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많은 유대인들이 기대했던 방식으로 오셨는데, 그것은 곧 두 번째 신적 존재가 인간으로 성육신한 것이다. - P30

당시에 문제는 ‘신적 메시아가 오는 것인가?’가 아니라, 단지 ‘나사렛에서 온 이 목수가 우리가 기대하고 있는 그분[the one]이 맞는가?’였다. - P30

나는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신적 메시아- 역시 유대인임을 보게 되길 바란다. - P35

기독론 혹은 그리스도에 대한 초기 개념들 또한 유대적인 이야기이며 -훨씬 이후까지도- 이는 결코 반-유대적인[anti-Jewish] 이야기가 아니다. - P35

예수 시대 많은 이스라엘인들은 메시아가 신[적 존재]이면서도, 인간의 형태로 이 땅에 올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 P35

따라서 [유대인 안에] 기본적으로 내재하는 생각들로부터 삼위일체와 성육신 개념 모두가 -예수가 태어난 바로 그 세계 안에서, 또한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서 예수에 관해 처음으로 기록된 세계 안에서- 자라날 수 있었다. - P35

적어도 법률적인 관점에서 보면 유대교와 기독교는 4세기에 완전히 구별된 종교가 된다. - P46

그 이전에는 누구도 (물론 하나님은 제외하고) 사람들에게, 그들이 유대인인지 아닌지, 혹 기독교인인지 아닌지를 말할 권위를 갖고 있지 않았다. - P46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둘 모두를 택했다. 예수 시대에, 예수를 따랐던 사람들은 모두-심지어 예수께서 하나님이심을 믿었던 사람들조차-유대인이었다! - P46

가족 유사성이라는 모델은 초기 기독교까지 포함하는 유대교를 설명하기에 적절해 보인다. - P56

이처럼 ‘유대교’에 대한 확장된 이해 방식은 그 이해의 범위 안에 가장 초기의 복음서 문학도 온전히 포함시키는데, 이는 곧 가장 초기의 -또 어떤 면에선- 가장 근본적이라 할 수 있는 기독교 텍스트를 유대적인 것으로 되돌리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 P56

"하나님의 아들"은 이스라엘의 왕, 곧 다윗의 왕위에 앉은 현세의 왕을 가리키고, "사람의 아들"은 인간적인 존재가 아닌 천상의 존재를 의미한다는 것을 보이고자 한다. - P62

"사람의 아들"이라는 칭호는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를 지칭하는 반면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는 메시아 왕으로서의 지위를 가리킨다. - P62

이스라엘이 기다려왔던 미래의 신적 왕 역시 그 어디에서도 이스라엘의 하나님과의 특별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암시되지 않는다. - P64

히브리성경에 나타난 마쉬아흐라는 용어는 더도 덜도 아닌, 그저 역사적으로 실제 이스라엘을 통치했던 인간 왕을 의미한다. - P64

히브리 성경을 통틀어, 백성들이 구했던 것은 여전히, 현세의 실제적인 왕이었다. - P68

그들은 포로로 끌려가기 이전처럼, 다윗의 가문을 회복시켜줄 현세의 왕이 나타나기를 기도했다. - P68

그럼에도 부재한 왕의 자리를 위한 기도, 다윗 가문에서 나타날 새로운 왕을 위한 기도에는, 하나님께서 종말에 보내실 새로운 다윗 왕, 약속된 구원자 개념이 심겨져 있다. 그리고 이 개념은 제2성전기에 성취되었다. - P68

마가복음 1:1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다"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란 다윗 가문의 왕을 가리키는 옛 칭호로서, 인간 메시아를 의미한다. 하지만 마가복음 2장에서 예수를 가리키는 "사람의 아들"은 그리스도의 신적 본성을 의미한다. - P68

어느 경우이든, 우리는 기대되었던 구원자가 이중적인 신이자 신-인 연합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 P72

