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이 세상이 불공평한 것이라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망설여지면 벌어진 일이 그다지 나쁜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려 한다.

어떤 때는 영악하게도 우리가 악이라 부르는 것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선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심지어 ‘추위’도 ‘열의 부재’상태, ‘어두움’도 ‘빛의 부재상태’에 붙이는 하나의 이름이라는 식으로.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어둠이나 추위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지 ‘증명’할 필요가 있는데,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발을 헛디디고 넘어져 부상을 입기도 하며 추위에 얼어죽기도 한다. 그들의 죽음이나 부상이 우리의 알량한 말장난으로 조금도 가벼워질 수는 없다.

어떤 때는 우리의 영혼이 정의를 너무나도 갈구하기에, 하느님이 우리를 공정하게 취급한다고 필사적으로 믿고 싶기에 우리는 눈에 보이는 이 세상만이 실존하는 유일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희망을 붙들어매게 된다. 이 세상 너머 어딘 가에는 ‘꼴찌가 첫째가 되는’, 그리고 ‘이 세상을 일찍 하직한 사람들이 사랑하던 사람들을 만나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는 그 어떤 세상’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위한 실질적인 지혜란 우리의 생명이 사후에도 어떤 형태로든 ─ 아마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형태로 ─ 계속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관심을 갖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이 세상이 결국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음이 드러날 경우를 대비하여 이 세상을 최대한 진지하게 살아가야 하며 여기서 의미와 정의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이제까지 살펴 본 비극에 대한 모든 반응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모두 ‘하느님이야말로 그 모든 고통을 일으키는 존재’라는 전제하에서 왜 그가 우리를 고통받게 하는가를 이해하려 한다는 점이다.

어떤 대답은 하느님의 명성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 자신을 탓하는 쪽으로 유도한다. 다른 대답은 현실을 부정하게 만들거나 우리의 참다운 감정을 억압한다. 우리는 단지 그 운명을 받아들임으로써 스스로를 증오하거나 아니면 우리에게 지나친 처사를 한 하느님을 증오해야만 할 뿐이다.

어쩌면 우리의 고통은 하느님의 행위가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그것이 하느님의 뜻을 벗어난 어떤 다른 이유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일어난 나쁜 일들이 하느님이 일으킨 것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오히려 그와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우리의 죄의식과 분노를 넘어서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그는 우리의 비극을 극복하도록 도우려 하고 있지 않을까? "어떻게 하느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하실 수 있을까?"라는 질문 자체가 사실은 잘못된 것일 수 있지 않은가?

이 책은 하느님이나 신학에 대해 요약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공연히 거창한 말이나 같은 질문을 교묘하게 반복하면서 ‘우리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은 별 문제가 아니며 다만 우리가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라는 점을 역설하기 위한 책도 아니다

이 책은 하느님과 세상의 선함을 스스로 믿으면서 또한 그것을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믿도록 돕는데 삶의 대부분을 바쳤으며, 개인적인 비극을 겪게 됨에 따라 자기가 지금까지 가르쳐온 하느님의 길에 대해 다시 한 번 숙고하게 된 한 사람이 쓴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이다.

나는 언젠가 이 책을 쓰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내가 알게 되고 믿게 된 중요한 몇 가지 사실을 글로 옮길 필요가 있었다. 아울러 나와 같이 곤경에 빠진 그 누군가를 돕기 위해 이 글을 쓰기로 했다. 또한 신앙을 계속 간직하고 싶지만 하느님에 대한 분노 때문에 신앙을 지키거나 종교로부터 위안을 받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 그리고 무조건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에게 헌신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자기는 이런 고통을 당해 마땅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학대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

모든 문제는 단 한가지 물음에서 출발한다. 왜 바르게 사는 사람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는가? 다른 모든 신학적 대화들은 지적 유희에 불과하다.

선한 사람이 당하는 불운은 비단 그 고통을 당해야 하는 당사자나 가족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세상이 정의롭고 공정하며 가치가 있다고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문제로 대두된다. 그들은 필연적으로 하느님의 선함, 온유함, 심지어 그 존재여부에까지 의문을 제기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편의 작가는, 어리석고 조급한 사람이 악한 사람의 번영과 착한 사람의 고통을 보면 악한 사람이 이익이라는 성급한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시편 저자는 우리가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의로운 자가 결국 사악한 자를 따라잡아 좋은 결과를 낳는다고 믿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계획의 배경에 있다고 추측되는 하느님은 의로운 사람이 따라잡을 시간을 늘 허락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그는 어떻게 설명할까?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미학적 가치에 기여한다고 해서 인간의 고통을 묵과하고 한 개인의 고통을 외면하려는 태도는, 각자가 지닌 생명의 지고한 가치에 대한 나의 종교적 신념에 비추어 볼 때에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만약 어떤 예술가가 엄청나게 인상적이고 가치 있는 그 무엇을 만들어내기 위해 어린이에게 고통을 가했다면 우리는 그를 감옥에 처넣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그 결과가 멋지다 해도 왜 하느님이 초래한 부당한 고통에 대해서는 우리가 양해하려고만 하는 것일까?

만약 잘못과 징벌이 서로 분명히 관련되어 있다면 내가 경험한 비극과 고통은 나의 잘못된 품성을 ‘고쳐주려’ 일어난 것이라 믿는 편이 오히려 더 편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욥은 하느님이 공정성이라는 개념보다 우위에 있기에 그토록 막강하고 일반적인 규칙들도 자신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고 이해한다.

