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이해할 때는, 그 종교 자신이 제시하는 내용이 명백히 무단 삭제되거나 정정되지 않은 한, 바로 그런 내용에 기초하여 이해해야지, 외부에서 그 종교를 논박하고 공격한 내용에 기초하여 이해해서는 안 된다. - P352

이런 점에 비춰볼 때, 우리는 기원후 70년 이전의 유대교가 은혜와 행위를 올바른 시각으로 파악했으며, 하나님의 계명을 시시한 것으로 만들지 않았고, 특히 위선이라는 특징을 갖지 않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 P352

결국 우리는 이 연구를 토대로 역사 속 여러 당파 및 분파의 관계, 바리새주의가 다른 당파 혹은 분파보다 우위에 있었다는 점 등에 관하여 결론을 끌어내지는 못하지만, 예루살렘 멸망 전에 유대교가 가졌던 특성에 관한 한, 몇 가지 결론을 타당하게 끌어낼 수 있다. 설령 우리가 언약적 율법주의가 표명했던 서로 다른 주제들과 모티프들을, 이후에 랍비 문헌이 이해한 그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언약적 율법주의가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전에 팔레스타인에 널리 퍼져 있었던 일반적 종교 유형이었던 것만은 틀림없다. - P354

바울의 사상은 인간의 비참한 곤경에서 그 해결책으로 진행한다기보다 오히려 그 해결책에서 인간의 곤경 쪽으로 진행하는 것 같다. - P364

그는 인간의 죄와 범과에서 시작하지 않고,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구원 기회에서 시작했다(죄는 사람이 이런 구원 받을 기회를 갖지 못하게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바울은 인간을 설교하지 않고 하나님을 설교했다. - P365

사실, 바울은 그의 복음이 암시하는 의미들을 설명해야 할 일이 화급하다보니, "인간론"이라 부를 수 있을 만한 것을 제시하는 데 신약 성경의 다른 저자보다 더 치중하는 것 같지만, 그것도 단지 그의 신학과 기독론 그리고 구원론의 결과에 불과하다. - P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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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세기 초부터 기원후 2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언약적 율법주의가 일관되게 유지되었다. - P351

때문에 우리는 언약적 율법주의가 기원후 70년 이전의 팔레스타인에 널리 퍼져 있었다고 가정할 수밖에 없다. - P351

따라서 언약적 율법주의는 예수가 아셨고 어쩌면 바울도 알았을 기본 종교 유형이었다. - 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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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NTC 맥아더 신약주석 : 야고보서 MNTC 맥아더 신약주석
존 맥아더 지음, 송동민 옮김 / 아바서원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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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의 땀과 시간, 열정. 그 결실로 단행본 한 권이 출간된다. 시리즈를 연속으로 출간하는 것은 더욱 힘겹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최고 난이도가 바로 시리즈 주석. 그 첫걸음을 시작한다. 더군다나 야고보서. 앎과 삶의 괴리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이때에 적실한 선택이 아닐까? 교회 됨과 그리스도인 됨이 모호해지고 희미해져 있는 이 시점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성경은 아닐까?


주석의 스펙트럼은 워낙 다양하여 평가가 쉽지 않다. 자신의 신학이 추구하는 목표나 서 있는 자리에 따라 평가는 상이하다. 주석의 난이도 또한 객관적이지 못하다. 독자의 지적 수준이나 그동안 배웠던 학문의 성격에 따라 이해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령 지적 수준이 높을지라도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신학적 용어가 많다면 독해가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거칠게 평가해보자면 이 주석 시리즈는 학문적이기보다는 평이한 설명과 해석, 언어학적이거나 비평적이라기보다는 적용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 이미지는 한 편 한 편의 강해설교를 듣는 듯하다. 이미 맥아더 성경주석(단권)을 통해 입증된 간결하고 명료한 해석, 평신도의 눈높이에 맞춘 쉬운 문체가 눈에 띈다. 저자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시리즈 서문에서 밝히듯) 이 주석은 '성경을 설명하고 적용하려는 목표'를 지니고 있다. 


저자는 한 구절의 해석을 위해 구약과 신약에서의 다양한 구절을 인용한다. 가령 야고보서 1장 4절의 해석은 욥기에서 엘리바스의 선포와 시편에서 다윗의 기도를 인용한다. 또한 필요하다면 원어의 명료한 뜻을 밝힌다. 여기서 더 나아가 빌립보서, 갈라디아서, 베드로전서, 히브리서, 창세기, 로마서, 요한복음 등을 자유자재로 인용한다. 짧은 한 구절의 해석에 매우 다양한 성경말씀이 다채롭게 사용된다. 


또 하나의 특이점은 다른 주석과는 다르게 신학자가 아닌 사람들의 글이 많이 인용되어 있다. 대부분의 주석들은 그 분야에서 최고의 학자들의 의견들을 나열한다. 이후에 자신이 수용하는 점과 비판하는 점을 밝힌다. 하지만 이 주석은 설교 시에 설교자들이 인용하듯 독자들이 더욱 풍부하게 그 말씀을 경험하고 적용할 수 있는 방편을 선택한다. 가령 인도 선교사 에이미 카마이클(Amy Camichael, 1867-1951)의 시나, 19세기 초반 뉴욕에서 사역했던 복음주의 목회자 가디너 스프링(Gardiner Spring, 1785-1873)을 말씀을 인용하는 식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비교하여 살펴보자. 맥아더 신약 주석과는 다른 목적을 가진 NIGTC(New International Greek Testament Commentary)와의 비교다. NIGTC는 역사비평과 언어학적 석의에 근거하여 본문에 대한 신학적 이해를 제공한다. 


