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심할 사항이 있다. 누구나 그렇듯 당신도 스스로 이성적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성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능력이 아니다.이성은 훈련과 연습을 통해 습득하는 능력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끊임없이 당신의 생각과 의사 결정에 침투하는 감정들을 살펴보는 것이다. 자문하는 연습을 하라.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나고 분한 마음이 드는가? 관심을 얻고 싶은 이 끝없는 갈증은 대체 어디서 오는가?

일반적으로 말해서 애초에 우리가 길을 잘못 들게 되는, 그래서 잘못된 결정이나 오판을 저지르게 되는 원인은 따로 있다. 바로 우리의 뿌리 깊은 ‘비이성적 성향‘이다. 이는 우리 마음에서 정확히 감정이 지배하는 부분 말이다. 이 성향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말하자면 맹점 같은 것이랄까.

진보나 기술이 우리의 본성을 바꿔놓지는 않았다. 기술과 진보는 그저 감정의 형태와 그에 따른 비이성적 행동의 유형을 바꿔놓았을 뿐이다.

우리의 사고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는 약한 감정은 우리 자신의 충동에서 나온다. 예컨대 즐겁고 편안한 생각을 하고 싶은 욕구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특정한 순간에 찾아와 폭발적으로 고조되는 강한 감정은 보통 외부의 무언가에 의해 촉발된다.

‘건강한 자기도취자‘가 되기 위해 변신을 시작해야 한다. 건강한 자기도취자는 더 강인하고 회복력 있는 자아 개념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늘 눈금의 가장 높은 곳 근처에 머문다. 이들은 상처를 입거나 모욕을 당해도 남들보다 빨리 회복한다.

남들의 인정도 별로 필요하지 않다. 살면서 언젠가는 자신에게도 한계가 있고 단점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런 단점을 웃어넘길 수 있으며 모욕적인 말도 굳이 인신공격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큰 그림에서 볼 때 여러모로 자기 자신을 인정하기 때문에 이들의 자기애는 더 현실적이고 온전하다. 이렇게 내면이 단단하기 때문에 이들은 더 쉽게, 더 자주 외부로 관심을 돌린다.

공감은 단순한 마음의 상태가 아니다. 공감은 타인과 관계를 맺는 새로운 방식이다.

가장 위험한 것은 내가 정말로 남들을 이해하고 있다고 늘 생각하며 지내는 것이다.

우리는 내가 남들을 순식간에 판단해 어느 한 유형에 집어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자세는 오히려 내가 아주 무지하며 타고난 나의 편향 때문에 사람을 부정확하게 판단할 거라고 가정하는 태도다.

우리 주변 사람들은 각자의 목적에 맞는 가면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당신은 그 가면을 현실로 오인한다.

사람을 보자마자 판단하는 태도를 이제는 그만 포기하라. 마음을 열고 사람을 새로운 시선에서 보라.

무언가가 있고 없고는 우리에게 원초적 차원에서 영향을 준다.

무언가가 너무 많으면 숨이 막히고, 약간 모자라면 관심이 간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소유하고 싶은 끊임없는 욕망은 인간만이 가진 두드러진 특징이다.

그 욕망의 대상은 우리의 판타지에 투영된다. 당신 주위에 약간의 미스터리를 만들어내라.

사람들이 당신이 다시 오길 바라고 당신을 소유하고 싶도록 ‘전략적 부재‘를 이용하라.

상대의 삶에서 가장 부족한 것, 그가 가지면 안 되는 것을 그의 눈 앞에 들고 흔들어라. 그러면 상대는 미친 듯이 그것을 갈망할 것이다.

언제나 옆집 잔디가 더 푸르게 보이는 법이다. 당신이 처한 환경, 당신의 운명을 적극 끌어 안아 당신 안의 약점을 극복하라.

사람들을 평가할 때는 시야의 넓고 좁음을 기준으로 삼아라.

자기 행동의 결과를 보지 못하고, 계속해서 생각 없는 반응을 내놓는 데 그치는 사람과는 엮이지 마라.

그런 사람은 당신에게도 그런 기운을 전염시킨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사건들을 좌우하는 더 큰 흐름을 주시하라.

