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자들이 어둠의 천사의 지배 아래 있다는 진술이 있긴 해도(1QS 3.20), 이 악한 자들이 죄와 관련하여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참회하고 언약에 합류하는 일이다. - P253

이것은 쿰란이 가졌던 견해와 유대교의 나머지 그룹 및 바울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점이다. - P253

랍비 문헌을 보면, 사람은 범죄를 참회함으로 언약에 합류하는 게 아니다. 애초에 사람은 언약 안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 P253

하지만 죄를 범과로 보고 참회를 이런 범과에서 고침을 받는 것으로 보는 기본 범주(개념)는 쿰란이나 유대교의 나머지 그룹이나 바울이나 똑같다. - P253

앞으로 보겠지만, 바울과 에세네인은 똑같이 사람은 날 때부터 구원에 효험이 있는 언약 속에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따른 행동(곧 "믿음")으로 언약에 합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P253

처벌은 행위에 따라 이뤄지나 보상은 자비로 말미암아 주어진다는 테마가 말하려는 요지는 인간이 범죄를 저질러 구원을 잃어버리는 일은 있을 수 있어도, 인간이 순종함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자격은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 P259

여기서 잠시 멈춰 서서 에세네파의 견해와 랍비들의 견해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 살펴봐도 될 것 같다. - P261

랍비 문헌을 보면, 하나님이 행위에 따라 형벌과 보상을 공정하게 나눠주신다는 점을 사해 사본보다 더 강조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이 의롭다하심을 받는 데 필요하다는 점은 사해사본보다 덜 강조한다. - P261

하지만 둘의 근본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랍비 문헌을 보면, 보상과 형벌을 베품이 구원의 기초가 되지 않고 도리어 언약이 구원의 주요 요소인 반면, 언약 안에서는 인간이 그 행위에 따라 형벌을 받고 보상을 받는다. - P261

마찬가지로 쿰란도 사람이 언약에 따른 법규를 어기면 처벌받고 법규를 지키면 보상을 받는다고 말하면서도, 언약 자체 안에 있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고 말한다. - P261

사람을 언약 속에 놓아두는 하나님의 은혜는 랍비 문헌보다 쿰란이 더 강조한다. - P261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인식과 순종하라는 요구가 모두 높았다는 점은 유대교 전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 P262

이는 곧 유대교가 "은혜"와 "행위"를 결코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았음을 일러주기 때문이다. - P262

나는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노력이 어떤 방식으로라도 대립한다는 개념이 팔레스타인 유대교에겐 철저히 낯선 개념이라고 말하는 게 안전하다고 믿는다. - P262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팔레스타인 유대교가 은혜와 행위 중 어느 하나만을 구원에 이르는 길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 P262

(에스라4서를 제외하면) 구원은 언약에서 체현(體現)되어 늘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 P262

그러나 언약 조문은 순종을 요구한다. 우리는 쿰란(사해 사본)에서 순종하라는 요구와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을 믿는 믿음이 함께 나타남을 특히 분명하게 목격한다. - P262

이는 쿰란이 이 두 가지 점을 두드러지게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팔레스타인 유대교 전체에서 대체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 P262

하나님과 맺은 경건한 관계의 중요성이 이 집회서 저자의 주 관심사라는 주장은 아무도 시비할 수 없다. - P276

그러나 이 책의 논지,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말하는 주제는 지혜와 율법의 변증법(dialectic) 속에 자리한 것으로 보인다. - P276

벤 시락은 (모든 사람이 원하는) 지혜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세상의 선생에게서 지혜를 구하지 말고 오히려 모세 언약을 지켜야[observe] 한다고 주장한다. - P276

이런 주장은 요한복음의 논지, 곧 주변 문화들이 하나같이 동의하는 욕구와 가치(진리, 빛 따위)가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되었다는 논지와 비교해 볼 수 있다. - P276

이처럼 "보편주의"와 "특수주의"가 실상 균형을 이루고 있지도 않고 긴장 관계에 있지도 않다. - P276

지혜와 토라의 관계는 변증법적이며,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에 복종하지 않는다. - P276

