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재미있어서 하는 사람을 당할 수 없고 세상 모든 것에는 배울 점이 있다. ‘성공‘ ‘입시‘ ‘지적으로 보이기‘ 등등 온갖 실용적 목적을 내세우며 ‘엄선한 양서‘ 읽기를 강요하는 건 ‘읽기‘ 자체에 정나미가 떨어지게 만드는 지름길이다. - P14

자꾸만 책을 신비화하며 공포 마케팅에 몰두하는 이들이 있는 것 같은데, 독서란 원래 즐거운 놀이다. - P14

세상에 의무적으로 읽어야 할 책 따위는 없다. 그거 안 읽는다고 큰일나지 않는다. 그거 읽는다고 안 될 게 되지도 않는다. - P14

결국 명작이든 고전이든 책은 대체 가능한 매개체에 불과한 것 아닐까. 부모들의 조바심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그 나름대로 즐길 것을 즐기고 흡수할 것을 흡수한다. 뭔가 즐겁게 읽고만 있다면 말이다. - P25

내게 정말 필요하고 소중한 사람이 나를 오해하고 있다면 그건 반박하든 해명하는 싸우든 할 가치가 있다. - P32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내 취향의 사람들도 아니고 내 인생에 아무 상관 없는 존재들이다. - P32

그들은 내게 관심이 있으니 험담이든 뭐든 하겠지만 솔직히 나는 그들에게 아무 관심이 없다. 나를 에워싸고 그들의 언어로 떠들어대는 릴리퍼트 소인들일 뿐인 것이다. - P32

누구에게나 결핍은 있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누리는 타인의 존재를 편하게 받아들일 만큼 수양이 된 사람은 많지 않다. - P127

꼭 누구를 착취하고 부당한 방법으로 부자가 된 사람이 부를 만끽하는 모습만 꼴 보기 싫은 게 아니다. - P127

정당하게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성공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가 자신의 성취를 누리는 당연한 자유가 누군가에게는 의도적인 과시로 비쳐 증오를 낳을 수도 있다.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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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에 읽을 책을 이제야 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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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 지옥으로 추락하는 이들을 위한 신학
에두아르트 투르나이젠 지음, 손성현 옮김, 김진혁 / 포이에마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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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는 신학자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소설을 읽노라면 어떤 신학 책보다 인간의 실존을 신학적으로 탁월하게 묘사했음을 경험한다. 그의 글은 그 자체로 신학적 완성도를 가졌다. 뿐만 아니라 위대한 신학자들이 그의 글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의 소설은 신학적 영감과 통찰을 자극했다. 하지만 방대한 그의 소설에서 명료하게 그의 신학을 제시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에두아르드 투르나이젠(Eduard Thurneysen, 1888 ~1974)은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을 신학적으로 탁월하게 해석해냈다. 그는 스위스의 개신교 목사이자 신학자다. 아마 투르나이젠은 칼 바르트(Karl Barth, 1886 ~ 1968)의 친구로 더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투르나이젠의 이 작품이 없었다면, 바르트의 위대한 작품(자유주의자들의 놀이터에 던져진 폭탄)이었던 《로마서》2판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양차 세계대전은 당시 유럽의 정치와 경제,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는 신학적으로도 매우 큰 파급을 가져왔다. 당시 신학을 주도했던 자유주의는 인간의 종교심과 문화, 역사와 윤리로 세계의 역사는 계속적으로 진보할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세계대전의 여파와 자유주의자 스승들의 실망스러운 행동과 선택(이들은 적극적으로 히틀러를 옹호하며 지지했고 힘을 보태었다)은 새로운 언어와 논리가 필요함을 역설적으로 드러내 주었다. 


