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개념을 분명히 선언하고 이런 개념이 하나님을 정의로우신 분으로 보는 랍비들의 견해에서 논리상 추론한 개념이라는 것을 분명히 선언한 만들이 있지만, 그래도 사람이 받을 보상은 그의 공적과 엄격히 일치한다는 개념은 결코 랍비들이 만든 교리가 아니다. - P147

보상과 공적은 엄격히 일치한다는 개념과 다른 개념을 선언하는 말도 역시 같은 정도로 자주 등장한다. - P147

이런 계명에 마음을 다하여 순종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께 철저히 헌신하고 종교[신앙]를 자기 통제 아래 놓거나 종교를 그 자신이 지닌 이성의 힘 앞에 복종시키려 함이 없이 하나님 뜻을 행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 P148

랍비들의 주석은 그때그때의 특별한 상황을 전제한 것으로서, 어떤 목적에 이바지하거나 어떤 점을 강조하려고 한다. 랍비들은 그들이 한 진술들 사이의 체계적 관계에는 관심이 없었다. - P148

계명 이행 혹은 계명 위반과 이에 따른 하나님의 보상이나 처벌의 관계에 관한 이런 몇몇 진술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랍비들의 공통 관심사였음을 일러준다. - P149

랍비들은 계명이 보상을 담고 있음을(혹은 계명 불이행에는 형벌이 따름을) 반복하여 강조한다. - P149

그러면서도 그들은 대가를 얻을 목적으로 계명을 이행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 P149

오히려 사람은, 숨은 동기 없이, 그리고 계명들 자체가 선하고("그것이 계명이기 때문에") 혹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하늘 때문에"), 요구받은 계명을 이행해야 한다. - P149

이렇게 말하느냐 저렇게 말하느냐는그 경우의 특별한 필요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 P155

그러나 후자의 진술 유형 -자비가 정의보다 무겁다-이 하나님을 대하는 랍비들의 기본 태도를 반영한다는 것은 추호도 의심해서는 안 된다. - P155

하나님이 각 사람이 마땅히 받을 몫을 주신다는 진술은 권면 목적으로 한 말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거듭 말했듯이, 하나님은 사리가 명확하시고 정의로우시다는 굳건한 믿음에 근거한 말이기도 하다. - P155

그러면서도 랍비들은 하나님을 틀림없이 자비로운 분이라고 생각했다. - P155

랍비들은 하나님이 자비로우셔도 당신에게 순종해야 할 필요성까지 제거하시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 P155

그러나 랍비들은 비록 그 행위는 완전함에서 멀지라도 그 본바탕에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의도를 가진 이들에게는 하나님이 자비를 베푸신다고 생각했다. - P155

처벌과 보상을 내세로 미룬다는 것이 숱한 계명을 이행함으로 내세를 얻는다는 뜻은 아니다. - P157

오히려 랍비들이 하나님을 정의로운 분으로 보았다는 것은 하나님이 순종과 불순종에 적합한 보상과 형벌을 내리시는 분이라는 의미였다. - P157

계명을 부인함(으로써 결국 계명을 주신 하나님을 부인함)의 반대말은 계명에 완벽하게 순종함이 아니라, 계명을 "인정함"이다. - P169

사람들이 요구받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에 복종함이요 이 계명에 순종하려는 의도다. - P169

일부러 불순종하려는 의도를 가진 사람은 언약과 언약에 따른 약속들에서 제외된다. - P171

순종은, 특히 순종하려는 의도("인정함")는 구원에 없어서는 안 될 조건이지만, 이런 순종이나 순종하려는 의도로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다. - P171

랍비 종교에 구원과 관련된 "교리"가 있다면, 그것은 선택과 참회다. - P172

하나님이 공고와 범과[犯過]를 저울에 달아 서로 비교하심으로써 공로가 죄를 무효로 만들거나 벌충할 수 있게 하신다는 견해도 포기해야함을 뜻한다. - P172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때는 자신의 행위가 저울로 공평히 측정 받을 것처럼 행동하고 자신의 다음 행위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 그리고 사람은 자신의 계명 이행 행위와 범죄 행위 중 많은 쪽을 따라 심판을 받는다는 말은 계명에 순종하라는 랍비들의 권명이라는 전체 맥락에 비춰 바라봐야 한다.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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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받아들였다. - P131

그 결과,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계명을 주셨다. 랍비들은 이스라엘이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 뜻이었다고 본다. - P131

계명은 귀찮은 게 아니라 복으로 간주되었기에, 기뻐하며 다 이행해야 했다. 계명에는 힘과 평화가 따르며, 하나님의 자비를 보여주는 표지다. - P134

비록 신약 학자들에게는 계명이 무거운 짐으로 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어쨌든 랍비 문헌에서는 계명들이 아주 많다는 이유로 이 계명들을 복으로 여기든지, 아니면 제사장들에게 주어진 계명들보다 적기 때문에 계명들을 상당히 가볍다고 여기든지, 그 어디를 살펴봐도 계명을 무거운 짐이라 여겨 불만을 토로하는 내용이 전혀 없다. 우리는 이제 랍비 문헌이이렇게 여긴 이유를 살펴봐야 한다. - P135

