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새로운 의미의 미끄러짐을 생각해 볼 수 있을 터인데, 실제로 아포칼립티크(apocalyptique)라는 형용사는 19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작가이자 역사가인 에드가 퀴네(Edgar Quinet)의 표현에 따라 재앙을 통한 세계의 종말과 관련한 근대적 의미를 얻게 된다. - P34

하지만 신적인 계시로부터 궁극적인 재앙으로 향한 (의미상의) 전이는 프랑스어에서 최근의 사용법과 관련된 것이 아니다. - P34

고대로부터 두가지 개념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는 점에 비출 때, 이러한 의미의 진화를 짐작할 수 있는 흔적이 발견된다. - P34

계시록에서 밧모섬의 요한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드러내지만, 메시지의 내용은 가까운 장래에 도래할 가장 고통스러운 파국들을 고지하는 것이다. - P34

1세기 말엽 이후로, 하나님의 계시와 임박한 세계의 종말이 연결됐다는 점이다. - P34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심지어 고대에 있어서도 의미의 미끄러짐이 아니며, 오히려 정해진 기록의 양식(계시)과 담겨진 메시지(세계의 심판)의 단순한동화(同化, assimilation)이다. - P34

그러니까 아포칼립스라는 용어는 처음부터 불분명함(ambiguite)을 묵인했던 것이다. - P35

‘어떻게 계시에서 재앙으로 옮겨가는가?‘ 위의 질문에 우리는 최초의 문제의 몇 가지 측면을 밝히기 위해 다니엘에 등장하는 네 짐승에 대한 환상을 분석하는 시간을 가졌다. - P45

이에 따라 요한계시록보다 훨씬 앞선 시기인 기원전 2세기 중엽에 이 계시(apocalypse)라는 용어의 첫 번째 의미, 곧 신적인 계시라는 의미로, 계시라는 문학적 장르를 사용하는 유대교 문헌이 있음을 알게 된다. - P45

신적인 계시와 선언된 파국 사이의 내밀한 연결은별다른 무리 없이 알아볼 수 있다. - P45

그 시대의 정치적 상황을 비판하기 위해 괴물들의 이미지를 활용한 것은 어떤 이유인가? - P45

아마도 다니엘 집단 저자의 목적은 우선 청자 혹은 독자에게 충격을 주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 P45

우리는 괴물들의 이미지가 무(無)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신화적 모티프나 혹은 더 오래된 성경적 모티프를 차용하거나 다시 읽어낸 것임을 알게 됐다. - P45

저자 집단(Le milieu redacteur)은 그들이 발전시키고자 하는 목적의 정당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기존에 동료들 사이에 정립된 종교적 신앙들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 P45

가나안 신화나 혹은 더 광범위하게 고대 근동의 문화에서 끌어온 인유들이 발견되며, 또 이 종교적 모티프들은 새롭고도 정당한 메시지를 전달할 목적으로 해석됐다. - P45

관건은 종교 권력들을 비판하고 무엇보다 심판이 다가옴을 알리는 것이었다. 즉 각각의 왕국이 보인 행위에 근거를 둔 심판이다. - P45

심판하는 신(dieu)은 개별 왕국의 신 또는 신들이 아니라, 천상의 왕궁 가운데 좌정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Dieu)으로 이는 근동 지역 신화에서 가져온 또 다른 이미지다. - P45

다니엘의 저자 집단은 이런 방식으로 이스라엘 하나님의 위엄 있는 왕국이 섬기는 신들에 대한 우위를 확언한다. - P46

이 집단은 또한 오늘의 승리자들이 심판의 날에는 그저 내일의 패배자들이 될 뿐이라고 고지한다. - P46

왕국들 중 가장 악한 왕국인 셀레우코스 왕국과 이 왕국의 가장 해로운 앞잡이인 안티오코스 4세는 어떤 벌을 받게 됨에 상관없이 멸절될 것이다. - P46

고대의 세계에서 흔히 그렇듯, 정치적인 주장은 종교적인 표현과 분리될 수 없다. - P46

괴물성(monstruosite)은 정치·종교적 측면에서 환상의 기록자들의 강력한 원한의 감정을 보여준다. - P46

우리는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의 묵시적 본문(텍스트)들이 그 기록 당시에 당면하게 된 정치적 - 종교적 문제들을 반영하는 메아리로 이해됨을 받아들인다. - P46

