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은혜와 평화와 구원에 대해 말합니다. 복음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모든 것을 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어디에서나 저항과 반대에 부딪힙니다.

복음은 사람을위한 것이지, 사람을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사람이 계획하거나 추론으로 도출한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신적 기원을 가지며, 그러므로 사람의 생각과 욕망, 정욕과 열정을 좇지 않습니다

정신과 마음, 욕구와 의지, 영혼과 몸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저항합니다

본질적으로 볼 때 복음을 향한 반대는 어디에서나 동일하게 존재합니다. 육신과 세상과 사탄은 항상 어디에서나 동일하게 존재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에 저항하는 가장 크고 강력한 적들이 우리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역사는 굳건하게 자기 신앙을 지킨 순교자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환난의 때에 믿음을 저버리고 그릇된 방법으로 신앙고백을 비틀어버린 수많은 이들의 슬픈 이야기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예수님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은 참으로 면목 없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을 부끄럽게 여긴다면, 그의 이름을 우리 입술의 고백으로 담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분명히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고, 도덕적으로 병들게 되고 말 것입니다.

수치심은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평가 속에서 자신의 특정 행위나 상태가 낮다고 느끼는 불쾌한 감정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복음이 우리에게 선포될 때 오는 선한 감정과 우리 양심의 고소, 악한 행동을 한 후 우리가 직면하는 슬픔, 특정 상황 속에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부드러운 감정 등을 부끄러워합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우리 자신을 온전히 그리스도께 바칠 때,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평가 속에서 우리 자신이 낮아지고 우리의 명성과 명예가 사라지는 것이 어찌 보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평가는 공상일 뿐이며, 명예는 상상 위에 세워진 것뿐입니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우리 자신을 부유하고 풍성한 자로 여기며, 아무것도 필요 없는 자로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가 복음을 품을 때에야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가난하고, 눈이 멀었으며, 벌거벗었고, 모든 것이 필요한 자인지를 깨닫게 됩니다[계 3:17].

인간과 함께 하는 명예는 대부분 무지와 겉모습의 열매입니다. 칭찬으로 마음을 끄는 기술은 우리의 실제적이고 참된 본성을 감추고, 학습을 통해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따라 우리의 의견을 형성하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참되고 정직하시지만, 모든 인간은 거짓말쟁이입니다. 인간이 항상 거짓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은 본래 거짓을 말하는 자입니다.

인간은 그 존재 자체가 거짓되며 부정직합니다. 실재와 겉모습, 본질과 드러남, 속 사람과 겉 사람은 서로 모순됩니다.

우리는 정말로 우리 자신과 다른 이들을 위해 상상 가운데 살아갑니다. 우리가 바른 빛 가운데서 이런 공상과 상상을 바라본다면,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 어떤 것도 본질적으로 잃어버리는 것이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본질적으로 가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은 우리가 부하고, 풍성하며,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는 공상과 상상입니다

죄가 가진 가장 두려운 비참함은 우리가 눈이 멀었다는 것이 아니라, 눈이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가 보고 있다고 상상하는 것입니다. 죄는 죄책이고, 부패이며, 수치인데, 그 위에 어리석음과 무지도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길 원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이런 상상을 거부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뜻은 우리와 다른 사람의 의견이 아무런 가치와 의미가 없다는 사실과,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에 유일한 소망을 두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고백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과 모든 것, 즉 우리의 명성과 명예, 우리의 소유와 피, 우리의 영혼과 생명을 버리는 것을 포함합니다

자기를 보호하려는 욕구는 외관상 자신의 모든 권세와 능력과 더불어 사람을 이끄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복음과 반대되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기 때문이며, 실제로 그럴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롬 8:7].

육신을 따르는 인간은 하나님의 영의 일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육신을 따르는 인간은 우리 자신을 버리는 것이야말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참되고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수치심은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평가 속에서 자신의 특정 행위나 상태가 낮다고 느끼는 불쾌한 감정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복음이 우리에게 선포될 때 오는 선한 감정과 우리 양심의 고소, 악한 행동을 한 후 우리가 직면하는 슬픔, 특정 상황 속에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부드러운 감정 등을 부끄러워합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우리 자신을 온전히 그리스도께 바칠 때,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평가 속에서 우리 자신이 낮아지고 우리의 명성과 명예가 사라지는 것이 어찌 보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평가는 공상일 뿐이며, 명예는 상상 위에 세워진 것뿐입니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우리 자신을 부유하고 풍성한 자로 여기며, 아무것도 필요 없는 자로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가 복음을 품을 때에야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가난하고, 눈이 멀었으며, 벌거벗었고, 모든 것이 필요한 자인지를 깨닫게 됩니다[계 3:17].