투르나이젠은 바르트와 함께 인간으로부터의 신학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의 신학에 관심을 기울였고,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으로부터 시작되는 신학을 전개하기에 이르었다. 그러한 변증법적 신학을 전개함에 있어 결정적 통찰을 준 것이 바로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이다. 투르나이젠과 바르트는 이 시기에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을 만나게 되었고, 그의 넓고 깊은 문학 세계를 통해 '타락 가운데 빠져들어가는 인간'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투르나이젠의 도스토옙스키 문학의 신학적 해석은 그의 강연을 다듬어서 나온 단행본이다. 이 책은 그렇기에 강연에서의 열정이 느껴진다. 짧지만 강력한 이 책은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을 다층적으로 이해하고 깊이 연구하여 나온 결과물이다. 이 얇은 책에 담겨 있는 저자의 통찰과 이해는 도스토옙스키의 문학만큼이나 예리하고 신선하며, 풍성하다. 


총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인간의 실존에 대한 도스토옙스키의 질문과 해답을 적극적으로 모색한다. 또한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가운데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기묘한 인간들의 다양성을 드러낸다. 인간의 실존에서 시작하여 결국 도스토옙스키가 그리는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와 신학적 해석까지 나아간다. 특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가장 유명한 대심문관의 이야기를 해석하는 대목은 매우 흥미롭다. 


대심문관" 이야기는 다시 한 번 인간의 종교와 교회 안에 숨어 있는 깊은 불신앙을, 하나님을 향한 반역의 실체를 폭로한다. 그런데 이러한 폭로의 목적은 그 반역을 옹호하고 합리화하고 긍정하는 것이다(115).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읽어야 한다. 물론 이 책만 읽더라도 날카롭고 명료한 신학의 정수를 맛볼 수 있지만, 더욱 풍성하게 이 글을 음미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이 책의 인용빈도와 중요도를 생각했을 때, 최소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읽고 이 책을 읽으면 많은 부분이 더욱 풍성하게 이해된다. 더불어 『죄와 벌』을 함께 읽었다면 더 좋고, 『백치』를 곁들인다면 금상첨화다. 이 세 소설을 중심으로 하여 논리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도스토옙스키를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한 번은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인 것 같다.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성의 불가사의함이 기묘한 방식으로 돌출되는 모습을 우리 눈앞에 펼쳐 보이는데 거기에는 무언가 심히 우려스러운 것, 불안한 것이 있다. - P12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방금 전까지는 똑바로 잘 걷고 있었는데 순간적으로 휘청하면서, 달리는 기차 바퀴 속으로 빨려 들어갈것 같은 아찔함을 느낀다. 도스토옙스키 작품 속의 인물들과 만나는 느낌도 이와 비슷하다. 그들은 마치 환상 속의 인물들처럼 낯설고 거대한 모습으로, 그러나 기묘하리만큼 친근한 모습으로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간다. 마치 우리의 분신分身처럼 똑같은 방향으로 밀착해서 걷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혼란에 빠져 자기 걸음을 걸을 수 없게 된다. 우리는 그 인물들과 절대로 얽히고 싶지 않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들의 삶에 나타난 수수께끼 속에서 내 삶의 수수께끼가 나를 응시한다. 뭐라 말할 수 없는 강렬함으로 뚫어질 듯 마주본다.
당황한 우리는 묻게 된다. 지금 우리는 누구를 만나고 있는가?
물론 우리는 묻기 전에 이미 알고 있다. 우리가 만난 것은 바로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인간과 만났다.
- P14

도스토옙스키는 우리에게 완결된 하나의 답이나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의 해법은 거대한 해체 속에 있다. 그의 대답은 질문, 곧 인간 존재에 대한치열한 질문, 오직 하나의 질문이다. 그러나 그 질문에 자신을 내맡길 줄 아는 사람은 바로 그 질문이야말로 한 아름의 대답이라는 사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 P23

도스토옙스키에게는 "삶에 관한 새로운 직관"이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책 마지막에 서 있는 사람은 혁명가도 아니고 평화주의자도 아니며, 특별히 순수하고 고귀한 영혼도 아니고 순교자나 성자도 아니며, 탐미주의자나 개혁가, 혹은 철저하게 회심한 사람도 아니고-"오로지" 한 사람, "삶에 관한 새로운 직관"을 얻은 한 사람이다. 그는 여전히 그의 본성이 지닌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새로운 직관의 심판과 약속 아래에서, 지금 여기서 펼쳐지는 삶을 향해 다시 나아간다.
이 세상에서는 그것이 대수롭지 않아 보일 수 있지만, 저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아흔아홉 명의 의인보다 회개하는 한 명의 죄인으로 인해 더 많은 기쁨이 있다.
- P38