미쉬나를 처음 보고 읽는 바깥사람들 눈에는 율법이란 것이 복잡하고, 당황스럽고, 불합리하여, 무거운 짐처럼 보인다. - P135

그러나 랍비들은 율법을 결코 불합리하다고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 P135

율법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명령하신 것이었기 때문이다. - P135

더군다나, 많은 계명을 매일 일과처럼 지키는 공동체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볼 때, 랍비들이 해석한 성경의 율법은 복잡하거나 어려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 P135

가령 랍비 요슈아는 아침과 저녁에 할라카 둘을 공부하고 자기 일을 돌보면 토라 전체를 이행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말하는데, 이 말은 다른 계명을 지키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더 많은 계명들을 일상 일과처럼 지켰을 것이다. - P135

랍비들이 말하는 할라카는 현대의 법과 비슷하다. 삶의 모든 영역을 규율할 규칙을 제시하는 게 그 목표였기 때문이다. - P135

때문에 율법은 그것을 지키는 자에게 특별한 짐을 지우지 않았으며, 다만 인간 사회에 공통된 법을 알고 지킬 의무만을 지웠을 뿐이다. 랍비들의 율법은 분명 하나님의 계명으로서 효력과 강제력을 갖고 있었으며, 그 점에서는 현대의 법과 완전히 달랐다. - P135

토라의 핵심은 때로 어느 한 계명보다 서너 계명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 P139

가령 십계명은 특히 우월한 위치에 있었으며 모든 계명의 기본 요소 노릇을 할 수 있었다. - P139

이와 반대로, 우상숭배, 방탕(음란), 살인을 주요한 세 죄로 여겼다. - P139

랍비들은 때로 많은 계명이 이스라엘을 정련할 목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연단하고 훈련시킬 목적으로 주여졌다고 말했다. - P139

이 계명들은 다 순종해야 할 것이었으나, 랍비들은 여전히 큰 계명 덩어리에서 기본이라 할 신앙 가치들과 윤리 가치들을 추출해낼 수 있었다. - P139

다른 법전을 더 만들거나 법을 더 상세하게 규정함이 없이 "사랑"과 같은 어떤 한 계명만으로 살아가려는 시도는 사실 바람직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 P140

다행히도 유대교는 어떤 한 원리를 추구할 자유를 추구하느라 많은 계명을 실제로 이행하는 것을 저버리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 - P140

그러나 랍비들이 어떤 한 지배 원리 혹은 몇몇 주요 원리를 끄집어내려고 시도했다는 것은 이들이 하나님이 주신 모든 계명을 이행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느라 "율법의 더 중요한 문제들을 부차적 위치로 떨어뜨리는 일은 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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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이 어떤 계명, 혹은 심지어 모든 계명에 순종함으로 출애굽을 얻었다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계명에 순종케 하려고 하나님이 출애굽을 행하셨다는 것이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성공적인[successful] 계명 이행이 아니라 그들의 자유의지에 따른 계명 순종을 언약 속에 머무는 조건으로 삼으셨다는 것이다. - P114

랍비들은 하나님이 언약에 따른 약속들을 끝까지 신실히 지키실 것이요, 심지어 불순종과 맞닥뜨려도 그리하시리라는 것을 결코 의심치 않았다. - P117

이제 우리는 이제까지 논한 내용을 요약해도 되겠다. 우리는 할라카 자료가 존재한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성경의 율법을 세세하고 철저하게 탐구하게 된 종교적 동기가 무엇인지 탐구하게 되었다. - P130

우리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과 하나님이 특별한 관계에 있게 되었다는 것이 랍비들의 의견이었음을 보았다. - P130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동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였다. - P130

하나님은 기꺼이 당신 백성에게 계명을 주셨다. - P130

계명 이행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독특한 신앙 행위요, 이스라엘이 자신들을 택하시고 구속하신 하나님께 응답하는 방식이다. - P130

랍비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신 근거를 제시하려할 때, 하나님이 거저 베푸신 은혜를 근거로 들었고 때로는 공로라는 개념에 호소했다. - P130

하나님의 통치는 순종을 요구한다. - P130

아울러 하나님의 통치는 하나님 백성에게 은덕과 고난을 가져다주지만, 이런 고난도 은덕이다. - P130

어쨌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이 받은 계명을 온전히 이행해야 한다. - P130

아울러 이들은 하나님이 왕이요 재판장이며 구속자로서 당신이 행하실 역할을 다 하시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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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버는 유대교를 기독교와 정반대요 대립하는 것으로 보았다. 유대교는 율법 종교였으며, 유대교가 말하는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요 접근할 수 없는 분이었다. - P71

무어는 베버가 묘사한 유대교 모습이 에밀 쉬러와 빌헬름 부세트에서도 계속 나타남을 보여주었으며, 이런 구조가 아주 부적절하고 그 근거가 아주 박약하다는 것을 일러주었다. - P72