인간과 함께 하는 명예는 대부분 무지와 겉모습의 열매입니다. 칭찬으로 마음을 끄는 기술은 우리의 실제적이고 참된 본성을 감추고, 학습을 통해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따라 우리의 의견을 형성하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참되고 정직하시지만, 모든 인간은 거짓말쟁이입니다. 인간이 항상 거짓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은 본래 거짓을 말하는 자입니다.

인간은 그 존재 자체가 거짓되며 부정직합니다. 실재와 겉모습, 본질과 드러남, 속 사람과 겉 사람은 서로 모순됩니다.

우리는 정말로 우리 자신과 다른 이들을 위해 상상 가운데 살아갑니다. 우리가 바른 빛 가운데서 이런 공상과 상상을 바라본다면,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 어떤 것도 본질적으로 잃어버리는 것이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본질적으로 가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은 우리가 부하고, 풍성하며,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는 공상과 상상입니다

죄가 가진 가장 두려운 비참함은 우리가 눈이 멀었다는 것이 아니라, 눈이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가 보고 있다고 상상하는 것입니다. 죄는 죄책이고, 부패이며, 수치인데, 그 위에 어리석음과 무지도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길 원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이런 상상을 거부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뜻은 우리와 다른 사람의 의견이 아무런 가치와 의미가 없다는 사실과,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에 유일한 소망을 두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고백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과 모든 것, 즉 우리의 명성과 명예, 우리의 소유와 피, 우리의 영혼과 생명을 버리는 것을 포함합니다

자기를 보호하려는 욕구는 외관상 자신의 모든 권세와 능력과 더불어 사람을 이끄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복음과 반대되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기 때문이며, 실제로 그럴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롬 8:7].

육신을 따르는 인간은 하나님의 영의 일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육신을 따르는 인간은 우리 자신을 버리는 것이야말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참되고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모든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모든 참된 신앙고백은 하나님의 선물이고 성령의 사역의 열매인 마음의 믿음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을 다 성취하셨다 할지라도, 만약 승천 이후에 모든 진리로 우리를 이끄시는 성령 하나님을 보내주지 않으셨더라면 그리스도의 사역은 열매를 맺지 못했을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이 세상에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확신케 하시며 그리스도를 증언하십니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를 교회의 주요 교회의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교회 공동체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증언하십니다.

성령께서 자신의 전능한 권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실 때, 굳어졌던 마음이 깨지고, 가장 완고했던 무릎이 구부러지며, 가장 큰 소리를 외쳤던 입이 닫힙니다.

성령의 증언 앞에 우리의 생각과 사상들은 더 이상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 거품처럼 사라져 버립니다.

우리 마음에 심어진 믿음이 불신앙에 대한 다양한 유혹에 직면할 때, 이 믿음을 말과 행실로 드러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는 계속 필요합니다.

담대히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용감함은 말씀을 맡은 사역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신자에게도 꼭 필요합니다. 이 담대함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진리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증언하는 것, 믿음을 굳게 하고 모든 사람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유롭게 진리를 전하는 것입니다.

이 담대함의 근거는 죄를 용서받았다는 복된 확신과,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 기도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간구할 수 있다는 자유에서 비롯됩니다.

이 담대함은 성경과 교회 역사에서 언급되는 용감하고 흔들리지 않는 신앙고백자들의 수많은 예를 통해 우리 안에서 더 단단해집니다.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자들은 결코 홀로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때때로 특정한 장소와 시간에서 자신이 버림받고 홀로 서 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인류의 핵심이자 세상의 빛과 소금입니다.

믿음의 능력은 시류를 거슬러 노를 젓고, 모든 사람이 우리에게 복음을 위한 것이라고 속이면서 하는 악한 말들을 견디기 위해 분명히 필요합니다.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저들과 함께하는 자들보다 더 많기 때문입니다[왕하 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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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직업 저술가>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엄격히 말해서 저술은 전문 직종이 아니다. 전문 직종이 되려면 최소한의 기본 능력을 기르는 특별 교육이 존재하고, 그 능력을 심사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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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의 다양성은 우리 지성의 어두움에 의해 비롯되는 이런 오류들과 절대 혼동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 기독교회 가운데 나란히 함께 존재하는 다양한 신앙고백들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중립적인 태도를 취할 수 없습니다. 어떤 때는 강제적으로, 어떤 때는 인위적인 수단으로 그리스도의 교회의 통일성을 보존하고 회복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던 과거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의 선한 의도에 경의를 표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시도들이 매우 선한 의도에서 시작되긴 했지만, 오히려 진리가 왜곡되고, 자유는 억압되었으며, 다양성이 증가된 것 외에 그 어떤 다른 결과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고 고려해야 합니다.