우리가 문제삼는 것은 하느님의 연민과 신뢰성, 공정성이지 그의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너무도 강하기 때문에 욥에게 자신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대답이 될 수 있을까?

하느님은 존재하며 그는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꼭 공정해야 할 필요가 없다. 만약 그것이 저자가 하느님을 등장시켜가며 하려는 말의 전부라면 거기에 무슨 새로운 통찰이 있으며, 하느님이 욥의 의견에 동의한 것이라면 욥은 왜 그토록 송구스러워 했을까?

우리는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헛된 기대 대신에 하느님이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믿고 그에게로 돌아갈 수 있다

어쨌든 성서는 하느님이 가난한 자, 과부, 그리고 고아들에 대한 특별한 보호자로 묘사되지만 어떻게 그들이 애초부터 가난해지고 과부나 고아가 되었는지에 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또한 하느님이 우리를 심판하고 저주한다는 느낌을 갖지 않고도 우리의 자존심과 선한 의식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는 하느님에 대해 분노하지 않고도 우리에게 벌어진 일에 대해 화를 낼 수 있다

더구나 우리는 삶의 불공평함에 대한 분노나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본능적 연민을 하느님의 가르침, 즉 불의에 분노하고 괴로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연민을 가지라는 가르침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우리가 하느님과 맞선다는 느낌 대신 우리는 불의에 대한 자신의 분노를 우리를 통해 일하는 하느님의 분노와 일치시킬 수 있게 되며, 따라서 우리가 울부짖을 때에도 우리는 아직 하느님 편에 서 있고 그는 우리 편에 서 있게 되는 것이다.

왜 우리는 살인이 하느님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에게도 모독적이며 그의 목적에서 벗어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기보다는 오히려 범행 무기로부터 하느님의 지문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것일까?

"태초에…." 성서는 우리에게 말한다. "하느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했다. 땅은 아직 형태를 이루지 않았고 모든 것이 어둠을 덮고 있어 혼돈에 빠져 있었다."

그는 어두움으로부터 빛을, 하늘로부터 땅을, 바다로부터 마른땅을 구분해 낸다. 이것이 바로 창조작업이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기보다는 혼돈으로부터 질서를 잡아내는 것이다.

혼돈은 그릇된 것도, 악의적인 것도 아닌 단지 고약한 것일 뿐이다. 왜냐하면 불규칙하게 비극을 일으켜 사람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선함을 믿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자녀가 무언가를 잘못한다고 벌을 주면서도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말해주지 않는 부모가 있다면 그것은 책임감 있는 부모의 모습이라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고난은 우리를 변화시키시려는 하느님의 교훈의 일종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무엇을 변화시켜야만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이 때 하느님은 그 혼돈으로부터 사물을 정리하고 예전에는 불규칙성만이 존재하던 곳에 질서를 불어넣어 자신의 마술적인 창조작업을 시작한다.

의로운 사람들 중 일부는 그것을 성취하기도 전에 죽고 만다. 혹 다른 사람들은 처음 고통의 기간이 나중 혜택의 기간보다 훨씬 더 길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아아, 세상이란 시편 저자가 우리에게 믿기를 바라는 것처럼 그렇게 깔끔하게 잘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긴 안목으로 상황을 살펴본다면 악인은 잡초처럼 말라죽고 의로운 사람은 마치 종려나무나 백향목처럼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번성하리라는 점을 알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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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엘에게도 종교의 핵심은 정신과 마음이었습니다.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의 하나님께로 돌아오너라"(2:13 전반)는 말씀에서 그의 예언 사상의 핵심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는 금식과 굵은 베옷의 효능을 부인하지는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회개와 참회는 결국 마음의 문제, 영혼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요엘의 신앙은 야훼에 대한 신앙이 외적·물질적 축복과는 무관하다고 한 욥의 신앙 경지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외적 축복과 내적 축복이 모두 필요하다고 인정했다는 점에서 한계를 드러냅니다

요엘의 예언은 그다지 깊은 영적 의미를 지니고 있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요엘은 ‘그런 다음에, 내가 모든 사람에게 나의 영을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딸은 예언을 하고’(2:28)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야훼의 영Spirit이 부어진 결과는 도덕적 신생, 내면생활의 쇄신, 야훼에 대한 깊은 지식의 획득 등 도덕적·내면적 변화를 수반하지 않습니다. 야훼의 신은 다만 ‘영적 도취 상태’만을 초래할 뿐이었고, 요엘은 이 도취 상태가 다가올 ‘야훼의 날’에 대한 예고이자, 전조라는 점을 중요시했을 뿐입니다.

