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타인과 화목하게 지내지 못해서 불행해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실은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과 화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도 불화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 P25

아무리 이렇게 저렇게 애를 써도 우리 인생에서 상처를 일으키는 사건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위로가 되는 것은 우리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사실이다. 상처를 일으키는 사건을 나와 관련된 문제로 받아들이고 마음이 상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를 선택할 권리는 전적으로 나에게 있다는 말이다. - P29

마음을 상하게 하는 상황에서 처음 우리가 느끼는 것은 ‘상처‘가 아니라 ‘상처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얼마든지 ‘그 느낌‘을 상처로 남길 수도 있고 상대의 문제로 되돌려 줄 수도 있다. - P33

더 나은 나, 더 나은 사람은 다른 멋진 누군가가 되려고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 P43

오직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찾으려고 노력할 때 가능한 일이다. - P43

밝은 표정, 긍정적인 마음, 실수해도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는 힘, 새로운 것에 주저하지 않고 뛰어드는 모험심, 낯선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네는 자신감은, 나는 충분히 소중한 존재라는 당당한 자존감이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되고 싶은 사람도 그런 사람이 아니던가. - P43

분노와 비난, 한탄은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해 주지 않는다. ‘어떻게 그가 나에게 이럴 수 있지?‘라는 질문 대신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때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능력도 가질 수 있다. - P83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차별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는 사실이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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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공동체를 이끄는 일에 관한 성경적 지침을 찾고자 할 때 목회자들은 에스더서에 주목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는 생존 대 멸망이라는 단호하고도 단순한 관점에서 하나님 백성의 본질과 기능이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의 존재는 삶의 모든 양상을 고양시키며, 거기에 더 깊은 색과 새로운 현실을 부여했다. 사람들은 그런 위기의 상황에서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기적임을 깨닫게 된다.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에 직면했던 사람들은 더 열정적으로 살아간다. 공동체는 역사적 관점에서 설명할 수 없고, 사회학적 관점에서 분석할 수 없다. 공동체는 축제의 언어와 의례, 음식과 웃음을 통해 누릴 수 있을 뿐이다.

신앙 공동체가 살아남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해마다 부림절에 이를 기념하라고 명령하는 에스더서는 찬양을 통해 하나님이 공동체를 만드시고 다스리시고 보존하시는 맥락을 규정하는 목회 사역을 위한 중요한 문서로 남아 있다.

여기서 기쁨이란 한 사람이 행운을 누린 것에 대한 기쁨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속에 공동체가 참여한 것에 대한 기쁨이다.

구원은 개인적일 뿐만 아니라 공동체적이다. 공동체성 안에서, 그것 때문에 기쁨이 있다. 기쁨은 사적인 감정이 아니다. 기쁨을 드러내고 표현할 공동체가 필요하다. 그리고 하나님이 공동체를 주시고 보존하시기 때문에 그 반응은 하나님 안에서의 기쁨이다.

하나님 안에 있는 그 근원으로부터 단절된 기쁨, 신앙 공동체를 떠나서 누리려고 하는 기쁨은 그저 감각적 흥분이 되고 만다.

고통의 경험을 하나님과 분리시키기 쉬운 것처럼, 기쁨의 경험도 하나님과 분리시키기가 쉽다. 전자의 결과가 쓰라림이라면, 후자의 결과는 지루함-권태-이다.

공동체라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과 공동체라는 억누를 수 없는 잔치라는 두 주제는 이야기와 축제 안에 서로 얽혀 있다. 공동체의 생존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기쁜 축제를 벌인다.

만약 축제가 이야기로부터 단절된다면, 즉 만약 경축하려는 노력이 경축할 이유로부터 분리된다면, 잔치는 삶을 그 자체로 경축하는 것으로, 생명력에 대한 찬양으로 금세 변질되고 만다.

에스더서를 공동체의 이해와 표현을 위한 근거로 삼을 때 목회 사역은 한편으로는 엄격함을 강요하는 전체주의적 태도를, 다른 한편으로는 누구나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무정부주의적 무정형성을 피할 수 있다.

에스더서와 부림절은 하나님이 창조하고 구속하신 공동체의 삶이라는 그분의 선물을 자유롭게 나누고 교환하는 사람들의 축제적인 현존을 드러내는 본보기를 제공한다.

