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에는 방향도 실체도 없다.

김택영

갑작스러운 깨달음. 공부하고 글 쓰는 모든 이들이 바라는 것이며, 깨달음을 얻기 위해 지금껏 수많은 학인과 작가가 온몸을 바쳐 노력해 왔다.

깨달음은 꿈에 혹은 산책 중에 나타나기도 하고, 웃고 떠들 때, 책을 읽고 글을 쓸 때 나타나기도 한다. 공부하고 책을 읽어야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책에 눈을 붙이기만 하고 마음을 두지 않으면 읽어도 아무런 이익이 없다.

홍대용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보게 되고, 볼 줄 알면 모으게 된다는 문장.

나는 책 읽는 사람들이, 공부하는 사람들이, 당신이 소설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기 쓰는 실업자 유만주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남은 남답고 나는 나다운 경지가 대단히 좋은 것이다."

살면서 가장 어렵게 느끼는 일은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하고, 말해야 할 때 말하는 것이다.

침묵해야 할 때와 말해야 할 때를 적절히 판단해서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다.

일흔일곱의 허목은 여전히 정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실력자였다. 그를 정계에서 버티게 만든 건 바로 침묵의 원칙이었다.

경치가 아름다운 곳을 지날 때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림 속의 인물 같을 것이라고 부러워한다. 막상 찾아가 물어보면 스스로 즐겁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다.

조귀명

흔히들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역사는 반복될 뿐이다.

당신이 글을 써 본 적이 있다면 알 것이다. 잘 쓴 글이건 못 쓴 글이건 글을 없애는 데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깨달음은 질서 없이 몰려오므로 어떤 날은 몇 걸음 걷다가 멈추기를 반복한다.

번뜩 찾아온 깨달음을 적은 것이기에 논리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인 경우가 많다.

그런 까닭에 기록할 때는 굉장한 무언가로 여겼으나 시일이 경과한 후에 다시 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던 적도 있다.

번뜩했던 무언가가 사라지기 전에 다시 살펴서 단어들을 문장으로 만들고 엉성한 문장의 빈 곳을 채우고 감정의 언어를 논리의 언어로 변환해야 비로소 온전한 기록이 된다.

이것이 묘계질서妙契疾書의 원칙, 깨달음을 얻으면 재빨리 글을 써서 생각을 잡는다는 뜻이다.

단 한 줄, 단 한 단어도 없애려고 하면 아쉽다. 스스로 자신의 행적을 지워 버린 남곤을 어떤 면에서는 대단하게 여기는 이유다.

실패 또한 반복된다. 이래서야 역사를 공부할 이유가 없지 않나.

인문학도 필요하지만 소설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할 능력은 없지만 소설 읽기도 공부라고 말하고 싶다.

깨달음이 언제 올지는 알 수 없으며, 깨달음에는 정답도 없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아 2020-09-09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 책 꼭 읽어야겠어요!

모찌모찌 2020-09-09 13:46   좋아요 0 | URL
아^^ 유유에 이 시리즈가 저는 좋더라고요 ㅎ 근데 호불호가 있을것 같긴해요 ㅎ 쭉 이어지는 스토리는 아니고요 ㅎ 문장 하나에 느낌과 생각을 서술한 책이어요 ㅎ 각 문장이 마음에 드시면 좋은 선택이 되실 것 같네요^^
 

맹자가 강조한, 마음 다잡는 공부를 삼십 년 넘게 했더라도 위기 앞에서는 여전히 겁을 먹고 헤매는 존재가 바로 우리라는 사실, 그것이 이학규 발언의 핵심이다.

자신이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실감한다

공부란 나의 미숙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민낯 그대로 보이는 일이기도 하다.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사람은 세상을 다르게 보는 이단들이다.

대장부의 생애는 관 뚜껑을 덮어야 끝나는 법입니다.

허균

허균은 대장부의 생애는 관 뚜껑을 덮어야 끝이 나는 법이라고 썼다. 대장부뿐 아니라 공부하고 꿈꾸는 삶을 사는 누구나 그럴 것이다.

어려서 깨달아 기억을 잘한 사람은 많다. 하지만 재주만 믿고 게으름을 부리다가 늙으면 세상에 그 이름도 들리지 않는다.

