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폐나 동전이 할 수 없는 무언가를 위해 돈을 사용한다. 가령 기분을 달래기 위해서,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마음대로 움직이기 위해서, 존경을 받기 위해서, 그러는 가운데 돈은 원래의 존재가 아닌 그 이상의 존재로 탈바꿈한다.
우리는 왜 이런 끔찍한 우를 범하는 것일까? 이는 재정적인 목표가 아닌 다른 목표를 위해서 돈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돈은 어떤 의미든 지닐 수 있는 신비한 존재이다. 우리는 돈을 정말로 갖고 싶어 목말라하지만 두려워서 갖지 못하는 대상으로 대신한다. 우리가 원하면서도 동시에 경멸하는 그런 존재가 되기도 한다.
PK는 비록 힘들게 몸부림칠 수 있지만 거기 함몰되어 자기를 비관하면 안 된다. 그보다 우리는 우리에게 어떤 책임이 주어졌는지 질문하고 확인해야 한다. 예수님을 존귀히 여기고,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며, 교회를 사랑하고 지지하며, 피해자가 아니라 구속받은 자로서 우리 삶을 열심히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책임이다. 은혜는 여기 우리 모두를 위해 있다.
아버지 혹은 남편의 부재가 일반적인 일이 되어 버리는 건 문제다. 목회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목회자에게는 그런 부재가 자주 있고, 그러면서도 그들은 ‘부르심‘을 핑계로 넘어가려 한다. 이는 지상 최고의 부르심은 가족에 대한 부르심이라는 사실을 무시하는 이중적인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