따라서 예수 이전의 메시아/그리스도에 대한 오래된 개념들과, 예수께서 자신에 대하여 주장하셨던 개념들 사이의 관계는 실제로 상당히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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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확신 세계기독교고전 40
헤르만 바빙크 지음, 임경근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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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더욱 불확실하다. 우리의 미래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변화도. 전 세계가 바이러스로 인해 요동치고 있다.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등 모든 영역에 불확실성이 가중된다. 이는 우리의 종교, 세계관이나 학문에도 동일하다. 급변하는 세상 가운데 적실한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 종교나 철학, 학문은 우리의 삶에 큰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1854~1921년)의 『믿음의 확신』이 출간되었다. 바빙크는 네덜란드 정통 개혁주의 신학자로  방대한『개혁교의학』으로 더욱 유명하다. 그는 줄곧 자신의 학문보다는 오직 신앙이 자신을 구원함을 강조했었다. 그렇기에 『믿음의 확신』은 그러한 그의 신앙 고백의 측면에서 매우 의미 있는 책일 것이다. 1901년에 저술한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 해설과 작가의 생애, 해제 등을 제하면 130여 쪽 분량의 얇은 책이다. 


1장에서 바빙크는 객관성과 보편성이 사라지고 주체성이 강조된 시대의 변화로 인해 확신 또한 상실되었음을 짧게 언급한다. 2장에서는 '확신'의 개념을 정리한다. '믿음의 확신'은 학문적이고 신학적이지만 실천적이고 신앙적으로 더욱 중요함을 강조한다. 저자는 구원의 확신은 이 땅에서 찾을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고 한다. 즉 상속받거나,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과학은 매우 유용하다. 하지만 근원적인 질문들(우리의 기원, 본질, 종착지 등)에 답을 줄 수 없다. 반대로 신학은 영혼의 문제에 대한 답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 


확신의 토대는 무엇인가? 우리가 믿음의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진리의 말씀이다. 즉 계시다. 과학이나 철학은 변한다. 과학의 방식은 가장 깊은 확신을 주지 못한다. 비록 과학적 합리성이 보편적 토대를 줄 수 있겠지만, 각 개인의 영혼에 깊은 영향을 줄 수는 없다. 그렇기에 믿음의 확신이 더욱 중요하다. 믿음의 확신은 우리의 실존에 깊게 뿌리내린다. 참된 믿음의 확신 가운데 우리는 자유와 안식을 누린다.


3장 '확신에 대한 탐구'에서는 기독교를 제외한 다른 종교나 철학에서의 확신의 문제를 짧게 다룬다. 다음으로 가톨릭 교회와 종교개혁, 정통주의와 경건주의에서의 확신을 다룬다. 이후에 경건주의의 반발로서 생겼던 운동에서의 확신 또한 다룬다. 저자는 종교개혁을 제외하고는 이러한 운동들이 오히려 더욱 큰 불확신을 주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운동들은 기독교적 비전을 협소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전능한 하나님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1,2,3장을 읽으면서 질문을 던질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확신에 이를 수 있는가?" 저자는 마치 우리가 그동안 기울였던 모든 신앙적 노력들과 믿음의 확신은 관계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듯하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래서 어떻게 하란 말이야?"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저자가 반대했던 많은 전통들 중에 우리의 모습이 비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저자는 자연스럽게 이 책의 핵심인 4장으로 독자를 이끈다.


4장에서 저자는 다시금 과학과 종교의 차이를 말하며 시작한다. 즉 인간적 확신보다 신적 확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계시는 종교의 전제며 토대다.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 안에서만 온전한 안식을 누릴 수 있다. "성경의 계시는 생명이다(93)." 저자는 믿음의 확신에 강력한 토대로 계시를 온전함을 강조한다. 결국 믿음의 확신에 근거는 우리의 경험이나 과학적 증명이 아니라 온전한 계시라는 것이다. 믿음의 확신은 우리의 신앙의 종착지가 아니다. 믿음의 확신은 우리 신앙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믿음과 소망의 토대 위에, 은혜의 약속 위에 있음을 확신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결코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기 때문이다.


