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릇 (벚꽃 에디션) - 비울수록 사람을 더 채우는
김윤나 지음 / 카시오페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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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인격이 드러나는 많은 도구들.

표정과 행동. 무엇보다 말.




말은 많은 것을 보여준다.

현재의 감정, 생각. 그 사람의 수준까지.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저자는 보다 깊고 단단한 말그릇을 만들라고 한다.




말그릇은 말을 담아낼 수 있는 품성이며 내면이다.

말그릇이 큰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듣고 받아들인다.




말하기의 실력이나 기술이 도움이 되겠지만,

존재의 변화가 동반되어야만 말이 풍기는 향기까지 달라질 수 있다.




많이 주의하고 집중하여 말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품성이 점점 넉넉해진다면 말도 더욱 따뜻해진다.




그렇기에 이 책은 의미 있다. 

말하기 기술 이전에 내면에 집중하고, 듣기를 우선한다. 




존재와 인격, 품성을 오롯이 담아내는 것이 말이기에,

말 이전에 우리가 다루어야 할 것을 고민하게 한다.




말 이전에 사람이다. 

말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공간을 비우는 것.




말이 빛나게 하는 것이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말하기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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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말 한마디를 바꾸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 P8

‘말‘이란 것은 기술이 아니라 매일매일 쌓아올려진 습관에 가깝기 때문이다. - P8

살면서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들이 뒤섞이고 숙성돼서 그 사람만의 독특하고 일관된 방식으로 나오는 게 바로 말이다. - P8

그렇게 만들어진 언어는 그 사람의 내면과 닮아 있다. - P8

그렇기 때문에 무작정 말 잘하는 ‘기술‘만 익혀서는 자신만의 새로운 말 습관을 기를 수 없다. - P8

말은 한 사람의 인격이자 됨됨이라고 한다. 말을 들으면 그 말이 탄생한 곳, 말이 살아온 역사, 말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다. - P31

말은 한 사람이 가꾸어 온 내면의 깊이를 드러내기 때문에 말 그릇을 키우기 위해서는 먼저 내면이 성장해야 한다. - P31

분명하게 말해야 할 상황에서는 물러서지 않는다. 정갈하고 정확하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 P33

딱 필요한 순간에, 꽉 찬 말이 나온다. 그것은 세련된 말과는 다르다. 기교가 아니라 기세에 가깝다. - P33

약간 촌스러울지 몰라도 결코 경박하지 않고, 화려하지 않아도 안정되어 있다. 그러니 자연스레 귀를 기울이게 된다. ‘끌리는 말‘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 P33

말 그릇을 다듬은 사람은 관계의 깊이가 달라진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이전보다 편안해지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하고 공감하는 역할도 기꺼이 해내게 된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꽤 괜찮은 사람으로 여기게 된다. - P53

말 그릇을 향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느 순간 단단한 자존감이 되어 자신에게 선물처럼 되돌아올 것이다. - P53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잘 모른다. 그것이 속상함인지,당황스러움인지, 슬픔인지, 놀람인지. 그 정체를 배운 적이 없다. 그저 낯선 상황,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판단이 들면 반사적으로 아무 감정이나 골라잡아 내지른다. - P63

속상함, 상실감, 수치심과 같은 부담스러운 감정들도 다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에 걸맞게 대우해주어야 한다. 그것으로부터 도망가거나 대항해서는 안 된다. ‘그래, 난 지금 슬픈 거야.‘라고 감정 자체를 인정하고 ‘내 얘기를 들어줘.‘하면서 공감의 방식으로 감정을 해소해 나가야 한다. - P65

‘감정‘은 당신을 해치려고 온 도둑이 아니라 도와주기 위해 찾아온 친구다. 당신의 말이 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길잡이다. 그러니 감정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가를 제대로 보아야 제대로 말할 수 있게 된다. - P70

어떤 사람은 지나가는 말에도 열을 내고, 또 누군가는 꽤 기분 나쁜 말에도 동요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에게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감당할 만한 일‘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개인의 자존감과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 P83

상대를 ‘적‘으로 만들고 싶다면 나의 공식만 고집하면 된다. - P124

반대로 성숙한 대화를 하고 싶다면 사람마다 가진 공식의 차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 P124

차이를 ‘문제‘로 바라보지 않고 같이 풀어야 할 ‘과제‘로 바라볼 때, 당신의 말 그릇은 흔들리지 않는다. - P124

자신의 감정과 공식과 습관에 대해 질문하고 생각하는 연습을 거쳐야만 진정한 소통의 길이 열리는 법이다. - P150

말을 떠받치고 있는 내면의 골격이 튼튼해야 다양한 감정을 받아들이고 비로소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 아닌, 내가 주도하는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 P150

