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패러독스는 자기 자신을 향한 길이 책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그저 통과만 하고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책이라는 것이 그저 책이라기보다 책이 순환되고 수정되는 어떤 발화 상황의 총체라고 한다면, 어떤 책을 읽지 않은 채 그 책에 대해 정확하게 말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책을 읽어나가는 중에도 이미 나는 앞에서 읽은 것을 망각하기 시작하는데, 이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마치 내가 그 책을 읽지 않은 것처럼 되어버리는 순간까지, 즉 다시 비(非)독자가 되어버리는 순간까지 연장된다.
독서는 우선 비(非)독서라 할 수 있다. 삶을 온통 독서에 바치는 대단한 독서가라 할지라도, 어떤 책을 잡고 펼치는 그 몸짓은 언제나 그것과 동시에 행해지는, 그래서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그 역(逆)의 몸짓을 가린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글 쓰는 일을 완전히 중단하지 않는 한 언제라도 자신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