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물 자체가 아니라 사물에 대한 관념을 대하는 거예요. 시는 언어를 변형하고 굴절시킴으로써, 관념에 싸여 있는 사물을 구해내지요. 하지만 구해내는 그 순간, 사물은 또 다른 관념이 되고 말아요.
한 독서가가 낙담하는 바로 그 책장에서 또 다른 독서가는 웃을 수 있다는 사실에는 독서 행위가 갖는 창조적인 본질이 담겨 있다.
우리는 결코 똑같은 책으로, 아니면 똑같은 페이지로 되돌아갈 수 없는데, 그 이유는 그 다양한 빛에 싸여서 우리도 변하고 책도 변하고, 그리고 우리의 기억도 밝았다가 쇠해졌다가 또다시 밝아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시각과 청각의 장점은 이미지나 텍스트에 전혀 변형이나 해석을 가하지 않고 그대로를 진술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독서가가 자기가 사는 시대와 공간의 입장에서 자기와는 전혀 다른 시대와 공간을 호흡했던 사람들이 그 그림이나 단어를 통해 무엇을 담고자 했는지를 재창조해 내는 데 있다.
독서는 사고의 한 형태이자 말하기의 한 형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