이서우

재주는 부지런함만 못하고, 부지런함은 깨달음만 못하다.

홍길주

책 내용을 전부 외웠는데도 그 책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래전에 읽은 책의 정수를 잘도 말하는 이들이 있다. 왜 그럴까? 홍길주는 사람마다 성취가 다른 건 깨달음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력한다고 해서 모두가 훌륭한 결과물을 생산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똑같이 노력해도 덜 이루는 사람이 있고 더 이루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한계를 바라보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렇다고 외면이 올바른 대처는 아니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고 자신의 한계까지 가 보는 것, 어쩌면 이것이 깨달음이 느린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일 수도 있겠다.

부끄러운 일이 있다면 부끄러워해야 한다.

이만부

"유치가치"有恥可恥, 부끄러운 일이 있다면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뜻의 네 글자가 나를 고개조차 들지 못하게 한다.

"무치역가치"無恥亦可恥, 부끄러운 일이 없다면 그 또한 부끄러워해야 한다.

이만부는 부끄러운 일이 있어도 부끄러워해야 하고, 부끄러운 일이 없어도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한다. 전자가 옳으면 후자가 옳지 않아야 하고, 후자가 옳으면 전자가 옳지 않아야 하는 것이 우리가 아는 상식이다

내 보잘것없는 식견과 하찮은 지식으로 어찌 감히 책을 저술하는 축에 끼어들 수 있겠는가. 다만 한두 가지씩이라도 기록하여 더 잊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 나의 뜻이다.

이수광

나는 암기를 통해 효과를 보았지만 아이는 그런 적이 없다. 아무리 좋은 방법이라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 소용없다는 것 또한 잘 안다. 공부는 참 어렵다. 공부 방법을 아는 건 더 어렵다. 공부 방법을 남에게 설명하는 건 더 어렵다.

"아이가 잘 외우지 못하더라도 용서하는 것이 좋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0-09-06 14: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주보다 부지런함보다 깨달음이 가장 높은 위치군요.
깨달음을 주는 책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잘 지내시나요, 올리버 색스 박사님? - 올리버 색스 평전
로런스 웨슐러 지음, 양병찬 옮김 / 알마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군가에게 한 존재로 기억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어떠한 존재로 기억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 사람의 언행을 통한 어렴풋한 이미지겠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의미 있는 존재로 오랫동안 한 사람의 가슴속에 남아 있고 싶진 않을까?


여기 친밀했던 한 사람에 의해 존재로 남겨진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자서전의 형식으로 남기는 것도 의미다. 

하지만 소중했던 사람에 의해 다른 시각으로 그려지는 또 다른 나의 이야기 또한 매우 뜻깊을 것이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저자 올리버 울프 색스(Oliver Wolf Sacks, 1933~2015)는 잉글랜드의 신경의학자이면서 대중적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저술은 신경장애라는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분야이면서도, 문학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알기 쉽게 전문적인 지식을 표현하고 드러낸다. 그는 이야기를 사랑했고,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주장했다. 그의 이야기 사랑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는 팩트를 존중하여, 과학자 특유의 '정확성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의 주장에 따르면, 팩트는 내러티브 속에 깊숙이 박혀 있어야 하며, 내러티브에 의해 통합되어야 한다. 그는 내러티브, 특히 사람들의 내러티브에 진짜로 중독되었다(그리고 잘 지내시나요 올리버 색스 박사님?, 25).


이미 올리버 색스의 자서전인『온 더 무브』가 발간되었다. 하지만은 오랜 친구인 로런스 웨슐러(Lawrence Weschler)가 쓴『그리고 잘 지내시나요, 올리버 색스 박사님?』(알마, 2020)을 통해 우리는 올리버 색스의 다른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웨슐러는 「뉴요커」의 베테랑 작가로서 오랜 시간 색스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심지어 색스는 웨슐러 딸의 대부가 된다. 그만큼 서로에 대한 신뢰가 두터웠다고   있다.