모세와 예레미야에게 있어 야훼의 영은 모든 백성에게 야훼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부여해 그들이 선지자들처럼 도덕적·종교적 진리를 충분히 지니도록 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그러나 요엘의 예언에서는 도덕적·내면적 변화가 전혀 부각되고 있지 않습니다. 요컨대 그에게는 영적 깊이가 결여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요엘은 위대한 예언자, 위대한 사상가라기보다는 오히려 탁월한 시인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특히 「요엘」 1장은 『구약성서』 중 가장 훌륭한 문장에 속하며, 요엘의 뛰어난 표현력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야훼는 영원한 주권자임에 틀림없으나 야훼의 절대적 주권은 아직 이 세상에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고, 그것은 장차 다가올 ‘야훼의 날’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철저하게 실현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엘 역시 자신이 목격한 메뚜기 재앙을 통해 ‘절망’을 경험하고 ‘야훼의 날’에 온 희망을 걸게 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요나의 행동에서는 일관성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의 행동은 대단히 모순됩니다. 즉 이방인인 뱃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기 목숨까지 기꺼이 바칠 수 있었던 사람이 야훼가 이방인을 구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요나는 이방인 개개인에게 사랑을 베풀고 때로는 목숨까지 바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방인 전체, 니느웨 백성 전체에게는 격렬한 증오심, 적개심만을 품었습니다. 오직 야훼의 진노와 심판만이 내려지기를 원했습니다. 실로 기묘한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지역 문제, 계층 문제, 통일 문제 그리고 전 세계적인 골칫거리가 된 인종 문제 등을 해결하는 궁극적인 방법은 인간 개개인을 하나의 고귀한 삶으로, 하나의 소우주로 바라보는 태도, 내게 속한 원자가 모든 인간에게 공유되고 있다는 생각을 갖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행되지 않는 한 문제의 해결을 기대하기란 어렵습니다. 문제의 시작도 끝도 결국은 인간 문제, 개인 문제인 것입니다.

김교신의 인격은 한마디로 ‘그리스도를 만난 조선의 선비’라고 표현할 수 있다

김교신은 기독교를 ‘조선 김치 냄새 나는 기독교’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일생 한국인의 심령에 뿌리박은 기독교를 추구했으며, 이를 위해 일체의 ‘인공적인 부흥復興의 열熱’을 배제하고 ‘천품의 이성과 인간 공유共有의 양심’을 견지하면서 ‘냉수를 쳐 가며’ 성경을 연구했다.

‘땅의 것’이란 안락하고 편안한 삶의 방식을 사랑함이다. 물질과 지위에 대한 집착이다. 여기에 지식인의 나약함이 끼어들면 신념을 포기하기란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워진다.

김교신 역시 최재서 못지않게 가진 것이 많았다. 그러나 김교신은 주 예수에 대한 순전한 사랑으로 ‘땅의 것’에 대한 모든 집착을 끊어 낼 수 있었다.

그는 앎과 삶이 일치하는 지사적 그리스도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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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에스라」는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첫째, 「에스라」는 사건이 일어난 지 200년도 더 지난 후에 기록된 문헌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에스라」는 과거를 지나치게 이상화해 서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결과 에스라는 포로가 된 유대인들이 종교적으로 얼마나 열정적이었는지, 제2 이사야와 에스겔의 예언을 이루겠다는 일념으로 바빌론에서 풀려나자마자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성전 재건에 착수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역사적 사실과 크게 다릅니다.

예언자의 메시지는 성전을 재건하라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임무가 아니었습니다. 백성은 형편이 몹시 곤궁했고, 궁핍한 생활을 핑계 삼아 성전 건축에 대한 무관심을 변명했습니다. 그러나 학개는 바로 이 같은 물질적인 어려움 때문에 성전 건축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백성이 생활고를 겪는 이유가 다름 아닌 그들의 종교적 무관심 때문이라 보았고, 신앙적 무관심이 계속될 경우 그들의 불행 또한 계속되리라고 보았습니다.

학개의 말은 맨 먼저 유다 총독인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그들은 학개의 예언을 청종해 즉시 성전 재건에 착수합니다.(1:12)

예언자의 메시지는 나무와 돌로 성전을 건축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예언에는 바빌론 포수 이전의 예언 정신을 특징짓는 죄와 부패에 대한 비판이 결여되어 있었고, 어떤 의미에서 학개는 마치 건축물이 종교의 본질이라도 되는 양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풍깁니다

아모스, 예레미야 등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예배의 본질에 대한 통찰이 결여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그의 한계는 당시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과 견주어 이해되어야 합니다.

바빌론 포수에서 풀려난 후 이스라엘은 더 이상 왕국이 아니었습니다. 식민지에 불과했습니다. 백성들이 만든 것은 하나의 당당한 국가가 아니라 ‘종교적 공동체’였습니다

학개가 활동하던 시기에, 예루살렘에 만들어진 작은 공동체의 미래는 성전 건립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민족국가로서의 정치적 소망을 박탈당한 상태에서 이제 성전을 중심으로 민족을 넘어 인류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정치적 이상이 아닌 영적 소망을 품도록 인도되어야만 했습니다.

학개의 예언으로 자극받고 고무받은 것은 바로 ‘마음’이었습니다. 학개의 말에 그들의 양심이 살아 움직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제 지극히 순수하고 내면적인 곳에서 새로이 출발하고 있었습니다.

과연 학개의 이 예언은 훗날 예수그리스도에 의해 온전히 성취됩니다. 첫째, 역사적 사실로서, 예수그리스도가 인자人子로 예루살렘 성전에 나타났으니 ‘내가 이 성전을 보물로 가득 채우겠다’는 예언은 이미 과거에 성취된 셈입니다.

