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자녀는 보는 이의 눈살이 찌푸려지지 않을 정도로만 단정해 보이면 된다. 그러고 나면 대중의 시선을 피할 수 있다. 대중의 시선이 없는 곳에서는 뭐든 지나치게 멍청한 일에만 휘말려 들지 않으면 된다. 그런데 PK에게는 예수님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거룩해지는 것 말고 다른 선택이 없어 보인다. 목회자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성결함이 요구된다.
아버지의 부르심이 아이의 부르심은 아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역은 아이에게 쇳덩이 같은 부담을 안길 수 있다.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어느 순간부터 그저 그 무게가 느껴질 따름이다. 아무리 훌륭한 목회자 부모라 해도 자녀를 그 무게에서 벗어나게 해주기란 어렵다. 그리고 수많은 PK를 힘겹게 하는 것이 바로 그 무게다.
아이는 목회자가 되기로 선택한 아버지의 부르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아는 것이라고는 그 부르심이 자기 삶에 미치는 영향뿐이다. 아버지가 사역자의 길로 들어설 때 아이는 자기도 사역자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의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아이에게는 부르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신앙을 떠나는 것도 잘못이지만 율법주의적으로 완벽함을 추구한들 그 결과는 마찬가지다. 사람들의 이런 잘못된 기대심 사이에서 PK는 불안이라는 시선을 받으며 살아간다.
PK에 대해 갖고 있는 두 가지 상충하는 시선을 접하게 된다. 그것은 실족하길 바라는 비뚤어진 기대심과 완벽하길 바라는 율법주의적인 기대심이다. 이런 기대는 분명 잘못된 것이기에 PK가 부응할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