그들은 이야기를 하며 예배하고 찬양하고 제사를 드리고 노래하고 말씀을 선포하고 기도했다.

이 모든 것을 통해서 자신들이 하나님의 부르심과 다스리심에 의해 형성된, 영적으로 독특하며 공동체적인 실체(인종이 아니라, 정치적 집단이 아니라, 문화가 아니라)임을 계속해서 지각하고 있었다.

이들의 공동체적 삶의 형식은 바뀌었다. 이집트에서 그들은 노예였고, 시내산에서는 난민이었으며, 가나안에서는 느슨히 결합된 부족들이었고, 화려하고 강력한 군주정을 이루기도 했으며, 내전을 치르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나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자 아브라함의 자손이었으며, 비록 희미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실례였고, 이 땅의 민족들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복을 빌" 수단이었다.

수산의 유대인 공동체에서는 최악의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언급했다는 기록조차 없다. 두 곳 모두 칭찬할 만한 공동체는 아니었다. 그러나 두 곳의 존재는 모두 역사적 사실이다. 이런 결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역경을 딛고 신앙 공동체가 살아남았다는 증거다.

어디에서나 언제나 신앙 공동체는 성령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이 하나로 부르시고, 하나님이 하나로 지켜주시고, 하나님의 은총에 살아남을 한 무리의 사람들로 이해할 것이다. 함께 종교적인 사람들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로 이해하지 않을 것이다.

크기는 도덕적 자질이 아니다. 그것은 주어진 것이다. 그것은 거기 있는 것이다. 목회자들이 일하는 환경의 일부다. "목회자가 선을 행하기 어려운 불모의 시대에 태어난 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다."

목회자는 자신의 문화를 선택할 수 없다. 우리가 섬기는 회중의 크기는 우리가 어떤 시대에 태어났는가, 그 시대에 지도자의 자질 중 어떤 것이 유행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분노나 친절함 중 어느 쪽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대로 전달하는가에 상관없이, 어떤 시대에는 분노에 찬 설교가 호응을 얻는 반면, 다른 시대에는 친절한 설교가 호응을 얻는다. 이런 변수는 변덕스럽기로 악명이 높기 때문에, 목회 사역을 할 때 선전의 기법을 능숙하게 활용하는 것보다 영적, 성경적 정직성이 훨씬 더 중요하며, 광고 전략보다 섭리의 교리가 더 중요하다.

목회 사역에서 신앙 공동체를 이끄는 일보다 더 펠라기우스주의적인 경향에 빠지기 쉬운 일은 없다. 강단에서는 오직 믿음으로sola fide 구원을 얻는다고 신실하게 설교하지만, 주중에는 일상생활에 성급하고 불안하고 열광적인 마음을 은근히 심어주고 복음의 메시지를 망가뜨린다.

명백한 성경적 진실은, 신앙 공동체가 37명이든 3천 7백 명이든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각 사람이 영원한 가치를 지니며, 은총과 사랑 안에서 자라기 위해 몇몇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

목회자의 책무는, 기도를 이끌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성령의 능력과 은사를 나누어 사역이 이뤄지게 함으로써 37명이든(만약 그들이 그런 교회를 섬기고 있다면) 3천 7백 명이든(만약 그것이 그 자리라면) 그들이 자라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한스 큉Hans Kung에 따르면, 성경에서는 "처음부터 실천해야만 하는 교회에 대한 교리를 규정하지 않는다. 성경은 교회라는 실체로부터 시작하며, 그에 관한 반성은 나중에 따라온다. 이상적인 교회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다."

하나님의 행위에 의해 이미 거기에 있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는 평범한 목회적 언어는 가정법이 아니라 직설법을 취해야 한다. 즉, 도덕주의적으로 온갖 노력을 다함으로써 우리가 되어야 할 이상적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은총으로 창조하신 공동체를 다룬다.

실제로, 그 수가 크게 줄고 뿔뿔이 흩어져 있었지만 그들은 이교적 권력과 문화와 종교 속으로 흡수되어 사라져버리지 않았다. 그들은 살아남았다. 은총으로. 제국帝國은 그렇지 못했다.

