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닥치면 너무 막막하여 땅이라도 뚫고 들어가고 싶다.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아예 사라진다. 다행히 내게 두 눈이 있어 글자를 안다. 책 한 권을 들고 읽기 시작하면 모든 게 바뀐다. 무너졌던 마음이 곧바로 안정을 찾는다.

이덕무

나의 관심은 『논어』를 통해 슬픔을 극복한 이덕무에게 있을 뿐이다. 공부하고 책 읽고 글 쓰는 일만큼 실용적인 건 세상에 없다고 나는 감히 생각한다.

책에 홀리고 사로잡힌 사람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어 버렸다.

사람은 왜 책을 읽고 왜 공부를 하는 것일까? 길을 잃고, 돌아올 방법을 잊어버리기 위해서라고 답할 수도 있겠다. 위험하다고? 물론 위험하다. 세상에 위험하지 않은 독서는, 공부는 없다.

작가란 기본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다. 아무 거짓말이나 마구 해 대는 사람은 아니다. 거짓말은 거짓말이되 거짓말 같지 않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바로 작가다

작가가 쓰는 모든 글은 자전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글에 적혀 있는 사건들을 다 경험했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이덕무가 표현한 참된 정이 ‘거짓말’과 ‘자전적’이라는 표현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어떤 의미냐 하면 참된 정을 그려 낸다는 것이 일어난 사실과 머릿속 느낌, 가슴속 정열을 그대로 옮겨 적는다는 것은 아니라는 거다. 읽는 이의 뼛속 깊이 스며드는 문장이 좋은 문장인데,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자전적 거짓말’이라는 거다.

진짜를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표현하는 것, 거기에 더해 믿음과 감동까지 선사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글쓰기와 공부의 최종 지향점이다.

파격에 약하다는 건 공부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자기만의 논리를 갖추지 못해 남들의 시선을 의식한다는 뜻이다.

배우는 데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모르면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붙들고 물어야 한다.

박지원

공부란 원래 자질구레한 것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하는 법이다. 나라를 구하려고, 세상에 내 뜻을 펼치려고 공부를 시작했다는 이들은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는 게 좋다.

욕심에 눈을 감고 분수를 지키는 것, 그것이 집으로 돌아가는 비법이 되었다.

눈의 기능은 외부가 아닌 내부를 보는 데 있다고. 그러므로 장님이 된 이는 더 환한 눈을 갖게 될 것이며, 뒷날의 그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사람일 것이라 격려한다.

따뜻하고 유연한 사고를 지녔던 이황은 하나의 문제에서 답을 얻지 못했다면 놔두는 것도 좋고, 방향을 바꿔 딴생각을 하는 것도 좋다고 했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생각을 얻을 수도 있고, 고민했던 문제의 답을 어느 순간 갑자기 얻을 수도 있는 법이라고 했다. 진리를 얻는 방법은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라고도 했다.

자신이 고양이를 도둑으로 대했기 때문에 도둑고양이가 되었다고 결론 내린다. 고양이의 다른 면은 보려고 하지도 않고 도둑고양이로 낙인을 찍었던 것이다.

임준원과 비리 공무원의 차이는 하나뿐이다. 비리꾼들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이만하면 됐다’ 말하고, ‘이만하면 됐다’고 말할 때 ‘아직도 부족하다’며 자책한 것. 평생 공부하며 알아야 할 것은 그만두어야 할 때와 더 해야 할 때를 아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엔 두 가지 종류의 직업이 있다고, 돈을 잘 버나 자유 시간이 거의 없는 직업과 돈을 잘 벌지 못하나 자유 시간이 굉장히 많은 직업이 있다고 말한다. 두 직업에 우열이 있는 건 아니며, 선택하는 사람의 가치 기준에 따를 뿐이라고 말한다.

공부도 비슷할 것이다. 내 안의 것보다는 내가 갖지 못한 것에 자꾸 욕심을 부리니까. 공부란 결국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다시 보는 일이다. 그렇기에 어렵다.

물론 실망한 건 내 책을 안 읽어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에 무지했기 때문이다. 내가 더 놀란 건 그러고도 아이들이 부끄러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랄까, 자기들의 공부와는 무관하다는 식이었다

인문학에 대한 무관심, 강연자와 교사에 대한 그릇된 태도를 아이들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우리 사회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라면 그게 오히려 정상적인 반응에 가까울 테니까.

과학밖에 모르는 과학자라니. 도서관에 처박혀 책만 읽은 후에 검사가 된 이들만큼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졸렬한 사람이기에 졸렬한 글을 쓰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졸렬함을 면하는 것

공부를 완성하는 데는, 사람이 되는 데는 단 한 권의 책이면 충분하다는 것.