게다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손으로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것과 역사 속에서 자신의 지혜로운 계획과 판단을 실행하신다는 사실도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모든 것들을 다스리기 때문에, 그 어떤 것에도 우연은 없으며, 특히 성부 하나님께서 교회의 머리와 왕으로 그리스도를 특정해 기름 부으신 기독교회 속에는 더욱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통일성 안에서 다양성을 사랑하십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성부의 창조, 죄로 인한 타락,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으로 말미암은 회복과, 성령 하나님의 은혜를 통한 하나님 나라로의 재창조입니다.

실제로 모든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삶, 의지와 행동 가운데서 자연과 은혜 사이의 관계를 반드시 조정해야 합니다

좀 더 넓은 영역들, 즉 교회와 국가, 가정과 사회, 학문과 교육 가운데서도 자연과 은혜의 관계는 끊임없이 드러납니다.

진리는 분명히하나이지만 이 하나의 진리는 각 사람의 의식 가운데 서로 매우 다양하게 반영됩니다. 오직 하나의 태양이 창공에서 빛을 발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 빛을 각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과 같습니다.

통일성은 다양성 안에서 분명히 실제로 존재하며, 선명하고 단순하게 드러납니다.

보편교회 혹은 공교회는 기독교의 고백으로 온 땅에 퍼져 있고, 모든 참된 신자를 포함하며,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며, 모든 세상에 의미가 있는 교회임을 나타냅니다

기독교는 모든 나라와 시대, 모든 지위와 계층, 모든 공간과 시간에 적용이 가능한 세계적 종교입니다. 공교회라는 뜻은 교회가 신앙고백이라는 가장 순수한 방식으로 기독교의 세계적인 특징을 가장 자유롭게 적용한 표현입니다.

기독교의 보편성과 공교회성은 하나님의 통일성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야말로 완전한 종교이며, 유일하고 본질적인 참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기독교 외의 다른 종교가 기독교와 동등한 가치를 지니는 것을 용인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사람을위한 것이지, 그 어떤 측면에서도 사람을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각 시대의 정신과 사조에 따라 복음의 옷을 다르게 입히길 원하는 자에게는 복음의 능력은 힘을 잃고, 그런 식으로 복음의 문을 열고 찾고자 했던 것에 대해 실망만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의 목적은 죄를 지은 자들과 하나님을 화목케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구원에 이르는 기쁜 소식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성도들의 교제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즐거움으로 창조세계를 사랑하십니다. 그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기쁘게 누리시고 그 영광스러움 속에서 자신을 새롭게 하십니다

최고의 그리스도인은 최고의 시민입니다.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의 삶을 무시하거나 대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당하고 용감하게 세상 속에서 자신의 삶을 품으며, 어디서든지 십자가의 깃발을 세웁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든 피조물, 정신과 마음, 영혼과 육체, 가정과 사회, 과학과 예술을 위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눅 2:10]

기독교는 모든 나라와 시대, 모든 지위와 계층, 모든 공간과 시간에 적용이 가능한 세계적 종교입니다. 공교회라는 뜻은 교회가 신앙고백이라는 가장 순수한 방식으로 기독교의 세계적인 특징을 가장 자유롭게 적용한 표현입니다.

기독교의 보편성과 공교회성은 하나님의 통일성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야말로 완전한 종교이며, 유일하고 본질적인 참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기독교 외의 다른 종교가 기독교와 동등한 가치를 지니는 것을 용인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사람을위한 것이지, 그 어떤 측면에서도 사람을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각 시대의 정신과 사조에 따라 복음의 옷을 다르게 입히길 원하는 자에게는 복음의 능력은 힘을 잃고, 그런 식으로 복음의 문을 열고 찾고자 했던 것에 대해 실망만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의 목적은 죄를 지은 자들과 하나님을 화목케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구원에 이르는 기쁜 소식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성도들의 교제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즐거움으로 창조세계를 사랑하십니다. 그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기쁘게 누리시고 그 영광스러움 속에서 자신을 새롭게 하십니다

최고의 그리스도인은 최고의 시민입니다.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의 삶을 무시하거나 대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당하고 용감하게 세상 속에서 자신의 삶을 품으며, 어디서든지 십자가의 깃발을 세웁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든 피조물, 정신과 마음, 영혼과 육체, 가정과 사회, 과학과 예술을 위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눅 2:10]

신앙고백의 뿌리와 기원은 분명히 마음에 있지만, 신앙고백의 본질과 특징에 따르면, 신앙고백은 입의 일이며, 입술의 사역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위대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위대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처럼 모든 위선을 담대하게 드러내면서, 동시에 말의 중요성과 하나님 말씀으로 하는 간증의 능력과 가치를 높이 인정하는 책은 없습니다.

