움에서 기쁨으로, 분노에서 예배로 변화가 일어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발견되기를 원하신다. 자신을 알리기를 기뻐하신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올 때 하나님은 기뻐 뛰신다. 하지만 하나님의 방식대로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