아무것도 쓸 수 없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책도 읽을 수 없고 생각을 할 수도 없다. 애꿎은 탄천 산책길의 수풀을 노루처럼 발로 차며 마음 다스리는 흉내만 낼 뿐이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공부하는 건 어쩌면 외로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를 찾기 위한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이이는 같은 소리는 서로 반응하는 법이라고 했다. 같은 기운은 서로를 찾는 법이라고 했다.

그들보다 몇 배는 더 써야 한다. 그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 끝까지 붙들고 늘어져야 한다.

공부하고 책 읽고 글을 쓴다는 것은 곧 닥칠 가을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말년의 양식을 준비한다는 뜻이다.

이덕무는 혼자였다. 그러나 외롭지 않았다. 자신의 손으로 글 쓰는 것을 자신의 눈이 봐 주었고, 자신의 입으로 글 읽는 것을 자신의 귀가 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이덕무는 말한다. 나 자신을 친구로 삼았으니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홍길주는 말한다. 다른 사람의 식견이나 문장이 나보다 낫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내게 그만큼의 식견과 문장이 갖춰져 있기 때문이라고.

홍길주는 나를 위로하지만 그건 그저 위로일 뿐이다. 남의 식견이나 문장이 나보다 낫다는 생각이 드는 건 실제로 더 낫기 때문이다.

남은 자들의 선택은 그것을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 둘 중 하나뿐이다. 괴로워도 인정해야 하리라.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내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모든 공부의 시작점이라고.

어떤 글을 읽느냐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다. 이 말은 곧 글이 전부가 아니라는 뜻이다. 옛사람의 글을 읽는 건 이래서 어렵고 또 흥미롭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귀신이 통하게 해 준다는 옛말이 있다. 귀신이 아니라 마음이 스스로 통하는 것이다.

서경덕

김정희는 구천구백구십구 분까지 이르렀어도 나머지 일 분은 성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다음 말이 재미있다. "나머지 일 분은 사람의 힘으로는 가능하지 않으나 그렇다고 사람의 힘 말고 다른 데에서 오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가 학문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오래된 습관에 발목을 잡히기 때문이다.

이이

스스로 고심한 것이 아니면 다 평범하게 여기는 법이지요.

정약용

학문이 부족한 사람은 한 글자 한 글귀라도 지적받으면 잘못을 변명하고 억지만 부릴 뿐 절대 승복하지 않는다. 비록 속으로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말이다.

정약용

말이란 하기는 쉬우나 자취가 없다. 편지로는 신중히 생각하고 깊이 연구할 수 있으므로 깊은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이익

군자는 소경이나 귀머거리처럼 더욱 독서하고 더욱 겸손해야 한다.

이덕무

책을 읽을 수 있는 건 행운이다. 왜 그럴까? 백 명의 사람 중 책을 좋아하는 기질을 갖고 태어난 사람은 별로 없다. 기질을 갖고 태어났다 해도 책을 읽을 만한 장소를 갖춘 이는 별로 없다. 장소를 갖췄더라도 책을 읽을 만한 시간을 가진 이는 별로 없다. 기질, 장소, 시간을 다 갖췄더라도 읽을 만한 책을 다 가질 정도로 풍족한 이는 별로 없다. 내 주장이 아니다. 옛사람의 글에서 인용한 것이다.

"내가 군자라면 소경이나 귀머거리이기라도 한 것처럼 읽기에 더 몰두해야 하리라. 그러면서도 늘 겸손해야 하리라."
책 읽고, 글 쓰고, 공부하는 게 피곤하고 우울하고 짜증날 때마다 나는 그를 생각한다. 그 사람의 이름은 이덕무다.

세상 사람들이 부지런히 일하는 것이야말로 재앙과 실패의 근원이다.

성현

공부하는 이들 중엔 지나치게 진지하고 틀에 박힌 사람이 많다. 그런 이들에게 감히 만행을 권한다. 어렵다면 게으름을 부려 보는 것도 좋겠다.

우주의 일은 곧 나의 일이요, 나의 일은 곧 우주의 일이라는 말이 있다. 대장부라면 늘 그래야 한다.

정약용

나의 일이 우주의 일이며, 당신의 일이 우주의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일은 곧 우주의 일이다. 이것이 바로 유학의 핵심이다. 유학이 고리타분하다고 단정 지어 말해서는 안 된다.

공부하는 사람이 고루한 것이지 책과 학문이 고루한 것은 아니다.

천하 사람들이 모두 책을 읽는다면 세상은 더욱 평화로워지리라.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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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에는 방향도 실체도 없다.

김택영

갑작스러운 깨달음. 공부하고 글 쓰는 모든 이들이 바라는 것이며, 깨달음을 얻기 위해 지금껏 수많은 학인과 작가가 온몸을 바쳐 노력해 왔다.

