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를 기반으로 하는 대화는 쉽게 풀리지 않기 때문에 나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험담하는 사람을 굳이 애써 붙잡지는 않는다. 하지만 오해를 풀 수 있는 가능성을 얘기하기도 전에 낮출 필요는 없다. 나에 대한 이미지 관리는 다수에게 정확한 견해를 밝히는 것과 소수에게 내 진심을 전달하는 일이 아닐지 생각해본다.

자신의 약점을 타인에게 드러내는 행위는 그들에게 비난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니 굳이 드러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장단점이 존재하고, 지금 그들에게 보이는 화려한 모습 뒷면에는 ‘아픔‘이라는 그림자가 따라다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해봤자 상처만 받고 얻을 게 없다. 당신이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없듯이,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러니 나를 잃어버리면서까지 그들에게 모든 신경을 쏟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타인을 험담하는 것이 습관 되어 있는 사람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타인의 단점을 어떻게든 찾아내고, 자신의 결점에 대해서는 눈과 귀를 막고 있다는 것. 자신의 장점들은 어떻게든 부풀리려고 애쓰고 있지만 결국 열등감에 사로잡히는 사람들이다.

말하기보다는 경청, 비판보다는 격려, 어쭙잖은 충고보다는 위로의 한마디가 그 사람에게는 힘이 된다.

가끔 보면 충고가 도움이 된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근데 문제는, 타인의 충고를 듣고 따를 만큼 성숙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사람이 좋은데 이유가 없듯 싫어하는 것도 이유가 없다. 갈등이 생겨서 먼저 말을 건네고 사과했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화해를 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 반면, 겉으로는 받아들인 척하면서 계속 마음에 담아두는 사람이 있다. 나를 못마땅하게 보는 사람과의 관계 유지의 여부는 스스로에게 달려있다.

신체능력이 발달하였다고 해서 운동이 힘들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내 여린 마음이 예전보다는 덜 상처받는 것일 뿐이다. 이성적이고, 강한 사람도 상처받는다. 애초에 상처받지 않겠다는 각오보다는 상처를 극복하는 시간을 줄여나가는 노력을 하는 편이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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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인생이든 행복한 인생이든 인생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매 시기 주어지는 삶의 고민과 문제 앞에 우린 정답을 찾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답을 찾기 위한 고민의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그럴 때 가슴을 후벼 파는 아픔도, 저미어 오는 슬픔도, 되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삶의 흔적들도 발견할 수 있다.

문제를 바로 알아야 해답을 찾을 수 있듯이 현재의 삶이 이해돼야 아픈 상처를 치유하고 행복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그럴 때 필연적으로 삶의 변화가 일어난다.

글의 생명이 진실이라면 우리의 삶도 진실해야 한다. 삶이 곧 글이기 때문이다. 삶의 이야기가 글이라는 도구를 통해 새롭게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인생은 진실한 하나의 문장을 찾는 여정과 같다고 말한다. 그러니 어찌 글이 사람을 참되게 한다고 아니하겠는가.

먼저 글을 잘 써야겠다는 부담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 삶을 변화시키겠다는 의지 하나로 시작하면 된다. 그것이 씨앗이 되어 수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다시 세팅해야 한다. 잘 써야 하는 글이 아니라 삶을 변화시킨다는 의미로서의 글, 그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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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은 타인을 설득하지 않는다. 비판받을 만한 곳에 미리 가 있을 줄 아는 작가가 성공한다."

글은 화려하기보다는 솔직해야 한다. 100개를 다 가진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전략은 최악이다. 80~90개쯤 가진, 10~20개쯤 부족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때 더 돋보이게 마련이다. 솔직함이야말로 타인들의 실시간 피드백을 얻는 글을 쓸 때 최선의 전략이다.

알랭은 또 "진정한 성공이란 평화로운 상태에 놓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평화로운 상태를 얻으려면 주체의 삶을 회복하고 타인이 나를 이해하고 받아주기를 바라지 않아야 한다.

어떤 사람이 자신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며 당신에게 화를 낸다고 해보자. 그의 얼굴을 천천히 살펴보라. 그는 당신의 이해 부족 때문에 화를 내고 있는 게 아니다.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자신의 불안 때문에 당신에게 못 되게 구는 것이다. 대부분의 화와 불안, 두려움은 이런 방식으로 세상에 존재한다.

그러니 당신의 타인의 반응보다는 자기 자신의 반응을 더 깊이 살펴야 한다. 타인에게 상처받는다는 건, 결국 자신에게서 상처받는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성공하려면 높은 리스크risk를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정작 큰 리스크를 감수하겠노라 결정하고 대담하게 뛰어들면, 생각보다 큰 리스크는 별로 없다. 정작 리스크보다 더 많이 만나는 것은 인생을 바꿀 만한 잠재력, 즉 다양한 ‘가능성‘이다. 그러므로 인생은 어떤 리스크를 선택할 것인지로 결정되지 않는다. 어던 가능성을 선택할 것인지, 더 큰 가능성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의 여부로 결정된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알게 된다."