둘째, 예수그리스도는 크리스천의 영적인 성전 에클레시아에 임재함으로써 ‘내가 이 성전을 보물로 가득 채우겠다’는 예언과 ‘그 옛날 찬란한 그 성전보다는, 지금 짓는 이 성전이 더욱 찬란하게 될 것이다’라는 예언을 지금 성취하고 있는 중입니다

셋째, 「요한계시록」에 "나는 그 안에서 성전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주 하나님과 어린양이 그 도성의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21:22)라고 쓰인 바와 같이, 학개의 예언은 장차 마지막 날 ‘하나님’과 ‘어린양’을 통해 그 절정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학개의 예언은 이처럼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꿰뚫고 상승 곡선을 그리며 영광과 완성을 향해 솟구쳐 날아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학개의 메시아 예언은 그가 기대했던 대로 성취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예언은 그것이 내포한 정치적 성격과 민족적 한계가 철저히 극복, 지양된 가운데 신약시대에 접어들어 예수그리스도에 의해 더욱 철저히, 예언자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완전하게 성취될 수 있었습니다.

「오바댜」는 『구약성서』 중에서 가장 짧은 책으로, 전체 21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오바댜란 이름은 ‘야훼의 종’ 또는 ‘야훼를 섬기는 자’라는 뜻입니다. 대부분의 히브리인 이름과 마찬가지로 이것은 부모의 신앙심과 자식에 대한 소망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각 민족에 대한 야훼의 도덕적 심판입니다. 심판의 주요 대상은 에돔이고, 징벌의 이유는 형제국 이스라엘에 대한 에돔의 잔인한 처사 때문이었습니다. 궁극적으로 주의 날에는 에돔뿐 아니라 모든 민족이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남은 자’remnant에게는 승리가 약속되었습니다.

에돔에 대한 유대인의 반감과 증오는 이렇듯 강렬했습니다. 그 적개심이 어찌나 깊었던지, 에돔이 멸망해 없어진 다음에도 ‘에돔’은 이스라엘의 극악한 원수를 가리키는 일반적 호칭이 되었습니다.

오바댜의 예언에서는 놀라운 비전이나 위대한 사상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오랜 세월 박해받고 고통받은 사람들의 억제할 길 없는 사무친 한을 대신 표현해 주었다는 점에 의미가 있습니다.

심판의 날과 승리의 날이 머지않아 다가오리라는,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원수가 멸망하고 유대인이 마침내 승리하리라는 희망을 심어 준 것입니다.

오바댜는 이스라엘의 원수인 에돔과 이방 민족들을 정죄한 반면, 이스라엘만이 높이 받들어지기를 대망했습니다. 이 때문에 오바댜는 흔히 편협한 국수주의적 예언자로 비판받기도 합니다. 실제로 오바댜의 예언에서는 제2 이사야에게서 볼 수 있는, 민족의 회개를 촉구하는 언급을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바댜의 예언이 가진 가장 중요한 요소, 영속적인 요소는 야훼의 나라가 끝내 임하고 말리라는 예언자의 확신과 신앙에 있습니다.

오바댜는 근본적으로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적·국가적 명분보다는 야훼의 의를 더 귀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넓은 의미에서 예언 사상의 본질은 역사 속에 야훼의 섭리가 존재한다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야훼는 세계를 창조한 후 손을 떼고 등을 돌린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지켜보며 역사 속에서 인류가 도덕적 의무를 소홀히 할 경우 가차 없이 심판과 징벌을 내린다는 것이지요.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히 이스라엘인과 가나안인, 앗시리아인의 피가 섞이게 되었는데, 이 혼종을 수도 사마리아의 지명을 따 사마리아인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한편 남왕국 유다는 앗시리아의 뒤를 이어 등장한 바빌로니아에 의해 기원전 597년에 정복되고, 그 뒤 약 60년 동안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가 고초를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기원전 539년에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의 칙령으로 많은 유대인이 유배지 바빌론을 떠나 애타게 갈망하던 조국으로 귀환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기 시작했는데, 그들에게는 일손이 많이 모자랐습니다. 이에 사마리아인이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을 돕겠다고 나섰으나 유대인이 이를 거절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을 더러운 피가 섞인 혼종일뿐더러 잡신을 섬기는 족속(「열왕기하」 17:25?34)이라고 죄악시했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사마리아 사람들과 유다 사람들이 종교적·정치적으로 격리되어 서로 원수처럼 적대시하게 되었습니다.

강대국들이 세력 경쟁에 여념이 없는 가운데, 이스라엘 민족은 세계에서 고립된 상태에 놓였습니다. 그들이 나태와 탐욕의 수렁에 빠져든 것은 그와 같은 여건 속에서였습니다. 바빌론 포수에서 풀려난 후 그들은 우쭐거리며 자긍심에 차 있었습니다. 포수 기간 동안 고초를 당하면서 야훼의 진노를 경험했고, 그로 말미암아 내적인 정화를 경험했으니, 훈련과 규율에서 자부심이 싹트는 것은 흔히 있는 일입니다. 지도자들은 오직 그들 집단만이 참다운 ‘남은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성전 재건 이후에 밀어닥친 좌절과 난관 앞에서 그와 같은 심리 상태는 대단히 부적합했습니다. 성전의 완성과 함께 떠오르던 무지갯빛 희망은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고, 야훼의 백성은 여느 이방 민족과 마찬가지로 흉작 등의 자연재해와 이웃 민족의 계략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그들의 자부심은 더 이상 설 자리를 잃고 말았습니다.

