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와 역사는 각각 그 기원과 성격에 있어서 다르기 때문에, 서로 구별을 시켜주는 많은 특징이 있다. - P30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설화는 본래 구전으로 전해진 것인데 비해 역사는 기록물로 존재하도록 의도되었다는 점이다. - P30

설화는 민중이 관심을 갖는 일, 인물이나 개인사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정치적 사건이나 인물들에 관해서도 그것들을 민중의 관심사와 연결지어 이해하는 것을 좋아한다. - P32

설화의 가장 명확한 특징은, 믿을 수 없는 것들이 심심찮게 보고된다는 사실이다. - P34

창세기에서 하나님의 말씀하심은 매우 특징적인 것으로, 그분의 말씀은 마치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처럼, 황홀경에 빠져 인간의 가장 깊숙한 동요 가운데, 어두운 시간에 들리는 것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은 어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말하듯 단순하게 말씀하신다(12:1 등). - P37

개신교 교회와 지도자들은 창세기가 설화로 되어 있다는 지식에 반대하여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스스로를 차단할 것이 아니라, 이 지식이 없다면 창세기에 대한 역사적 이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좋을 것 같다. - P40

현재로서는 설화의 속성으로 인해,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옛 사건들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없고 단지 안개에 가려 희미하게나마 인식할 따름이다. - P56

설화는 역사적 기억들을 시로 감싸고 그것들의 윤곽을 감추었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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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까지도 한국 가수의 동영상에는 다 한글로 댓글이 달렸죠. - P41

그러니까 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고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고 그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는구나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힘이었어요. - P41

이런 맥락에서 해석이란 ‘의미를 해석‘하는 것입니다. - P41

의미를 해석하고 그 해석된 것을 전달하고 공유함으로써 공동체를 만들고 유지합니다. - P41

문자 텍스트로 의미를 전달하고 의미를 해석하고 또 의미를 공유하는 것을 통해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의미를 같이 추구하는 정치 행위도 일어나고요. - P41

따라서 의미 해석을중심에 두는 문자 텍스트의 등장과 보편화는 근대사회의 탄생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 P41

그런데 지금은 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를 일일이 알 필요는 없지만, 그것이 주는 정동(affect)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해졌어요. - P41

정동은 언어로 의미를 파악하는 게 아니라 느껴지는 것이니까요. - P41

인문사회과학에서 ‘정동적 전회(轉回)‘라는 표현을 쓰는데요. 이것이 의미하는 큰 변화가 있습니다. - P41

문자 텍스트 중심의 단일 문해력에서는 이해와 의미 파악이 중요했다면, 지금과 같은 멀티리터러시 상황에서는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정동이 발동되고 있는가를 알고 공명하는 게 중요해졌다는 것입니다. - P41

케이팝 스타의 유튜브에 전혀 알 수 없는 태국 글자로 댓글이 달려 있고 또 한자가 적혀 있고 하지만, 거기 붙어 있는 이모티콘과 느낌표를 보면 어떤 느낌인지는 아는 거죠. - P41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정동적 독해라고 하는 게 의미론적인 독해보다 훨씬 더 중요해진 것 같아요. - P41

꼭 이야기해보고 싶은 주제가 있는데요. 저는 지금의 리터러시 논의에 크게 두 가지 편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P45

하나는 문자를 기본 미디어로 전제하려는 편향인데요. 문자를 기반으로 하는 리터러시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암묵적으로 가정하는 것입니다. - P45

두 번째 편향은 문(文)이라는 것을 협소하게 정의해서 텍스트 중심으로 보고 있다는 거죠. - P46

소통에 참여하는 사람이나 맥락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 P46

문해력에서 문이란 누군가와 소통하기 위해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것을 뜻합니다. - P46

그런데 관련 논의들에서는 관계 혹은 관계성이라는 것이 거세된 채, 내가 혹은 상대가 텍스트를 얼마나 잘 이해했느냐를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 P46

‘나 텍스트‘, ‘너-텍스트‘는 보는데 ‘나와 너‘, 궁극적으로 ‘현재의 맥락에서 텍스트를 공유하고 있는 나와 너‘를 고려하지 않는 거예요. 이건 문제가 많습니다. - P46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권력화된 방식의 리터러시는 기호학적이고 추상적으로 다루는 역량만을 평가하고 그것만 리터러시라고 보는 거죠. - P49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할 때 그 이야기를 누가 듣느냐, 누구와 함께하고 있느냐, 즉 선생님 말씀처럼 관계로서의 맥락이 빠져 있어요. - P49

맥락(context)이라고 하는 것이 크게 보면 두 가지라고 생각해요. 먼저 텍스트를 둘러싼 사회적 맥락이 있죠. - P51

텍스트가 생산되고 공유되고 소비되는 방식과 관련된 맥락이에요. - P51

또 하나는 내가 텍스트를하는 방식과 이 사람이 텍스트를 대하는 방식, 즉 각자가 텍스트에 접근하는 맥락이 있어요. - P51

이 두 가지가 사뭇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 P51

진리가 상대적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에요. 내가 이 텍스트를 대할 때와 저 사람이 텍스트를 대할 때는 굉장히 다른 지식과 태도를 갖고 읽어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내 방식대로 읽어내지 않으면 리터러시가 떨어진다고 비난하는 것, 이게 위험하죠. - P51

