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라는 말은 서양철학의 다른 많은 부분과 마찬가지로 그리스에서 기원한다
원어 필로소피아φιλοσοφiα는 ‘지혜에 대한 사랑’으로 주제를 멋들어지게 묘사하지만 실제로 철학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알려 주지 않는다.
철학자들은 인간의 능력을 활용해 우주와 우리 주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이성적인 해답을 추구하는 사람들로 이는 연구라기보다는 활동에 가깝다.
철학의 중심은 사고다. 사물이 왜 그렇게 생겼는지, 어떻게 인생을 가장 잘 살아갈 수 있는 지, 안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으며 앎이란 무엇인지, 실존이란 무엇인지 사고하는 것이다.
종교와 과학도 같은 질문을 추구하나 종교는 신념이나 믿음을 토대로 하고 철학은 이성을 활용한다. 과학이 정의를 내린다면 철학은 설명을 하는 쪽에 가깝다.
우리가 알고 있는 최초의 철학자들은 기원전 6세기 고대 그리스에서 출현했다. 문명이 자리 잡고 한층 성숙해지면서 사상가들은 우주와 사회의 작용 원리에 대해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으며 관습이나 종교가 아닌 이성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해답을 얻고자 했다.
그들이 가장 먼저 추구한 물음은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였고 이를 연구하는 철학의 한 분과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형이상학이다.
최초의 철학자들이 추구했던 물음은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였다. 이러한 가장 근본적인 물음을 추구하는 철학 분과가 바로 형이상학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요소, 원자 등 다양한 이론을 제시했고 이것이 근대 과학의 토대를 형성해 근본적인 질문의 근거를 뒷받침해 주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이내 자신들이 해답을 찾고자 하는 모든 질문에 내재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는데 이를 가장 잘 요약한 질문은 바로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이다. 이와 더불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방법, 지식의 본성 따위를 다루는 유사한 물음이 이후 서양철학을 점유해 인식론을 구성하게 되었다.
일부 철학자들은 경험과 감각을 통해 얻은 증거로 지식을 얻는다고 믿었고 이런 관점이 바로 경험주의이다
지식이 논증을 통해 얻어진다고 보는 주장은 합리주의다
형이상학의 주요 분과로 여겨지는 존재론은 존재와 실체의 본성을 탐구하는 철학이다.
사물에 대한 인간의 지식을 연구하는 인식론과는 차이가 있으며 사물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인지를 탐구한다.
존재론은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할 뿐 아니라 존재하는 사물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 사이의 관계에 따라 분류한다.
논쟁을 통해 타당성을 입증해야 한다. 주장이 타당한지 여부를 입증하기 위해 다양한 기법을 시도하면서 논리학이라는 철학의 한 분과가 생겨났다.
논리학은 특별한 예시에서 일반 원칙을 도출하거나(귀납법) 일반 진술에서 결론을 도출하는(연역법) 방법으로 전제를 검증하는 과정이다.
‘훌륭한 삶’을 추구하는 방법을 두고 다양한 학파들이 출현했는데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키니코스 학파, 쾌락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이라고 믿는 에피쿠로스 학파,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보는 스토아 학파 등이 대표적이다.
‘훌륭한 삶’을 구성하는 요소를 탐구하는 윤리학, 도덕철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정치철학은 정의와 같은 개념의 본질을 살피고 어떤 사회가 시민들이 ‘훌륭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 주는지 연구한다
선과 악, 행복, 용기와 도덕성과 같은 개념은 윤리 혹은 도덕철학으로 알려진 철학의 한 분과로 논쟁의 주제가 되었다.
철학의 한 분과로서 정치철학은 정의, 자유와 권리, 국가와 시민의 관계를 탐구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미덕과 정의 같은 개념을 확립하려고 노력하면서 도덕과 정치 철학을 꽃피웠으며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물음도 제기했다. 이것이 미학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질문이다.
종교와 철학은 상당히 다른 접근 방식으로 우리 주변 세상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한다. 종교는 믿음, 신념, 계시를 통해, 철학은 이성과 논쟁을 통해 답을 찾지만 다루는 부분이 많이 겹치며 가끔 서로 관련되기도 한다.
철학의 역사에서 현대적인 형태의 과학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 현대 과학은 철학적 질의에서 진화한 것이다. 우주의 체계와 구성 요소에 대한 형이상학적 질문에서 비롯된 이론들이 후에 ‘자연철학’의 토대가 되었고 이것이 현 물리학의 전신이다. 한편 이성적인 논쟁 과정이 ‘과학적인 방법’을 뒷받침한다.
탈레스를 필두로 한 밀레토스 학파는 후대에 영향을 미쳤고 그들의 철학적 사고방식과 토론은 그리스 전역에 급속도로 퍼졌다
아테네는 철학이 융성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고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큰 철학자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배출했다.
기원전 6세기 초 무렵 그리스 식민지 밀레토스에 거주했던 탈레스라는 사람은 우주의 작용을 설명하는 기존의 전통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성적인 사고로 자신만의 해답을 찾고자 했다.
우리가 아는 한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기에 탈레스는 최초의 철학자로 여겨진다. 탈레스가 가장 궁금해 했고 모든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이 지속적으로 흥미를 느낀 질문은 바로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이다.
탈레스의 정의는 놀라웠다. 그는 모든 것이 하나의 요소인 물에서 비롯되었다고 믿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철학을 구분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스승이 내린 결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토론하고 논쟁하고 심지어 반대하도록 권유받는다는 점이다.