백치의 존재는 우리에게 무겁고 유일한 질문으로 다가온다. 인생의 참된 의미란 얼마나 깊이 감춰져 있는가? 그 의미를 깨달은 지혜로운 사람은 도리어 오해의 대상이 되고, 심지어 바보 취급을 당한다. 그 의미를 품고 살아가는 강자는 도리어 약자 취급을 당한다. 그 의미를 먹고 살아가는 건강한 사람은 오히려 환자 취급을 당한다 - P49

도스토옙스키는 수많은 예술가 중에서 최고의 심리학자라 할 수 있다. 그렇게 불러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하지만 그의 심리학은 하나의 심리학이 될 수가 없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해체하기 때문이다. 왜 그럴 수밖에 없는가? 그가 인간의 내면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분석해낸 최종적인 결과, 모든 인간적인 것이 결국 모든 심리학적 실재 너머에 있는 소실점과 종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 P75

그가 말하는 초월 세계는 저 위 어딘가에 있는 세계가 아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저 아래 영혼의 세계도 아니다. 모든 것의 기초, 토대, 운명은 어떤 식으로든 규정된 것이 아니며 또 규정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 그림의 원근遠近을 만들어내는 시점視點이 그림 안에 있을 수 없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그 점은 상상의 점이다. 현실 너머에 있다. 가장 바깥에 있으며, 가장 나중에 있으며, 아예 저편에 있는 그 점은 역사적·심리학적 실재의 세계를 벗어나 있다. 그 실재의 세계가 아무리 이상적으로 높고 심리적으로 깊다 하더라도, 또 그것이 아무리 정교하고 비밀스럽다 하더라도 그 안에는 있을 수 없다. 도스토옙스키는 그 실재 바깥에 있는 시점에 의해 인간의 삶 전체가 규정되어 있음을 보고 있다. 모든 점들과 이어지는 그 점은 바로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이다. - P76

교회는 인간이 오로지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만을 향해 부르짖는 것밖에 할 수 없는 곳, 그 깊은 곳으로 인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크신 권능과 진실한 사랑과 진실한 용서와 진실한 기적으로 계시하시는 저 높은 곳으로 인도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종교의 거짓말이며,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함이다. - P105

"이제 마지막 한 가지만 말하면 된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인식 속에서 이 세상과 인생을 대대적이고도 비판적으로 해체하고 해명하는 위대한 힘이 도스토옙스키의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통해서도 견지된다는 점이다. 그 특징이란 생명을 향한 적극적인 관심, 인간에 대한 이해, 모든 피조물의 고통과 희망을 한없는 연민으로 품어 안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모든 작품은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독보적이고 위대한 증언의 기록이다.
"
- P129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이 그러하듯이, 모든 것이 궁극적인 것, 하나님의 해법, 곧 "부활"을 지향하는 곳에서는 지금 이 시간과 세상 한가운데라 할지라도 놀라운 부활의 전령이 나타난다. 부활의 비유가 나타난다. 이것은 인간이 존재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으려고 만들어내는 반항적인 자기 방어 기제들보다 훨씬 강력하고 변혁적이다.
- P145

자유의 여정은 인생의 바닥에서 하나님의 가능성을 향해 시선을 돌릴 때 가시화된다. 결정적인 변화는 우리가 발버둥치고 억지를 써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그분의 영원한 능력에서 흘러나온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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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지막 한 가지만 말하면 된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인식 속에서 이 세상과 인생을 대대적이고도 비판적으로 해체하고 해명하는 위대한 힘이 도스토옙스키의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통해서도 견지된다는 점이다. - P129

그 특징이란 생명을 향한 적극적인 관심, 인간에 대한 이해, 모든 피조물의 고통과 희망을 한없는 연민으로 품어 안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모든 작품은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독보적이고 위대한 증언의 기록이다. - P129