리터리시란 이분법적인 게 아니라 스펙트럼이다. - P57

리터러시라는 것 자체가 스펙트럼으로 존재한다면, 그 가운데 나의 위치가 어디인가를 끊임없이 찾아낼 수밖에 없고, 너의 위치는 어디인가도 찾아내야 한다. - P57

또한 그것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리터리시가 있다 없다는 판단하는 주어/주체는 내가 될 수가 없다. - P58

저는 이런 점에서도 리터러시에서 중요한 것이 상호성이라고 생각하는데요. - P64

‘네가 말을 못 한다, 네가 글을 못 읽는다‘가 아니라, ‘내가 너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가 될 때에야 비로소 리터러시가 상호적인 것이 되고 서로가 성찰하게 만들어줍니다. - P64

그리고 서로에 대해 귀를 기울이게 하고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힘쓰게 합니다. - P64

그러지 않고, 내가 읽는 방식대로 읽지 않으면 ‘너는 문맹이야, 난독증이야‘라고 하는 것은 관계를 짓는 일이 아니라 상대를 모욕하고 비인간화하는 일이에요.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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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는 ‘거짓말‘이 아니라, 특별한 시의 일종이다. 설화는 민간 구술을 통해 옛적부터 전해내려오던 시적인 이야기로서, 과거의 인물이나 사건을 다루는 것이다. - P29

이스라엘의 시와, 시적 이야기는 그 종교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왜냐하면 시적 이야기가 산문보다 일반 사유 및 종교적 사유에 대한 더 나은 운반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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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을 유럽연합과 NATO에 편입시키려는 작업은 지정학적, 정치적, 관료적 과정이 모두 포함되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 첫 시작에 나선 이들은 역시 관료가 아닌 서유럽 기업가들이었다. - P189

동유럽 전역에 걸쳐 이런 금융 통합의 과정은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또한 엄청난 액수의 외화 차입금이 모기지와 신용카드, 그리고 자동차 대출사업에 사용되었다. - P191

동시에 이루어진 금융, 정치, 그리고 외교적 합병의 영향은 세상을 변화시켰다. - P192

동유럽 주요 도시들의 물질적인 생활 기준은 서유럽의 기준과 빠르게 동화되어갔다. - P192

그리고 이런 현상이 좀 더 동쪽에 있는 혜택을 덜 받은 구소비에트 연방 소속 국가들에 깊은 인상을 남겼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 P192

어찌 보면 막대한 규모의 무역수지 흑자와 충분한 외환보유고를 갖추고 강력한 국력을 회복한 러시아가 국가주도형 경제 강국의 모델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 P199

그렇지만 그런 러시아에도 역설적인 부분이 있으니 바로 새롭게 쌓아 올린 국부가 세계 경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사실이다. - P199

그리고 이런 복잡한 관계에는 원유나 천연가스 수출 이상의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 P199

이제 러시아의 화폐 유동성은 제고되었으며 역외 은행시스템과 러시아 국내는 이미 여러 가지 방식을 통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 P199

사실, 부시 행정부와 오바마 행정부의 교체 작업이라는 말은 조금 과장된 표현이었다. - P298

대통령 선거를 치르기 이미 오래전에 적어도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칼자루가 넘어간 상태였다. - P298

미국 정부가 갖고 있는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서 경제위기와 싸우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정당은 다름 아닌 민주당이었다. - P298

공화당은 애초에 그 시작부터 위기를 관리하는 데 크게 협조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 P298

금융위기가 진행되는 동안 공화당은 정부 여당이라기보다는 보수적인 백인들의 정치적 대변인에 불과한 모습으로 자신들의 세계를 뒤흔들 수도 있는 여러 사항과 조치에 대한 두려움만 나타냈던 것이다. - P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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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끝나야 시작되는 여행인지 몰라
김현 외 28인 지음 / 알마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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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불안, 혼란, 무력감을 호소한다. 『여기서 끝나야 시작되는 여행인지 몰라』는 고통과 고립 가운데 있는 우리들에게 희망을 전한다. 스물아홉 명의 작가들은 시와 에세이, 그림을 통해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이 책의 구성은 독특하다. 앞표지와 뒷표지는 각각 다른 장르로 시작한다. 앞표지는 에세이로, 뒷표지를 시로 시작하며, 앞표지와 뒷표지는 거꾸로 되어 있다. 쪽수도 에세이(E)와 드로잉(D), 시(P)로 표기되어있다. 독자는 원하는 장르를 선택하여 볼 수 있다. 표지는 마분지로 마감하여 색다른 질감을 선사한다. 표지 또한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보인다. 몽환적이며 뭔가 모를 생동감이 느껴진다.


