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수치심이 내면화되면 이제는 외부에서 굳이 자극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내면에서 작동하게 된다. 이는 자신이 수치스러웠던 당시 상황을 상상하거나 내면에서 울려오는 부정적인 소리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내면의 불만족을 보상받으려는 행위이며 이에 따른 결과는 오히려 그 전 보다 더 비참해지며 수치심의 정도가 더 깊어질 뿐이다.
사람들을 중독으로 몰아가는 중심에 깔린 생각은 자신이 열등하고 불안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이 생각을 달래 보고자 일과 쇼핑 또는 도박을 통해 몰두하여 잠시 잊으면서 순간적인 만족을 구하려 든다.
기본적 욕구나 느낌이 수치심에 묶였다는 것은 이미 건강한 수치심이 해로운 수치심으로 변형되어 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뜻과 같다. 이는 당신이 무엇을 원할 때마다 그 욕구를 수치스러워 한다는 말이다.
건강한 느낌으로써 수치심은 우리가 한계가 있음을 알려준다.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한계 말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한계가 있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어쩔 수없이 제한된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