색스는 어느 날 개인적 이유를 내세워 자신의 전기 작업을 중단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마지막이 가까워오던 때에 다시 웨슐러에게 중단된  작업을 재개하기를 요청한다. 그렇게 탄생한  책은 올리버 색스의 다양한 면면을   있다. 웨슐러와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색스와 관계된 많은 사람들의 인터뷰로 더욱 풍성하게 그의 삶을 엿볼  있다.


특히  책을 통해 그의 저술 활동 면면을 세심하게 관찰할  있다. 하나의 저작은 그의 존재를  싸움일 것이다. 때로 그는 막힘없이 빠른 시간 내에 글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매우  고통의 순간이 있었다. 그의 '글 막힘' 현상은 오랜 시간 그를 괴롭혔다. 그가 어떤 고통과 힘겨움 가운데서 자신의 저서를 출간하게 되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기 이스라엘‘ 거주지라고 생각되는 곳은 어찌 되었건 단 한 군데라도 ‘도시적’ 특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심지어 작은 마을(town)이라고도 부를 수 없을 정도였다. - P151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그것들은 모두 농사짓는 촌락이거나 부락(hamlet)이었다. - P151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작은 크기뿐만 아니라 꼭대기라는 독특한 위치에서 찾을 수 있다. - P151

다시 말해서, 이곳은 작더라도 농산물을 경작하기 좋은 풍요로운 산지 계곡이 내려다보일 뿐만 아니라 올리브, 포도, 과일이나 채소와 같은 농작물을 재배하기 위한 테라스 농업에 적합한 근처의 산등성이 지역도 고려되는 지역이었다. - P151

부연해서 말하면, 고대 팔레스타인의 산지는 근처에 방목하기 좋은 변두리나 초원지대(steppe) 지역이 있어서 경작과 함께 혼합해서 생계를 유지할수 있었다. - P15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박지원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대뜸 질문을 던졌다. "물속의 물고기는 물을 보지 못한다네. 그 이유를 아는가?"

심상찮은 질문엔 묵묵부답이 올바른 응대이다. 이서구는 입을 다물었고 박지원은 스스로 답을 내놓았다. "보이는 게 다 물이니 그런 게지."

물은 곧 책이다. 책으로 가득한 방에서는 책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뜻이다

일 년이면 백 권의 책을 읽는다는 뜻이었다. 잠깐 우쭐했다가 이내 기분이 나빠지고 슬퍼졌다. 최근 십 년만 계산하면 천 권의 책을 읽은 셈인데, 그럼에도 더 나은 사람이 되지 못했다. 생각은 진부했고 쓰는 글은 뭉툭하고 평범했다. 책을 읽었으나 제대로 아는 것도, 하는 것도 없었다. 책상물림이라는 표현도 과했다. 나는 방 안에서 뒹굴뒹굴하며 책장만 넘기는 자에 불과했다.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박지원의 말대로 방 바깥으로 나갈 수도 있겠다. 창호지에 구멍을 뚫고 객관적인 눈으로 방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박지원은 방 바깥에서 방 안을 보았고, 이옥은 방 안에서 방 바깥을 보았다.

둘의 공통점, 두 사람 모두 책에 의존하지 않은 채 불멸의 글을 남겼다.

그러고 보면 방 안과 방 바깥의 구분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정신이 살아 있다면 눈과 몸의 위치 따위는, 그리고 눈과 몸을 보조하기 위한 수백, 수천 권의 책은 아예 필요 없을 수도 있겠다.

억지로 해석하기보다는 의문을 그대로 두는 게 더 낫다.



홍대용

우리? 그저 냄새나는 가죽 주머니 속에 든 문자가 남들보다 조금 많을 뿐이지. 나무와 땅속에서 들리는 매미와 지렁이 울음소리가 시 외우고 책 읽는 소리가 아니라고 과연 장담할 수 있겠나?



박지원

남보다 책을 많이 읽었거나 공부를 많이 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의 병폐가 있다. 은연중에 주위 사람을 무식자 취급하는 버릇이다

박지원은 나 같은 인간에게 주먹 한 방을 날린다. 그런 너는 도대체 뭐냐고 물으면서. 박지원은 말한다. ‘당신과 나, 그러니까 우리 인간은 냄새나는 가죽 주머니일 뿐이다. 문자가 조금 섞여 있긴 하지만 99퍼센트는 더러운 냄새로 가득 차 있지.’