모든 교회 공동체는 아무리 작더라도, 아무리 경건이 부족하더라도, 아무리 일을 제대로 못하더라도-계시록의 일곱 교회를 생각해보라!-기적적이며 소중한 선물이며, 아무리 보잘것없고 결함이 있더라도 하나님 나라의 한 예다.

한스 큉Hans Kung에 따르면, 성경에서는 "처음부터 실천해야만 하는 교회에 대한 교리를 규정하지 않는다. 성경은 교회라는 실체로부터 시작하며, 그에 관한 반성은 나중에 따라온다. 이상적인 교회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다."

하나님의 행위에 의해 이미 거기에 있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는 평범한 목회적 언어는 가정법이 아니라 직설법을 취해야 한다. 즉, 도덕주의적으로 온갖 노력을 다함으로써 우리가 되어야 할 이상적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은총으로 창조하신 공동체를 다룬다.

실제로, 그 수가 크게 줄고 뿔뿔이 흩어져 있었지만 그들은 이교적 권력과 문화와 종교 속으로 흡수되어 사라져버리지 않았다. 그들은 살아남았다. 은총으로. 제국帝國은 그렇지 못했다.

모든 교회 공동체는 아무리 작더라도, 아무리 경건이 부족하더라도, 아무리 일을 제대로 못하더라도-계시록의 일곱 교회를 생각해보라!-기적적이며 소중한 선물이며, 아무리 보잘것없고 결함이 있더라도 하나님 나라의 한 예다.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적에 대한 언급은 반대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민감해지고 그 반대의 본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어디든지 하나님의 백성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적들이 있다.

성경을 가르치고 선포해야 하며, 기도를 드려야 하고, 심방을 해야 하며, 성례전을 집례해야 하고, 상담을 하며, 예배를 인도해야 한다.

목회자는 그에게 주어진 일을 해야 한다. 목회자는 신앙 공동체를 세우는 사역에 관여하는 유일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해야 할 목회적 사역이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목회 사역을 전문가답게 철저하게 수행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 사역을 최대한 면밀하게 정의해야 한다.

필요한 것은 겸손과 목회적 소명에 따라 기꺼이 일하려는 자세, 전쟁의 주인이신 주님이 뜻하는 곳에서 뜻하시는 때에 그분의 종들을 알맞게 사용하실 것이라고 신뢰하는 믿음이다.

공동체의 지도자로서의 지위를 활용해 자신의 무너진 자아를 떠받치려고 하는 목회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신뢰를 배신하고 동료와 후임자들의 일을 두 배, 세 배로 어렵게 만든다.

통계적인 찬사는 신실함과 아무 상관이 없다. 공적으로 유명해지는 것은 순종과 아무 상관이 없다.

목회자에게 모르드개가 중요한 까닭은 그가 보여준 지도력 때문이다. 즉,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섬길 것인지에 관한 모범이 되기 때문이다.

그의 지도력은 그의 사람됨으로부터 나왔다. 그는 지도자가 되기 위해 스스로 나서지 않았다. 그는 지도자의 자리에 오르기를 열망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유다 사람"이었다. 그 정체성 안에서 일관성을 유지하며 살고 그에 따른 의무를 이행함으로써 그는 지도자의 역할을 다했다.

모르드개에게 지도력이란 자기주장이나 자아실현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며 그 전통적 정체성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흘러오는 모든 것을 행하는 것이었다.

이방 땅에서 살아남은 디아스포라 신앙 공동체의 이야기를 할 때, 지도력의 본보기는 평범하고 겸손한 종이었다.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의 생존과 성장, 양육의 문제-이것은 목회자에게 맡겨진 책무이기도 하다-에 관한 한 종의 모습이 지도력의 모범이 된다.

사역에 관해 성숙해가고자 할 때 목회자들은 의도적으로 종의 형식을 택해야 한다.

목회자들은 섬김의 사역에서 지속적으로 재훈련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안수를 받고 권위 있는 지위를 갖게 될 때, 그 권위를 제국주의적인 방식으로 행사하고 초대하기보다는 명령을 내리고 교만한 자세를 취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종들은 묵묵히 정중하게 열심히 자기 일을 한다.