실망은 환멸로 이어졌고, 환멸은 종교적·도덕적 해이를 초래했습니다. 이와 같은 심리 상태는 대단히 이례적인 것으로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새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야훼의 사랑과 거룩함을 경멸했습니다. 성전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했고, 감히 야훼에게 더러운 떡과 흠 있는 동물을 바치기도 했습니다. 이런 행동은 페르시아인 총독에게도 감히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예언자 호세아의 말처럼 "그 백성에 그 제사장"이었습니다.(「호세아」 4:9) 이 시대의 제사장도 백성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제사장직의 위엄뿐 아니라 최소한의 품위마저 상실했습니다. 그들은 야훼의 율법을 경멸했고, 백성 가르치기를 중단했으며, 매사를 편파적으로 판단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그들은 백성에게도 경멸당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계층에 도덕적 타락이 만연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형제를 배신했으며(2:10) 간음, 위증, 사기, 빈민에 대한 수탈이 극심해졌습니다.

유대인들의 형편없는 도덕적 타락을 보여 주는 단적인 예로 그들의 결혼 풍습을 들 수 있습니다. 그들은 유다의 가장 훌륭하다는 가문조차 이방인과 다를 바 없는 그 고장의 토착민들과 거리낌 없이 혼사를 맺곤 했습니다.

참다운 남은 자요, 진정한 이스라엘 가문이라고 자부했던 유대인들은 이처럼 반이방적인 유대인 및 사마리아인 들과 거리낌 없이 혼사를 맺었습니다. 불안정한 식민지 상황 속에서 그들과 결합하는 것이야말로 부와 권력을 확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종교적 상태 역시 성전 재건 이후 반세기 동안 크게 쇠락했습니다. 이 상태로 오랜 침묵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원전 460년경 야훼의 말씀이 다시 한 번 예언자 말라기의 입을 통해 발하게 됩니다.

‘말라기’가 사람의 이름이냐 아니냐는 문제를 두고 학자들 간에 많은 논란이 있었고, 오늘날에는 그것이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는 것이 거의 정설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구약 문서 중 다른 어디에도 말라기라는 이름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추측컨대 「말라기」의 편집자가 책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제목이 누락됐음을 발견하고 3장 1절의 "나의 특사"(말라기)라는 말을 책의 이름으로 사용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이로 인해 마치 ‘말라기’라는 인물이 실재했던 것처럼 간주되어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예언자 본인은 자신의 이름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아마 이 예언자는 가난하고 박해받던 집단에 속했고, 당시의 지배계급을 향해 공격의 화살을 퍼부었기 때문에 자신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기를 더 원했는지 모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예언자의 이름은 이 세상에 기록으로 남겨진 것이 아니라 "야훼 앞의 비망록"(3:16)에 기록되어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예언자를 달리 호칭할 방도가 없으므로 여기서는 잠정적으로 이 책의 제목인 ‘말라기’라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말라기의 예언 대상은 두 부류였습니다. 첫째, 물질적 풍요로움 속에서 죄악에 빠져든 백성, 둘째, 불평불만 속에서 야훼를 섬기던 부류였습니다. 이 두 번째 부류인 불평불만자들은 첫 번째 부류가 향유하는 성공적인 생활을 보며 자신들의 신앙생활에 낙담하고 있었습니다.

매사가 이런 식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종교는 느슨하게 나사가 풀렸고, 백성 간에는 냉소적인 태도가 만연했습니다. 이제 말라기의 예언 활동은 과거의 예언자들보다 한층 계획적이고 치밀한 논증으로 바뀔 필요가 있었습니다.

말라기의 예언은 세 단계를 거칩니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먼저 진리가 선포됩니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첫 번째 단계에서 선포된 진리를 들은 백성의 입장에서 제기할 수 있는 반박이 열거됩니다. 여기서 종종 사용되는 말은 "그러나 너희는"입니다.

끝으로 세 번째 단계에서는 앞서 선포된 진리가 철저히 다져집니다. 여기에서 비로소 진정한 예언자적 방식이 취해지는 것입니다.

말라기의 예언 방식은 대단히 특이한데, 이를 그의 개인적인 특징이라고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는 마치 교사 같은 태도를 취합니다. 스바냐에 의해 예언이 묵시적 성격을 취했고, 하박국에 의해 예언이 지혜서의 성격을 취했다면, 이제 말라기에 이르러 예언은 교육적·논증적 형태를 취하게 된 것입니다.

말라기 시대 이스라엘 민족의 ‘성전에 대한 경시’는 포수 이전의 예언자들이 공격해 마지않았던 ‘광적인 의식 종교’와 근본적으로 같은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말라기는 제사장들의 성전에 대한 태만뿐 아니라, 지적 의무의 소홀함에 대해서도 질책합니다. 왜냐하면 제사장은 ‘만군의 주 나의 특사’이기 때문입니다.

말라기의 말은 사제직에 대한 두 가지 극단적인 견해를 배격하는 데 유용합니다. 두 가지 극단적인 견해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사제직의 본분이 기적적인 은사의 전달에 있다고 보는 견해와 둘째, 사제직을 신비롭게만 여기는 견해입니다.

