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자신의 거짓말에 귀기울이는 사람은 종국엔 자신 속에서나 주위에서나 어떤 진실도 분간할 수 없게 되고, 그리하여 자신도 다른 사람들도 존경하지 않게 됩니다. - P90

아무도 존경하지 않게 되면 사랑하길 멈추게 되고, 사랑이 없어지니 마음 붙일 곳을 찾아 기분전환을 하기 위해 정욕과 거친 쾌락에 빠져 완전히 짐승과 다름없는 죄악에 이르게 되며, 이 모든 게 다른 사람들과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거짓말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 P90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누구보다 쉽게 모욕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 P91

실천적인 사랑은 몽상적인 사랑에 비해 엄혹하고 무서운 것이니까요. - P119

몽상적인 사랑은 금세 만족할 만한 신속한 위업을 갈망하며 모든 사람이 자신을 쳐다봐주기를 갈망합니다. - P119

그러다보니 실제로, 단지 오래 끌지 않고 무대 위에서처럼 가능한 한 빨리 그 일이 이루어져 모든 사람의 시선을 받고 칭찬을 받을 수만 있다면 목숨마저 내놓기에 이릅니다. - P119

하지만 실천적인 사랑- 그것은 노동이자 인내이며,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마 하나의 완전한 학문과도 같을 것입니다. - P119

그러나 미리 말씀드려두지만,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목적에 가까이 가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멀어진 듯하다는 것을 스스로 공포마저 느끼며 목도하게 되는 바로 그 순간- 바로 그 순간에, 미리 말씀드리는 바이지만, 부인께서는 갑자기 그 목적에 도달할 것이며, 언제나 부인을 사랑하시고 언제나 비밀스레 인도해주셨던 주님의 기적적인 힘을 부인 위에서 분명히 보게 될 것입니다. - P119

만약 우리 시대에도 사회를 보호해주고 심지어 범죄자마저 교화하여 다른 사람으로 거듭나게 해주는 뭔가가 있다면, 그것은 다시금, 오로지 자신의 양심을 깨닫을 때 들려오는 그리스도의 계율뿐입니다. - P131

그리스도 사회의 아들, 즉 교회의 아들로서 자신의 죄를 깨달을 때에만, 그는 다름아닌 사회, 다시 말해 교회 앞에 자신이 지은 죄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 P131

이렇듯 오늘날의 범죄자는 오로지 교회 앞에서만 자신의 죄를 깨달을 수 있지, 결코 국가 앞에서가 아닙니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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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주의자를 믿음으로 이끄는 것은 기적이 아니다. - P54

진정한 현실주의자는, 만약 그가 믿음이 없는 자라면, 기적마저 믿지 않을 힘과 능력을 자기 안에서 항상 찾아내게 될 것이며, 기적이 자기 앞에서 물리칠 수 없는 사실이 될 때엔 그 사실을 인정하느니 차라리 자신의 감각을 믿지 않으려 들 것이다. - P54

설령 그 사실을 인정한다 해도, 그건 그저 자신이 여태까지 모르고 있었을 뿐인 자연적인 사실로서 인정하는 것에 불과하다. - P55

현실주의자에게는 기적으로부터 믿음이 태어나느 게 아니라, 믿음으로부터 기적이 태어난다. - P55

현실주의자가 일단 믿음을 가지게 되면, 그는 다름아닌 자신의 현실주의로 말미암아 기적 또한 반드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 P55

사도 도마는 제 눈으로 보기 전에는 결코 믿지 않겠다고 단언했지만, 보고 나서는 "나의 주이시며, 나의 하느님이시나이다!"라고 말했다. - P55

과연 기적 때문에 그가 부득이 믿게 된 걸까? 필시 그렇지 않을 것이니, 그가 믿게 된 건 오로지 그가 믿고자 원했기 때문이며, 어쩌면 "내 눈으로 보기 전에는 믿지 않겠다"고 말한 그때부터 이미 마음속 깊은 곳에서 완전히 믿고 있었을 것이다. - P55

장로란 여러분의 영혼과 여러분의 의지를 자신의 영혼과 자신의 의지 속으로 받아들이는 자이다. - P59

일단 장로를 택하게 되면, 여러분은 자신의 의지를 포기하고 완전한 순종 자세로 완전한 자기부정 속에서 자기 의지를 그에게 바친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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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의 경우, 사람들이란 설령 악인일지라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단정짓는 것보다는 훨씬 순진하고 순박하다.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이다. - P24

그러나 사실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한평생 자신을 연출해 보이고 사람들 앞에서 갑자기 전혀 뜻밖의 어떤 역할을 연기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무엇보다 때로는 아무런 필요도 없이, 심지어 지금처럼 자기에게 곧바로 해가 되는 경우에도 그렇게 했다. - P27