장기적 목표를 시야에서 놓치지 마라. 시각을 넓히면 그 어떤 목표든 이룰 수 있는 인내심과 명료한 관점이 생길 것이다.

우리는 현재로부터 ‘거리‘를 두고, 문제의 근원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상황의 전체 맥락을 더 ‘넓게‘ 바라보고, 미래를 더 ‘길게‘ 내다보아야 한다. 우리가 한 행동의 결과와 나의 장기적 우선순위까지 고려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현재를 즐기고 지나가는 기쁨을 만끽하라. 당신은 수도승이 아니다.

현재의 흐름과 단절되지 말고, 삶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인식하라. 그러나 장기적 목표에 도달하고 역경을 극복하는 것에서 더 큰 기쁨을 끌어내라. 이렇게 시간과 더 큰 관계를 맺는 것은 직접적인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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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는 처음부터 ‘경‘經이 아니었다. 그것은 언어의 궁극적인 신뢰성과 고정된 정의의 가능성에 대한 의심, 절대적이고 불변적인 진리와 규칙의 부인, 성인의 마음속에 의미와 권위를 위치지우기, 더 넓은 진리를 시사하는 듯한 구체적인 명제들로 이루어진 ‘지혜의 덩어리‘였을 뿐이다. 여기에 주석이 덧붙어야 비로소 그것은 경이 된다. 이는 바로 "경전과 주석의 상호의존"이다.

정치 사상이라는 텍스트는 정치적 시공간이라는 콘텍스트에서 만들어지며, 이는 거의 일대일로 대응한다. 이를 좀더 포괄적으로 말한다면 삶의 조건의 변화에 정치적인 것의 개념(또는 제일 원리)의 변화가 대응한다는 것이며, 이를 세부적인 질문으로 다시 만든다면 ‘정치적 공간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그리고 시민-참여자의 열정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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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에게 진실을 보는 눈은 없단다. 그들이 가진 것은 눈앞에 보이는 걸 보는 눈이지.

그리고 진실을 보는 눈을 가진 현명한 사람들도 대개 주변인들의 반응을 좇아 눈에 보이는 것을 믿게 된단다.

그러니 사람들이 결국 알아줄 것이라느니, 세상이 결국 모든 것을 풀어줄 것이라느니 하는 환상을 품지 말거라.

비록 너의 잘못이 없더라도 사람들의 비난과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면, 그게 잘못인 거야.

그렇기에 네가 스스로 그 오해를 풀어야 한단다. 사람들의 눈에 보이게 문제를 풀어야 해.

나대지 말거라. 자신의 흥과 욕망에 도취되어 불타는 그에게 모든 사람의 관심이 향하게 내버려두거라.

그저 머지않아 날아올 비수가 그에게 향하는 것을 바라보거라. 그리고 너는 그냥 네가 뜻한 바를 소리 없이 이루거라.

삶의 짐이 없어질 것이라는 꿈을 버리거라. 그건 헛된 기대이니까. 짐의 무게가 그나마 적게 느껴질 때, 흐르는 땀을 닦거라. 또 다시 짐이 무거워질테니까.

상대에 대한 배려는 문제 대부분을 해결한단다.

누군가와 문제가 생겼다면, 네가 그의 자존심에 생채기를 내지 않았는지 돌아보거라.

네가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었다면 이에 대한 사과만으로도 많은 문제가 해결된단다.

네가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않았더라도, 상대에게 배려하며 문제에 다가선다면,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야.

다른 사람들에게 모질게 대하지 말거라. 둥글둥글하게 웃으며 지내는 거야.

어차피 같은 세대로 태어나서 힘든 세상 살아가는 또 다른 사람일 뿐이거든.

미리 마음에 벽을 쌓지 말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거라. 시간이 지나면서 너와 잘 맞으면 좀 더 다가서고, 너와 잘 맞지 않으면 그때 멀리해도 늦지 않아.

쓸데없는 노력은 하지 마라. 네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인내하며 해라.

독화살을 맞은 와중에 독화살을 어디서, 누가, 왜 쏘았는지 생각하고 있다가는 죽기 딱 좋다.

독화살을 맞았을 때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독화살을 먼저 뽑아내고, 치료하는 거야. 이것이 어리석음과 현명함의 차이란다.

