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관계에서 행복을 느끼는 존재이다. 부와 명성, 권력을 다 갖추고 있어도 가족, 친구, 직장동료 등 주변사람들과 냉랭한 관계에 있는 사람은 삶의 만족과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 - P28

인간관계가 빈약한 사람들은 고독에 시달린다. - P28

자기를 빼고 대화에만 열중할 수 있다는 것은 자유로워진 것이다. - P71

상대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비난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다. - P71

사람은 인정해 달라고 애걸하는 심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버림받는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대화 중에 자기를 뺄 수 있다. - P71

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대단한 일을 성취하거나 많은 재산, 명예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 P112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가장 중요하다. - P112

자신에 대해 자존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 P112

나를 작게 만드는 사람에게 나를 판단할 전권을 주지 말라. - P112

나는 다른 사람의 평가에 관계없이 온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이다. - P112

시기하는 아이에게서 벗어나려면 다른 사람보다 나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스스로 소중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 P120

나는 남과의 비교를 통해 존재이유가 드러나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나인 것만으로도 존재이유가 충분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 P120

장단점을 가진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사랑해 줄 필요가 있다.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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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군도 1 열린책들 세계문학 258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김학수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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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 군도』는 러시아의 소설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Aleksandr Isayevich Solzhenitsyn, 1918~2008)의 대표작이다. 

그는 그의 작품을 통해 공산 정권 체제의 허상과 폭력성, 비합리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특히 이 책은 굴라그 노동수용소의 참상을 가감 없이 폭로한다. 

더불어 인간 존재의 나약함과 악함을 보여준다. 


반대로 최악의 환경과 상황에서도,

웃으며 만족하며 즐길 수 있는 인간의 존엄함도 보인다.


결코 쉽지 않은 이야기임에도 

저자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는 자신의 이야기이며, 동료의 이야기다.

억압받는 모두의 이야기다.


책을 읽다 보면, 

독재 정권 하에 자행되었던 우리나라의 역사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

그렇기에 가슴이 아프다. 심장이 뜨거워진다.


매우 간단히 언급되긴 하지만,

극동지방의 한국인들도 추방당했던 장면들이 나온다. 


6권의 책 중 1권이다. 

대서사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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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목회자의 소명 유진 피터슨의 목회 멘토링 1
유진 피터슨 지음, 양혜원 옮김 / 포이에마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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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이야기꾼 유진 피터슨은 (Eugene H. Peterson, 1932 ~ 2018).  

를 통해 성경의 서사는 생동감 있게 변한다. 


평면적이었던 이야기는 입체적으로 바뀌고,

죽어있던 언어가 살아난다.


저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요나 이야기를 새롭게 들려준다. 


이 이야기를 통해, 

목회자에게 필수적인 요소들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영적 지도자로서 목회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디를 향해 가야 하나?


조용히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

살아있는 이야기는 우리와 세상을 새롭게 볼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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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강박적으로 알려주면서 우리는 교수가 되고 그들은 학생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문제 해결을 돕기 위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부지런히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듣고 예배하고 사랑하고 주의를 기울이며 그들 안에 있는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이미 내 안과 내 주위에 계신 하나님이라는 실재 안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을 뿐이다.

왜 내게는 선생과 돕는 사람은 그토록 많은데 내가 되어가고 들어가는 과정에서 그저 함께 동료가 되어줄 겸손하고 지혜로운 친구는 그토록 적은 것일까?

자리를 정돈하고 방해물을 치우고 참 현존을 확인하고 작고 세미한 음성을 듣는 것.

나를 중요하게 여겨주고 내게 여지를 주어서 자유와 은혜를 느끼며 크고 자비로운 무엇을 찾게 해주는 것. 그것이 영적 지도이다.

목회에서 영적 지도는 이야기에 대한 인식을 키워준다. 이야기는 그 사람 속에 파묻혀 있는 많은 것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보여준다

언어는 단순히 옳고 그름을 따지기 위한 것이 아니다. 배워야 하고 들려줘야 하는 이야기도 있다. 교제를 진전시키는 말의 사용법이 있다.