하지만 이런 특성은 굉장히 많은 사람에게, 또 표도르 바블로비치와는 비슷하지도 않은 대단히 현명한 사람들에게조차 본래부터 주어진 고유한 속성이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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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다는 것 - 독서법 전통을 통해서 본 성경 읽기와 묵상
강영안 지음 / IVP / 2020년 5월
평점 :
품절




그야말로 종횡무진이다. 고수에게만 느낄 수 있는. 자유롭지만 절제되어 있고, 쉽지만 깊다. 현재 미국 칼빈신학교 철학신학교수로 재직중인 강영안(1951~)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오가며 '읽는 것'이 무엇인지를 밝힌다. 이 책에서 호명된 철학자와 신학자만으로도 이 책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 장자(莊子, 기원전 369년?-기원전 286년)와 주희(朱熹, 1130~ 1200),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 354~430),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1906~1995), 바르트(Karl Barth, 1886~ 1968) 등. 다 언급할 수가 없다. 더군다나 단순한 언급 차원이 아니라 그들의 사상을 명확하게 분석하여 설명하고 우리에게 적용한다. 


저자는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 1909~1998)과의 대화를 통해 경험했던 충격으로부터 이 책을 시작한다. 그 질문으로부터 "참된 읽기"가 무엇인지, 어떠한 과정으로 읽어야하는지, 읽는 행위는 어떻게 삶과 연결되는지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그 과정은 더디지만 세밀하다. 빨리 결론에 도달하고자한다면 여유를 가지고 이 책을 읽으시라. 단숨에 읽기에는 벅차다. 하지만 조금만 집중하면 곧 흥미롭게 책에 빠져든다.


텍스트를 어떻게 대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야하는지를 폭넓게 살펴보았다면 이제 성경에 집중하여 논의를 진행한다. 성경이 어떤 성격의 책이며, 그렇기에 성경을 어떻게 대해야하는지 주장한다. 모든 텍스트가 그렇지만 특히나 성경은 전인적 읽기가 필수다. 더불어 저자가 강조하듯 읽기의 행위는 삶과 연결되어야만 한다. 삶과 동떨어진 읽기는 제대로 읽는 행위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앎과 삶을 연결할 수 있는가?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성경을 읽는 행위와 다른 텍스트를 읽는 행위의 분명한 차이점을 강조함한다. 즉 그 명백한 차이로 인해 우리의 읽는 행위는 삶으로 직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세심한 편집을 통해 완성도를 높였다. 각 챕터의 끝에 있는 '다리 놓기'는 질문과 답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통해 책을 읽으면서 느낄만한 질문들이 어느정도 해소된다. 또한 '토론과 적용을 위한 질문'을 매챕터마다 구성하여 홀로 읽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으로 읽고 나눌 수 있도록 배려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추천 도서'를 통해 더욱 깊은 연구를 위해 도움을 주고 있다. 각 주제에 대해 더욱 풍성한 배움이 가능하도록 한 듯하다. 


​가장 큰 아쉬움은 6장의 내용이다. 우리들교회에서 열린 세미나가 이 책의 초안이기에 선택된 챕터인듯하다. 하지만 단행본으로 엮어서 나올 때 굳이 포함되어야 할 내용인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약간의 언급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튼 그럼에도 이 책은 '읽음'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이 망라되어 있기에 '읽기'를 즐겨하는 모두에게 유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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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읽을 때 우리가 능동적으로 다가서고 능동적으로 문장을 읽고 이해하고 파악하려 할지라도, 우리가 성경을 읽거나 들을 때 성경 말씀은 오히려 우리를 말씀 앞에 발가벗겨, 그야말로 방어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르기까지, 그로 인해 심지어 상처를 입을 가능성(vulnerability)이 있는 지점에까지 우리를 세우기 때문입니다. - P113

우리가 능동적으로 성경을 읽는다고 하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숨결로 쓰신 성경이 능동적으로 우리를 읽어 내고 말씀 앞에 우리를 세우기 때문입니다. - P113

우리는 이 때 완전한 수동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이 우리를 읽을 때의 읽기 방식은 ‘수동적 읽기’이고 ‘상처 입을 준비가 되어 있는 읽기’입니다. - P113

읽기의 목적은 결국 자기를 비워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이를 통하여 자기를 보존함에 있습니다. - P110

읽을 때는, 더구나 성경을 읽을 때는, 몸과 마음이 나뉘지 않고 하나가 되어 개입합니다. - P98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단지 눈으로만 읽을 수 없고, 단지 마음으로만 읽을 수 없습니다. - P98

몸과 마음이 읽는 대상과 읽는 내용에 개입하여 읽는 내용이 보여 주는 현실(실재, 문제, 주제, 물음)을 상상력을 통하여 내 머릿속에 그리는 행위가 일어날 때 비로소 우리는 ‘읽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P98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께 귀 기울이고,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말하고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고, 입술로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증거하고, 일상의 삶에서 말씀을 따라 살아가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이 신학자입니다. - P137