종의 역할은 예수님 안에서 완성되었다. 세상이 존엄한 왕을 맞이할 준비를 하도록 그분의 탄생 이전에 그리고 탄생과 더불어 복된 징조가 존재했지만, 예수님은 가장 겸손한 모습으로 가난한 농부 부모에게서, 보잘것없는 마을에서, 가장 초라한 건물 안에서 태어나셨다.

예수님에 관해서는 모든 것이 종의 모습을 말해준다. 만약 예수님이 우리가 지도력의 모범으로 삼아야 할 분이라면, 목회자들은 이 형식을 결코 피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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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읽는 말 - 4가지 상징으로 풀어내는 대화의 심리학
로런스 앨리슨 외 지음, 김두완 옮김 / 흐름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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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관계의 어려움을 경험한다.

어떤 대의보다 실제적 관계로 인해 아파한다.



삶의 여러 고비들도,

관계의 문제가 교묘하게 스며들어 있다.



외부적 환경이 결정적 이유일 때도 있지만,

그 어려움이 내 존재를 잠식할 때는 관계가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어떻게 나 자신을 지키고, 

상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인가?



이 책은 '라포르 전략'을 통해

여러 인간관계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자신을 이해하는 힘이 생기고,

타인과 더욱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게 한다.



4가지 상징인 티라노사우르스, 사자, 원숭이, 쥐를 통해

인간의 상호작용을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각 상징적 동물의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행동을 통해,

자신을 더욱 깊게 이해할 수 있다. 



더불어, 각 상징 동물의 상호작용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장애물들을 묘사함으로 실제 상황에 대처할 수 있게 한다.



자신과 타인을 깊게 이해함으로,

긍정적인 관계를 발전시킬 실제적 지침이 필요한 분에게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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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은 자기인식에서 시작한다. 소통 방식을 바꾸려고 고심하기 전에, 자신의 내면을 살펴야 한다.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생각해 보고, 본능적이인 반응을 줄이라. 더 전략적인 태도로 목표에 집중하라. - P177

나는 나만이 통제한다. 타인의 행동은 통제할 수 없다. - P177

나의 행동만 통제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사람이 내가 이렇게 행동하게 했어‘라고 생각하는 습관은 버리자. - P177

누군가가 항상 나를 자극한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이 그런 소통의 분위기를 만들게 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 P177

그저 남의 반응을 살피기보다 자신의 목표에 맞는 방식으로 반응하는 법을 더 고민하는 편이 낫다. - P177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라포르 혁명이다. 누군가의 핵심 신념이나 가치를 파악해 보면, 생각 외로 우리의 신념 및 가치와 비슷하다는 것을 종종 깨닫는다. - P331

양쪽이 비슷하지 않다면 우리는 동의까지 할 필요는 없어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P331

상대방과의 라포르를 개선하는 것은 상대방에게만 좋은 일이 아니다. 자신의 행복, 건강, 만족으로 향하는 길이기도 하다. - P337

라포르는 상대방과의 상호작용을 개선하고, 아끼는 사람과 더 가까워지며, 공동체에서 친분을 다지고, 우리가 속한 국제 사회에서 서로 더 이애하고 갈등을 줄일 수 있는 비결이다. -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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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카의 화 다스리기 메이트북스 클래식 4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 강현규 엮음, 정윤희 옮김 / 메이트북스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고대 로마 제국시대의 정치인이자 철학자이며, 문학자인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 B.C 4 ~ A.D 65)의 글.



세네카는 스토아학파의 대가 중 하나로, 

자신의 철학과 삶을 일치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이 책은 그의 동생 노바투스에서 서간문 형태로 보낸 글.

화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세네카에 의하면, 화는 본질적으로 불필요하다.

그는 화라는 감정의 실체를 명확하게 이해해야 함을 역설한다.



3장과 4장에서는 그러한 화로부터 벗어나는 법과

화를 억제하고 다스리는 실제적 방법을 다룬다.



이 책을 통해 '화'를 이해하고, 그 감정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과 대안을 익힐 수 있다.



더불어 고대의 철학자로부터 

삶의 본질과 핵심에 다가갈 수 있는 자세를 배우게 된다.


#세네카의화다스리기

#루키우스안나이우스세네카

#소울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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