깨달음은 꿈에 혹은 산책 중에 나타나기도 하고, 웃고 떠들 때, 책을 읽고 글을 쓸 때 나타나기도 한다. 공부하고 책을 읽어야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책에 눈을 붙이기만 하고 마음을 두지 않으면 읽어도 아무런 이익이 없다.

홍대용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보게 되고, 볼 줄 알면 모으게 된다는 문장.

나는 책 읽는 사람들이, 공부하는 사람들이, 당신이 소설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기 쓰는 실업자 유만주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남은 남답고 나는 나다운 경지가 대단히 좋은 것이다."

살면서 가장 어렵게 느끼는 일은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하고, 말해야 할 때 말하는 것이다.

침묵해야 할 때와 말해야 할 때를 적절히 판단해서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다.

일흔일곱의 허목은 여전히 정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실력자였다. 그를 정계에서 버티게 만든 건 바로 침묵의 원칙이었다.

경치가 아름다운 곳을 지날 때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림 속의 인물 같을 것이라고 부러워한다. 막상 찾아가 물어보면 스스로 즐겁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다.

조귀명

흔히들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역사는 반복될 뿐이다.

당신이 글을 써 본 적이 있다면 알 것이다. 잘 쓴 글이건 못 쓴 글이건 글을 없애는 데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깨달음은 질서 없이 몰려오므로 어떤 날은 몇 걸음 걷다가 멈추기를 반복한다.

번뜩 찾아온 깨달음을 적은 것이기에 논리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인 경우가 많다.

그런 까닭에 기록할 때는 굉장한 무언가로 여겼으나 시일이 경과한 후에 다시 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던 적도 있다.

번뜩했던 무언가가 사라지기 전에 다시 살펴서 단어들을 문장으로 만들고 엉성한 문장의 빈 곳을 채우고 감정의 언어를 논리의 언어로 변환해야 비로소 온전한 기록이 된다.

이것이 묘계질서妙契疾書의 원칙, 깨달음을 얻으면 재빨리 글을 써서 생각을 잡는다는 뜻이다.

단 한 줄, 단 한 단어도 없애려고 하면 아쉽다. 스스로 자신의 행적을 지워 버린 남곤을 어떤 면에서는 대단하게 여기는 이유다.

실패 또한 반복된다. 이래서야 역사를 공부할 이유가 없지 않나.

인문학도 필요하지만 소설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할 능력은 없지만 소설 읽기도 공부라고 말하고 싶다.

깨달음이 언제 올지는 알 수 없으며, 깨달음에는 정답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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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0-09-09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 책 꼭 읽어야겠어요!

모찌모찌 2020-09-09 13:46   좋아요 0 | URL
아^^ 유유에 이 시리즈가 저는 좋더라고요 ㅎ 근데 호불호가 있을것 같긴해요 ㅎ 쭉 이어지는 스토리는 아니고요 ㅎ 문장 하나에 느낌과 생각을 서술한 책이어요 ㅎ 각 문장이 마음에 드시면 좋은 선택이 되실 것 같네요^^
 

맹자가 강조한, 마음 다잡는 공부를 삼십 년 넘게 했더라도 위기 앞에서는 여전히 겁을 먹고 헤매는 존재가 바로 우리라는 사실, 그것이 이학규 발언의 핵심이다.

자신이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실감한다

공부란 나의 미숙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민낯 그대로 보이는 일이기도 하다.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사람은 세상을 다르게 보는 이단들이다.

대장부의 생애는 관 뚜껑을 덮어야 끝나는 법입니다.

허균

허균은 대장부의 생애는 관 뚜껑을 덮어야 끝이 나는 법이라고 썼다. 대장부뿐 아니라 공부하고 꿈꾸는 삶을 사는 누구나 그럴 것이다.

어려서 깨달아 기억을 잘한 사람은 많다. 하지만 재주만 믿고 게으름을 부리다가 늙으면 세상에 그 이름도 들리지 않는다.

이서우

재주는 부지런함만 못하고, 부지런함은 깨달음만 못하다.

홍길주

책 내용을 전부 외웠는데도 그 책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래전에 읽은 책의 정수를 잘도 말하는 이들이 있다. 왜 그럴까? 홍길주는 사람마다 성취가 다른 건 깨달음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력한다고 해서 모두가 훌륭한 결과물을 생산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똑같이 노력해도 덜 이루는 사람이 있고 더 이루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한계를 바라보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렇다고 외면이 올바른 대처는 아니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고 자신의 한계까지 가 보는 것, 어쩌면 이것이 깨달음이 느린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일 수도 있겠다.

부끄러운 일이 있다면 부끄러워해야 한다.

이만부

"유치가치"有恥可恥, 부끄러운 일이 있다면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뜻의 네 글자가 나를 고개조차 들지 못하게 한다.

"무치역가치"無恥亦可恥, 부끄러운 일이 없다면 그 또한 부끄러워해야 한다.