지혜는 선하며 추구해야 할 것이다. 토라 안에서 지혜가 구현된다(embodied in the Torah). - P276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모세의 계명에 순종하는자는 지혜로울 것이다. - P276

올바른 행위의 내용은 평범한 이도 아는 지혜 전통과 긴밀하게 결합해 있으나, 벤 시락은 이런 내용이 토라와 일치하며 토라 안에 구현되어 있다고 밝힌다. - P276

벤 시락은 지혜 전통의 가치를 보존하면서도 지혜를 이스라엘이 선택받음과 이스라엘이 모세를 통해 받은 하나님의 율법이라는 틀 안에 놓고 다루는 생산적인 신학적 조화를 추구한다. -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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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완전하고 참된 언약을 에세네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계시하실 때 도구로 사용하셨던 이들이 누구이든, 에세네파의 언약과 이스라엘이 받아들인 다른 언약을 구분해주는 "감춰진 것들"과 율법들이 무엇이든, 오로지 에세네파의 언약만이 참된 언약이요 "감춰진 것들"을 알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이들은 모두 언약 밖에 이들이라는 (따라서 결국은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 밖에 있는 이들이라는) 것이 에세네파의 으뜸가는 교의[tenet]임은 분명하다. - P233

사해 사본이 말하는 "예정 교리"는 자유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보다 오히려 이 언약도들이 선택받은 이유가 뭔가라는 질문에 제시한 대답으로 보는 게 가장 좋다. - P244

선택에 관한 에세네파의 진술을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이런 진술과 유대교 전체가 선택에 관하여 갖고 있던 견해들의 관계를 아는 것이다. - P244

에세네파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닌 언약에 특별한 계시가 들어있다고 보았다. - P245

이 때문에 이들은 하나님이 당신 주도 아래 은혜를 베푸사 당신의 통찰을 받을 자와 받지 못할 자를 결정하신다는 점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으며, 사해사본[곧 에세네파]이 팔레스타인 유대교의 다른 분파와 달리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하나님이 각 개인의 운명을 결정하신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도 결국 그 때문이다. - P245

에세네파 사람들이 생각했던 선택 개념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선택받았다는 개념이라기보다 개개인이 선택받았다는 개념이다. - P245

에세네파는 에세네파 밖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파멸을 맞이할 운명에 처한 죄인으로 여긴다. 나아가, 사람이 날 때부터 이 에세네파에 속할 수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 P245

에세네파가 요구했던 자유의지에 따른 행동은 두 가지, 곧 참회와 언약에 헌신함이라는 요소가 모두 들어있는 행위다. - P246

이 때문에 에세네파는 다른 무엇보다도 "죄악에서 돌아선 자들"이라 불렸으며, 에세네파 언약은 "참회의 언약"이라 불렸다.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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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 담고 있는 언약을 받아들인 자는 하나님이 언약과 연계하여 수여하신 계명들에 순종할 의무도 받아들인다.. - P215

언약을 받아들이고 언약 안에 머무는 자는 "의롭다." - P215

따라서 "의롭다"는 칭호는 하나님께 순종할 뿐 아니라 "내세에 분깃을" 가진 자에게 적용되지만,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가 자기 힘으로[공로로] 내세의 분깃을 얻는 것은[사들인 것은] 아니다 - P215

토라를 연구하는 목적은 토라를 주신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으려 함이요, 할라코트를 지킴은 하나님이 임재하셨다는 느낌을 일깨워준다. - P218

멀리 계신 하나님을 끌어내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토라를 "연구"하고 "행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 P219

그러나 하나님이 가까이 계신다고 느끼는 사람은 선한 마음으로 토라를 "연구"하고 "행할" 수 있다. - P219

그는 그의 아버지 뜻을 행하고, 그의 모든 행동은 하나님이 임재하셨다는 느낌을 강화해준다. 말 그대로 하나님을 일상생활에서 거듭 만나는 셈이다. - P219

우리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이유를 둘러싼 논쟁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셨다는 확신이 중심에 있다는 결론을 끌어낸다. - P223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가를 둘러싼 논쟁은 순종하는 데 관심이 있음을 드러내 보여준다. - P223

