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바울 연구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를 위해 샌더스의 논지를 간략히 요약하겠습니다. 그가 새롭게 창안한 용어인 "언약적 율법주의(covenantalnomism)"가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샌더스의 말을 직접 들어봅시다. - P11

언약적 율법주의의 "패턴"과 "구조"는 이렇다. (1)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2) 율법을 주셨다. - P11

이 율법은 (3) 하나님이 그 선택을 유지하시겠다는 약속과 (4) 그 율법에 순종해야 한다는 요구를 함께 암시한다. - P11

(5) 하나님은 순종에 보상하시고, 범과(犯過; 율법을 어김를 벌하신다. - P11

(6) 율법은 속죄 수단을 제공한다. - P11

속죄는 (7) 언약 관계가 유지되거나 재수립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 P11

(8) 순종과 속죄,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를 통해 언약 속에 남아 있게 되는 이는 모두 장차 구원받은 그룹에 속한다. - P11

첫 번째 요점과 마지막 요점에서중요시해야 할 해석은 선택과 궁극(최종)의 구원을 인간이 그 공로로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바파유』p.743). - P11

언약적 율법주의는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에 깊이 각인된 믿음이며 세계를 해석하는 근본 전제입니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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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부분의 목회사역이 지금 이곳에서의 순종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 P77

지금 이곳에서의 순종은 가정과 동네와 직장에서 사랑을 길러 내는 일로 나타나고, 성경을 지금 이곳이라는 구체적인 삶의 텍스트로 여기는 일로 뒷받침되지.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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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의 독특성 중 하나는 소위 다른 전문가들보다 업무에서 훨씬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른다는 것이지. - P31

하지만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느낌은 어느정도 하나님을 신뢰하거나 예수님을 따를 때의 느낌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많이(물론 늘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하게 되었다. - P31

교회가 우리에게 안수하여 맡긴 목사직이라는 위치에서, 우리는 잘 알지못하는 어떤 것을 증언해야 하고 구원과 섭리의 신비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 P31

우리가 결코 피할 수 없는 일상의 현실은, 예배든 가족이든 우리가 통제할 수 없고 관리할 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 P34

목사라는 용어를 내가 임의로 정의한 독단적 의미로 쓰고 싶지는 않다만, 일반적으로 목사는 두 세계 모두에서 편안해지는 법을 배우는 양서류라는 생각이 든다. - P36

성경 세계와 현대 세계에서도, 사람들이 경제적·사회적·문화적으로 거주하는 다양한 ‘세계들‘에서도 말이다. - P36

목사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 중 하나는(설교와 기도와 가르침, 하나님께 신실함과 예수님을 따름이라는 기초가 자리를 잡고 나서 말이다) 사람들을 존엄하게 대하는 것이 아닐까. - P40

그 행동 자체가 가난한 세계와 부유한 세계, 거부의 세계와 용납의 세계, 고난의 세계와 번영의 세계, 실패의 세계와 성취의 세계를 잇는 데 필요한 모든 일을 해내는 것 같다. - P40

우리는 공동체나 전도나 선교를 위한 전략이 아니라 훨씬 더 근본적인 것 곧 세례와 하나님 형상과 영혼에 대한 전략을 짠다. - P40

목사직은 이렇듯 하나님 나라의 맥락과 어휘를 갖춘 채 인격적이고 상대를 존중하고 환영하고 존엄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상대할 수 있는 독특한 직책이란다. - P40

내가 볼 때 목회와 교회생활을 너무나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는 두루 퍼져 우리 삶을 지배하는 소비지상주의인 것 같다. - P49

우리가 소개받고 받아들인 복음은 삼위일체로 규정된다. - P49

공동체로 계시는 하나님, 인격적 관계 안에 계시는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께서는 신격 안에서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으시고 우리와도 그렇게 관계하신다. - P49

우리가 예배에서 사용하는 단어들은 관계와 반응이 살아 움직이는 상상력을 형성하고 고유한 영혼들이 모인 공동체를 조성하는 데 너무나 결정적이고 기초적이며 큰 영향을 미친단다. - P54

그 영혼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것은 과제나 필요가 아니라 결국 사랑-하나님이 우리 삶에서 우리를 위해 서로에게 행하시는 가장 친밀하고 인격적인 역사-이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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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은 한 사람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 P264

공감은 너도 있지만 나도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되는 감정적 교류다. - P264

공감은 둘 다 자유로워지고 홀가분해지는 황금분할 지점을 찾는 과정이다. - P264

누구도 희생하지 않아야 제대로 된 공감이다. - P264

잘 모를 때는 아는 척 끄떡끄떡하지 말고 더 물어야 한다. - P264

이해되지 않는 걸 수용하고 공감하려 애쓰는 건 공감에 대한 강박이지 공감이 아니다. 에너지 소모만 엄청나다. 그렇게 계속 버티기는 어렵다. 본인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무슨 수로 공감하나. - P264

공감은 내 생각, 내 마음도 있지만 상대의 생각과 마음도 있다는 전제하에 시작한다. - P267

상대방이 깊숙이 있는 자기 마음을 꺼내기 전엔 그의 생각과 마음을 나는 알 수 없다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관계의 시작이고 공감의 바탕이다. - P267

상대방의 감정과 똑같이 느끼는 것이 공감인가. 공감을 잘한다는건 상대와 똑같은 감정을 느끼는 상태까지 가야 하는 것인가. 아니다. - P268

공감은 똑같이 느끼는 상태가 아니라 상대가 가지는 감정이나 느낌이 그럴 수 있겠다고 기꺼이 수용되고 이해되는 상태다. - P268

그 상태가 되면 상대방 감정결에 바짝 다가가서 그 느낌을 더 잘 알고 끄덕이게 된다. - P268

상대와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상관없다. - P268

허벅지에 큰 상처를 입어 출혈이 심하면 지혈을 하기 위해 허벅지 윗부분을 끈으로 꽉 동여매야 한다. 그런 순간엔 아무도 너무 조이면 아프니까 살살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P293

과다 출혈로 인한 응급 상황에서의 압박은 평시의 스킨십과는 달라야 한다. - P293

공감이란 나와 너 사이에 일어나는 교류지만, 계몽은 너는 없고 나만 있는 상태에서 나오는 일방적인 언어다. - P294

나는 모든 걸 알고 있고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들이다. 그래서 계몽과 훈계의 본질은 폭력이다. 마음의 영역에선 그렇다. - P294

존재에 집중해서 묻고 듣고, 더 많이 묻고 더 많이 듣다 보면 사람도 상황도 스스로 전모를 드러낸다. - P294

그랬구나. 그런데 그건 어떤 마음에서 그런 건데. 네 마음은 어땠는데? 핑퐁게임 하듯 주고받는 동안 둘의 마음이 서서히 주파수가 맞아간다. - P294

소리가 정확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공감 혹은 공명이다. - P295

누군가의 속마음을 들을 땐 충조평판을 하지 말아야 한다. - P295

충조평판의 다른 말은 ‘바른말‘이다. - P295

바른말은 의외로 폭력적이다. - P295

나는 욕설에 찔려 넘어진 사람보다 바른말에 찔려 쓰러진 사람을 과장해서 한 만 배쯤은 더 많이 봤다. 사실이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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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본적 정체성은 리더(이끄는 자)가 아니라 팔로워(따르는 자)이다. - P25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끌라는 말씀 대신 따르라는 초대장을 주신다. - P25

팔로워십이 리더십보다 앞서고 보다 포괄적이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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