그저 장래에 대한 환영에 그치기보다, 그러한 텍스트들은 오히려 현재의 문제들에 뿌리를 내린 기록인 것이다. - P46

다른 한편으로, 계시들은 독자 혹은 청자를 교육하는 역할을 한다. - P46

그들이 믿음의 차원에 놓일 경우, 저자 집단은 하나님 자신에 의해 짜여지고 그분의 가르침과 권능에 따라 인도된 유대 역사의 이미지를 환상 속에 부여한다. - P46

고대 세계에서 이러한 동물들이 등장하는 환상을 읽거나 듣는 자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권능에 관한, 즉 기원전 2세기 중엽에 유대의 정치적 과오들과 완전히 괴리적인 권능에 관한 교훈을 받아들이게 된다. - P46

또한, 이미지의 힘이 겨냥하는 것은 여러 사건들로 인해 의심이올 때 하나님의 권능과 우위에 대한 믿음에 있어 유대인들을 설득하거나 혹은 확고히 굳히는 것이다. - P46

저자 집단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환상을 정당화하는 일이며, 대중(公衆)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역사의 전개에 따른 실제적인 결과다. - P47

따라서 계시들은 정치·종교적인 저의와 무관한 순수한 계시들이 아니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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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9-16 14: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46쪽의 글. 정치와 종교. 이 두 가지는 참 어려운 문제 같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쪽으로 쏠려 있어서 만인을 만족시킬 수 없을 듯해서요.

모찌모찌 2020-09-16 15:42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ㅠ 종종 대화의 장벽을 느낍니다 ㅠ
 

‘철학’이라는 말은 서양철학의 다른 많은 부분과 마찬가지로 그리스에서 기원한다

원어 필로소피아φιλοσοφiα는 ‘지혜에 대한 사랑’으로 주제를 멋들어지게 묘사하지만 실제로 철학이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알려 주지 않는다.

철학자들은 인간의 능력을 활용해 우주와 우리 주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이성적인 해답을 추구하는 사람들로 이는 연구라기보다는 활동에 가깝다.

철학의 중심은 사고다. 사물이 왜 그렇게 생겼는지, 어떻게 인생을 가장 잘 살아갈 수 있는 지, 안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으며 앎이란 무엇인지, 실존이란 무엇인지 사고하는 것이다.

종교와 과학도 같은 질문을 추구하나 종교는 신념이나 믿음을 토대로 하고 철학은 이성을 활용한다. 과학이 정의를 내린다면 철학은 설명을 하는 쪽에 가깝다.

우리가 알고 있는 최초의 철학자들은 기원전 6세기 고대 그리스에서 출현했다. 문명이 자리 잡고 한층 성숙해지면서 사상가들은 우주와 사회의 작용 원리에 대해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으며 관습이나 종교가 아닌 이성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해답을 얻고자 했다.

그들이 가장 먼저 추구한 물음은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였고 이를 연구하는 철학의 한 분과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형이상학이다.

최초의 철학자들이 추구했던 물음은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였다. 이러한 가장 근본적인 물음을 추구하는 철학 분과가 바로 형이상학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요소, 원자 등 다양한 이론을 제시했고 이것이 근대 과학의 토대를 형성해 근본적인 질문의 근거를 뒷받침해 주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이내 자신들이 해답을 찾고자 하는 모든 질문에 내재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는데 이를 가장 잘 요약한 질문은 바로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이다. 이와 더불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방법, 지식의 본성 따위를 다루는 유사한 물음이 이후 서양철학을 점유해 인식론을 구성하게 되었다.

일부 철학자들은 경험과 감각을 통해 얻은 증거로 지식을 얻는다고 믿었고 이런 관점이 바로 경험주의이다

지식이 논증을 통해 얻어진다고 보는 주장은 합리주의다

형이상학의 주요 분과로 여겨지는 존재론은 존재와 실체의 본성을 탐구하는 철학이다.

사물에 대한 인간의 지식을 연구하는 인식론과는 차이가 있으며 사물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인지를 탐구한다.

존재론은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할 뿐 아니라 존재하는 사물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 사이의 관계에 따라 분류한다.

논쟁을 통해 타당성을 입증해야 한다. 주장이 타당한지 여부를 입증하기 위해 다양한 기법을 시도하면서 논리학이라는 철학의 한 분과가 생겨났다.

논리학은 특별한 예시에서 일반 원칙을 도출하거나(귀납법) 일반 진술에서 결론을 도출하는(연역법) 방법으로 전제를 검증하는 과정이다.