자신의 말 그릇이 단단해지고 난 후에야 비로소 ‘제대로 듣고 말하는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 P150

듣는 힘이 있는 사람들은 상대가 표현하는 말과 차마 드러내지 못한 말을 모두 듣기 위해 노력하지만, 말하는 힘만 센 사람들은 친구의 이야기를 소재 삼아 스스로 주인공이 되려 한다. 조언, 위로, 함게 욕하기 등이 친구를 위한 편들기 같지만 끝까지 들어보면 자신을 드러내는 말에 가까울 때가 많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친구를 밀치고 대화를 점령하고 만다. - P174

말에 책임을 진다는 것도 관계에서 내가 무엇을 더 할 수 있고, 덜 해야 하는지를 판단하고 실행할 수 있다는 의미다. - P283

사람들은 대화를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의 문제로 간주한다. 상대가 유난히 까다로운 사람이고, 사이코적 기질이 다분해서 말이 안 통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 P285

그러나 대화는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능력의 문제다. - P285

내가 넉넉한 말 그릇을 지녔다면 대화하기에 어려운 상대방을 만나도 대화를 지속할 수 있다. - P285

대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실제로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 -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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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
아타나시우스 지음, 피넬로피 로슨.오현미 옮김 / 죠이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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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에는 고통이 뒤따른다. 서로의 상황이나 가치관이 비슷하다면, 어느 정도의 소통은 일어난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 하더라도, 서로의 감정과 생각을 이해하는 일에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동반된다. 혹여나 서로의 성향이 잘 맞지 않으면,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소통이 잘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 관계가 조물주와 피조물이라면 어떻겠는가? 직접적인 소통은 불가능하다. 초월하는 실체와 직접적인 관계를 갖는 것은 어렵다. 영적 실재와 어떻게 대화할 수 있겠는가? 



본래 인간은 영적 존재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했다. 그렇기에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장 잘 반영한 존재였다.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인간은 비참한 상태가 되었다. 창조 세계인 만물을 통해 하나님이 드러나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선지자들을 통해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음에도 우리는 듣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은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썩어져 가는 것들로 달려갔다.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인간은 비참한 상태가 되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셨다. 그분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다. 오직 그분만이 썩는 것을 썩지 않는 것으로 만드실 수 있다.      



말씀이신 그분은 인간의 비참함을 보셨다. 그분은 범죄로 인해 형벌받는 인간의 고통을 모른 체하실 수 없으셨다. 말씀이신 하나님께서는 인간과의 소통을 위해 고통을 친히 담당하셨다. 그분은 저주의 상징인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모든 저주를 끊어내어 주셨다.     



인간의 죄로 인해 가로막혔던 하나님과의 소통이 그리스도를 통해 회복되었다. 죽음의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인간은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하여 담대함을 얻게 되었다. 이제 더는 죽음은 우리를 옭아맬 수 없다.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는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를 통해 이를 설명한다. 그는 당시의 잘못된 견해들을 과감하게 배척하고,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왜 인간이 되셔야만 했는지를 훌륭하게 논증한다.



그는 만물의 창조와 인간의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가 성육신을 논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비참함과 인간이 처한 곤경이야말로 성육신의 결정적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시종일관 진지하면서도 날카롭다. 그러면서도 최대한 쉽게 설명하기 위한 노력이 곳곳에 보인다. 또한 핵심적 사항을 요약하고 반복하며 이해를 돕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 부활은 복음의 핵심이다. 핵심적인 복음의 내용이 짧은 이 책에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다. 베드로 사도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살아 있는 소망을 변호할 말을 준비하라 했다(벧전 3:15).



오랫동안 여러 상황에서도 굳건하게 살아 남아 우리에게 살아 있는 복음을 전해 주는 책을 고전이라 한다면. 이 책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구비하여 읽고 또 읽어야 할 책이다.



더하여 C. S 루이스의 서문은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아름다운 외침이다. 아타나시우스의 글과 C.S 루이스의 서문을 동시에 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최고의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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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3-31 17: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S. Lewis 는 서문을 어렵게 쓰기로 유명한데, 자신의 저서가 아닌 책은 그렇지 않나봐요.
C.S Lewis 의 이름이 반가워서...^^

모찌모찌 2021-03-31 17:23   좋아요 1 | URL
아 그런가요?^^ 루이스 책 읽은지 넘 오래되서 서문이 어땠는지 기억이 안 나네요 ㅎㅎㅎ 암튼 이 책 서문은 참 좋습니다 ㅋㅋ
 
착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 당신의 착함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먹이는 한 방!
무옌거 지음, 최인애 옮김 / 쌤앤파커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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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처음에는 너무 단호하다는 생각이 든다. 문체까지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맺고 끊는 것을 확실하게 하면 좋지만,

이렇게 해서 관계를 맺을 수 있나?



