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성과 경제성의 시각으로 냉정하게 검토하자면 삶이라는 건 대단히 엉성하게 만든 물건이다.
출판 산업이 외판에 의존하다 보니 주객이 전도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출판사들이 좋은 책을 펴내는 일을 게을리 하고 마케팅과 영업에만 신경을 쓰게 된 것이다.
과거제도는 사회의 창조적 역동성을 막았다.
이 제도는 블랙홀처럼 온 나라의 젊음과 재능을 빨아들였다.
철저한 계급사회에서, 시험만 잘 치면 순식간에 기득권 핵심부에 들어설 수 있다는 약속만큼 달콤한 것도 없다.
유능한 청년들이 자기 주변에 있는 중소 규모의 지적, 산업적 프로젝트에서 관심을 거두고 중앙에서 실시하는 시험을 통과하는 데 모든 힘을 쏟았다.
내용이 스타일을 결정해야 한다. 카메라와 스타일은 기록하는 대상과 사태보다 중요해져서는 안 된다.
사과에도 기술이 있다. 있을 것이다. 생각보다 복잡하겠지만, 생각처럼 복잡하지 않은 게 또한 사과의 기술이다. 사과는 단순하다. 잘못한 것을 잘못했다고 하고, 미안한 것을 미안하다고 하면 된다. 그런데도 사과는 늘 어렵다. 뒤늦다. 몰라서 못 하는 일도 있지만 알고도 못 하는 일이 있다.
삶의 작은 비극들을 이겨내고 살아가기란 고되다. 비극들은 뇌 속에 있는 커다란 싱크홀 안으로 푹 빠졌다가 다시 올라오고, 그 사이에서 부풀어 오르기도 한다.
삶의 수렁에 무릎까지 빠져있을 때는 삶이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거기서 헤엄쳐 나오고 싶고, 무언가 착오가 있는 것 같다고 아우성치고 싶을 뿐이다.
질서는 없다. 삶에는 어떤 종류의 질서도 없다. 사건들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것은 없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일련의 파편과 반복과 패턴 형성뿐이다. 이 점에서 언어와 물에는 공통점이 있다.
나는 순례자로 지하에 가지 않았다. 어떤 신비한 임무를 띠고 탐험을 시작하지 않았고 신성한 지혜를 되찾으려 길을 나서지 않았다.
그러나 어둠 속을 뒤지며, 세상이 내 주변에서 모습을 바꾸어 거대한 종이접기 작품처럼 접히고 비틀리고 펼쳐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현실이 단단히 고정된 것이 아니라 비어 있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