문제를 냉정하게 바라보고, 참을 줄 알아야 해.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자에 대한 복수는 문제를 해결한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단다.

모르는데 아는 척하지 말거라. 가난한데 부자인 척하지 말거라. 매사에 척하지 말거라.

척하는 행동은 거짓일 뿐 아니라, 너 자신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힌단다. 순간의 만족과 안도를 줄진 몰라도, 다가오는 자존심에 대한 상처에 앞서 찾아온 사탕발림일 뿐이지.

너의 부족함과 너 자신과 남을 속인 행동은 네 자존심에 큰 생채기를 낼 거야.

너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줘라. 너는 아빠의 아들이고, 아빠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아빠에게 너는 가장 진귀한 보석이다.

착하게 사는 것은 좋다. 착한 사람이라고 인정받는 것은 좋지. 하지만 호구가 되지는 말거라. 만만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돼.

그러니 천칭을 바로 잡거라. 남에게 인정받기를 어느 정도 포기하거라. 일부러 사서 욕을 먹을 때도 필요해. 그 외의 방법은 없단다.

세상에는 미친 인간이 정말 많단다. 그리고 미치진 않았어도 어리석은 사람이 정말 많지. 또한 어리석진 않아도 참되지 못한 사람이 정말 많고.

세상 사람 대부분은 미치거나 어리석거나 참되지 못한 이들이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을 만나도 놀라거나 당혹해하지 마라.

마음이 쉬고 싶어 하는데, 억지로 일하지 말거라. 마음이 놀고 싶어 하는데, 억지로 공부하지 말거라.

계속 억눌린 마음은 언젠가 터져버리게 마련이다. 그때가 되면 너 자신의 자존심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생기고, 삶을 바라보는 너의 눈이 흐릿해지며, 삶에서 추구하는 모든 것이 그 길을 잃어버리게 된단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듯 너의 마음을 달래고, 감싸 안고, 어루만지거라. 세상에서 네가 가장 사랑해줘야 할 사람은 너 자신이다.

사소한 기쁨들을 만들어라. 너의 인생이 그것들로 가득 찰 때까지 사소한 기쁨들을 만들어라.

당황하지 말거라. 조바심을 내지 말거라. 침착함과 이성을 잃지 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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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가 가르치는 것은, 아버지의 신비는 아들을 통해서 역사적으로 계시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들을 통한 이런 계시는 오직 성령을 통해서 인간이 인식할 수 잇다는 것입니다.

성서는 이른바 세 개의 신적인 위격을 서로 나란히 옆에 놓는 것nebeneinander이 아니라, 오히려 차례차례 연달아hintereinander 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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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에는, 책을 읽고 있는 자신과 그러한 자신을 바라보는 스스로를 분리하는, 이른바 ‘자아의 분열‘을 가끔씩 시도해야만 한다.

책에 지나치게 몰두하기보다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전체와 부분을 동시에 취한다‘고 할 수 있겠는데 사실 ‘동시에‘ 하는 일은 어렵다.

몰두해서 책을 읽은 다음에 한 걸음 물러서서 전체를 훑어보면서, 읽을 때는 몰두했지만 다시 살펴보니 그리 중요하지 않은 듯한 부분들을 검토하면서 전체적 조망을 갖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책 읽는 힘이 늘어나는 것은 책‘만‘ 많이 읽는다고 해서 가능하지 않다.

책 읽는 자신이 책 이외의 것에서 쌓아 올린 경험도 중요하다. 인간사에 대한 깊은 고뇌와 통찰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험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지만 책 읽는 힘을 기르기 위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그리고 꼭 해야 하는 것은, 읽은 것을 정리하고 글로 써 보고 여러 사람 앞에서든 단 한 사람 앞에서든 자신이 읽은 바를 말해 보는 것이다.

또한 책 읽는 힘이 늘어났음을 확인해 보는 방법 중의 하나는 예전에 읽었던 책을 예전과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다시 읽어 보는 것이다.

고전으로 알려진 책들은 그 안에 많은 해석의 여지와 이야기가 들어 있으므로 ‘다시 읽기‘를 통해 책 읽는 자신의 현재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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