인간은 창조주로부터 이성과 마음을 받았을 뿐 아니라, 혀와 언어도 받았기 때문에, 인간은 생각하고 느끼면서, 동시에 말하고 증언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인간이 말할 때는 반드시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을 찬양하고 선포해야만 합니다.

마음으로 중립을 지키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입술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고백하지 않는 자는 그를 부인하는 자입니다.

재창조 속에서 인간이 또다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찬양하고, 선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마음과 말을, 생각과 혀를 함께 구속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영혼과 육체를 모두 자유롭게 하시고, 그의 혀를 풀어주시며 입술을 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입에 웃음을 채우시며, 그 입술에 즐거움을 채우십니다. 생각과 말은 함께 속해있으며 서로 분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시려고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에 권능을 세우심으로 스스로 영광을 받으십니다[시 8:2].

입술의 고백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께로 되돌아가며, 하나님의 은혜와 영을 통해 우리의 마음에 믿음과 사랑이 일어납니다.

신앙고백은 신자 개인 뿐 아니라 교회 전체에게도 특권입니다. 교회는 믿기 때문에 고백합니다.

교회는 모든 시대 가운데서 고백합니다. 교회는 교회 안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친구들과 적들에게 알려줍니다[벧전 3:15].

교회는 모임과 예배와 기도와 찬송과 자비의 사역과 사랑의 은사 가운데 그 믿음을 드러냅니다. 교회는 항상, 어디에서나 고백합니다. 교회는 고백하는 교회 외에는 다른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신앙고백이 발전하는 것을 가로막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유지되기를 힘쓰며, 신앙고백을 바른 길로 세워주고 무너지지 않는 길로 이끌어줍니다. 교회의 신앙고백은 성경과 나란히 서 있거나 높지 않고, 오히려 성경보다 훨씬 아래에 있습니다.

교회의 신앙고백에는 중요한 교육적 가치와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점점 더 성숙해져 가는 개인들은 이 신앙고백 안에서 자라가며, 후에 이 신앙고백을 스스로 자유롭게 받아들입니다

기록된 신앙고백이 아무리 숭고하더라도, 이 고백은 개인의 신앙과 절대 분리될 수 없을 뿐 아니라, 교회가 자기 스스로를 세상으로부터 구별하고 대항하는 증언들과 행동들과 분리되어서도 안 됩니다.

기록된 신앙고백은 영광스러운 유산이기 때문에 우리를 옭아매지 않습니다.

기록된 신앙고백은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우리를 속박하는 권위를 가지지 않습니다.

기록된 신앙고백은 다른 행위들과 마찬가지로 교회의 신앙을 통해 시시각각 활기차게 움직여 대대로 이어집니다.

기록된 신앙고백은 현재도 여전히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신앙고백은 오늘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통해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순수한 신앙고백이고,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가장 선명한 설명이며, 구원의 보물을 가장 아름답게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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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구트 꿈 백화점 -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이미예 지음 / 팩토리나인 / 2020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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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웃고, 운다.

'꿈'을 통해 만나게 되는 다양한 색깔의 이야기.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로부터 꿈이 주목받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꿈은 미지의 영역이다.



끊임없는 과학의 발전도,

마음대로 꿈을 통제하거나 조절하지 못한다.



이 책은 원하는 꿈을 구매하여,

그 꿈을 꿀 수 있다는 기발한 상상으로 시작한다.



책의 서두에 들어 있는 또 다른 책 '시간의 신과 세 제자 이야기'.

이는 이 책과 꿈을 이해하는 상징적 이야기다.


이 책을 통해 꿈은 여러 역할을 감당한다.

누구에게는 추억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희망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는 꿈을 통해 절묘하게 교차한다.

나와 너, 우리는 꿈에서 하나 되며,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소통한다.



꿈을 통해 누군가는 상처로부터 회복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오랜 꿈을 이루기도 한다.



곳곳에서 발견하는 깊은 통찰과 여운은,

일상에서 지친 우리에게 큰 위로와 기쁨을 준다.



어쩌면 이미 우리 안에,

회복과 성장의 씨앗이 있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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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어렵고 힘든 일 뒤에는, 그걸 이겨냈던 자신의 모습도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 우린 그걸 스스로 상기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단다. - P153

여러분을 가둬두는 것이 공간이든, 시간이든, 저와 같은 신체적 결함이든 ···. 부디 그것에 집중하지 마십시오. 다만 사는 동안 여러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데만 집중하십시오. 그 과정에서 절벽 끝에 서 있는 것처럼 위태로운 기분이 드는 날도 있을 겁니다.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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