이만부는 부끄러운 일이 있어도 부끄러워해야 하고, 부끄러운 일이 없어도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한다. 전자가 옳으면 후자가 옳지 않아야 하고, 후자가 옳으면 전자가 옳지 않아야 하는 것이 우리가 아는 상식이다

내 보잘것없는 식견과 하찮은 지식으로 어찌 감히 책을 저술하는 축에 끼어들 수 있겠는가. 다만 한두 가지씩이라도 기록하여 더 잊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 나의 뜻이다.

이수광

나는 암기를 통해 효과를 보았지만 아이는 그런 적이 없다. 아무리 좋은 방법이라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 소용없다는 것 또한 잘 안다. 공부는 참 어렵다. 공부 방법을 아는 건 더 어렵다. 공부 방법을 남에게 설명하는 건 더 어렵다.

"아이가 잘 외우지 못하더라도 용서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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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9-06 14: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주보다 부지런함보다 깨달음이 가장 높은 위치군요.
깨달음을 주는 책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잘 지내시나요, 올리버 색스 박사님? - 올리버 색스 평전
로런스 웨슐러 지음, 양병찬 옮김 / 알마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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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한 존재로 기억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어떠한 존재로 기억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 사람의 언행을 통한 어렴풋한 이미지겠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의미 있는 존재로 오랫동안 한 사람의 가슴속에 남아 있고 싶진 않을까?


여기 친밀했던 한 사람에 의해 존재로 남겨진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자서전의 형식으로 남기는 것도 의미다. 

하지만 소중했던 사람에 의해 다른 시각으로 그려지는 또 다른 나의 이야기 또한 매우 뜻깊을 것이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저자 올리버 울프 색스(Oliver Wolf Sacks, 1933~2015)는 잉글랜드의 신경의학자이면서 대중적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저술은 신경장애라는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분야이면서도, 문학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알기 쉽게 전문적인 지식을 표현하고 드러낸다. 그는 이야기를 사랑했고,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주장했다. 그의 이야기 사랑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는 팩트를 존중하여, 과학자 특유의 '정확성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의 주장에 따르면, 팩트는 내러티브 속에 깊숙이 박혀 있어야 하며, 내러티브에 의해 통합되어야 한다. 그는 내러티브, 특히 사람들의 내러티브에 진짜로 중독되었다(그리고 잘 지내시나요 올리버 색스 박사님?, 25).


이미 올리버 색스의 자서전인『온 더 무브』가 발간되었다. 하지만은 오랜 친구인 로런스 웨슐러(Lawrence Weschler)가 쓴『그리고 잘 지내시나요, 올리버 색스 박사님?』(알마, 2020)을 통해 우리는 올리버 색스의 다른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웨슐러는 「뉴요커」의 베테랑 작가로서 오랜 시간 색스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심지어 색스는 웨슐러 딸의 대부가 된다. 그만큼 서로에 대한 신뢰가 두터웠다고   있다.


색스는 어느 날 개인적 이유를 내세워 자신의 전기 작업을 중단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마지막이 가까워오던 때에 다시 웨슐러에게 중단된  작업을 재개하기를 요청한다. 그렇게 탄생한  책은 올리버 색스의 다양한 면면을   있다. 웨슐러와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색스와 관계된 많은 사람들의 인터뷰로 더욱 풍성하게 그의 삶을 엿볼  있다.


특히  책을 통해 그의 저술 활동 면면을 세심하게 관찰할  있다. 하나의 저작은 그의 존재를  싸움일 것이다. 때로 그는 막힘없이 빠른 시간 내에 글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매우  고통의 순간이 있었다. 그의 '글 막힘' 현상은 오랜 시간 그를 괴롭혔다. 그가 어떤 고통과 힘겨움 가운데서 자신의 저서를 출간하게 되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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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이스라엘‘ 거주지라고 생각되는 곳은 어찌 되었건 단 한 군데라도 ‘도시적’ 특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심지어 작은 마을(town)이라고도 부를 수 없을 정도였다. - P151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그것들은 모두 농사짓는 촌락이거나 부락(hamlet)이었다. - P151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작은 크기뿐만 아니라 꼭대기라는 독특한 위치에서 찾을 수 있다. - P151

다시 말해서, 이곳은 작더라도 농산물을 경작하기 좋은 풍요로운 산지 계곡이 내려다보일 뿐만 아니라 올리브, 포도, 과일이나 채소와 같은 농작물을 재배하기 위한 테라스 농업에 적합한 근처의 산등성이 지역도 고려되는 지역이었다. - P151

부연해서 말하면, 고대 팔레스타인의 산지는 근처에 방목하기 좋은 변두리나 초원지대(steppe) 지역이 있어서 경작과 함께 혼합해서 생계를 유지할수 있었다.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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