확실성이 사라진 세상 한가운데서 우리는 불안과 염려, 두려움으로 살아간다. 이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미국의 성서학자 피터 엔즈(Peter Enns)는 『확신의 죄』(비아토르, 2018)에서 '확신' 자체를 강요하는 것이 오히려 성경적이지 않음을 주장했다. 그는 '믿음의 내용'보다 '믿음의 대상'에 집중하기를 강조한다. 하나님에 대한 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를 신뢰하라는 것이다. 그러한 그의 통찰과 함께 바빙크의 이 책을 충분히 숙고한다면 우리의 신앙과 영혼에 큰 버팀목을 세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18세기 중반 이후에 이러한 상황은 점차 변화되었다. 행위 주체(subject)들이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의 진정한 권리들, 또는 자신에게 주어져 있다고 여긴 권리들을 알게 되었고, 그들을 과거에 묶어두는 모든 속박들을 서서히 깨뜨렸다. 행위 주체들은 과거에신성하다고 여겨진 모든 것으로부터 자신을 그야말로 무제한적으로 해방시켰다 - P14

우리는 어떻게 해야 우리 양심의 고발들과 죄의 무게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죽음과 심판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이 모든 점에서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확신이다. 우리는 흔히 의식하지 못하지만, 이것은 인간의 영혼의 가장 깊은 갈망이다. - P23

우리에게 존재하는 각각의 기능은 자신이 본성적으로 추구하는 것 속에서 쉼(안식)을 얻는다. 의지는 오직 선에서만 완벽한 쉼을 얻고, 우리의 감각은 아름다운 것들에서 완벽한 쉼을 얻는다. 마찬가지로 지성은 오직 참된 것,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유일한 진리이신 하나님에게서만 쉼을 얻는다 - P32

과학적 확신은 합리성에 의거하기 때문에 믿음의 확신보다 더 보편적인 토대를 지니지만, 개인에게 미치는 힘, 즉 영혼이 믿음 안에서 자신의 대상을 받아들여서 서로 결합되는 힘에 있어서는 후자(믿음의 확신)가 전자(과학적 확신)보다 월등하게 앞선다 - P43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救贖) 밖에서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도 없고 소망도 없이 죽음을 두려워하여 노예상태로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방 세계는 두려움의 목소리만이 아니라 신뢰와 안식의 목소리도 낸다 - P51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 계시를 진정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조차도 언제나 믿음의 확신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흔히 우리는 믿음 대신에 의심을, 변함없는 신뢰 대신에 염려를, 열심과 찬송 대신에 불평을 발견한다. 자신이 그리스도에 참여하고 있음을 확신하고서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의 소망 가운데서 기뻐하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다 - P55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예수의 교회의 살아 있는 지체이고, 영원토록 그럴 것임을 단호하게 확신한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만이 아니라 자신도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순전히 은혜로써 죄 사함을 받았고 하나님에 의해 영원한 의와 구원을 수여받았다는 것을 어린아이처럼 믿는 믿음 가운데서 살아간다.
이 신앙고백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한 음성을 듣는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가 지닌 자유 안에 서 있다. 하나님의 성령은 그의 영과 더불어서 그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언한다. 그는 그것을 믿고,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독립성을 얻었다. 그의 삶은 다른 어떤 피조물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만 묶여 있다. 여기에서 믿음은 이 세상에 속한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발견한다 - P62

믿음은 처음에는 역사적 지식이고, 나중에 신뢰나 사랑에 의해 보완되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처음부터 종교적인 상태, 실천적인 지식, 내 자신에게 적용되는 지식, 하나님이 내게 주신 약속들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 P114

믿음은 위로부터 우리 자신의 본성에 덧씌워진 선물이어서 언제나 우리의 본성에 이질적인 것도 아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인간 간의 올바른 관계가 회복된 것이고, 평범한 자녀가 자기 아버지에 대한 신뢰를 다시 회복하게 된 것이다 - P117

모든 참된 경험과 모든 미덕의 행위들은 믿음의 뿌리가 아니라 열매들이다. 복음의 약속들은 우리가 믿음으로 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든 후에야 우리의 마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우리의 의식 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된다. - P125

구원의 여정은 믿음의 확신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의거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약속들 위에 서 있다. 그의 소망의 토대들은 자기 밖에 있는 결코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기 때문에 확실하고 확고하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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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쉐프 2020-05-25 04: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형님! 짱이에요! ^^ 항상 응원합니다.
 