말라기의 말처럼 모든 사제는 ‘지식의 사제’, ‘진리의 사제’입니다. 지식의 포기야말로 기독교가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이교적인 이웃의 유력한 가문과 혼인하려고 본처와 이혼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말라기는 대단히 심원한 예언을 설파했습니다. 이는 그의 예언 가운데 매우 탁월한 부분으로서 그의 시대에 붙여진 율법주의라는 혐의를 벗기는 데 큰 효력을 발휘합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시하기를 거부했습니다. 루터에게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말’을 어떻게 구분합니까?"라고 묻는다면 그는 필경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 구분할 수 있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말일지라도 그리스도의 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성경을 읽는 매우 중요한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말라기의 예언은 율법 아래 예속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언자는 율법을 통해 백성에게 은혜를 널리 파급하고자 했습니다.

실제로 말라기의 가르침이 얼마나 과장되고 남용되기 쉬었는지는 그 후 이스라엘 역사에서 그리고 그 후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 무수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약시대에 접어들어 예수그리스도가 가장 신랄하게 질책한 것도 바로 그 시대에 행해진 종교적 왜곡이었습니다. 구약시대의 마지막과 신약시대의 처음은 이러한 문맥 속에서 연결되어 있습니다.

말라기 시대 사람들은 종교적인 면에서 전혀 진지함이 없었습니다. 성전 자체를 경시했으며, 제물을 바치는 데도 지극히 인색하고 기만적이었습니다. 요컨대 이때는 야훼를 빈정거리는 시대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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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언어는 파동이 아닌 글자로 존재하기에, 같은 말을 하더라도 다른 감정이 전달되기도 하고 곡해되기도 한다. - P6

사랑하는 게 좋아하는 것의 상위감정이라고 믿어왔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이 두 감정이 각기 다르게 소중하게 느껴졌다. 더 솔직히 말하면 ‘좋아한다‘는 감정이 더 반갑다. 좋아하는 마음이 사랑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좋아하거나 사랑하거나 만나면 반가운 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헤어져 있는 어느 때 못 견디게 보고 싶다면, 사랑일 확률이높다. - P17

연인 사이에 사랑의 속성 중 하나는 ‘그리움‘이다. 그리움이라는 건 빈 곳이 느껴진다는 것, 다시 말해 이곳이 당신으로 채워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사람은 소유할 수 없다지만, 어쩔 수 없이 소유하고 싶어지는 얄궂은 마음이 사랑이다. - P17

‘좋아한다‘는 감정은 반대로 조건이 없다. 혼자서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면 마음 한편이 시큰해지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은 그런 게 없다. 해가 좋은 날 널려진 빨래가된 것처럼 뽀송뽀송 유쾌한 기분만 줄 수 있는 건 ‘좋아하는 사람‘이다. - P17

실망이라 함은 ‘바라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상한 마음‘을 뜻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건 상한 마음‘이 아니라 ‘바라던 일‘이다. - P21

실망은 결국 상대로 인해 생겨나는 감정이 아니다. 무언가를 바란, 기대를 한, 또는 속단하고 추측한 나에게서 비롯되는 것이다. - P21

앞서 말했듯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고유의 모양으로 존재하는데, 타인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그렇다. 나의 경험치와 취향, 태생적 기질 등이 빚어낸 지극히 사적인 시선으로 서로를 볼 수밖에 없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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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은 ‘비옥한 초승달’의 끝자락에 자리 잡은, 작고 보잘것없는 지역이었지만 대단히 중대한 지정학적 의의를 갖고 있었습니다. 인류의 4대 문명 발상지에 속하는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를 이어 주는 위치에 놓여 있었던 겁니다.

국경지대에서 성장한 미가는 자연히 국제 관계에 깊은 관심을 가졌을 뿐 아니라 침략에 대한 커다란 두려움도 갖게 됩니다. 그것은 해안 지방이나 국경지대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심리입니다.

미가는 예루살렘 주민보다 시골 사람들에게 더 큰 애정을 보였고, 유다에 임박한 파멸의 근본 원인인 백성의 죄악을 정죄할 때도 고향 마을 시골 사람들의 입장에 서 있었습니다.

이사야가 주로 도시와 궁정의 타락, 음모를 풍자·비판한 데 비해 미가는 농민을 학대한 지주들의 탐욕과 불의를 꾸짖었던 것입니다.

미가는 무엇보다도 고향 마을 사람들이 당한 부당한 학대와 어려운 처지에 진정 어린 관심을 쏟았습니다. 이 문제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그는 아모스와 호세아가 가장 중대한 죄악이라고 생각했던 지배계급의 사치와 우상숭배 등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사회 모순에서 비롯된 각종 사태가 주로 농촌에 집중된 이유는 사회적 비리와 불의가 도시보다는 농촌에서 더욱 철저하고 극단적으로 자행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도시는 농촌에 비해 사회의 계층과 구성이 다양하고 복잡합니다.

미가는 부자들이 저지른 만행을 신랄하게 꾸짖습니다. 금력과 권력을 쥔 부자들은 못된 일을 계획하고는 그것을 거리낌 없이 해치우는 악당들입니다. 탐나는 집과 밭이 있으면 모조리 빼앗고, 집주인은 종으로 밭 임자는 머슴으로 부려먹습니다. 그들은 백성을 원수 다루듯 하고, 평화롭게 지나가는 사람의 옷을 벗기며, 부녀자들을 정든 집에서 쫓아냅니다.(2:1?9)

금력과 권력을 가진 부자들이 농민을 수탈한 주역이라면, 유다의 재판관들은 부자들의 충실한 하수인으로 봉사했습니다.