"죄의 연대"(《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라는 큰 연결고리 안에서 서로를 재발견하고 재인식한다. - P131

사실 이것이야말로 이세상에 존재하는 연대 가운데 유일하게 참된 연대다. - P131

그곳에서 인간은 모두가 경험하고 있는, 인생의 깊은 곤경 속에서 함께버티고 함께 구원을 기다린다. - P131

도스토옙스키는 낮은 곳에 있는 겸허한 사람들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잃지 않았다. - P141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개혁과 혁명보다도 그들의 감추어진 힘에 더 큰 기대를 걸었다. - P141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이 그러하듯이, 모든 것이 궁극적인 것, 하나님의 해법, 곧 "부활"을 지향하는 곳에서는 지금 이 시간과 세상 한가운데라 할지라도 놀라운 부활의 전령이 나타난다. - P145

부활의 비유가 나타난다. 이것은 인간이 존재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으려고 만들어내는 반항적인 자기 방어 기제들보다 훨씬 강력하고 변혁적이다. - P145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이 그러하듯이, 모든 것이 궁극적인 것, 하나님의 해법, 곧 "부활"을 지향하는 곳에서는 지금 이 시간과 세상 한가운데라 할지라도 놀라운 부활의 전령이 나타난다. - P145

부활의 비유가 나타난다. 이것은 인간이 존재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으려고 만들어내는 반항적인 자기 방어 기제들보다 훨씬 강력하고 변혁적이다. - P145

자유의 여정은 인생의 바닥에서 하나님의 가능성을 향해 시선을 돌릴 때 가시화된다. - P147

결정적인 변화는 우리가 발버둥치고 억지를 써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그분의 영원한 능력에서 흘러나온다. - P147

도스토옙스키의 인생은 평생토록 그 불멸을 찾아 헤맸던 격정적인 탐구의 여정이었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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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가 자신의 가슴 깊은 곳에서 불타오르는열정과 자신의 모든 지식을 집약하여 쏟아부은 가장 무시무시한 공격은 종교와 교회를 겨냥한다. - P95

교회는 인간이 오로지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만을 향해 부르짖는 것밖에 할 수 없는 곳, 그 깊은 곳으로 인도하지 않는다. - P105

그렇다고 하나님이 크신 권능과 진실한 사랑과 진실한 용서와 진실한 기적으로 계시하시는 저 높은 곳으로 인도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종교의 거짓말이며,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함이다. - P105

인생의 불가사의와 고통! 이것 자체가 이미 인간의 모든 생각을 뛰어넘는 해답을 갈구하면서 그 해답을 선포하고 있다. 미지의 신을 향해 부르짖으면서 이미 그분을 선포하고 있다. - P107

대심문관의 비범한 지성은 믿음이라는 것이, 믿음이라 불리는 그것이 도무지 헤아릴 수 없는 모험이라는 사실을 꿰뚫어 본다. - P115

"대심문관" 이야기는 다시 한 번 인간의 종교와 교회 안에 숨어 있는 깊은 불신앙을, 하나님을 향한 반역의 실체를 폭로한다. 그런데 이러한 폭로의 목적은 그 반역을 옹호하고 합리화하고 긍정하는 것이다. - P115

무엇이 악마인가? 인간-신이 아니라 참된 하나님, 저편의 하나님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 하나님을 알고 싶어 하지않는 정신이 다름 아닌 악마다. - P116

하나님을 향하도록 창조되었으며, 그래서 그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하나님에게서 벗어나고자 거인 영웅적인 환상에 도취되어 스스로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거짓말을 형상화한 것이 곧 악마다. - P116

무엇이 지옥인가? 자기의 인생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음을 부정하며 스스로를 속이는 인생이 곧 지옥이다. - P117

그렇게 되면 인생은 의미를 상실한다. 인생 전체가 터무니없는 것, 거짓된 것, 미쳐 날뛰는 것이 되어버린다. - P117

소실점을 상실한 그림 속의 선들이 제각각 흩어지듯이 인생의 노선들이 모조리 흩어져 버린다.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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