성경의 계시는 생명이다. 계시는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내용을 지니고 있어서, 사람들을 구원에 이를 만한 지혜가 있게 해주고, 세상으로부터 독립시켜서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해준다. - P93

믿음은 도덕적인 힘을 지닌 행위이고, 최고의 영적인 능력을 지닌 행위다. - P112

믿음은 하나님의 지극히 귀하고 지극히 영광스러운 선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최고의 역사다. - P112

믿음은 보이지 않으시는 분을 보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며,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소망을 두고서, 하나님을 꼭 붙든다. - P113

믿음은 처음에는 역사적 지식이고, 나중에 신뢰나 사랑에 의해 보완되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 P114

믿음은 처음부터 종교적인 상태, 실천적인 지식, 내 자신에게 적용되는 지식, 하나님이 내게 주신 약속들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 P114

그리스도인은 믿음을 통해서 진리에 대한 지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신비들을 한층 더 깊이 꿰뚫어보게 된다. - P116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가 그가 서 있는 단단한 땅이고, 그가 의지하는 반석이며, 그의 사고의 출발점이고, 그의 지식의 원천이며, 그의 삶의 준칙이고, 그의 길에 빛이자 그의 발에 등불이다. - P116

진정한 참된 지식은 그 지식 자체에 관한 모든 의심을 배제한다. - P117

지식은 이성적인 논증이나 자기성찰이나 논리적인 추론을 통해서 그러한 확신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다. - P117

지식이 대상에 비추는 빛은 즉시 반사되어서 지식을 되비추고 모든 어둠을 내쫓는다. - P117

이것은 믿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진정으로 믿음이라고 할 수 있는 믿음은 확신을 수반한다. - P117

믿음은 위로부터 우리 자신의 본성에 덧씌워진 선물이어서 언제나 우리의 본성에 이질적인 것도 아니다. - P117

믿음은 하나님과 인간 간의 올바른 관계가 회복된 것이고, 평범한 자녀가 자기 아버지에 대한 신뢰를 다시 회복하게 된 것이다. - P117

모든 참된 경험과 모든 미덕의 행위들은 믿음의 뿌리가 아니라 열매들이다. - P125

복음의 약속들은 우리가 믿음으로 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든 후에야 우리의 마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우리의 의식 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된다. - P125

구원의 여정은 믿음의 확신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의거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 P129

그런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약속들 위에 서 있다. - P129

그의 소망의 토대들은 자기 밖에 있는 결코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기 때문에 확실하고 확고하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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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救贖) 밖에서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도 없고 소망도 없이 죽음을 두려워하여 노예상태로 살아간다. - P51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방 세계는 두려움의 목소리만이 아니라 신뢰와 안식의 목소리도 낸다. - P51

진리는 언제나 확신을 가져다주지만, 확신은 진리를 증명해주지 않는다. - P52

인간의 지성은 오류를 참된 것으로 여기고서 거짓된 쉼(안식)을 발견할 수 있다. - P52

우리는 우리가 참이라고 믿고 싶은 것을 참된 것으로 믿는 것을 좋아한다. - P52

하지만 확신 그 자체는 사람을 자유롭게 해주지 않는다. 오직 진리만이 사람을 죄와 죽음의 노예상태에서 자유롭게 해줄 수 있다. - P52

하나님의 아들이 당신을 자유롭게 해주었다면, 당신은 진정으로 자유롭게 된 것이다. - P52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 계시를 진정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조차도 언제나 믿음의 확신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 P55

흔히 우리는 믿음 대신에 의심을, 변함없는 신뢰 대신에 염려를, 열심과 찬송 대신에 불평을 발견한다. - P55

자신이 그리스도에 참여하고 있음을 확신하고서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의 소망 가운데서 기뻐하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다. - P55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예수의 교회의 살아 있는 지체이고, 영원토록 그럴 것임을 단호하게 확신한다. - P62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만이 아니라 자신도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순전히 은혜로써 죄 사함을 받았고 하나님에 의해 영원한 의와 구원을 수여받았다는 것을 어린아이처럼 믿는 믿음 가운데서 살아간다. - P62

이 신앙고백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한 음성을 듣는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가 지닌 자유 안에 서 있다. - P62