미가는 기원전 8세기 유다의 경제 번영 이면에 가려진 부자들의 횡포와 민중의 비참한 삶을 깊이 통찰했습니다. 그는 ‘경제 발전’ 이외에는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었던 정치 지배자들의 추악한 뒷모습을 낱낱이 들추어 정죄했던 것입니다

도덕성을 상실하고 탐욕스러운 무당, 판수로 전락해 버린 거짓 예언자들에게 앞일을 내다보는 통찰력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흔히 "돈에 눈이 멀었다"느니, "황금에 눈이 어두워졌다"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미가의 예언을 볼 때 이것이 단지 수사적 표현에 불과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엄연한 ‘도덕적 사실’입니다.

미가는 야훼를 거스르는 유다 지배계급의 본거지인 예루살렘이 완전히 파멸할 것이라 말한 최초의 예언자였습니다.

미가는 수도 예루살렘이 아닌 ‘시골 출신 예언자’인 동시에 포악한 부자들과 맞서 싸운 ‘농민의 예언자’였습니다. 그가 그린 메시아는 보잘것없는 시골 마을에서 출생합니다.

예수그리스도가 미천한 출생의 노동자였다는 역사적 사실은 중대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리스도의 조상은 목자였고, 어머니는 농부의 딸이었으며, 그리스도 자신은 목수였습니다. 예수에 대한 여러 비유에서 잘 볼 수 있듯이 그리스도의 풍모는 시골의 들판과 가축, 외양간에 잘 어울립니다. 하인과 장터의 아낙네, 광야의 목자와도 잘 어울립니다. 유다의 가난한 농민들은 메시아가 자신들과 같은 신분으로 태어날 것이라는 미가의 약속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얻고 인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의 종교는 로마 제국에서 주로 노동자들과 노예 하층민들에게 환영받았던 것입니다.

헌신적으로 의무를 이행하고, 타인을 선의와 성실로 대할 때 비로소 그 사회가 바로 설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 이전에 ‘신과 사람 사이’의 올바른 관계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히브리 종교의 핵심입니다.

전반적으로 스바냐는 돈과 권력을 가진 유한계급을 질타했으나 결코 빈민의 입장에는 서지 않았고, 아모스나 미가처럼 빈민의 고통에 동정을 표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같은 경향은 스바냐가 왕실 가문에 속했기 때문에 가난을 경험하지 못한 데서 기인했다고 설명하면 쉽사리 납득할 수 있습니다.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유다는 아직 명목상 앗시리아의 속국이었지만, 요시아는 앗시리아의 세력 약화를 틈타 다윗 제국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권을 행사했음이 분명합니다

스바냐의 예언 사상은 ‘야훼 날의 임박’이라는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있으며, 이 주제는 4단계로 나누어 제시됩니다.

매우 젊은 나이에 활동하다가 요절한 것으로 보이는 스바냐는, 다른 예언자들과 달리 격렬하고 가차 없는 분노를 보였습니다. 『구약성서』의 다른 어떤 책도 「스바냐」처럼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 있지는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왜 파멸당하는 것입니까? 스바냐에 따르면 이스라엘 종교의 근본이 해이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근본이 흐트러졌다면 개혁은 해 보았자 헛일이 되고 말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스바냐는 그의 개혁 운동을 비관적으로만 보았을까요? 우리는 비단 스바냐뿐 아니라 그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연하의 예레미야 역시 요시아에게 별반 주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유의해야 합니다. 그들은 모두 요시아의 개혁의 본질을 통찰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볼 때 그 개혁 정책의 진정한 목적은 고작 이스라엘과 유다를 통합시켜 위대한 왕국을 건설하고자 한, 정치적 개혁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히브리 종교의 신은 밀실에 숨어 있는 소시민적 부류들을 등불로 찾아내어 그들을 기어이 광장으로 끌어내고자 합니다. 예언자 스바냐는 모든 사람에게 공적인 영역, 즉 광장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나훔은 대단히 열정적이고 낙관적인 애국자였습니다. 수십 년 동안 자신의 백성이 받은 모진 박해와 굴욕이 그의 뼛속 깊이 사무쳐 있었습니다. 그는 동시대의 보통 사람들이 품고 있던 감정을 대변해 준 인물이었습니다.

나훔 시대 사람들은 오랜 세월 이스라엘이 고난을 받아 오면서 야훼의 선하심과 권능에 대한 믿음이 엷어져 가는 종교적 위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훼의 백성에게 그토록 모질게 굴었던 앗시리아가 속히 멸망하리라는 예감이 들자 나훔의 감정은 반전되었습니다.

나훔은 군국주의를 반대했습니다. 「나훔」은 무력에 의한 전제적 폭압을 비판했다는 점에서 고전적인 위치를 점합니다.

나훔은 야훼가 전능한 도덕적 심판자임을 드러냅니다. 강대한 앗시리아를 멸망시키는 분은 다름 아닌 약소국 유다의 신 야훼였습니다. 나훔은 회개의 필요성은 언급하지 않은 채 단지 죄악에 대한 도덕적 심판만을 말했습니다.

나훔은 니느웨의 멸망을 통해 인간적인 복수심, 증오심만을 만족시키려 한 것이 아니라 야훼의 도덕적 정의와 심판을 드러내고자 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나훔의 예언은 적의 멸망에 대한 환희인 동시에, 야훼의 정의에 대한 찬양이었던 것입니다.