아낙시만드로스가 지구가 물 위에 떠 있다는 스승의 주장에 도전할 때 활용한 논쟁은 철학에서 여러 가닥의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게 해 주었다.
무언가가 다른 것의 원인이 된다면 그 원인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사슬을 무한 후퇴라고 부른다.
일부 철학자들은 무한 후퇴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우주가 영원하다는 증거라고 보았지만 다수의 철학자들은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고 모든 일에는 기원 혹은 제1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이것이 현대 빅뱅 이론의 시발점이다).
일부 철학자들에게 제1원인 혹은 원동력은 순수한 사고 혹은 이성과 마찬가지로 추상적인 개념이었지만 중세 기독교인들에게 그 원인은 바로 신이었다.
실제로 제1원인에 대한 생각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 존재에 대한 우주 철학 논변의 중심이다.
밀레토스의 탈레스가 세운 학파와는 대조적으로 이오니아의 해안가에 있는 에페소에 살았던 고독한 사상가 헤라클레이토스는 아주 다른 철학적 관점을 보유했다. 단일 요소로부터 모든 것이 비롯되었다는 생각 대신 그는 변화라는 내재된 원칙을 제안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모든 것은 반대되는 특성이나 경향으로 구성되며 이것이 모여 세상의 구성 요소를 이룬다고 보았다.
피타고라스는 처음으로 수학과 철학을 연관시킨 인물이고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러셀과 같은 위대한 수학자들로 구성된 두드러진 학파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크세노파네스는 인식론에 의문을 제기한 최초의 철학자로, 우리가 ‘안다’고 여기는 지식은 실제로는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가설에 따른 ‘진정한 믿음’이라고 주장했다. ‘진정한 실체’는 존재하지만 이는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범주를 항상 넘어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곳에 최대한 가까이 도달할 수 있도록 가설을 다듬는 것뿐이다.
‘엘레아 학파’를 창시한 인물은 파르메니데스로 그는 모든 것이 유동적이라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이론에 반론을 펼쳤다.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은 존재하는 것을 두고 ‘없다’고 말할 수 없기에 ‘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스승 파르메니데스와 마찬가지로 엘레아의 제논〔키티온의 제논과 혼동하지 말자〕도 ‘모든 것이 하나’라고 믿었기에 변화는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는 논리적으로 틀리지만 상식에 따라 내린 결론인 역설을 활용했다.
아테네는 철학이 발전하기 이상적인 도시였고 이내 그리스철학의 중심지로 부상해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큰 사상가를 배출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아테네의 문화·정치적 삶이 철학의 방향을 바꾸는 데 영향을 미쳐 형이상학적인 문제에서 한층 인본주의적인 도덕과 정치 철학적 질문으로 흥미를 옮겨 가게 했다는 점이다.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 비평가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소피스트들의 지혜를 비난했으며 철학적 질의는 단순히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실을 도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그도 소피스트들의 논쟁 방식 중 일부를 받아들였다. 초기 철학자들을 연구하면서 소크라테스는 그들의 추론 방식이 체계적이지 않고 특정한 부분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점을 파악했다.
소크라테스의 접근 방식은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에서 출발하고 개인이나 집단과의 토론을 통해 합의된 정의를 도출하고자 한다
소크라테스가 기존 철학자들과 다른 점은 사상뿐만이 아니었다. 아테네 정치에 활발히 참여하면서 그는 형이상학적 관점이 인간의 삶과 상당히 무관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소피스트들을 경멸했지만 인간의 문제에 집중하는 그들의 방식에 영향을 받았다. 소크라테스는 정의, 덕, 용기, 진실에 관심을 두었고 이 추상적인 부분들이 아테네 사회 체계를 세우는 근간으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도덕철학의 본질이 되었다.
소크라테스가 끊임없이 던진 질문의 핵심은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좋은 인생인가이다. 그는 정의, 덕, 명예, 용기와 같은 용어들을 적확하게 정의하려고 노력하면서 사람들이 한층 공정하고 타당하며 명예롭거나 용기 있는 방식으로 행동하고 훌륭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이는 어떻게 사는 것이 ‘훌륭한 삶’인가 하는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훌륭한 삶을 곧 행복이라고 보았다.
전문 변호사이자 웅변가로서 소피스트들은 자신들의 논쟁 기교를 교육으로 활용했다. 그들은 고객들에게 수사와 논쟁을 가르쳐 주었고 현재 인생 상담 코치들이 해 주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야심찬 부자 고객을 대상으로) 윤리도 강의했다. 그들이 가르친 것은 ‘탁월함’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아레테arete로 한 개인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방식에 관한 내용이다. 아레테는 ‘훌륭한 삶’의 개념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고 그리스의 ‘덕’과도 동의어로 여겨졌다.
소크라테스는 덕을 갖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아레테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믿었고 덕은 곧 지식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같은 ‘소크라테스식 대화’는 문제를 안겨 준다. 플라톤은 등장인물을 통해 효과적으로 말을 전달하지만 그 철학의 얼마큼이 소크라테스의 것이고 얼마큼이 자신의 것일까? 플라톤은 훌륭한 삶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분명하게 담은 작품을 남겼지만 그에게 끼친 소크라테스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기에 이 둘을 구분하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다.
소크라테스가 기존의 권위에 변증술적 질문을 던지는 방식은 플라톤이 이데아론을 구성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플라톤 역시 사물의 본질이 정확히 무엇이며 그 구성 요소가 무엇인지를 정의하고자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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