하나님의 성령은 그의 영과 더불어서 그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언한다. - P62

그는 그것을 믿고,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독립성을 얻었다. - P62

그의 삶은 다른 어떤 피조물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만 묶여 있다. - P62

여기에서 믿음은 이 세상에 속한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발견한다. - P62

과학과 종교의 중요한 차이는 과학은 인간적인 확신으로 만족할 수 있는 반면에, 종교는 신적인 확신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 P77

믿음의 대상은 전적으로 믿을 수 있고 무오하며 영원한 진리여서, 우리가 사나 죽으나 현세와 내세를 위해 그것을 의지할 수 있어야 한다. - P77

인간의 영혼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완벽한 쉼을 발견할 수 있다. - P79

인간의 영혼은 오직 무오한 권위에 의해서만 온전히 만족할 수 있다. 따라서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만 힘이 있다. - P79

계시는 독자적인 생명을 지닌 유기체다. 계시 안에서 활동하는 능력들은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것이고, 시간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영원에 속한 것이며, 인간적인 것이 아니라 신적인 것이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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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중반 이후에 이러한 상황은 점차 변화되었다. 행위 주체(subject)들이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P14

그들은 자신의 진정한 권리들, 또는 자신에게 주어져 있다고 여긴 권리들을 알게 되었고, 그들을 과거에 묶어두는 모든 속박들을 서서히 깨뜨렸다. - P14

행위 주체들은 과거에신성하다고 여겨진 모든 것으로부터 자신을 그야말로 무제한적으로 해방시켰다. - P14

구원의 확신은 우리가 상속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확신을 지니고서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P23

구원의 확신은 인간의 노력의 열매도 아니고, 우리가 의무들을 꼼꼼하게 다 행했을 때 주어지는 상도 아니다. - P23

우리가 이 땅의 보화들, 삶의 기쁨들, 대중의 칭송, 학계에서의 명성, 사람들이 갈채를 보내는 예술 작품들을 비롯해서 이 땅에있는 어떤 것에서 구원의 확신을 찾아 보아야 헛수고일 뿐이다. - P23

우리는 어떻게 해야 우리 양심의 고발들과 죄의 무게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 P23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 P23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죽음과 심판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 P23

이 모든 점에서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확신이다. 우리는 흔히 의식하지 못하지만, 이것은 인간의 영혼의 가장 깊은 갈망이다. - P24

신학은 영혼의 질병들을 고쳐줄 처방을 해야 한다. - P30

신학은 우리가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죄책에서 해방되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삶의 환난들 가운데서 인내와 소망을 지니며, 죽음을 앞두고도 찬송을 불러야 할 이유를 발견할 수 있는지를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 P30

우리에게 존재하는 각각의 기능은 자신이 본성적으로 추구하는 것 속에서 쉼(안식)을 얻는다. - P32

의지는 오직 선에서만 완벽한 쉼을 얻고, 우리의 감각은 아름다운 것들에서 완벽한 쉼을 얻는다. - P32

마찬가지로 지성은 오직 참된 것,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유일한 진리이신 하나님에게서만 쉼을 얻는다. - P32

믿음은 과학적인 논증에 의해서 훼손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확증될 수도 없다. - P37

믿음은 언제나 참되거나 참된 것으로 여겨지는 계시, 권위, 신적인 말씀에 입각해 있기 때문에, 믿음의 확신은 언제나 믿음의 열매, 즉 어떤 이유에서든 이 권위를 인정하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순종하는 믿음의 열매다. - P37

과학적 확신은 합리성에 의거하기 때문에 믿음의 확신보다 더 보편적인 토대를 지니지만, 개인에게 미치는 힘, 즉 영혼이 믿음 안에서 자신의 대상을 받아들여서 서로 결합되는 힘에 있어서는 후자(믿음의 확신)가 전자(과학적 확신)보다 월등하게 앞선다. - P43

과학적인 확신은 화형장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믿음의 확신은 아주 다르다. 그것은 인간의 심령에 뿌리를 내리고서, 우리의 실존을 이루고 있는 아주 작은 부분까지 다 연루되어 있기 때문에 훨씬 더 강력하고 박멸될 수 없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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