대부분의 예언자는 야훼 편에 서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예언을 선포했으나, 하박국은 반대로 이스라엘 민족 편에 서서 야훼에게 고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예언자들의 목표는 이스라엘의 죄악과 그에 대한 야훼의 심판 그리고 이스라엘이 회개할 경우 주어질 야훼의 은혜를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박국은 그들과 달리 야훼를 겨냥하고 있었습니다.

예언자들이 대개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정의가 뿌리내리도록 하기 위해 많은 고통을 견디며 인내했던 데 반해 하박국은 정의가 이스라엘에서 시행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을 엄청난 혼돈과 무질서로 가득 채워 놓은 이가 바로 야훼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박국은 야훼에게 불평, 불만이 뒤섞인 질문을 퍼부으며, 부당해 보이는 야훼의 처사에 항의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야훼에게 의문을 제기하긴 했으되, 야훼를 거역하고자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박국은 다만 현실 생활에서 솟구치는 의문, 즉 야훼는 정의로운데 어째서 세상의 불의를 방관만 하는지에 관해 솔직히 궁금증을 피력할 따름이었습니다.

하박국이 사용한 ‘믿음’이란 말은 바울이나 루터가 사용한 ‘믿음’보다 더 넓은 의미를 갖습니다. 첫째, ‘믿음’의 원어인 히브리어 ‘에무나’Emunah는 『구약성서』에서 흔히 육체적인 견실성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에무나’는 공적 임무의 성실한 수행을 뜻하기도 합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의 진실성을 말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진실한 증언을 말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공정한 재판의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하박국이 사용한 ‘에무나’는 사도 바울이 사용한 것보다 그 범위가 자못 넓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faith이라기보다는 인내, 성실, 진실 등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의미를 갖습니다. 아마도 ‘신실함’faithfulness이란 표현이 가장 적합할 듯싶습니다.

‘의인은 신실함으로 산다’는 무슨 뜻일까요? 설사 신앙을 혼란케 하는 불의와 무질서를 경험하더라도 이스라엘은 끝까지 인내하며 일편단심 야훼에게 성실하고 충성스러워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고레스 같은 위대한 정복자가 정치적으로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유대 민족의 문제에 그토록 관심을 가지고, 세심한 배려를 베풀었다는 것은 일견 기이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가 내린 칙령은 그가 시행했던 전반적인 관용 정책의 한 사례에 불과했을 뿐, 결코 이례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관용’은 이를테면 고레스의 등록상표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의 명에 따라 바빌론은 물론 바빌로니아의 다른 모든 도시가 페르시아군에게 아무런 해를 입지 않고 무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에는 ‘고향’이나 ‘조국’ 같은 향수 어린 감정 외에 포로들을 끌어들일 만한 요인이 없었습니다. 도시는 황폐해졌습니다. 성전은 무참히 파괴되었습니다. 모든 활동이 정지되었습니다.

상당한 부를 축적한 유대인은 동포의 귀환을 물질적으로 기꺼이 도와주려 했지만(「에스라」 1:6), 자신이 직접 모험에 참여하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의 말처럼 그들은 소유물에 대한 애착을 버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기원전 597년 또는 기원전 586년에 맨 먼저 포로로 끌려갔던 사람들은 기나긴 포로 생활을 겪는 동안 대부분 기원전 538년 해방되기 이전에 죽었습니다

기원전 538년에 바빌로니아에 살았던 유대인 중에서 고향을 간절히 그리워한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려면 오랜 시간 동안 대단히 힘겨운 여행을 해야만 했습니다.

대규모의 집단적인 귀환은 없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헌신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만이 기회가 닿는 대로 이따금 작은 집단을 이루어 팔레스타인으로 향했을 뿐입니다.

스가랴가 활동을 시작한 때는 다리우스 왕 2년, 즉 기원전 520년이었습니다.(1:1) 학개의 예언이 기원전 520년 6월부터 9월까지 3, 4개월 동안 진행된 데 비해 스가랴는 학개보다 두 달가량 늦은 기원전 520년 8월에 등장해 기원전 518년 9월까지 2년 동안 활동했습니다. 그들이 예언자로서 등장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페르시아 제국의 불안정한 정국이었습니다. 간절한 그들의 눈에는 제국 전역에 발생한 거대한 반란의 소용돌이가 세계와 우주의 대파국으로 비쳐졌고, 그 파국은 메시아가 출현하기 위한 하나의 전조로 간주되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스가랴가 예언 활동을 할 동안 다리우스는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권을 확고히 장악해 가고 있었습니다. 캄비세스 사망 후 발생한 혼란은 종말론에서 말하는 ‘재난의 시작’(「마가복음」 13:8)이 아닌, ‘일시적인 위기’에 불과했음이 분명해졌습니다.

스가랴는 먼저 백성에게 야훼의 예언자인 자신에게 귀 기울여야 할 책임이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는 백성들이 옛 선지자들의 메시지를 듣고도 이를 거역했음을 상기시킵니다.

예언자들의 예언은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약속대로 성취되었습니다. 따라서 유다 백성에게는 과거에 조상들이 예언자들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은 전력이 있음을 깊이 유념하고, 스가랴의 예언에 순종해야 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유대인이 역사적 상황의 궁극적인 변화와 메시아의 강림을 얼마나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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