‘훌륭한 삶’을 추구하는 방법을 두고 다양한 학파들이 출현했는데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키니코스 학파, 쾌락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이라고 믿는 에피쿠로스 학파,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보는 스토아 학파 등이 대표적이다.

‘훌륭한 삶’을 구성하는 요소를 탐구하는 윤리학, 도덕철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정치철학은 정의와 같은 개념의 본질을 살피고 어떤 사회가 시민들이 ‘훌륭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 주는지 연구한다

선과 악, 행복, 용기와 도덕성과 같은 개념은 윤리 혹은 도덕철학으로 알려진 철학의 한 분과로 논쟁의 주제가 되었다.

철학의 한 분과로서 정치철학은 정의, 자유와 권리, 국가와 시민의 관계를 탐구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미덕과 정의 같은 개념을 확립하려고 노력하면서 도덕과 정치 철학을 꽃피웠으며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물음도 제기했다. 이것이 미학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질문이다.

종교와 철학은 상당히 다른 접근 방식으로 우리 주변 세상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한다. 종교는 믿음, 신념, 계시를 통해, 철학은 이성과 논쟁을 통해 답을 찾지만 다루는 부분이 많이 겹치며 가끔 서로 관련되기도 한다.

철학의 역사에서 현대적인 형태의 과학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 현대 과학은 철학적 질의에서 진화한 것이다. 우주의 체계와 구성 요소에 대한 형이상학적 질문에서 비롯된 이론들이 후에 ‘자연철학’의 토대가 되었고 이것이 현 물리학의 전신이다. 한편 이성적인 논쟁 과정이 ‘과학적인 방법’을 뒷받침한다.

탈레스를 필두로 한 밀레토스 학파는 후대에 영향을 미쳤고 그들의 철학적 사고방식과 토론은 그리스 전역에 급속도로 퍼졌다

아테네는 철학이 융성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고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큰 철학자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배출했다.

기원전 6세기 초 무렵 그리스 식민지 밀레토스에 거주했던 탈레스라는 사람은 우주의 작용을 설명하는 기존의 전통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성적인 사고로 자신만의 해답을 찾고자 했다.

우리가 아는 한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기에 탈레스는 최초의 철학자로 여겨진다. 탈레스가 가장 궁금해 했고 모든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이 지속적으로 흥미를 느낀 질문은 바로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이다.

탈레스의 정의는 놀라웠다. 그는 모든 것이 하나의 요소인 물에서 비롯되었다고 믿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철학을 구분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스승이 내린 결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토론하고 논쟁하고 심지어 반대하도록 권유받는다는 점이다.

아낙시만드로스가 지구가 물 위에 떠 있다는 스승의 주장에 도전할 때 활용한 논쟁은 철학에서 여러 가닥의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게 해 주었다.

무언가가 다른 것의 원인이 된다면 그 원인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사슬을 무한 후퇴라고 부른다.

일부 철학자들은 무한 후퇴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우주가 영원하다는 증거라고 보았지만 다수의 철학자들은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고 모든 일에는 기원 혹은 제1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이것이 현대 빅뱅 이론의 시발점이다).

일부 철학자들에게 제1원인 혹은 원동력은 순수한 사고 혹은 이성과 마찬가지로 추상적인 개념이었지만 중세 기독교인들에게 그 원인은 바로 신이었다.

실제로 제1원인에 대한 생각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 존재에 대한 우주 철학 논변의 중심이다.

밀레토스의 탈레스가 세운 학파와는 대조적으로 이오니아의 해안가에 있는 에페소에 살았던 고독한 사상가 헤라클레이토스는 아주 다른 철학적 관점을 보유했다. 단일 요소로부터 모든 것이 비롯되었다는 생각 대신 그는 변화라는 내재된 원칙을 제안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모든 것은 반대되는 특성이나 경향으로 구성되며 이것이 모여 세상의 구성 요소를 이룬다고 보았다.

피타고라스는 처음으로 수학과 철학을 연관시킨 인물이고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러셀과 같은 위대한 수학자들로 구성된 두드러진 학파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크세노파네스는 인식론에 의문을 제기한 최초의 철학자로, 우리가 ‘안다’고 여기는 지식은 실제로는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가설에 따른 ‘진정한 믿음’이라고 주장했다. ‘진정한 실체’는 존재하지만 이는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범주를 항상 넘어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곳에 최대한 가까이 도달할 수 있도록 가설을 다듬는 것뿐이다.