더군다나, 순종하는 데 보이는 관심을 연구해보면, 이 관심은 하나님이 율법을 함유한 언약에 신실하실 것을 믿고 의지하는 태도를 보여주지, 어떻게 하면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호의를 얻을지 배우는 일에 불안 섞인 관심을 보이는 태도를 보여주지 않는다. - P223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모든 신실함 구성원들에게 -순종을 통해 그리고 언약이 제공하는 속죄 수단, 그 중에서도 특히 참회를 활용하여 언약 속에서 자신들이 가진 지위를 유지하는 모든 이들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시리라고 믿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P224

우리는 널리 퍼져 있고 펼쳐져 있는 종교 패턴을 랍비 문헌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결론짓는다. - P224

이 패턴은 선택과 속죄를 그 기초로 삼고 있다. - P224

하나님이 선택과 관련하여 이 계명을 주셨으며, 이 계명에 순종하는 것을, 혹은 범죄를 속하고 참회하는 것을 언약 공동체 안에 남아있기 위한 조건으로 예상했다고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종교를 가장 잘 나타내는 명칭이 "언약적 율법주의"[covenantal nomism]다. - P224

우리는 랍비 문헌이 말하는 언약 개념에 특히 주목해야 한다. - P224

언약은, 특히 하나님 쪽의 의무는, 직접 논의 대상으로 삼기보다 그를 전제하고 넘어갈 때가 많지만, 인간 쪽의 의무를 논하는 할라카의 존재 자체는 하나님 쪽 의무를 당연히 전제한 것이지, 사람들이 종종 주장하는 것처럼 잊어버리거나 무시한 것이 아님을 가장 먼저 일러준다. - P224

랍비 종교는 사람 하나하나의 개별성을 존중하는 종교였지만, 동시에 이런 개인들이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집단성을 존중한 종교이기도 하다. - P226

우리가 논한 종교 패턴은, 랍비들이 집단 차원과 개인 차원의 보상과 형벌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서 훨씬 더 나아가, 종교의 이런 개인 차원과 집단 차원이 어떻게 결합되었는가를 생생히 보여준다. - P226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는 한 개인의 자리가 그 개인이 그 그룹의 구성원이 됨으로써 완성된다는 것을 보았다.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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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설은 참회하고 대속죄일을 지킴과 같은 것으로 언약 안에 머물겠다는 의도를 표명한 모든 이스라엘 사람 하나하나는 자신이 지은 모든 범죄를 용서받으리라는 것이다. - P192

하나님께 돌아가고자 참회하고 속죄함을 이야기하는 본문이 랍비 문헌 곳곳에서 등장하며, 이런 본문들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모든 구성원이 맺은 언약 관계를 전제한다. - P192

우리는 개인을 다룰 때, 그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에 속한 자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 P192

자비와 정의는 실제로 충돌하지 않으며, 행위에 따른 엄격한 보상과 형벌이 선택과 속죄를 대체하는 구원론도 아니다. - P193

조상의 행위는 분명 그 자손에게 혜택을 준다. - P213

그 행위 때문에, 하나님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에 선행을 베푸시며 범죄에 따른 처벌을 늦추시기 때문이다. - P214

의로운 동시대인들이 있으면 모든 이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 P214

하나님이 이 의인들 때문에 벌을 받아도 싼 세상을 처벌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 P214

나아가, 한 사람의 선행은 그 자신에게도 혜택을 준다. - P214

하나님은 순종에 신실히 보상하시기 때문이다. - P214

하지만 이 가운데 어느 것도 공로의 이전(移轉)이나, 공로로 범과를 상계한다는 견해나, 실제로 "공로 교리"라 부르는 것이 적절한 어떤 가르침에 해당하지 않는다. - P214

유일한 "교리"는 하나님이 신실하게 보상하시고 처벌하신다는 것이다.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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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비 가운데 널리 퍼져있는 견해는 이렇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그분의 언약을 부인함으로써 내세에 얻을 분깃을 부인하지 않는 한, 내세에 분깃을 갖고 있다. - P174

언약 안에서 저지른 모든 죄는, 그 죄질이 얼마나 무거운가에 상관없이, 죄를 지은 자가 범죄를 속함으로써[죗값을 치름으로써], 특히 범죄를 참회함으로써 언약을 지키려는 것이 자신의 기본 의도였음을 제시한다면 용서를 받을 수 있다. - P174

