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적 설교는 창조세계와 인류와 교회를 위해 하나님이 품으신 뜻과 의도를 중심 주제로 삼는다.
성경 전승의 단언대로, 하나님은 세상의 근본적이고 영속적인 안녕, 기쁨에 찬 순종을 통해 이루어지는 안녕을 바라신다.
하나님이 세상을 위해 품고 계신 의도, 곧 구원 서사와 예언자적 약속이라는 장대한 주제로 표현된 의도는 세상으로 하여금 자유와 정의와 평등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건네신 담화, 수많은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되풀이된 그 담화는 삶을 가능하게 하며, 하나님과의 친교 및 이웃과의 화해를 용이하게 하는 행동방식을 옹호한다.
하나님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건네신 담화는 고압적인 강요가 아니라 온전함을 가능하게 하는 선물이다. 하나님의 명령과 그 중개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이다.
나는 설교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충고가 아니라 설득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정보가 아니라 이미 복음으로 받아들인 것을 담차고 기탄없이 권위 있게 실행에 옮기는 일이다.
설교자의 과제는 성경 자체가 복종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보여 주고, 그런 다음 회중에게 그 제한 없는 해석 작업에 참여하도록 권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참여는 극단적으로 단순화된 복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지만, 신실하게 살고자 하는 회중에게는 꼭 필요한 일이다.
이스라엘의 복종은 하나님이 주시는 쉼, 하나님이 자신의 활동 속에서 모범적으로 보여 주시는 쉼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것과 관계있다.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의 근본적 정체성을 제시하는 모세오경에 이 규정을 포함시켰다. 희년 규정은, 성경의 다른 많은 이상적 요소들과 마찬가지로, 이행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빚의 면제는 존엄성과 자유를 얻어 공공생활에 다시 들어서는 것을 허락한다. 희년은 하나님의 개입이다.
하나님은 토지, 세금, 빚과 관련된 비인간적 관행들로 지속되는 악순환(부채와 빈곤)의 고리를 끊으신다. 희년 계명은 탐심과 탐욕에 물들지 않은 삶을 보여 준다.
희년은 탐욕의 반대말이다. 탐욕은 죽음을 초래하고, 희년은 생명을 초래한다. 불균형의 포기는 우리에게 두려운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것은 생명에 이르는 길이다(참조. 막 10:17-22).
탐내지 말라는 계명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자기를 내주실 뿐, 우리를 움켜쥐려 하지 않으신다. 이 사실을 담고 있는 계명 속에는 분배의 권유가 담겨 있다. 그러나 그 권유대로 하려면, 심하게 축소된 세상을 거역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설교 행위는 변화를 상상하는 행위다. 시인은 설교 시간에 세상을 다르게 인식하고 표현하도록, 새로운 표현, 새로운 그림,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주제들을 새롭게 병치하는 것을 감행하도록 허락받은 사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