‘엘레아 학파’를 창시한 인물은 파르메니데스로 그는 모든 것이 유동적이라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이론에 반론을 펼쳤다.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은 존재하는 것을 두고 ‘없다’고 말할 수 없기에 ‘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스승 파르메니데스와 마찬가지로 엘레아의 제논〔키티온의 제논과 혼동하지 말자〕도 ‘모든 것이 하나’라고 믿었기에 변화는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는 논리적으로 틀리지만 상식에 따라 내린 결론인 역설을 활용했다.

아테네는 철학이 발전하기 이상적인 도시였고 이내 그리스철학의 중심지로 부상해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큰 사상가를 배출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아테네의 문화·정치적 삶이 철학의 방향을 바꾸는 데 영향을 미쳐 형이상학적인 문제에서 한층 인본주의적인 도덕과 정치 철학적 질문으로 흥미를 옮겨 가게 했다는 점이다.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 비평가 중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소피스트들의 지혜를 비난했으며 철학적 질의는 단순히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실을 도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그도 소피스트들의 논쟁 방식 중 일부를 받아들였다. 초기 철학자들을 연구하면서 소크라테스는 그들의 추론 방식이 체계적이지 않고 특정한 부분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점을 파악했다.

소크라테스의 접근 방식은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에서 출발하고 개인이나 집단과의 토론을 통해 합의된 정의를 도출하고자 한다

소크라테스가 기존 철학자들과 다른 점은 사상뿐만이 아니었다. 아테네 정치에 활발히 참여하면서 그는 형이상학적 관점이 인간의 삶과 상당히 무관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소피스트들을 경멸했지만 인간의 문제에 집중하는 그들의 방식에 영향을 받았다. 소크라테스는 정의, 덕, 용기, 진실에 관심을 두었고 이 추상적인 부분들이 아테네 사회 체계를 세우는 근간으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도덕철학의 본질이 되었다.

소크라테스가 끊임없이 던진 질문의 핵심은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좋은 인생인가이다. 그는 정의, 덕, 명예, 용기와 같은 용어들을 적확하게 정의하려고 노력하면서 사람들이 한층 공정하고 타당하며 명예롭거나 용기 있는 방식으로 행동하고 훌륭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이는 어떻게 사는 것이 ‘훌륭한 삶’인가 하는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훌륭한 삶을 곧 행복이라고 보았다.

전문 변호사이자 웅변가로서 소피스트들은 자신들의 논쟁 기교를 교육으로 활용했다. 그들은 고객들에게 수사와 논쟁을 가르쳐 주었고 현재 인생 상담 코치들이 해 주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야심찬 부자 고객을 대상으로) 윤리도 강의했다. 그들이 가르친 것은 ‘탁월함’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아레테arete로 한 개인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방식에 관한 내용이다. 아레테는 ‘훌륭한 삶’의 개념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고 그리스의 ‘덕’과도 동의어로 여겨졌다.

소크라테스는 덕을 갖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아레테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믿었고 덕은 곧 지식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같은 ‘소크라테스식 대화’는 문제를 안겨 준다. 플라톤은 등장인물을 통해 효과적으로 말을 전달하지만 그 철학의 얼마큼이 소크라테스의 것이고 얼마큼이 자신의 것일까? 플라톤은 훌륭한 삶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분명하게 담은 작품을 남겼지만 그에게 끼친 소크라테스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기에 이 둘을 구분하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다.

소크라테스가 기존의 권위에 변증술적 질문을 던지는 방식은 플라톤이 이데아론을 구성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플라톤 역시 사물의 본질이 정확히 무엇이며 그 구성 요소가 무엇인지를 정의하고자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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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말처럼(아마 체스터필드 경이 한 말일 것이다)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만 찾아온다고 하지 않던가. 작가의 머릿속은 의식적으로든 잠재의식적으로든 하루 24시간 내내 작업 중이다. 작가라면 언제든 행운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멋 부리지 않은 순수한 문체가 마음에 든다. 필요한 내용을 모두 담은 뒤 ‘경이롭다’라는 표현으로 글에 정서적 무게를 얹었다.

논픽션 글쓰기는 독자에게 읽기 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정보나 개념, 견해를 제공해야 한다.

글을 쓰는 목적은 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 우리는 때로 자기만족을 위해, 심리 치료를 위해, 무언가를 잊지 않기 위해, 자기 인생을 되돌아보기 위해 글을 쓴다

하지만 그 글의 유효성은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훌륭한 작가는 항상 독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다음엔 어떤 내용이 나오길 바라는지 알고 있다

수학은 능동적인 사고를 요구해요. 가만히 앉아서 선생님이 ‘자, 이게 장제법이라는 거야. 몇 단계 과정으로 나뉘니까 잘 봐’ 하는 식으로 얘기해 줄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서는 절대 수학을 잘할 수 없어요.