유대교에 관한 베버의 일반론은 신약 학계에 계속 살아 있다. 그의 일반론은, 무어처럼 박식한 학자들과 로[Loewe]가 열거하는 다른 학자들이 비판을 퍼부었어도, 요지부동이다. - P77

베버는 분명 금송아지 이야기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루신 역사 속에서 어떤 체계적 위치를 갖는다고 본다. - P78

그러나 유대교 문헌에서는 금송아지 이야기가 그런 위치를 가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사실 금송아지 이야기는 그런 위치를 가지려 해도 가질 수가 없었을 것이다. - P78

구원론을 다른 부분에서 다루지는 않았지만, 역시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이 유대교의 하나님은 다가갈 수 없는 분이라는 베버의 이론이다. 무어는 베버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유대교를 오해하게 된 첫 시발점이 이 이론이라고 말한다. - P79

베버에게 의존한 부세트의 견해는 그의 제자인 루돌프 불트만이 자기 것으로 삼아 이후 여러 세대 신약 학자들에게 널리 퍼뜨렸다. - P79

우리는 사람들이 랍비 유대교의 구원론에 관한 베버의 견해가 모든 점에서 이미 사람들의 신뢰를 잃어버린 지가 오래 되었다는 생각을 했을 법한데도, 지금까지 베버의 견해 가운데 주요 요소들이 신약 학계 안에서 명맥을 이어오고 있음을 본다. - P81

그런 주요 요소 중 하나가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는 이론이요, 한 사람의 운명은 율법이 부여한 의무를 이행한 것과 범죄를 달아보고 비교한 결과에 따라 결정된다는 이론이다. - P81

이 견해를 유지하면 선택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부인하거나 어떤 다른 길로 우회할 수밖에 없다. - P81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선택 받은 뒤에 타락했다는 베버의 이론을 따르진 않았지만, 선택이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 사건[gracious, saving]임을 널리 부인하는 태도는 그대로 유지했다. - P81

우리는 개신교와 로마가톨릭의 논쟁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고대사 속에 역[逆]투영되고 있음을 본다. 유대교가 로마가톨릭교 역할을 하고 기독교가 루터파 역할을 하는 셈이다. - P82

유대교 혹은 유대교의 일부를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의를 얻는 종교로 보는 기독교 쪽의 통설은, 이 통설을 지지하는 이들보다 훨신 더 유대교 자료를 잘 아는 학자들에게 예리한 비판-어떤 이는 통렬한 비판이라 생각할 것이다-을 받았는데도, 끄떡없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 P83

시프레 민수기1 전체는 분명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을 굳건히 믿는 믿음을 전제한다. - P94

하나님은 당신 백성과 함께 거하시고, 하나님 백성은 그의 계명을 정확히 지켜야 한다. - P94

할라카 자료는 대부분 이스라엘이 언약 아래서 하나님께 진 의무를 상세히 설명한 내용과 정의를 다룬다. 이것이 할라카 자료 전반을 설명해주는 것이다. - P94

하나님이 언약에서 행하시는 역할을 직접 논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 P95

할라카 자료는 하나님의 역할을 아주 철저하게 전제했기 때문에, 그것을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 P95

그럴지라도 하나님의 역할은 할라카의 모든 내용이 그 기초로 삼는 전제다. - P95

인간이 언약 아래서 짊어진 의무들만을 상세히 설명하고 정의하는 이유는 단 하나, 하나님이 언약 당사자로서 신실하심과 정의를 지키시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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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는 "종교 패턴"은 역사 속에 존재해온 어떤 종교 전체-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불교 따위를 아우른 전체-를 뜻하는 게 아니라, 다소의 동질성을 지닌 주어진 실체만을 의미한다. - P58

종교 패턴은 어느 한 종교 안에 들어있는 모든 신학 명제나 모든 종교 개념을 포함하지 않는다. - P58

종교 패턴은 그 종교 신자들이 기능을 따라 그 종교를 이해한 내용을 묘사한 것이다. - P59

"기능을 따라 이해한다"는 말은 신자가 매일 행하는 무엇을 의미함이 아니라, 안으로 들어와(입문하여: getting in) 머묾(stayimg in)을 어떻게 이해하는가라는 의미다. - P59

종교 패턴은 조직 신학과 동일하지 않으며, 사변에 의존하는 수많은 신학 질문들과 무관하다. - P60

그렇다고 종교 패턴은 분명 사상과 관련이 있으며, 종교 행위의 외면뿐 아니라, 종교 행위 뒤편에 자리한 이해와 분명 관련이 있다. - P60

따라서 우리는 어떤 종교의 신자들이 그 종교의 제의가 그들의 신앙생활에서 어떤 기능을 가지는 것으로 이해되었는지를, 그 종교의 제의 행위에서 끌어낼 수 있겠다. - P60

그 제의를 지켜 거행했다는 사실뿐 아니라, 그 제의의 의미에 관한 신자들의 이해도 중요하다.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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