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와 바울은 서로 반대되는 유형이다. 요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도망가다가 돌아온 불순종하는 선지자이고,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하나님의 고귀한 부름을 따르다가 방해를 받으나 포기하지 않는 순종하는 사도이다.
요나는 소명에 불순종했다가 돌아서고, 바울은 소명에 순종했음을 확인받는다.
전파된 말씀을 통해서 온 세상에 구원을 가져오시려는 하나님의 열정을 축으로 두 이야기는 진행된다.
구원, 즉 모든 피조물이 구함을 받는 사랑을 경험하길 바라는 하나님의 뜻은 가볍거나 차가운 관념이 아니라 거칠고 넘치는 에너지이며, 인간의 통제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이고, 종교적 직업에 종사하도록 고삐를 매서도 안 된다.
그래서 통제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바람과 유사한 면이 있다.
폭풍 앞에서는 목숨을 잃거나 구출받거나, 둘 중 하나밖에 없다.
걸터앉아 구경할 수 있는 멋지고 안전한 바위 같은 건 없다.
천둥과 번개, 파도와 하얀 물거품을 즐길 수 있는 외야석 같은 건 없다
선지자와 사람들, 선원과 성인들 모두가 그 안에 있다.
폭풍 앞에서는 다른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뿐이다.
지금까지의 현안이 무엇이었든 상관없다. 단 하나의 문제만 있을 뿐이다. 구원이냐, 아니냐.
자신의 소명 운명을 책임지겠다는 요나의 적극적인 행동과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서 끌어온 상당한 재정이 이제는 하찮게 되었다. 하나님의 폭풍과 하나님의 구원이(혹은 비非구원이) 그 장면을 지배한다. 요나의 뜻과 요나의 돈은 이제 사소해져버렸다.
요나는 다시스로 가는 표를 사기 위해서 상당한 액수의 돈을 지불했고, 선주는 이윤 때문에 바울의 조언을 무시했다. 그러나 돈의 권력은 폭풍 앞에서 사라진다. 이제 상대해야 하는 권력은 하나밖에 없다. 바로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이다.
인간의 자율성에서 강력한 요소인 돈이 두 이야기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요나와 함께 폭풍을 만난 선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배를 가볍게 하는 것, 지금까지 주요 관심사로 여겼던 것을 없애는 것뿐이었다.
하나님의 행동이 강화되면서 인생의 의미는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릴 것인가, 우리가 무엇으로 하나님을 도울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가에 집중된다.
요나와 바울의 소명은 정화된다. 좋은 의도(바울)와 나쁜 의도(요나)로부터 정화된다.
소명이 조금이라도 가치를 가지려면, 단순히 하나님에 대한 증언, 하나님에 대한 반응이어야 한다.
부정적으로건 긍정적으로건, 소명이 하나님의 일을 방해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의 일을 대신해서도 안 된다.
구원에는 예외가 없었고, 그것은 요나의 의도나 바울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일이다.
폭풍이 이 이야기의 물리적 환경이라면, 기도는 이 이야기의 핵심 행동이다.
난관에 봉착할 때, 극단적인 난관, 폭풍 난관에 봉착할 때 우리의 모든 것이 벗겨지고 삶의 가장 기본적인 실재가 드러난다. 요나에게 그것은 기도 없음이었고, 바울에게 그것은 기도였다. 폭풍은 요나가 기도하지 않는 선지자라는 점을 드러냈다. 폭풍은 바울이 기도하는 사도라는 점을 드러냈다.
예수님은 소명을 따라 살도록 제자들을 훈련하시면서 그들이 통제할 수 없는 바다 폭풍을 사용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기도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통제에 참여할 수 있게 하셨다.
이 바다 폭풍의 이야기들을 연결해주는 끈은 기도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 우리를 창조하고 구원하는 말씀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다.
우리의 소명에 의문을 제기하는 바다 폭풍은 소명을 회복하는 수단이 된다.
폭풍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것 앞에 우리를 노출시킨다.
우리는 태곳적 혼돈으로, 창세기 1장의 ‘토후tohu’와 ‘보후bohu’로 돌아가 거기에서 세상을 만드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삶을 굴복시킨다.
뒤덮는 하나님의 바람/성령 앞에 우리의 삶을 노출시키는 것이다.
폭풍 앞에서 우리는 근본적인 것으로 환원되는데, 궁극적 근본은 바로 하나님이다.
기도는 하나님과 상관있는 유일한 행동으로 떠오른다.
우리의 소명은 하나님이 부르시고 하나님이 형성하시는 평생의 일이다.
우리가 하나님을(주변적으로가 아니라) 최우선으로 대하지 않으면 우리는 더 이상 소명을 따라 살지 않는 것이며, 우리의 삶과 우리 주변의 모든 세계를 구성하는 거대한 실재와 의식적이고 자발적이고 참여적인 관계를 맺으며 살지 않는 것이다.
폭풍은(요나의 경우처럼) 우리가 하는 일의 무익함을 폭로하거나(바울의 경우처럼) 그 일을 확인시킨다
어떤 경우건 폭풍은 하나님이 우리의 일을 구성하신다는 인식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며, 우리의 일에서 하나님을 피하거나 조작할 수 있다는 약간의 암시도 모두 바로잡아준다.
일단 이 일이 제대로 이뤄지면 우리는 진실하게, 쉽게, 두려워하지 않고, 야망이나 불안 없이, 부인하거나 게으름 피우지 않고 일하면서 우리의 소명에 적합한 영성을 배울 준비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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