에세이를 읽었다 머리가 아파오면, 시를 읽고. 마음이 뜨뜻해지면 그림을 감상한다. 다양한 맛과 향이 우리를 유혹하니, 이 책 한 권 들고 여행이나 떠나면 좋겠다. 커피 한잔 내려놓고 비 오는 창가에서 빗소리 들으며 이 책을 읽는 것으로도 마음이 풍성해진다.

 

​이 책에는 감성을 자극하는 작품이 많지만 학문적인 에세이도 포함되어있다. 특히 미생물학 박사로 미국에서 백신 연구를 하고 있는 문성실의 글은 팬데믹 상황에 있는 우리에게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현재의 상황을 분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과학 큐레이터 이지유 작가의 글은 우리의 안목을 훨씬 더 폭넓게 만들어준다.   


아. 이 책을 급히 볼 생각은 하지 마시길. 부디 천천히. 아쉽다면 아쉬움이지만 엔솔로지 작품을 마주하며 장편소설의 플롯을 기대해서는 안되니. 동일한 상황도 각자가 어떻게 느끼는가에 따라 다른 경험이 되니. 가장 가까운 곳에 두고 힘들 때마다 꺼내 읽으면 큰 힘이 될 듯.


그럼에도 각 작품은 희미하게 연결되어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정황이 주는 답답함과 혼란스러움. 그 가운데서도 여러 작품을 통해 우리는 작은 희망을 발견한다. 끊어져있고 떨어져 있고 멀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있음을 깨닫게 된다. 장석주의 마지막 속삭임은 우리를 희망으로 이끈다.


삶이 사막, 밤, 광활함에 잠식되더라도

고개를 떨구거나 의기소침에 빠지지는 말아요.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내게, 우리는 서로에게 기꺼이 

일상의 안녕과 평온한 기쁨을 건네는 집이 될 테니까요(66).


"의지와 노력만으로 언제든지 누릴 수 있다고 믿었던 모든 것들이 송두리째 흔들리면서 불안과 우울, 무력감이 현실의 시간을 허공에 조각내버리는 듯했다. 그렇게 조각난 허무의 시간들을 보내면서 어느새 2020년의 절반이 지났다."

안지미
- P12

"부모의 삶을 이해한다는 건 결국 자신(나)의 삶을 설명할 수 있게 된다는 것. 마흔이 되고 보니 그때 마흔의 부모란 애송이. 칠순이 되어 (이제 여기 없는) 그때 칠순의 부모를 되돌아보면서 저는 저의 어떤 면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게 될까요."

김현

- P24

"우리는 슬픔을 참을 수 없어 한다. 작은 기쁨을 던져 그것을 깨뜨리려 하거나 위협을 한다. 슬플 겨를도 없이 시간에 매몰되어서는 돌아올 수 없는 시간까지로 건너가기도 한다. 그곳에서 슬픔을 우리를 기다린다. 우리는 슬픔을 기다리지 않는다. 비극은 거기에서 시작된다."

서윤후
- P56

"공상은 유용한 것들에 대한 무기력한 투항이 아니에요. 공상은 근육의 이완과 백일몽의 모호함 속에서 기쁨은 촘촘해지지요. 이것이 모험가의 일은 아닐지라도 아주 무익하진 않아요. 시간을 헛되이 쓰는 잉여 활동에 가까운 이것의 쓸모는 엉뚱한 지점에서 나타나지요. 머릿속에 꿈의 공장을 짓는 일이라는 점에서 공상의 쓸모란 ‘쓸모없는 쓸모‘에 가깝지요."

장석주
- P63

"삶이 사막, 밤, 광활함에 잠식되더라도 고개를 떨구거나 의기소침에 빠지지는 말아요.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내게, 우리는 서로에게 기꺼이 일상의 안녕과 평온한 기쁨을 건네는 집이 될 테니까요."

장석주
- P66

"지난 백 년과 다르게 우리는 기술이 있고, 경험이 쌓였으며, 무엇이 문제인지를 깨달았다. 앞으로 백 년을 내다보고, 전 세계가 공조할 수 있는 전염병 대응 플랫폼을 만들어가는 일들을 통해 전염병과의 두더지 게임이 시작되었다."

문성실
- P73

"정작 심각한 것은 친인들을 잃어버린 물리적 거리보다 접속사를 상실한 언어의 거리가 아닐까. 살아온 삶을 설명할 언어를 잃고 점차 허무로 치닫는 영혼의 감염이야말로 오랫동안 인간을 괴롭힐 것이다."

장은수
- P81

"언어가 닿아 있는 한, 세계는 사라지지 않는다. 세계가 소멸하지 않는 한, 영혼 또한 존재한다. 영혼이 아직 있는 한, 입술은 언어를 내보낸다. 이로부터 위대한 순환, 즉 절망적 세계를 구원하는 시의 운동이 나타난다."

장은수 - P82

"20세기의 역사는 ‘접속사‘를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문명이 어떤 운명에 처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공포와 고독, 절망과 광기, 냉소와 허무에 시달리던 이들은 끝내 언어를 되찾지 못하고 또다시 전쟁에 돌입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전쟁에서 ‘유대인 대학살‘과 ‘원자탄 투하‘라는 인류사적 비극을 겪었다."

장은수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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