밤은 낮의 나머지 시간이다. 비 오는 날은 맑은 날의, 겨울은 한 해의 나머지 시간이다. 나머지 시간에는 일이 뜸하므로 공부에 힘을 쏟을 수 있다.



허균

백 리 길을 가려는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하루 만에 도착했다. 수레와 말과 하인과 마부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른 한 사람은 길을 잘못 들어 혼자서 헤매다가 여러 날이 지나서야 겨우 도착했다. 두 사람이 스스로의 힘으로 다시 길을 간다면 누가 일찍 도착할까? 후자일 것이다. 이미 헤맸으므로 갈림길에서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이익

이익의 글을 읽고서야 깨닫는다. 아마도 그건 불가능한 바람이었을 터. 똑바로 걷기만 했으면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길에 아예 도착하지도 못했을 터이다.

늘 반듯했던 그 사람은 시민들의 반듯하지 않은 요구를 이해하지 못했다. 현직에서 물러난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신의 길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 자, 헤매어 보지 않은 자는 때론 정말 무섭다.

책의 종류에 관계없이 첫 권은 대개 더럽다. 둘째 권부터 마지막 권까지는 깔끔하다. 나는 선비들의 버티는 마음이 부족한 것을 느끼며 탄식한다.



이덕무

이덕무의 말은 지당하다. 선비들은 공부하는 책을 마땅히 끝까지 읽어야 한다. 한 번, 두 번, 세 번 필요하다면 천만 번이라도 읽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반듯하고 훌륭한 선비의 말에 슬쩍 딴지를 걸고 싶다. 읽다 그만두는 것도 공부의 한 방법이 아닐까?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 아닌 이상 상대를 감동시킬 수는 없다. 그럴 때 작업실이 따로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는 일이, 공부하는 일이, 내가 하는 일이 이 집안에서 벌어지는 다른 일보다 딱히 더 중요할 이유는 없다. 나는 글을 써서 먹고살지만 가족의 일원이기도 하고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책을 읽는 사람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이익

무언가를 얻기 위해 하는 독서 혹은 공부가 과연 나쁘기만 한 걸까? 경전의 의미를 알기 위해 하는 공부, 나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하는 공부는 과연 무언가를 얻기 위해 하는 공부가 아닌 걸까?

우물 안 개구리는 바다의 존재를 의심하고, 여름벌레는 얼음의 실재를 믿지 않는다.



장유

최근 읽은 심리학책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을 남들보다 높게 평가한다고 하니 조금은 위안이 된다. 아무튼 장유의 주변에는 나 같은 사람이 꽤 많았던 모양이다. 장유는 그런 무리를 우물 안 개구리와 여름벌레라 부른다

자신이 아는 좁은 세계에 만족해 세계의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우물에서 벗어나고 얼음을 보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자기가 어떤 인간인지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이다.

주희는 옛사람 중 가장 굳세고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친구나 제자 들이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면 그 즉시 고쳤습니다.



이황

어쩌면 그들은 내 원고에서 일말의 희망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고치면 좋아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을런지도 모른다. 나는 그 기회를 내 발로 걷어찼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허약한 마음 때문에.

이황은 젊은 벗이자 만만치 않은 적수였던 기대승에게 이렇게 썼다. "진정한 굳셈과 용기는 제 주장을 강하게 펴는 데 있지 않습니다. 허물을 고치는 데 인색하지 않고 상대의 올바른 말을 그 즉시 따르는 것, 그것이 진정한 굳셈과 용기이지요."

선비가 경전과 역사책을 읽을 때는 세월을 두고 차근차근 해 내가야 한다. 올해 『서경』書經을 읽었으면 내년에는 『시경』詩經을 읽고 그다음 해에는 『주역』周易을 읽는 식으로.



유만주

오에 겐자부로는 한 명의 작가를 정해 놓고, 대략 삼 년 동안 그 작가의 책이나 관련 연구서만 읽는 독서법을 젊은 시절부터 지켜 왔다고 한다. 그는 단테, 엘리엇 등을 독서법대로 읽어 나갔고, 그 결과 단테와 엘리엇에 정통한 아마추어가 되었다

그대는 늘 조급하니 서두릅니다. 공부를 하면 곧바로 효과가 나타나야 한다고 기대합니다.