우리의 최우선 임무, 목사의 최우선 임무는 의사소통이 아니라 교제이다.

말이 선물로 주어진 것은 교제를 위해서이다.

교제란 내 자아의 일부가 상대방 자아의 일부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숨은 것을 드러내는 위험이 요구되고 개입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교제의 핵심에는 희생이 있다

중심에서 일하는 우리는 어떤 것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일부를 포기하기 위해서 말을 사용한다.

교제는 의미를 규정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말보다 신비를 더 깊어지게 하고 모호함을 수용하고, 알기 때문에 안전한 곳을 지나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위험한 곳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사용하는 말에 더 관심이 있다

그리스도인의 성찬은 ‘이것은 내 살, 이것은 내 피’라고 하는 가장 간단한 말을 사용해서 우리를 깊은 사랑 한가운데에 던져 넣고 구속되지 않은 것으로, 사랑으로, 믿음으로 모험을 나서게 한다. 이 말은 설명하지 않는다. 드러내고 가리키고 다가간다.

진정한 영적 지도는 예배 행위로부터 흘러나온다. 우리가 상관해야 하는 대상은 언제나 하나님이다.

듣는 자와 믿는 자로서, 노래하는 자와 기도하는 자로서, 받는 자와 따르는 자로서 의도적으로 그리고 질서 있게 하나님 앞에 나오는 행위인 예배는 일상생활에서도 지속된다. 그러나 그러한 지속성은 방해받기가 쉽다.

마가는 ‘가르’를 마지막 단어로 택했다. ‘가르’는 우리가 걸어가는 도중에 놔버림으로써 균형을 잃게 만든다. 다른 한쪽 발이 어딘가에는 내려와야 한다.

실재를 완전히 재배치시키는 새 생명의 침입이, 상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생명으로 우리 앞에 맞닥뜨려 우리가 영위하는 최소한의 생명을 의문시하게 만드는 새 생명의 침입이 우리로 하여금 불안과 두려움에 차 숨을 곳을 찾아 허둥거리게 만들 것인가, 아니면 경외에 찬 두려움으로 모험을 무릅쓰고 예배로 들어가게 할 것인가?

마가의 ‘가르’는 기술적인 침묵이다.

마가는 독자나 청자가 개인적 결론을 자유롭게 ‘쓰도록’ 스스로를 억제한다.

마가 이야기가 극적인 탄력을 얻은 이 시점은 결말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하나님의 질문은 요나의 답변을 요구한다. 그러나 둘 다 독자와 청자 외에는 그 누구도 마지막 단어를 제시할 수 없을 정도로 문제가 너무 깊고 개인적이다.

요나의 마지막 말에 대한 호기심은 우리 자신의 마지막 말에 대한 궁금증으로 바뀐다. 무엇인가를 추측하는 의미에서의 궁금증이 아니라, 우리의 결말은 어떨까 궁금해하는 것이 아니라, 흠모하는 의미에서의 궁금증이다.

이제 요나 이야기로 우리의 상상력이 바뀌어 소명을 거룩함의 불길로 정화시키고 단련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거대한 세계를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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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심장이 살아가는 동안 이 선(線)은 때로는 열광적인 악으로 짓눌리기도 하고 때로는 어둠을 제거하는 선(善)에 공간을 내주면서 심장 위에서 이동을 계속한다. - P257

동일한 인간이라도 나이와 상황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곤 한다. 어떨 때는 악마에 가까워지기도 하고, 어떨 때는 성인에 가까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이름만은 변하지 않고, 우리는 모든 것을 그 이름의 소행으로 돌리고 만다. - P257

인간은 악과 선 사이에서 일생 동안 갈피를 못 잡고 갈팡질팡 동요한다. 그러나 악의 한계를 넘어서기 전까지는 선으로 되돌아올 가능성을 갖는다. 그리고 그가 바라는 곳에 아직도 머물러 있을 수가 있다. - P258

그러나 악행의 밀도, 혹은 그 정도, 혹은 권력의 절대성에 의해서 일단 한계를 넘어서기만 하면 그는 이미 인류에게서 떠난 거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어쩌면 인류로의 복귀도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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