야고보서 말씀 중에서 흔히 아는 1장 22절 말씀이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이를 맥아더 신약 주석에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수용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우리가 그 진리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아무 유익이 없다. 오히려 그 말씀을 접한 이들에게 이 일은 추가적인 심판의 원인이 될 뿐이다. 복종하는 태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꼭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모든 참된 신자들에게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영적인 조건이며 신자 됨을 드러내는 공통적인 표지이다. 참된 영적인 생명의 요체는 순간적으로 동의나 헌신의 감정을 느끼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성경에 꾸준히 순종하는 삶에 있다(118)."


이를 NIGTC에서는 

The temptation in 1:22 is to assume that James is explicating the previous section: “When I say receive the word, I mean do the word, not just listen to it.” This may in fact be the case , but one should not put too much stress on the use of δέ. 

... 

Be doers of the word,” says James. The imperative γίνεσθε regularly substitutes for ἔστε  and so the verse has a continuous force with a charitable assumption (“continue being”) rather than the ingressive “become” which γίνεσθε might be thought to imply(96). 


접속사 δέ의 사용법에 대하여서 말하고 있다. 다음 문단은 더욱 그러하다. 명령형 γίνεσθε가 ἔστε 대신에 자주 사용됨을 말한다. 이렇듯 원어의 문법적 해석을 한다. 


다양한 주석이 있고, 그 주석들은 저마다의 목적이 있다. 대상이 다르고 목표가 다르다. 맥아더 신약 주석은 본문을 한 구절씩 분석하고 해석하는 주석이 아니라, 본문 자체와 그 본문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와 적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하다. 따라서 좀 더 심도 깊은 강해서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을 통독하면서 함께 읽어나가도 좋을 것 같고, 설교를 준비하는 목회자들에게 유용한 통찰을 줄 수 있는 주석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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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 개념의 근본적 성격[언약 개념이 유대교 신학의 근본이라는 점]이 랍비 문헌에서 "언약"이라는 용어가 상당히 희소하게 등장하는 이유를 크게 설명해준다는 것을 대담하게 말해보았다. - P342

사해 사본은 언약을 상대적으로 빈번하게 직접 언급하는데, 이는 에세네파 자체가 그들이 참 언약을(혹은 언약에 관한 참된 해석을) 갖고 있다는 자신의 확신을 존립 근거로 삼았기 때문이요, 이 언약에 들어오고 머물려면 지켜야 하는 특별한 요구사항들을 규정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 P342

에스라4서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살펴본 모든 문헌에서는 이 자비가 엄격한 보응이라는 주제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으신다는 주제-와 나란히 자리해있는 주제다. - P343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합당한 몫을 갚아주신다고 말하는 진술들은 하나님의 정당하심을 강조하는 데 이바지하며, 죄인과 의신 모두에게 그들의 행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확실히 심어주는 데 이바지한다. - P343

하나님은 변덕스럽지 않으시다. 하나님은 순종을 벌하지 않고 범죄에 보상하시지 않는다. - P343

언약적 율법주의의 "패턴" 혹은 "구조"는 이렇다. (1)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으며, (2) 율법을 주셨다. - P345

율법은 (3) 이 선택을 유지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과 (4) 순종해야 한다는 요구를 암시한다. - P345

(5) 하나님은 순종에 보상하시고 범죄를 처벌하신다. - P345

(6) 율법은 속죄 수단을 제공하며, 속죄는 결국 (7) 언약 관계 유지 혹은 언약 관계 재수립이라는 결과로 이어진다. - P345

(8) 순종과 속죄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로 말미암아 언약 안에 남아있게 된 모든 이는 장차 구원받을 그룹에 속해 있다. - P345

첫 번째 요점과 마지막 요점에 관한 중요한 해석이 선택, 나아가 결국 구원은 인간이 이룩하는 일이라기보다 하나님의 자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 P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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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우리는 희년서가 아주 엄격한 율법주의를 표명하는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에 끊임없이 호소하는 모습을 보며, 저자가 하나님을 당신 백성에게 늘 자비로우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분으로 생각하는 모습을 본다. - P308

우리는 쿰란 문헌이 인간을, 심지어 선택받은 자도, 인간의 연약함에 참여한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죄 안에" 있다고 여기면서도 인간의 연약함 자체를 정죄하지는 않았음을 보았다. - P337

대다수 범죄를 속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했으며, 선택받은 자들을 "죄 안에" 있어도 "타락한[버림받은, lost]" 자로 여기지 않았다. - P337

하지만 에스라4서는 죄를 피하지 못하는 인간의 무능이 영벌로 이어진다고 본다. - P337

에스라4서 저자와 현존 문헌에서 나타나는 유대교의 나머지 견해를 구분해주는 것이 인간의 곤경을 바라보는 이런 비관론이다. -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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