이황

고민 없이 써 내려간 글에는 매력이 없으므로 굳이 읽을 필요 또한 없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조급한 마음에 수십 권의 책을 서둘러 읽어 치우는 것은 한 권도 읽지 않은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글을 읽을 때는 푹 익게 하는 것이 으뜸이라고. 한 줄 한 줄 천천히 생각하며 읽으라는 뜻이리라.

한 해의 첫날, 성인聖人의 책을 처음 보았다. 지난날의 잡스러운 생각들이 홀연 녹아 사라졌다.



허균

훌륭한 책이란 무엇인가? 독자의 시야를 트이게 하고 다른 세계를 보여 주는 책이다. 그런 책을 만나는 것은 공부하는 이들의 꿈이다

떠 있는 삶이 꼭 슬픈 건 아닙니다.



정약용

정약용의 글은 내게 위로를 주었다. 떠 있는 삶이 꼭 슬픈 것은 아니며, 공자 또한 한때는 뗏목을 타고 바다를 떠다니는 삶을 꿈꾸었으며, 떠 있는 것은 어쩌면 아름다움과 동의어일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그의 글은 마른 손바닥을 적시는 빗물 같았다.

아프지도 않은데 신음이 나온다. 이별한 것도 아닌데 외롭다. 힘들여 일한 것도 아닌데 피곤하다.



유만주

책을 읽고 공부한다고 해서 성공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성공한 사람보다는 실패한 사람이 더 많다. 나는 그들을 반면교사 삼기로 한다. 삐딱한 내 머리엔 이런 의문도 든다. 그들은 정말로 실패한 걸까? 어쩌면 나는 그들을 정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건 아닐까? 그들의 깊이 가라앉았던 삶, 사실 그건 떠다니는 삶의 변형은 아니었을까?

공감, 애정, 사랑이 인간이 가장 먼저 배워야 할 자명한 이치인 건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도 알 테니까.

공자가 그토록 강조한 인仁은 타인에 대한 공감과 애정일 것이다. 예수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성인聖人의 말까지 인용할 문제가 아닌지도 모른다

백성들 마음에 조금의 원망이라도 생긴다면 그건 임금 그대의 잘못, 하늘이 그 벌로 그대의 자리를 빼앗으리라.



김시습

공부가 뭐 별건가? 배우지 않았어도 익히 알고 있던 것들, 그것들을 문자로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작업 그리고 몸으로 실천하는 작업일 뿐이다.

공부를 꼭 고생스럽게 해야만 하는 걸까요? 때론 한가하게 쉴 필요도 있습니다.



이황

고리타분하고 근엄할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이황은 솔직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사과도 우아하게 잘하고 훈계도 기분 나쁘지 않게 조근조근 잘도 퍼부었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공부만 하지 말고 한가하게 쉬기도 하라는 문장이다.

대숲에 바람이 분다. 대나무는 무심하게 바람을 느끼고 반응한다.



장유

장유의 글?실은 중국 송나라의 성리학자 정자程子의 문장을 인용한 것이기는 하지만?은 아름답다. 일희일비하지 말고, 대나무가 바람을 대하듯 살라는 의미다. 모든 아름다운 행동은 단순해서 더 실행하기 어렵다.

그나저나 옛사람들은 자연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공자는 냇물을 보며 "지나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감탄했고, 중국 북송 시대의 유학자 주돈이는 "잡초 또한 나와 뜻이 같으므로 뽑을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내 주위에도 대나무가 있고, 냇물이 있고, 잡초가 있다. 내게 그것들은 있어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러니 내가 공부 못하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낄밖에.

대나무는 꼿꼿하면서 빛을 발하지는 않는다. 곧으면서도 잘난 체는 하지 않는다.



김매순

국민은 정치인의 선거 공약에만 등장하는 추상적인 단어가 아니다. 한 나라의 국민이라는 건 숙명이기도 하고, 권리이기도 하고, 책임이기도 하다. 이웃이 아픔을 겪는 것, 그건 내 잘못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