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는 언제나 사실에 근거해야 하고 사실에 근접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언제나 해석되어야만 이야기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해석은 상상과 생각의 영역 안에 있는 것이지요.

상상, 해석, 재현, 변화는 제가 여러분에게 뉴스를 이해하는 주요한 열쇠말로 제안하는 것입니다.

뉴스는 사실을 재현하지만 온전히 재현하지 못하기에 해석되어야 하고, 모두가 비슷하게 각자의 뉴스 해석을 공유할 것이라고 상상되어야 합니다.

뉴스는 우리 사회를 그리는 주요한 상수이며, 우리 사회를 변화하는 주요한 변수라 할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 권력을 더 많이 가진 이들이 언론, 법, 미디어, 교육 등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할 수 있는 수단을 더 많이 가지거나 더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그들의 이데올로기가 우리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됩니다. 여론이 되고 그에 맞추어 현실이 구성되며 변화합니다.

이데올로기는 사회를 바꾸고, 바뀐 사회는 이데올로기를 더욱 강화하는 되먹임이 발생하지요.

이 와중에 사회적 약자의 이익과 그들의 이데올로기는 눈 밖에 나거나, 우리의 현실 속에서 살라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떤 경우 사회적 약자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다른 집단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현실과 마주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하고요.

강북에 살며 강남을 동경하거나, 여성이면서도 남성에 의존하는 여성을 당연시하고, 노동자이면서도 다른 노동자의 파억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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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산다는 건 내 삶이 온전히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의미.

원하지 않은 때에 바란 적 없는 방식으로 상대가 불쑥 내 영역에 들어오는 게 일상이다.

그런데 그때 자신의 것을 내어주면 알게 된다. 사는 건 어떤 지점을 향해 바삐 달려가는 게 아니라 매 순간을 사는 것임을.

함께일 때 좀 돌아가게 될지언정 혼자라면 가보지 못할 세상에 닿기도 하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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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은 생존하는 데는 중요한 감정일지 몰라도, 진실을 대면하기에는 방해가 되는 감정입니다.

분노나 슬픔 등 다른 부정적인 감정에 비해 사람들이 유독 감추고 싶어 하는 감정이기도 하고요.

페미니즘 교육은 그저 질문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표준이 아닌 약자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연습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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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민들과 더불어 그들에게 합류한 무리가 구별되었다는 것은 공동체의 경계선을 강조했다.

그런 경계선은 누가 유월절을 경축할 자격이 있는지를 따지는 방식의 제의적 순수성으로 표현되었다.

공동체를 적절히 규정하는 것은 생존 여부를 결정하는 일이었다.

자신들의 고유한 경계선을 분명히 갖지 못한 집단은 주변의 더 큰 문화세력 안으로 흡수되어 자기 정체성을 상실하곤 했다.

하나님은 순수한 예배를 요구하셨고 그것을 더럽히는 자를 처벌하셨다.

포로기가 지나면서 제사장들의 가르침과 페르시아 법령이 왕정의 권위를 대치했고, 이제 율법은 성전으로부터 독립된 책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이제 서기관들은 최소한 이론상으로는 율법책을 펴들고 낭송한 후 제사장들이 싫어할 방식으로 해석을 내릴 수 있게 되었으니, 이스라엘 왕정의 부재로 인해 성전의 내부적 힘이 증가할 바로 그 시기에 다른 편에서는 토라의 해석에 바탕을 둔 새로운 권력의 중심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런 새로운 상황은 후대에 바리새파 운동과 예수 운동을 위한 길을 터주었다.

기원전 175년에 셀레우코스의 왕좌에 오른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가 그리스 문화를 유대에 강제하고 유대인의 종교를 금하는 치명적 실책을 저지른다.

유대인들은 이미 수백 년간 외세의 지배를 견뎌냈지만, 이것만큼은 너무 지나친 일이었다.

토라를 불법화하는 것은 한 민족으로서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짓밟고 그들이 하나님과 맺은 관계를 박탈하는 행위였다.

유대인들은 훗날 마카비로 불리게 되는 한 제사장 가문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킨다.

이후 수십 년간 계속된 전쟁에서 유대인들은 먼저 종교적 자유를 얻은 다음 정치적 독립을 이루고 마침내 국가를 되찾게 된다.

그러나 그 이후에 들이닥친 정복자는 너무나 강했다. 기원전 63년에 로마가 예루살렘을 정복함으로써 유대인의 독립은 종국을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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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쪽을 택하든 아쉬움은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걸까. 만일 그러하다면 때마다의 아쉬움에 마음을 오래 내어주지 않아도, 흘깃 쳐다보고는 내버려두어도 괜찮을 것이다.

저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상황을 인지하고 감응하기에 상대는 내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고 나아가 과민 반응으로 여길 수 있다.

하지만 그럴 때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그의 입장에 지나지 않음을 기억해야 하라리.

엄밀히 말해 내가 이렇게 느끼는 데에 다른 사람의 동의나 허락은 필요치 않다.

내 감정은 타당성을 가리려 들거나 가치 판단을 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슬프구나, 속상하구나, 기분이 나쁘면 기분이 나쁜 거다.

슬프면 슬퍼하고, 속상하면 속상해하고, 기분이 나쁘면 기분 나빠하면 된다. 쉬운 일이다. 그런데 때로 쉬운 일이 가장 어렵다.

여러 특성을 지닌 이대로가 나이고 그게 내 개성임을. 사는 동안 단점이라 여기는 특성을 모조리 고쳐 완전무결한 사람이라도 되어야 하는 게 아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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