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사람을 실존적 존재로 만든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고통은 사람이 실존적 존재가 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더욱더 실존적 위기의 상황으로 몰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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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기에 인간은 안팎으로 누군가와 공동으로 거주하는 공통의 공간을 필요로 한다. 바깥에서의 공통 공간이 세계라면, 안에서의 공통 공간은 타자로서의 자기 자신과 함께 머무는 내면이다. 그런데 이 ‘공동‘이 붕괴할 때, 복수성의 존재인 인간은 끔찍한 실존적 죽음에 다다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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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라는 철학자는 이를 인간 존재의 근원적 성격인 ‘복수성plurality‘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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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홀로 존재할 수 없다. ‘홀로‘ 존재한는 것이 허락된 것은 신이나 사물이다. 인간人間은 그 말이 의미하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한다. ‘홀로‘라는 단수로 존재할 수 없고 다른 무엇과 함께 그 사이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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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 몸과 마음을 모두 장악하면 눈앞에 다른 타자들은 보이지 않는다. 오직 고통만이 타자이다. 그러나 그 타자와 주체의 자리는 바뀌어 있다. 고통이 주체가 되어 타자가 된 자신을 응시하고 이끌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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