"글쓰기는 문제를 탐구하고 해결하는 방법이죠. 학생들은 글을 쓰는 과정에서 지성은 물론 상상력과 감성까지 전부 동원해요. 이런 점이 배움에 엄청난 도움이 되지요."

"일기를 쓸 때는 성급히 판단을 내리려 하지 말라고 얘기해 줬어요. 자유로이 질문하고 실험하며 자신의 생각을 적고, 자신이 아직 무엇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적어 보라고 했죠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발견하기 위해서다.

이것이 목적지에 도달하는 ‘올바른’ 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탐구를 계속해 나간다면 우리는 훨씬 더 편안하게 글을 쓸 수 있다

또한 목적의식이 뚜렷할수록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물리학이나 화학 같은 분야의 저술이 단지 교육적 목적만을 바라고 생산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과학 분야에나 그것만의 독특한 로맨스가 있다. 저자는 이러한 로맨스를 포착해 표현함으로써 그 학문의 어떤 점이 연구자들에게 그토록 매력적으로 다가오는지를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는 우리가 과학 저술을 읽으며 얻는 가장 큰 혜택이다.

글쓰기는 이해의 수단이다

글쓰기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원동력이다

글쓰기는 과학 교육이 가진 강력한 도구 중 하나다. 학생은 글쓰기로 문제의 해답에 접근할 수 있고, 교사는 이런 학생의 시도가 성공하는지 실패하는지 지켜볼 수 있다.

지금보다 순수했던 시대에 쓰인 글이지만, 글에 담긴 예술가의 신념은 오늘날 우리에게 여전히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작곡은 음악 분야의 온갖 수수께끼 중에서도 가장 심오한 수수께끼다. 하지만 철학이나 종교학처럼 난해한 학문에 대한 글쓰기가 가능하듯이 작곡에 대한 글쓰기 역시 가능하다

글쓰기는 우리를 두려운 불확실성과 직면케 하지만 그와 동시에 충만한 의식과 삶의 경이로움으로 전율하는 정신의 모험가가 되게도 한다.

명료하고 간결한 한 편의 글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깨닫는다. 이는 주체적인 배움의 과정이다. 배움으로서의 글쓰기는 스스로 앎의 지도를 완성해 가는 지도 제작자가 되게끔 우리를 이끈다.

독창성과 독자의 허를 찌르는 의외성은 논픽션 글쓰기에 생기를 불어넣는 강력한 힘이다.

주제에 접근하는 ‘올바른 길’이란 없다. 회고록이든, 인간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을 다루는 글이든 마찬가지다

대담한 시선을 가진 작가의 글은 대개 흥미진진한 독서 경험을 선사한다. 대담성이 글에 날카로움을 부여한다.

다른 이의 기준은 마음의 족쇄다. 남의 눈치를 보는 글은 절대 좋은 글이 될 수 없다.

글감이 될 만한 특이한 문화를 찾기 위해 굳이 미국 밖으로 눈을 돌릴 필요는 없다. 여러분이 사는 마을 안에서도 소재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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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9-13 2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감을 찾기 위해 미국 밖으로 눈 돌릴 필요가 없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아무리 평범할지라도 우리 개인의 인생에서도 글감은 넘친다고 합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찾지 못할 뿐...
글감이 안 보입니다. 저는 요즘...

모찌모찌 2020-09-13 20:10   좋아요 1 | URL
많이 힘드실 듯 합니다. ㅠ 좋은 일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스라엘의 기원
윌리엄 G. 데버 지음, 양지웅 옮김 / 삼인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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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생각 쓰기』의 저자 윌리엄 진서(William Zinsser)는 그의 책 『공부가 되는 글쓰기』에서 명료한 글쓰기가 명료한 사고의 필연적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배움'은 사전 지식이 없더라도 논리적이면서도 쉽게 쓰인 글을 통해 자연스럽게 습득된다고 강조한다. 탁월한 선생은 훌륭한 작가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윌리엄 G. 데버(William G. Dever)는 이스라엘의 기원 문제에 있어 우리를 친절하게 안내하는 신뢰할 수 있는 선생이다.