하나님은 하나님과 그분의 언약을 일부러 거부하려는 의도를 제외한 모든 범죄를 속할 수단을 정해주셨다. - P176

즉 언약 안에 있는 자들은, "멍에를 벗어버림으로써" 그들 자신을 언약에서 제거하지 않는 한, (내세에 받을 분깃을 포함하여) 언약에 안에 머물고 언약에 따른 약속들을 받을 것이다. - P176

사람의 범죄가 아무리 많아도, 그 사람이 참회하고 다른 적절한 속죄 행위를 함으로써 언약 안에 머물겠다는 의도를 표명하는 한, 그 범죄를 용서받을 길을 제공하셨다. - P176

하나님의 정의. 하나님이 정의로우신데, 사람이 죄를 짓는다면, 그 범죄에 아무런 죗값을 요구하지 않기는 불가능하다. - P184

제사는 물론이엥 심지어 돈으로 지불하는 속전도 속죄를 가져올 수 있으나, 고난은 더 효력이 강하며 더 중대한 죄를 속한다. - P184

고난은 더 큰 희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인이 이 땅에서 그들의 죄에 따른 벌을 받음은 그가 내세에 중단 없는 열락을 누리게 하려 함이다. - P184

랍비 종교(랍비 유대교]는 참회를 "자비"를 얻는 행위[공로]로 본다고 생각하는 견해의 잘못된 점은 랍비 종교의 근본 기초, 곧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셨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 P187

참회와 용서라는 주제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내세에 분깃을 갖고 있다"는 이해에 기초한 더 큰 구조 안에서 작동한다. 분명 이 견해는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이해를 그 기초로 삼는다. - P187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뒤에는 참회가 율법이 규정한 모든 제사를 대신했지만, 대속죄일은 유대인의 삶에서 여전히 특별한 자리를 유지했다. - P188

결국 필요한 것은 언약 안에 남아 있으려 함이요, 순종하려 함이다. - P188

참회는 사람이 주도하여 하나님의 자비를 유인하고 얻어내는, 어떤 "지위를 얻는" 행위가 아니다. - P188

참회는 "지위를 유지"하거나 "지위를 회복"하려는 태도로서, 어떤 이가 언약 안에 남아 있으려 한다는 것을 일러준다. - P188

사람은 하나님이 베푸신 자비를 받아들임으로 언약 안에 들어간다. - P188

들어간 이는 그 자비를 계속하여 받아들임으로 언약 안에 머문다. 이것은 범죄를 참회함을 암시한다. - P188

그리스도인과 유대교 신자를 불문하고, 이런 본문들이 "참회하라"는 명령문을 "그러면 하나님이 자비를 베푸실 것이다"라는 서술문 앞에 놓은 것을 "행위로 의롭다하심을 얻음"을 주장하는 종교의 존재를 증명하는 증거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 P189

그런 해석은 그보다 훨씬 전에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언급한 말이 있음을 간과하고 참회가 은혜로 말미암아 수립된 관계를 회복시킬 때 하는 역할을 무시할 때만 비로소 가능하다. - P189

이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적용된 랍비 종교의 전체 패턴을 조망할수 있는 자리에 와 있다(개종자와 의로운 이방인은 아래에서 살펴보겠다). 그 패턴은 이렇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셨고, 이스라엘은 그 선택을 받아들였다. - P189

하나님은 왕이라는 당신의 역할을 따라 이스라엘에게 그들이 최선을 다해 순종해야 할 계명을 주셨다. - P189

순종에는 보상이 주어지고, 불순종에는 형벌이 따른다. - P189

하지만 순종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이 정하신 속죄 수단에 의지하며, 모든 속죄 수단에는 참회가 함께 따라야 한다. - P189

그가 언약 안에 머물려는 욕구를 유지하는 한, 그는 내세에 누릴 생명을 포함하여 하나님의 언약에 따르는 약속들에 분깃을 가진다. - P189

순종하려는 의도와 노력이 언약 안에 머물기 위한 조건을 이루지만, 그 의도와 노력으로 그런 조건을 얻는 것은 아니다.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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