고난은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알고 제대로 이해했는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며 하나님 말씀이 얼마나 옳고, 얼마나 참되며, 얼마나 달콤하고, 얼마나 사랑스러우며,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를 우리에게 체험할 수 있게 해 주는 시금석이 된다고 루터는 말합니다. - P141

성경 읽기의 목적은 내가 하나님 말씀을 정복하고 거머쥐고 좌지우지하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 말씀이 오히려 나를 읽어내고 나의 모습을 보여 줌으로 말씀 자체가 성령 안에서 나에게 역사하도록 말씀 앞에 나 자신을 내어 주는 데 있습니다. - P161

기호는 언제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물이나 사태를 가리킵니다. 그 자체로 하나의 사물이지만 언제나 다른 무엇을 표시하거나 드러내거나 보여 주는 사물이 기호입니다. - P185

문자로 이루어진 텍스트는 언제나 텍스트 바깥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텍스트 자체가 곧 현실은 아닙니다. - P185

텍스트는 언제나 바깥의 현실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텍스트 바깥의 현실이 무엇인지 찾고 묻고 발견하지 않는다면 문자에 매이거나 문자의 집합인 텍스트 자체에만 매이기 십상입니다. - P185

기호로 사용되는 문자가 그렇듯이 문자들의 집합인 성경도 문자 바깥의 현실, 문자보다는 훨씬 더 큰 현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 P186

역사에 관한 글을 읽을 때는 역사 현실을 보아야 하고, 편지를 읽을 때는 편지를 쓴 사람과 수신자가 다 같이 관여하는 현실을 염두에 두고 상상해야 하며, 시를 읽을 때는 시를 쓴 사람의 정황과 그가 노래하는 현실에 함께 참여해야 할 것입니다. - P186

성경을 읽을 때는 항상 성경이 가리키는 현실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 P186

성경의 텍스트는 텍스트 바깥을 가리키지만 동시에 앞선 텍스트들과의 연관 속에서 읽고 이해해야 된다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하나의 텍스트는 다른 텍스트와 서로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 P188

읽지 않으면 세상을 내다보는 창을 얻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나의 테두리, 우리들의 좁은 삶의 울타리를 벗어나 더 넓은 세상, 다른 세상을 보기 위해서는 책이라는 창을 통해 바깥을 내다볼 수 있어야 합니다. - P239

사람이 종교심을 바탕으로 하나님을 찾아가는 ‘종교’(Religion)와 사람에게 찾아오시는 하나님께 귀 기울이고 그분께 삶을 맡기는 ‘신앙’(Glaube)을 구별하는 바르트는 여기서도 성경에 대해, 우리를 찾아오시고 말씀하시고 언약을 맺으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P241

고통과 슬픔과 한탄, 원망과 두려움의 감정에 머물 뿐, 그 자체는 아직 물음이 아닙니다. 고통의 경험이 물음으로, 문제로 등장하는 경로는 책이라고 레비나스는 보고 있습니다. - P243

책은 고통의 경험에 생각할거리를 제공합니다. 읽지 않는다면 고통의 경험은 말 없이 침묵으로 단지 몸 속에 체험으로 각인될 뿐, 사유의 단계로 옮아갈 수 없습니다. - P243

책은 타자가 남긴 흔적이며, 이 흔적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의 윤리적 삶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 P244

이렇게 보면 책에는 이중적 의미가 있습니다. 책은, 한편으로는 향유하는 존재로서 세계 안에서 인간의 존재 방식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타자와 만나는 통로이기도 합니다. - P244

우리는 성경을 읽되, 제대로 읽어야 하겠습니다. 성경을 제대로 읽는다면 "예수 믿고 구원받아 천국 간다"고 단순하게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 P252

왜냐하면 말씀을 주신 하나님은 만유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며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유를 회복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 P252

삼위 한 분 하나님이 백성들을 불러 모은 까닭은 창조세계가 다시 회복되기 전까지 그들이 택하신 족속으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로, 하나님의 소유 된 백성으로 이 땅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일상이라는 삶의 현장에서 살아 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벧전 2:9). - P252

성경은 우리 개인뿐 아니라 공동체, 우리 민족뿐 아니라 타민족, 우리 영혼뿐 아니라 신체, 우리의 종교 생활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예술, 학문, 교육, 환경, 문화, 사회 등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되기 때문에 성경의 관심을 우리 한 개인과 우리 한 가정의 테두리에 가두어 둘 수 없습니다. - P252

말씀을 읽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우리 자신의 삶과 문화와 모든 것들을 말씀의 빛에 노출시켜 말씀이 이 모든 것을 읽게 하고, 이 모든 것들을 말씀의 빛에 비추어 읽고, 이해하고, 해석하고, 생각하고, 살아야 할 과제가 주어져 있습니다.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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