데버는 이스라엘의 기원과 관련된 첨예한 논쟁에 신중하게 접근한다. 그의 안내는 고고학과 성서학의 기초지식이 없는 사람도 쉽게 이 논쟁의 전체적인 흐름을 볼 수 있도록 돕는다(구약학에 문외한이 나도 이해할 수 있도록!). 그는 이전의 연구결과를 꼼꼼하게 살핀다. 성서학과 고고학, 사회학 등의 방대한 자료를 객관적으로 분석한다. 최대한 치우침 없이 자료를 대하려고 하는 그의 신중함이 곳곳에 묻어난다.


그는 『이스라엘의 기원』에서 많은 학자들의 연구와 현재 발견할 수 있는 최신의 고고학 자료, 성서 자료를 총망라하여 비판적 분석을 한다. 그는 비록 자신의 주장과 다른 학자라 할지라도 합리적 결과물이 있다면 흔쾌히 그 학자의 주장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는 역사를 기록함에 있어 고고학적 자료들이 우선적이어야 한다는 전제를 제시한다. 그럼에도 성서 자료를 무시하지 않는다. 

 

초기 이스라엘의 기원 문제는 성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성서 내적인 측면과 고고학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성서 외적 측면이 있다. 텍스트가 언제 기록되었으며, 어떤 의도와 목적으로 편집되었는지에 대한 객관적 정보가 있다면 텍스트의 역사성 자체에 대한 질문은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다. 친절하게도 저자는 성서 텍스트의 기록과 편집의 목적과 과정 등을 12장에서 제시한다.


텍스트의 해석도 그러하지만 고고학은 동일한 자료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다양한 결론이 도출된다. 결국 학자들은 자신의 관점을 관철시키려는 목적을 내려놓아야 한다. 자신들의 종교적·신학적 목적에 따라 고고학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의 치열한 논쟁사를 데버는 이 책 말미에 제시한다. 또한 그 동안의 고고학 연구에 대한 다양한 학자들의 견해를 8장에서 언급한다. 


이 책은 고고학과 성서학의 최고 정점에서 벌어지는 대화다. 저자는 고고학과 성서학 내부의 다양한 스펙트럼 안에서도 대화를 중재한다. 그는 열린 자세로, 진중하면서도 유쾌하게 대화를 이끌어간다. 한쪽면만을 부각하거나 밀어붙이지 않는다. 모두의 목소리를 경청한다. 다양한 자료를 최대한 많이 축적해간다. 

 

최대한 많은 자료들을 세심하게 대해야 한다. 데버는 풍부한 자료들을 모두 활용한다. 혹 성서 이야기를 흔드는 자료라 할지라도, 충분히 신뢰할 수 있다면 과감하게 제시한다. 그는 이 모든 것들을 수렴하는 지점을 고민한다. 그리하여 그만의 결론을 도출한다. 그의 결론은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로 간명하다. 하지만 그 결론을 제시하기 위한 과정과 그의 태도가 중요하다. 이스라엘의 기원에 대한 그동안의 연구와 최신의 자료, 데버의 능숙하면서도 친절한 안내가 필요한 독자라면 그냥 지나치기는 어려운 책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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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원전 1210년경 가나안에서, 그 자체로 ‘이스라엘‘이라고 불리는 문화적이며 어느 정도 정치적인 실체가 존재했으며, 그들은 바로 그 이름으로 이집트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 P305

2. 이 이스라엘은 그 당시 가나안의 다른 민족들 가운데 충분히 잘 건립되었고, 이집트의 지식 집단은 그들이 자신들의 지배권에 도전할 수도 있는 세력으로 인식하였다. - P305

3. 이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다른 국가들처럼 하나의 조직된 국가체제를 구성하지 않았고, 다소 느슨하게 묶인 사람들- 즉, 하나의 민족적 집단-로 구성되었다. - P307

4. 이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지배 아래에 있는 저지대에 위치하지 않았고, 보다 변경 지대인 멀리 떨어진 중앙 산지에 자리를 잡았다. - P307

정착 시기와 사사 시대 동안 이스라엘의 문화를 연구하기 위한 자료로서 고고학의 가치를 부인하려는 자세는 반드시 거부되어야만 한다. - P322

이스라엘의 출현은 복잡한 과정을 만들어냈으며, 이는 다른 민족 집단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 P322

그 지역의 정착민들은 그들의 기원이 무엇이건 상관없이 초기 단계에서는 그들 스스로가 하나의 이스라엘 국가에 소속된 부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 P322

그러나 그들은 이스라엘 국가를 태동시켰던 핵심을 제공한 인구 집단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용어의 가장 넓은 의미에서 볼 때,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규정될 수 있다. - P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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