점차 책에 빠져들수록,

저자의 의도가 더욱 명확해진다.



그것은 타인에 의해 끌려다니는 삶이 아니다.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선택하라.



나의 마음과 몸이 제일 중요하다.

내가 좋은 것이면 이미 충분하다.



나에게 해를 가할 수 있는 것도 나 자신이다.

내가 나에게 잘해줘야 하는 이유다.



내가 열정적으로 좋아한다면,

이미 그것으로 만족한다. 타인의 인정은 의미 없다.



진정한 강함은 맞서 싸우는 것을 뛰어넘는다.

스스로 더욱 나아짐으로 고난을 초월해버리라.



타인에 휘둘리지 않고 단단한 자신을 원한다면,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한 걸음씩 나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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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자존감‘은 자기 자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스스로를 얼마큼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 P18

혹시 남에게 상처를 줄까 봐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은 대부분 다른 사람에게 거절당하는 것 또한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 P18

대개는 거절만으로도 자신을 좋아하지 않거나 심지어 존중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 P19

사적이든 직장에서든 뒤탈 없는 인간관계를 만들려면 처음에는 소인처럼 깐깐하게 굴고 나중에는 군자처럼 대범하게 행동해야 한다. - P29

다소 까다롭게 보일지라도 초반에 미리 자신이 원치 않는 상황과 반드시 지켜줬으면 하는 점들, 도움을 청하고 받는 범위 등을 솔직히 밝혀두자. - P29

인간의 본성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나면, 단순한 것이 가장 이치에 맞는다는 말에 동의하게 된다. 인생은 혼자만의 전쟁이고, 인생의 잔인함을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 P63

자기 자신 외에는 이 세상 누구도 당신을 공격할 자격이 없다. 그런데도 어떤 경우는 내가 나서서 상처 받는 상황으로 걸어 들어간다. 대체 왜 그래야 하는가? 스스로 상처를 끌어안지 말고, 남이 주는 상처는 적당히 무시하면서 살아가는 편이 훨씬 좋지 않을까? - P79

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면(물론 불법적인 일을 포함되지 않는다) 내게 유익한 것이다. 내가 좋으면 됐다. - P80

열정적으로 즐거워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만약 남이 나를 인정해줬으면 하는 기대를 가지고 어떤 일을 한다면, 이는 우리가 그 일에 충분히 열정적이지 않다는 방증이다. - P80

운명이 부여한 시련 앞에서 약자는 도망치고 원망하며, 그보다 조금 나은 사람은 타협과 합리화를 선택한다. - P88

그리고 강자는 강인하게 견디며 맞서 싸운다. 그러나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스스로 더 나아지고 강해짐으로써 시련을 초월해버린다. - P88

"똑똑함은 재능이지만, 친절함은 선택이다Cleverness is a gift, kindness is a choice." - P99

이 명언에서 ‘kind‘는 단순히 친절하다든가 착하다는 뜻 이상으로 공감, 포용, 타인에 대한 존중의 의미까지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 P99

‘clever‘는 천부적인 재능이지만 ‘kind‘는 선택이며, 후자가 전자보다 훨씬 어렵다. 똑똑한 사람은 만나기 쉬워도 정말 친절한 사람은 만나기 어려운 까닭도 여기 있다. - P99

불만이 가득하면서도 고집스레 헌신을 계속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왜일까? 상대가 떠날까 두렵고, 나를 필요 없는 존재로 여길까 겁나고, 의지할 곳을 잃고, 혼자 힘으로 서야 될까 봐 걱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이 됐든 이는 진짜 사랑이 아니라 공포에 불과하다. - P119

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일이 있다. 내 일, 남의 일, 하늘의 일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하늘의 일은 아예 내가 관여할 수 없는 범위에 있고, 남의 일은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결국 나는 내 일만 잘하면 된다. - P128

때로 우리는 타인을 향한 피곤한 동정심을 거두어야 한다. 즉, 어떤 악에 대해서는 우리의 선량함을 함부로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 P142

자신이 상처 입지 않는 가장 지혜로운 길은 자발적으로 공격을 포기하는 것이다. - P177

남에게 해롭지 않은 존재가 되면 남도 나를 해하지 않는다. 착한 사람이 쉽게 신뢰받는 이유도 이와 같다. - P177

타인을 향한 공격이나 본능적인 자기방어적 반격을 의식적으로 그치면, 서로 상처 입히는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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