중간부터 시작해도 상관없다는 걸 알면, 즉 굳이 처음부터 반드시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면 삶이 한결 단순해진다.

"당신이 낮에 들은 것, 경험한 것, 생각한 것, 계획한 것, 뭔가 실행에 옮긴 것들 가운데 새벽 한 시가 됐는데오 여전히 이야기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 것이 있는가? 그것이 당신에게 엄청난 성공을 안겨줄 것이다. 나아가 그것에 대해 함께 대화를 나누고 토론을 하고 당신을 반박해 줄 사람이 있는가? 그 사람을 제외한 모든 말은 다 헛소리다."

가장 큰 도움과 위안은,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불멸의 위대한 작가들도 매일 나처럼 진흙탕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핵심은 ‘의지‘다. 작가를 만드는 건 문장력이 아니라 어떻게든 ‘쓰고자‘하는 의지다. 의지를 포기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탁 풀려나가는 실마리를 잡게 된다.

"자신을 더 많이 알리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그 시간에 더 많이 알릴 수 있는 ‘능력‘을 키워라. 단순히 잘하는good 사람이 아니라 위대한great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뚜렷하게 깨닫게 된다. 이 세상에는 정말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은 많지만, 자신의 일에 영혼까지 쏟아 붓는 위대한 사람은 별로 없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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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과 논리 중심의 선형적線型的 지식은 지식이라기보다 지식의 파편입니다. 세상은 조각 모음이 아니고 또 줄 세울 수도 없습니다.

우리의 강의는 여기 저기 우연의 점들을 찍어 갈 것입니다. 순서도 없고 질서도 없습니다.

우리의 삶이 그런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느 날 문득 인연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인연들이 모여서 운명이 되기도 합니다.

공부는 살아가는 것 그 자체입니다.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서 공부해야 합니다. 세계는 내가 살아가는 터전이고 나 또한 세계 속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공부란 세계와 나 자신에 대한 공부입니다. 자연, 사회, 역사를 알아야 하고 나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공부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키우는 것입니다. 세계 인식과 자기 성찰이 공부입니다.

고전 공부는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 온 지적 유산을 물려받는 것입니다. 역사와 대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대 사람들과도 소통할 수 있게 합니다. 언어를 익히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전 공부의 목적은 과거, 현재와의 소통을 바탕으로 하여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공부란 세계 인식과 인간에 대한 성찰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창조입니다.

고전 공부는 고전 지식을 습득하는 교양학이 아니라 인류의 지적 유산을 토대로 하여 미래를 만들어 가는 창조적 실천입니다.

모든 고전 공부는 먼저 텍스트를 읽고, 다음 그 텍스트의 필자를 읽고,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독자 자신을 읽는 삼독三讀이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텍스트를 뛰어넘고 자신을 뛰어넘는 ‘탈문맥‘脫文脈이어야 합니다. 역사의 어느 시대이든 공부는 당대의 문맥을 뛰어넘는 탈문맥의 창조적 실천입니다.

생각은 잊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어머니가 떠나간 자녀를 잊지 못하는 마음이 생각입니다. 생각은 가슴이 합니다.

생각은 가슴으로 그것을 포용하는 것이며, 관점을 달리한다면 내가 거기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생각은 가슴 두근거리는 용기입니다. 공부는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애정과 공감입니다.

변화와 창조는 중심부가 아닌 변방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중심부는 기존의 가치를 지키는 보루일 뿐 창조 공간이 못 됩니다. 인류 문명의 중심은 항상 변방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러나 변방이 창조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전제가 있습니다. 중심부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어야 합니다. 중심부에 대한 콤플렉스가 청산되지 않는 한 변방은 결코 창조 공간이 되지 못합니다.

언어나 문자는 추상적인 기호일 뿐만 아니라 문학, 역사, 철학 역시 세계의 올바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언어에는 분명 언어 자체의 개념적 의미와 함께 언어 외적인 정서도 함축되어 있습니다. 삶 속에서 경작된 그 사람의 인품과 체온 같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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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은, 당신이 그걸 어떻게 정의하든 간에, 올바른 경험으로 얻어진 믿음과 습관들을 쌓아가다 보면 반드시 성취할 수 있다.

당신 마음에 떠오르는 슈퍼 히어로들(기업가, 억만장자, 최고의 하이퍼포머 등)은 모두 걸어 다니는 결점투성이들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완벽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좋은 아이디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단순한 사실 한 가지만 깨달으면 인생의 폭이 훨씬 넓어질 수 잇다. 그건 바로 우리가 ‘일상life‘이라고 부르는 건 모두 우리보다 별로 똑똑할 것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바꾸거나, 거기에 영향을 미치거나, 자신만의 뭔가를 만들어 타인이 좀 더 지혜롭고 편하게 사용하도록 할 수 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면 다시는 세상이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바야흐로 그 어느 때보다도 글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설득하고, 변화시키는 시대가 왔다.

"코드 시안code poet, 즉 우아하고 시적인 스타일을 지닌 프로그래머들이 미래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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